38화 추격대의 비밀(3)
천리형과 방도 세 명은 공터를 떠나서 덫을 설치해 둔 곳으로 이동했다.
천리형이 뒤따라오는 방도들에게 말했다.
“그 꼬마 놈한테도 철사위를 굴리게 하겠소. 단 이번에는 손가락이 아니오.”
“손가락이 아니라고요? 그럼 어디를…….”
“철사위 눈은 일이삼사오요. 사람도 검으로 벨 곳이 다섯 군데 있지. 왼팔, 오른팔, 왼다리, 오른다리, 그리고 머리.”
“오오, 역시 새 방주님이십니다!”
방도들이 뒤늦게 천리형의 뜻을 알아차리고 아부를 했다.
철사위의 일이삼사오 눈에 맞춰서 서백의 목과 사지를 베겠다고 선언한 것!
천리형 일당은 킬킬거리며 수풀 속을 이동했다.
그런데 천리형의 뒤에서 살짝 눈쌀을 찌푸리고 있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천리형의 오른팔인 자충이었다.
그는 천리형의 행동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새 방주는 능력은 있는데 사람 죽이는 재미를 밝히는 게 큰 단점이다.’
손일서 일행은 철장산에 잡아갈 필요가 있었다.
부방주 손식의 아들 손일서는 어머니쪽 외가가 무림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세가였다.
손일서 대신 천리형이 새 방주에 오르면 손일서의 외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손일서를 인질로 잡아 두는 게 중요했다.
양산과 축영도 철장산으로 끌고가 처형할 계획이었다. 다른 방도들에게 새 방주를 배신하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가 될 테니까.
반면 유소운과 왕이삼은 인질로 삼지 말고 즉시 죽이는 게 후환이 없었다.
하지만 천리형은 굳이 둘을 인질로 끌고 왔다.
‘그놈의 도박!’
모두 사람 목숨을 거는 도박 때문이었다. 천리형은 사람을 그냥 죽이는 것을 심심해 하니까.
덫도 마찬가지였다.
자충은 모삼국과 개와 고양이 사이였지만, 모삼국 추격조 네 명이 꼬마 하나한테 당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천리형은 꼬마가 모삼국을 처리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덫까지 설치하는 게 아닌가?
나뭇가지에 검은 천조각을 묶어서 표시는 해 뒀지만 모삼국 조가 알아보지 못하고 덫에 걸릴지도 모르는 일.
만에 하나 천리형의 예측대로 그 꼬마가 생각보다 고수라고 치자. 그렇다면 모삼국 추격조만 보낸 것은 위험하지 않은가?
이 모든 것이 천리형이 사람 죽이는 걸 재미 삼는 버릇 때문.
문제는 천리형을 말릴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조차 버리고 혼자 도망친 천리형.
안하무인인 그에게 감히 누가 쓴소리를 할 것인가? 그러다 눈 밖에 나면 도박의 제물이 될 텐데?
천리형이 새 방주가 되면 철장방은 피바람이 부는 냉혹한 방파가 되리라.
하지만 자충은 고개를 저으며 잡념을 지웠다.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지.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사내라면 큰 걸 노리자고!’
모삼국을 제치고 천리형의 오른팔이 되면 철장방은 자신의 손아귀에 반쯤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람 죽이는 재미에 중독된 천리형에게 끊임없이 사냥감을 갖다 준다. 그러면 천리형은 자충에게 목줄이 묶인 맹수 꼴이 될 것이다.
개망나니 천리형을 꼭두각시 방주로 조종하는 것은 무림물을 오래 먹은 자충에게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울 터였다.
‘내 인생도 드디어 볕들 날이 오는구나.’
자충은 야심만만한 생각에 입꼬리를 위로 올리며 씨익 웃었다.
방도 하나가 신바람을 내며 앞장섰다.
“덫에 걸린 사냥감을 확인하겠습니다.”
그런데 방도가 몇 발짝 걸어가는데 천리형이 두 눈을 부릅뜨더니 소리쳤다.
“당장 멈춰!”
“네……?”
방도가 영문을 몰라서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의 발밑에 풀잎이 수북이 쌓인 곳에서 밧줄 올가미가 낚시그물처럼 방도의 발목을 옥죄었다.
동시에 땅바닥에 숨겨진 밧줄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발목을 묶은 채 방도를 거꾸로 끌고 올라갔다.
촤라라락. 피잉.
“으아아악!”
사람이 밟으면 휘어둔 나무가 펼쳐지면서 공중으로 끌고가는 덫. 바로 천리형이 명령해서 설치해 둔 덫이었다.
문제는 덫이 있는 장소였다.
올가미를 설치한 곳은 몇 장은 더 가야 나온다. 그런데 어떻게 방도가 덫을 밟은 것인가? 설마 덫이 혼자서 움직여서 위치를 바꾸었다는 말인가?
공중에 거꾸로 매달린 방도가 소리쳤다.
“저 좀 내려 주십시오!”
천리형이 기분을 잡친 눈빛으로 명령했다.
“멍청한 놈. 풀어 줘라.”
자충은 방도를 내리기 위해 앞으로 나갔다.
그때 허공에서 거대한 통나무가 포물선을 그리며 방도를 향해 날아갔다. 통나무는 공중에 거꾸로 매달려서 꼼짝 못하는 방도를 통째로 뭉개 버렸다.
쩌억. 아아아악…….
방도는 비명도 다 못 지른 채 축 늘어지며 절명했다.
“……!”
자충은 숨을 멈추며 경악했다.
그들이 설치한 덫은 두 종류였다. 발목을 잡아당기는 올가미 덫과 통나무가 시계추처럼 내려와 사람을 깔아뭉개는 덫이었다.
두 개의 덫은 하나를 피해도 다른 하나에 걸리도록 거리를 두고 설치해 두었다.
그런데 올가미처럼 통나무도 위치가 옮겨져 있다니…….
그것도 모자라 올가미에 걸린 자를 향해 통나무가 날아들도록 정확히 계산되어 있었다. 누구든 한 놈 걸리면 끝장을 내려는 것처럼.
마치 기관진식처럼 연속으로 작동되는 덫!
‘그 꼬마 이름이 서백이라고 했나?’
두 개의 덫을 하나처럼 옮겨 놓은 수법은 절대 얕볼 만한 게 아니었다. 서백이란 꼬마는 덫 설치를 명령한 천리형의 술책을 손바닥 위의 일처럼 내다보고 있던 것이 분명했다.
자충 옆에 있는 방도가 천리형에게 물었다.
“일단 방도부터 내릴까요?”
“그냥 놔둬! 어차피 뒤진 놈 내려서 뭐하게.”
“네…….”
천리형은 두 눈이 사납게 치켜뜬 뱀의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기품 있던 목소리로 말하던 존대도 어느새 반말이 되었다.
자충은 침을 꿀꺽 삼켰다.
천리형이 평소 숨기고 있는 성품을 드러낼 때는 절대 건드리면 안 됐다.
“주위를 샅샅이 살펴서 꼬마 놈을 찾아라!”
“존명!”
“꼬마 놈은 절대 죽이지 마라. 손가락부터 팔다리를 하나씩 자르면서 죽일 테니까.”
패거리는 일제히 검을 뽑아들고 주위를 뒤지기 시작했다.
자충은 어쩐지 등골이 오싹했다.
무림물을 오래 먹은 그는 철장방에 들기 전에 명문정파 인물들을 몇 번 만날 기회가 있었다.
명문정파, 그중에서도 소림, 무당, 화산 같은 곳은 고수가 산처럼 많았다. 또한 명문정파의 고수는 나이와 상관이 없었다.
문주에게 직접 무공을 전수받는 제자는 어린 나이에 고수 반열에 오르곤 했다. 특히 어려서부터 명문정파의 내공심법을 수련한 자는 약관도 안 된 나이에 내공이 일류 수준을 넘을 정도로 심후했다.
그렇다면 서백이란 꼬마도 혹시?
물론 자충은 꼬마 하나에게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일단 천리형부터가 고수였다.
꽤 실력 있어 보이는 유소운을 암습해서 제압한 것도 천리형이었다.
방주와 부방주가 죽은 지금 철장방에서 천리형을 당해낼 방도는 아무도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실력이 최우선인 방파에서 방도들이 천리형을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자충 자신과 남은 방도 하나도 철장방의 비전무공은 모르지만 실전 경험을 자부하는 도검수 출신이었다.
마지막으로 서백이 짊어진 큰 약점.
공터에 인질이 붙잡혀 있지 않은가?
각자도생의 무림에서 일부러 동료를 구하러 온 걸 보면 그 꼬마의 약점은 분명했다. 동료들의 목숨을 틀어쥐고 있는 이상 아무리 무공이 높아도 결국 항복하는 수밖에 없을 터.
사형제 간의 우애를 지나치게 챙기는 것.
그것이 명문정파 출신의 약점!
반면 야생에서 잡초처럼 살아온 자충은 동료 하나쯤 죽든 말든 적을 쓰러뜨리는 게 우선이었다.
‘제법이군, 꼬마야. 하지만 인질을 잡고 있는 이상 너는 우리를 이길 수 없다.’
순간 이상한 생각이 자충의 뇌리를 스쳤다.
‘잠깐. 그러면 아까 들었던 덫 소리는 뭐지?’
먼저 인질을 잡아 둔 공터에 있을 때, 덫이 작동하는 소리를 듣고 꼬마가 걸린 줄 알고 이동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실제 덫은 작동되지 않았고 꼬마가 옮겨 놓아서 엉뚱한 방도 하나가 희생되고 말았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자충은 입을 딱 벌렸다.
“바, 방주…….”
“뭐냐?”
천리형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지금 천리형의 성질을 건드리면 안 되지만 반드시 말해야 될 것이 있었다.
“그 꼬마 놈이 일부러 덫 소리를 낸 것 같습니다.”
“일부러? 왜?”
“저희를 속여서 유인한 다음 인질들을 구하려는 게 아닐까요?”
“……!”
그제야 천리형도 자충의 말을 알아듣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서백의 목적은 덫을 옮겨서 방도를 처리하려는 게 아니었다.
성동격서(聲東擊西). 동쪽에서 소리를 낸 다음 서쪽을 치는 기만전술.
즉 서백은 일부러 덫 소리를 내서 천리형 일당을 흩어지게 만든 뒤 인질들을 구출하려는 심계를 펼친 것이었다.
자충은 서백에 대한 평가를 수정했다.
약관도 안 된 소년이 천리형과 방도들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다니.
무공이 고강한 것은 물론 병법의 귀재!
“당장 돌아간다!”
천리형이 검을 들고 뛰자 자충과 방도도 눈빛을 교환하며 뒤를 따랐다.
잠시 후 공터에 도착한 셋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공터는 마침 세찬 바람이 불어서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고 있었다.
그때 흙먼지 속에서 무언가가 데굴데굴 굴러왔다.
마치 축국 놀이를 할 때 쓰는 공이 굴러오는 것 같은 장면.
“왜 축국공이 여기에……?”
순간 자충은 말을 삼키며 경악했다.
데굴데굴 굴러와서 자충의 발 앞에 멈춘 것은 인질을 지키고 있어야 할 방도의 잘린 목이었다!
이어서 다른 방도의 목도 굴러왔다. 공터에 남아 있던 두 방도가 모두 목이 베어진 것이었다.
“어, 어떻게…….”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드니 흙먼지 속에 그림자 하나가 서 있었다.
흙먼지가 가라앉으며 모습을 드러낸 자는 바로 서백이었다.
“도박을 빙자한 고문과 협박으로 제 동료들을 괴롭힌 보답입니다.”
서백의 목소리는 방금 두 방도의 목을 벤 자라고 하기엔 아무 감정이 실려 있지 않고 무심했다. 그게 오히려 더 소름 끼쳤다.
자충은 침을 꿀꺽 삼켰다.
공터에 남아 있던 방도 두 명이 눈앞의 서백에게 비명 한 번 못 지르고 당했다.
게다가 서백이 나타났다는 것은 모삼국 추격조 네 명도 이미 당했다는 뜻.
자충이 설마 했던 걱정이 현실이 된 셈이었다.
이름 없는 소년 고수, 그것도 무공 수위를 측정할 수 없는 고수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었다.
“보답이 과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군, 후후후.”
서백과 달리 천리형의 목소리는 덜덜 떨리는 것도 모자라 이빨을 으드득 가는 소리까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분노를 꾹 삼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무심하게 적을 살피는 자와 분노를 못 참고 잔뜩 흥분한 자.
누가 이길지 돈을 걸라면 무조건 전자다.
자충은 그런 생각이 들자 더욱 오금이 저렸다.
천리형은 분명 철장방의 현 최고 고수지만 소년을 이기리라고 확신할 순 없었다.
자충은 결심했다.
-만에 하나, 천리형을 버리고 도망친다.
실력을 우선으로 모인 방파 철장방. 방주의 대가 끊긴다 한들 다시 세력을 모아서 새 방주를 추대하면 그만.
가장 피해야 할 것은 소년 고수한테 덤비다가 개죽음 당하는 일!
자충은 다른 방도에게 기회를 봐서 도망치자고 눈빛을 보냈다. 자충과 십 년 넘게 함께한 방도는 금세 눈치를 채고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줄도 모르고 천리형은 잔뜩 허세에 찬 몸짓으로 공터를 슥 둘러보고는 말했다.
“인질은 아무도 없군. 다들 어디 있지?”
“자리를 피해서 몸을 숨기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네놈 혼자 우리를 상대하려고?”
“그렇습니다.”
무심하던 서백의 목소리가 기분 탓인지 얼음처럼 냉랭하게 바뀐 것 같았다.
“제 동료들을 심하게 폭행했더군요. 다행이 근골은 상하지 않았지만 며칠 동안 몸을 안정해야 되니 당장 싸움은 무리입니다.”
“그럼 함께 도망치지 그랬냐?”
“아직 할 일이 남아서요.”
스윽. 서백이 등에 멘 검을 손에 쥐었다.
“동료들의 복수가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