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70화 (270/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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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작은 한숨 소리가 났다.

한숨의 주인은 세실리아였다.

탁.

그녀는 커피잔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동작 하나하나에서 피곤함이 묻어나온다.

“재밌네. 난 이렇게 고생하는데…….”

세실리아가 투덜거리는 이유는 도진 때문이었다.

모니터 화면 속에는 이번 대회를 리뷰하는 도진이 있었다.

[“마지막 경기는 사실 줄다리기 같은 거였죠. 탄토 형은 저한테 다른 마법을 준비할 시간을 안 주려고 몰아쳤고, 전 그걸 받아내면서 어떻게든 마법을 비축해 두려고 했고.”]

[“정말 다시 봐도 희대의 명장면이라고 할 만하네요. 이렇게까지 극적인 장면으로 대회의 마지막을 장식하실 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요.”]

벌써 마지막 경기를 리뷰하는 건가?

세실리아는 진하게 내린 커피를 마시며 도진과 아나운서가 나누는 걸 보고 들었다.

화자가 바뀌었다.

“뭐야……?”

화면에 갑자기 티라노사우르스가 등장했다.

세실리아는 적잖이 당황했으나 곧 그게 탄토라는 걸 알았다.

티라노 밑에 친절하게도 ‘탄토’라고 이름표 자막이 달려 있는 덕이었다.

‘…저 파티에는 정상인이 없는 거야?’

그나마 도적이 제일 멀쩡한 줄 알았더니.

가면 안에 광기를 숨기고 있던 건가.

[“…말대로 도진이가 회로에 마법을 장전 못 하게만 하면서 기회를 잡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뭐… 결국 뜻대로 되지 않았지만요. 도진이가 제가 계산한 것보다 훨씬 빠르게 마법을 완성시켜 놨더라고요.”]

아, 놓쳤네.

세실리아는 미간을 문질렀다.

다른 생각을 해서인지, 아니면 너무 피곤해서인지 탄토가 하는 말을 놓쳤다.

‘놓친다고 문제 생기는 건 아니지만.’

세실리아가 거의 끝나가는 리뷰 방송을 켠 건 대회 내용이 궁금해서가 아니었다.

도진이 뭘 하고 있는지 보려는 이유이지.

“남은 죽을 고생을 하는 동안 아주 신나게 즐기고 있네. 괘씸하게.”

요즘 세실리아는 매우 바빴다.

한동안 일을 시키기는커녕 연락마저 뚝 끊겨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최근 갑자기 ‘계약자’로서 수행해야 할 퀘스트가 내려왔다.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을 만들라니.”

퀘스트 내용은 무려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을 만드는 것.

그걸 받을 당시 세실리아는 메신저인 ‘반짝이’에게 이렇게 물었었다.

「다른 세상이랑 연결된 문이 여기저기 숨겨져 있다며? 그걸 찾는 거면 몰라도 만들라니…….」

돌아온 대답은 이러했다.

「이미 존재하는 문들은 도착 지점이 정해져 있거나 어디로 연결될지 알 수 없는 불확정성을 지녔거나 둘 중 하나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하나도 없어.」

「그러니까 목적지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게 아예 처음부터 문을 만드시겠다? 」

「만드는 건 우리가 아니다. 너다.」

「…….」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해. 운명을 많이 억제해 두었지만, 벌어 둔 시간은 눈 깜빡할 새에 흘러갈 테니 말이야. 교단도, 별도, 세계도, 그것마저 초월하는 것들은 반드시 다시 움직일 거야.」

「…진짜 다급해 보여서 투덜대지도 못하겠네.」

결론은, 지금까지도 그 빌어먹을 문이라는 걸 만들기 위해 뼈가 빠지도록 일하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문을 만드는 방법은 이러했다. 저쪽에서 퀘스트를 만들고, 세실리아는 그 퀘스트를 클리어한다.

퀘스트 보상으로 문의 재료를 얻고, 문을 만들 때 들어가는 힘의 확보를 덤으로 가져오는 식이었다.

「벌써 퀘스트만 12개째야. 이런 거 만드는 데도 그쪽 자원이 들어가는 거 아니었어? 엄청 아끼더니, 이만큼이나 투자해서 뭘 하고 싶은 건데?」

「지금도 최대한 아끼는 중이야. 그래서 그가 아닌 너에게 도움을 받고 있잖아. 그를 끌어들이면… 써야 할 운명의 단위가 달라지니까. 그리고 지금 하는 건 본격적인 투자에 앞서서 진행하는 검증 작업이야.」

계속해서 이어지는 퀘스트를 하는 동안 나눈 대화들.

그 속에서 세실리아는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뭔가 큰 걸 꾸미고 있어.’

10개가 넘는 퀘스트를 만들고, 그걸 자신에게 수행하게끔 하고.

그 끝에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수고를 감수하는 목적이 ‘사전 검증’이라고 했다.

그렇다는 건 지금 벌이는 일보다 훨씬 더 많은 걸 투자해서 벌일 진짜 프로젝트는 따로 있다는 소리.

그리고.

‘그 모든 게 저 사람을 향하고 있다… 이거지.’

어느새 끝나가고 있는 방송. 세실리아는 도진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자신을 뒤에서 움직이는 존재들.

그들이 운명을 베팅하기로 한 사람.

‘지금까지의 행보를 생각하면 나름 합리적인 인선이긴 해.’

이번 대회에서 보인 모습만 봐도.

세실리아는 틈틈이 챙겨봤던 대회 속 도진을 떠올렸다.

‘나름… 은 빼야겠네.’

떠오르는 장면마다 다시 어이가 없어졌다.

‘나름’은 빼야 맞다.

자신과 연결된 그들이 로스타니아의 명운을 누군가에게 걸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누군가’로 가장 적합한 건 저 사람일 거다.

“후우… 그만 놀고 일하러 가야지.”

용사님이 못 보시는 음지에서 열심히 허드렛일을 하는 불쌍한 계약자.

그게 자신의 처지라고 생각하니 약간 서러웠지만, 어쩌겠나.

‘아무것도 모르고 게임만 하고 있는 사람들보다는 딥하게 즐기는 셈이니까.’

처음에는 계약자라는 히든 클래스를 얻고, 적은 노동 많은 보상이 기꺼웠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남들이 모르는 영역에서 은밀하게 세계의 운명에 연관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점차 몰입감을 높였고, 책임감과 애정을 함께 낳았다.

‘정말 지독하게 잘 만든 게임이라니까.’

기껏해야 다 데이터 쪼가리이고 설정 놀음일 뿐인데.

하긴 소설 속 주인공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독자가 자살하는 경우도 왕왕 있어 왔다.

그걸 생각하면 가상현실 세상에 이 정도 과몰입 정도야…….

“그러니까 잘하라고. 지금까지 해 온 거처럼.”

종료된 방송 화면에 대고 그렇게 말한 세실리아는 적당히 식은 커피를 마저 마시고 일어났다.

퀘스트를 할 시간이다.

* * *

대회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에도 도진은 꾸준히 LOST에 접속해서 해야 할 일을 했다.

저번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을 찾기 위한 준비를.

하나 예상보다 문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짐작이 가는 장소는 많았으나 그중 대부분은 아직 접근이 불가능한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 그나마 현재 찾아갈 수 있는 곳들을 돌아다녔으나 문은 없었다.

‘전생에는 이 계곡 전체가 검은 물결로 가득 찬 뒤에 거기서 괴물들이 기어 나왔었는데…….’

또 하나의 후보 지역을 방문한 도진은 메마른 계곡의 까마득한 절벽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여기도 꽝이다.

다른 세계에서 밀려든 물로 가득해야 할 땅은 바짝 말라 갈라진 상태였다.

‘나만 찾고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상 LOST 유저 전체가 눈을 부릅뜨고 찾고 있는데도 발견이 안 되는 걸 보면…….’

다른 세계로 연결된 문이 눈을 뜨긴 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이쪽에서도 ‘열 수 있게’ 됐을 뿐.

문을 열고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건 또 다른 이야기인 걸지도 모른다.

발견해서 미리 열면 통행이 가능한 문이 되고, 제한 시간을 초과하도록 발견 못 하면 전생처럼 재앙을 쏟아내는 지옥의 아가리가 되고.

‘아니면 내가 기억하는 재앙이 터졌던 자리랑 문이랑은 아예 연관이 없을지도 모르지.’

정답이 뭔지는 지금 당장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방법만 없는 건 아니었다.

도진은 포기할 생각도 함께 없었다.

“그러면 일단 문이 있을 만한 지역에 있는 퀘스트들부터 조사를 해 볼까.”

혹시나 일반 퀘스트가 히든 퀘스트로 연계되고, 그게 힌트가 되어 줄지도 모른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여기부터 시작하자.’

어차피 이 을씨년스런 계곡에는 몬스터도 꽤 있다.

사냥과 병행하면 손해 볼 것도 없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도진은 정말 계곡을 완벽하게 탐색할 기세로 뒤져 댔다.

그러던 중 닷새째가 된 날.

“저게 뭐야?”

오늘은 어느 지점을 뒤질까 고민하며 고지대에서 육포를 뜯던 중에 아주 멀리서 연기가 나는 게 보였다.

불이랑은 관련 없는 몬스터만 사는 동네에 연기라니. 매우 수상하여 도진은 그쪽을 향해 이동했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혹시 잘못 찾아왔나 싶어 근처를 샅샅이 뒤졌으나 보이는 거라고는 불과는 연관이 없는 몬스터들뿐…….

“…아.”

그러다 범인이 밝혀졌다. 저 멀리서 콧김을 훅훅 뿜는 증기 도마뱀이 느릿느릿 걸어가는 게 보였다.

검은색 돌덩이를 열심히 씹어 먹던 놈은 뿌우우 하고 등에 난 굴뚝을 닮은 신체 기관으로 증기를 뿜었다.

한숨을 내쉰 도진이 놈을 향해 마법을 날렸다. 그런데 번쩍 하고 마력의 잔상이 흩어지기도 전에.

[다른 세계로 연결된 ‘문’이 최초로 발견되었습니다!]

[새로운 모험의 영역을 손에 넣게 된 모험가님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문’의 최초 발견으로 월드 이벤트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새로운 월드 이벤트 ‘탑이 세워진 땅’을 준비하십시오.]

월드 메시지가 떴다.

다른 세계로 연결된 문이 발견됐다는 메시지였다.

“뭐?”

내심 자신이 최초일 거라 생각했던 도진은 당황했다.

역시 미래 정보를 가지고 있다 해도 억 단위의 유저가 시퍼렇게 뜬 눈을 이기지는 못하는 건가.

월드 메시지에 이어 메시지 알림이 요란하게 울렸다.

단톡방에서 테레사가 요란을 떠는 소리였다.

[테레사: 월드 메시지 뜨자마자 바로 이벤트 공지 떴어! 빨리 확인해 봐.]

호들갑이 심하긴 하지만, 유용한 정보였다.

도진은 바로 공지를 확인했다.

[새로운 세계. 새로운 땅. 그곳에 우뚝 선 탑.]

[용감한 모험가에 의해 발견된 다른 세계로의 문은 황량한 대지로 이어졌습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이, 오직 하나의 탑만이 보입니다.

하나의 세계가 사라지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유산.

이 탑은 도대체 무엇일지. 어떤 목적으로 세워진 것일지.

그 비밀을 파헤쳐 보십시오.]

[월드 이벤트 ‘탑이 세워진 땅’ 기간 동안 ‘의문의 탑’에서는 경험치 보상이 300퍼센트로 적용됩니다.

의문의 탑에 숨겨진 비밀은 푸짐한 보상을 품고 있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숨겨진 비밀들을 찾아내시기 바랍니다.]

딱히 큰 정보가 담긴 공지는 아니었다.

말 그대로 저기 탑이 있으니 알아서 탐험하고, 보상도 알아서 챙겨 먹으라는 공지다.

‘내가 제일 먼저 찾았으면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도진은 공지를 보자마자 아쉬움을 털어냈다.

닥쳤으면 닥친 일에 열중해야 하는 법.

다른 세계든 던전이든 탑이든, 뭐가 됐든 간에 공략할 게 생겼으면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남들보다 더 먹지.

‘거기다 최초 발견자가 어드벤티지를 가지고 시작할 확률이 높으니까…….’

그걸 극복하려면 더 열심히 해야 했다.

도진은 탑이 세워진 땅으로 향하는 문의 위치부터 확인하려 했다.

어렵지는 않았다.

공지에는 좌표만 기재되어 있었으나 벌써부터 사람들이 좌표의 위치를 확인하고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스크린샷을 찍어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이거 문 앞에 이상한 게 새겨져 있는데?

-이 문도 도진이랑 연관된 거임?

그런데 스크린샷을 본 사람들이 자신을 언급하고 있었다.

난 여기서 증기 뿜는 도마뱀이랑 숨바꼭질하는 중이었는데……?

도진은 무슨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자세한 내용을 살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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