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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69화 (269/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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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의 대답은 앞에 있는 한미연은 물론이고, 보고 있는 시청자 대부분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에이, 저건 솔직히 구라 같은데?

-구라는 ㅋㅋ 1인칭 시점으로 영상 느리게 돌려 보면 저 지점에 잠깐 시선 머무는 거 뻔히 보이는데 ㅋㅋ

-뻔히 보인다 이 지랄 ㅋㅋ 저 부분 1인칭 시점 정속으로 보면 진짜 휙 하고 지나가 버리는 구간임.

-느리게 돌렸다잖아 ㅂㅅ 난독아

-느리게 돌려도 프레임 단위로 쪼개야 지나가는 속도 차이 조금 나는 수준인데 이 정도는 그냥 목관절 뻣뻣해서 잠깐 걸렸다, 이 수준이라고

-당사자가 보고 반응했다는데 왜 니들이 치고받고 싸우냐 ㅋㅋ 진짜 사이버 싸움닭들 어지럽네

얼마나 놀랐는지 채팅창에서는 바로 싸움이 났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휙’ 지나가는 수준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그걸 보는 게 말이 되냐.

말이 안 될 건 또 뭐냐. 결과적으로 깔끔하게 막은 걸 봐라. 저게 그 증거다.

그게 무슨 증거냐. 막은 건 늑대 정령이었다. 자동 방어다.

정령도 명령이 입력돼야 움직인다. 자동 방어 명령 정도로는 저런 속공 못 막는다.

개싸움도 이런 개싸움이 없었다.

결국 많은 시청자가 실시간 필터링에 걸러져 단두대에 목이 잘렸다.

[유저 ‘나혼자만로또당첨’이(가) ‘과도한 욕설’ 사유로 강제 퇴장되었습니다.]

[유저 ‘하얼빈의 말라뮤트’이(가) ‘과도한 욕설’ 사유로 강제 퇴장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장면의 또 다른 주인공인 탄토는 그리 놀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를 보며 한미연이 물었다.

“탄토 님도 그러셨죠. 이 장면에서 어떻게 그렇게 빨리 반응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셨다고. 방금 도진 님 대답을 듣고 별로 놀라지 않으신 거 같은데,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냥… 그랬구나, 하는 느낌이에요.”

“그게 끝인가요? 좀 더 놀랐다거나…….”

“음… 도진이한테 이 정도 힌트를 줬으면 막혀야 하거든요.”

탄토는 공룡이 된 얼굴을 긁적이더니 말을 이었다.

“사실 투척한 도끼가 막히는 지점까지는 제 작전대로였어요. 다만 조금 더 아슬아슬하게 방어하게 만들어서 그쪽으로 신경이 쏠리게 만드는 게 목적이었죠. 그런데 도진이가 너무 여유 있게 막아 내는 바람에…….”

그게 안 됐다.

도진은 아네모네에게 방어를 맡겨 두고 자신은 다음으로 닥칠 위기에 대응할 준비를 완벽하게 하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네요, 두 분 다.”

두 번의 투척. 도진은 그걸 하나는 피하고 하나는 막았다.

탄토는 어느새 자신이 던진 단검을 도진의 등 뒤에서 받아 도진을 노렸다.

그걸 또 도진은 범위 마법으로 몰아내고…….

“진짜 순식간에 펼쳐진 공방인데 안에 녹아 있는 디테일을 뜯어 보면 어마어마한 심리전이 펼쳐지고 있는 장면이네요.”

한미연이 말하는 동안 영상이 다음으로 넘어갔다.

“아마 이때 끝났을 거예요. 제가 이전 경기들처럼 장비 스펙을 다운그레이드한 상태로 싸웠으면요.”

도진의 말에 한미연이 놀라서 반응했다.

“어디요? 파지직- 하고 탄토 님을 몰아낸 방금 장면 말씀이신가요?”

“네. 아마 여기서 탄토 형은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절 끝내고 싶었을 거예요. 맞지?”

도진이 탄토를 보며 물었다.

탄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널 상대로 싸우면서 길게 싸우기는 싫었으니까.”

“그런데 물러나셨잖아요.”

한미연의 말은 탄토를 향한 것이었으나 대답은 도진 쪽에서 나왔다.

“그대로 공격하려고 하면 먼저 죽는 걸 알고 빠진 거예요. 제가 후속타를 준비하는 것까지 예상했을 거고. 어쨌든 장비를 제대로 껴서 그만한 화력을 뿜어내지 못했으면 탄토 형이 버텨 내고 절 끝장냈겠죠.”

그런데 그 말을 들은 탄토가 고개를 저었다.

“도진이 말은 반만 맞는 거 같아요.”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까요?”

한미연이 귀를 쫑긋 세웠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저기서 끝내고 싶었던 건 맞아요. 하지만 후속타까지 예상한 건 아니었어요. 그냥 생명력 빠지는 속도가 너무 살벌해서 안 되겠다 싶어서 빠진 거였죠. 아마 도진이가 C급 장비를 입은 상태였으면 저기서 제가 졌을지도 몰라요. 이 정도는 버틸 만하다고 생각하고 뛰어들었다가 후속타에 휘말려서요.”

“…예상한 거 아니었어?”

“못 했지. 저 때 피가 얼마나 살벌하게 빠졌는지 알아?”

“끌어들이려고 나름대로 조절한 거였는데…….”

말을 주고받는 둘 사이에 한미연이 끼어들었다.

“도진 님은 그러면 저 상황에서 함정을 파신 거예요?”

“함정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습관 같은 거죠. 아슬아슬한 지점까지 끌어들여서 확실하게 마무리하는 게 좋잖아요.”

도진과 탄토의 경기 시간은 짧았다.

그런데 그 짧은 경기 안에서도 찰나처럼 지나간 장면 하나하나를 떼어 놓고 당사자들의 ‘썰’을 듣고 있으려니 담긴 게 많아도 너무 많았다.

“뭔가 무섭네요. 습관적으로 함정을 파는 분이라니.”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음침해 보이잖아요.”

도진이 인상을 썼다.

그걸 본 나머지 세 명이 웃는다.

-습관적 개미지옥남 ㄷㄷ

-도진이가 개미지옥 같은 매력이 있긴 하지.

-난 PvP는 안 하련다. 저렇게 머리 굴리면서 게임하면 대가리 터질 듯.

-ㄹㅇ 그냥 속 편하게 적당히 쉬운 몬스터 잡아서 파밍이나 할래.

-걱정 마라. PvP 판에도 저런 미친놈들은 드물어. 아니, 사실상 저 새끼들 말고는 그냥 없다고 봐도 됨.

당사자들의 자체 해설에 모두가 놀라는 사이 첫 번째 경기의 하이라이트가 다가왔다.

“와 버렸네요. 도진 님의 클래스 논란을 만든 장면이죠.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건가요? 탄토 님이랑 이런 난투극을 벌이다뇨.”

[“도진 선수, 마법사가 맞는 건가요? 손에 속성 마법을 두르고 싸우는 격투가 같은 모습이에요!”]

영상 속에서 당시 캐스터였던 한미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말은 그녀만의 감상이 아니었다.

경기 당시는 물론이고, 이후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언급했던 것.

한마디로 ‘저 새끼 저거 마법사 아닐지도 몰라’로 정리되는 경악을 잘 표현한 말이었다.

한미연도 시청자들도 전부 도진에게 집중했다.

지금까지 자세하고 명쾌하게 숨은 의미와 심리를 설명해 줬으니, 여기서도 그럴 것을 기대하면서.

하지만 그 기대는 처참하게 부서졌다.

“어… 여기는 딱히 할 말이 없네요. 그냥 싸운 거라.”

“네?”

당황해 반문하는 한미연.

“여기 이 장면에서 제가 뭐에 걸린 거처럼 멈칫하죠? 바로 탈출하긴 했는데 탄토 형이 너무 빨리 거리를 좁혀 와서 어쩔 수 없이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어요.”

“그게 문제예요! 마법사는 도적이랑 이런 식으로 맞서 싸울 수 있으면 안 된다고요!”

“음…….”

도진은 애써 머리를 굴려 ‘그럴 수 있는 이유’를 말해 줬다.

“이런저런 버프 덕분인 거죠, 뭐. 신체 능력을 끌어올리는 마법 덕도 봤고.”

아니다. 도진은 지금 핀트를 잘못 잡고 있었다.

“스킬 보정은요? 이 정도로 빠른 공방을 위해서는 대부분 패시브 스킬의 보정이 필요하다는 게 저희 상식이거든요.”

“아, 행동 보정 들어가는 거요?”

“네. 그거요, 그거.”

이제야 제대로 알아듣는 도진.

한미연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도진 님은 마법사지만, 모종의 수단으로 접근전에 능한 클래스만 보유할 수 있는 패시브 스킬을 보유한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많이 나오고 있거든요.”

한미연의 질문에 도진이 당황했다.

그걸 본 시청자들은 들썩였다.

-오, 날카로운 질문이다.

-사실상 이게 진짜 궁금했던 부분이지.

-정말 클래스 초월해서 스킬 얻은 거면 정보 공개해 주면 좋겠는데…….

하나 도진의 당황은 정곡을 찔려서 나온 당황이 아니었다.

“행동 보정 스킬 생각은 한 번도 안 해 봐서 약간 당황스럽네요. 전 그냥 잘 피하고, 잘 막고, 기회 보이면 공격한 게 다라서요.”

도진이 당황한 건 전생을 포함해 두 번의 삶 동안 그런 걸 가져 본 적이 없어서였다.

방어, 회피, 공격 등의 행동을 할 때 시스템이 친절하게 보조를 해 주는 삶을 도진은 살아 본 적이 단 한순간도 없었다.

“그럼… 저 장면이 정말 도진 님의 순수 피지컬로만 나온 장면이라는 말씀이세요?”

한미연의 표정이 너무 리얼하게 놀라움을 표현하고 있어서, 도진은 약간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도진의 얼굴과 행동에서는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하는 의아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저건 찐이다.

-시발 ㅋㅋ 딱 너무 당연하게 할 수 있는 걸 보고 어떻게 했냐고 물으니까 진짜 당황한 게 보여서 웃프네.

-존나 어려운 수학 문제 암산으로 푸는 천재들한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 딱 저 반응임 ㅋㅋ 왜 할 수 있는 건지 설명을 못 해서 당황함 ㅋㅋ

-일반인: ‘그게 왜 됨?’ 천재: ‘이게 왜 안 됨?’ 절대 만날 수 없는 평행선…….

시청자들 반응은 이랬다.

하지만 방송 세트장 안에는 놀라는 사람이 한미연 혼자였다.

그녀는 동지를 찾기 위해 테레사에게 말을 걸었다.

“테, 테레사 님.”

“아, 넵. 방금 이상한 소리를 같이 들었는데 왜 이렇게 태연하냐고 물으시려는 거죠?”

당황한 자신을 대신해 질문까지 해 주는 테레사에게 한미연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테레사도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저한테는 딱히 놀랍지도 않은 일이거든요. 전 되게 저레벨 시절부터 도진이랑 만나서 같이 게임해 왔는데, 쟤 원래 저런 애였어요.”

한없이 태연하게 말한 테레사는 새로 리필한 음료를 쪼옥 빨아먹었다.

한미연은 깨달았다. 테레사도 글렀다. 이미 도진 옆에서 도스라이팅을 잔뜩 당한 탓에 뇌가 오염된 상태다.

그래도 직접 공방을 주고받은 탄토는 다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탄토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그녀.

감정 읽기 힘든 티라노의 눈이 보였다.

그런데 그때.

“근데 탄토 형도 자동 보정은 전부 꺼 놓고 게임하잖아?”

도진이 먼저 티라노에게 질문했다.

“예?”

외눈박이들만 사는 세상에서는 눈 둘 달린 자가 이상한 사람이 된다더니.

“응. 나도 끄고 게임해. 가끔 내 생각이랑 다르게 반응할 때가 있어서.”

하하. 이제 해탈한 한미연은 도진에게 물었다.

“그런 건 어떻게 아시는 거예요?”

“가끔 탄토 형이 미묘하게 엇박을 섞어 가면서 페이크를 줬잖아요. 음, 여기랑 여기. 여기도요. 이런 건 자동 보정 기능을 쓰는 사람은 할 수 없는 테크닉이에요.”

한미연은 그냥 생글생글 웃었다.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아하! 그렇구나! 전혀 모르겠는걸!

-미친 새끼들… 그냥 니들이 다 해 먹어라.

-이제부터 클래스 밸런스 가지고 이러쿵저러쿵하지 마라. 저 새끼들 봐. 니들 쟤들이 전사 하면 이길 자신 있음? 쟤들이 궁수면 이길 자신 있냐고 ㅅㅂ

-도진을 이기는 방법? 내 빈약한 상상력은 단 하나의 방법밖에 도출하지 못했다. 그의 캡슐 전원을 차단하는 것. 그것밖에 없다.

사람들 반응은 보지도 않고, 도진과 탄토는 서로 대화를 나눴다.

“그게 티가 났어?”

“엄청 티가 난 건 아니고, 당시에는 ‘아, 여기서 들어가면 안 되겠다’ 하는 느낌 정도였어. 이렇게 영상으로 보니까 짚어 낼 수 있는 거지.”

“하긴. 나도 첫 경기 마지막에 그렇긴 했어. 들어가면 안 된다고 본능적으로 느껴졌거든.”

“근데 그걸 조금 늦게 느꼈지?”

“응. 워낙 정신없이 싸우고 있던 때니까. 빈틈이 보이자마자 몸이 먼저 반응했거든. 그리고 바로 아차했어. 네가 뻔한 빈틈을 만들 사람이 아닌 걸 생각했어야 했는데.”

“그걸 노린 거였어. 숙련된 사람일수록 몸이 먼저 반응할 테니까. 딱 한순간 몸이 먼저 반응해서 앞으로 기울어지면-”

“이후에 눈치를 채든 못 채든 거기서 승부가 결정되니까?”

“어. 참고 참아서 딱 그럴 만한 타이밍에 지른 승부수였는데, 운 좋게 성공한 거지.”

생글생글 웃으며 둘의 대화를 듣던 한미연이 시청자들을 정면으로 보며 말했다.

“정말 두 분이 어떤 생각으로 공방을 주고받았는지 하나하나 뜯어 보니까 어이가 없네요. 그렇죠?”

시청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한미연에게 동의했다.

-LOST의 장르는 오늘부터 무협이다. 저런 새끼들이 설치는 곳이 무림이 아닐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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