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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드는 탄토! 이에 첫 경기 때와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도진 선수! 이전 경기와 같은 흐름을 탄다면 집중력 싸움이 될 겁니다!”]
웬만한 래퍼보다도 훨씬 빠르게 말을 내뱉은 해설자는 도진과 탄토에게 더욱 집중했다.
승부가 갈릴지도 모르는 타이밍이니 당연했다.
무슨 상황이 펼쳐지든 자신은 최대한 침착하게 상황을 전달해야…….
[“……!”]
사명감에 가까운 마음을 품고서 지켜보던 해설자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전 경기와 같은 장면을 예상하고 준비를 했더니 돌연 탄토가 도진의 뒤에서 나타난 탓이었다.
하지만 그는 프로였다.
[“탄토가 도진의 뒤를 잡았습니다! 절체절명의 위…….”]
최대한 상황을 따라가며 되는 대로 말을 만들어 뱉으려 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헛수고였다.
해야 할 말을 끝맺기는커녕 시작도 해 보기 전에 탄토가 쓰러진 것이었다.
말문이 막힌 해설자를 대신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경기에 빨려 들어갈 기세로 보고 있던 캐스터가 외쳤다.
[“쓰, 쓰러졌습니다! 탄토, 쓰러졌습니다! 도진 선수가 대회 우승을 확정 짓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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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중계 채널의 채팅 서버가 마비되었다.
* * *
‘콜로세움 L’은 결승전 최고 동시 시청자 수 1,400만 명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공식 대회도 아닌 이벤트성에 가까운 대회라는 걸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대박이다.
아니, e스포츠 판을 놓고 봐도 미친 수치였다.
프로젝트가 이만한 성과를 거뒀으니 프로젝트를 맡은 사람들의 어깨가 치솟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중 가장 신이 나 있는 건 당연히 콘텐츠팀과 마케팅팀이었다.
[“이번 콜로세움 L의 대성공에 프로 e스포츠계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이미 LOST에 관심을 보이며 투자를 진행 중이던 모 프로 e스포츠 구단에서는 정식 리그 개최를 위한 공정한 PvP 시스템을 구축해 줄 것을 뫼비우스 측에 정식으로 요청할 거라는 소식이 전해지는 한편-”]
[“장안의 화제죠. 콜로세움 L. LOST의 인기. 그리고 인터넷 방송과 인터넷 방송인의 인기와 영향력을 동시에 증명한 축제의 장이었는데요. 최종 우승을 한국인 유저 ‘도진’이 차지했다고 하는군요.”]
퇴근 시간이 한참이나 지난 시간.
콘텐츠 팀장 오영식과 마케팅 팀장 김영희는 빈 회의실에서 함께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시사 프로그램에 나온 교수님 입에서 우리가 진행한 프로젝트가 언급될 거라고 상상도 못 했는데.”
손에는 맥주 캔을 들고, 시선은 스크린에 고정한 채 김영희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저도요. 성공할 거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이 정도로 난리가 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대회가 끝난 지는 며칠이 지났지만 두 사람은 방금 전까지 쉬지를 못했다.
어마어마한 대성공 이후에 밀려드는 일을 소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일들을 처리하는 건 즐거웠다.
콜로세움 L의 대공성이 불러온 황금의 물결에 뛰어들어 황금을 퍼 담는 일이었으니 당연했다.
“퇴근해야 하는데… 이상하네요. 퇴근을 못 하겠어요.”
급한 불을 끈 직후 직원들은 다 집으로 돌아갔다.
아마 다들 기절하듯 침대에 쓰러져 자고 있을 거다.
오영식과 김영희도 그럴 예정이었다.
아마 몇 시간 전에 듣게 된 소식이 아니었다면 그랬을 거다.
“하하, 실감이 안 나네요. 사실 처음 라엘 엔터로 오기로 했을 때는 망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에요.”
약 3시간 전 두 사람은 주강희를 통해 어마어마한 소식을 들었다.
라엘 그룹 차원에서 라엘 엔터테인먼트 체급을 키우기로 결정했고, 두 팀장의 팀도 규모가 훨씬 커질 거라는 소식이었다.
「당장 달라지는 건 연봉만이겠지만, 차차 많은 게 달라질 거예요. 아마 본격적인 조직 개편에 들어가면 직책부터 달라질 겁니다. 회장님께서는 성과를 내는 직원을 가만두질 않으시거든요. 아, 그리고 새삼스런 말이지만 이 일은 당분간 비밀로 하셔야 합니다.」
사실상 그룹 회장 직통으로 내려온 파격적 승진 약속이나 다름없었다.
“오영식 팀장님만 그랬을 거 같아요? 저도 여기로 오기로 정한 이후로 걱정 엄청 했어요. 라엘 그룹이랑 별개로 엔터 회사로는 완전 백지 상태였잖아요.”
그래. 백지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한 사람이 그렇게 만들었다.
스크린에 나오던 영상의 재생이 끝났다.
자동으로 넘어간 영상은 결승전 분석 영상이었다.
누군지 모를 유튜버 하나가 도진과 탄토의 전투를 열심히 분석한다.
“김 팀장님.”
그걸 보던 오영식이 김영희를 불렀다.
네? 하는 눈으로 오영식을 보는 김영희.
“지금 시점에 도진 씨로 콘텐츠를 뽑아내면 거기서 돈이 얼마나 벌릴까요?”
“…어마어마하죠.”
워낙 피곤한 상태에서 술을 마셔서 그런 걸까.
오영식이 지닌 회사에 대한 충성심과 도진에 대한 고마움에 불이 붙었다.
또한 콘텐츠 제작자로서의 열정도 타올랐다.
오영식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 팀장님?”
그런 그를 김영희가 의아하게 바라봤다.
“가시게요?”
“네.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만들어야 할 기획서가 있어서요.”
“예?”
이게 무슨 소리지? 기획서라니.
김영희는 들고 있던 맥주 캔을 내려놓고 오영식을 붙잡았다.
“무슨 말씀이세요? 일하러 가시려고요?”
“지금 타이밍을 놓치는 건 회사도 그렇고 도진 씨한테도 너무 아까운 일입니다. 최대한 빨리 연계 콘텐츠를 만들어야 돼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러다 죽어요, 팀장님! 대회 준비 때부터 계속 야근하다가 술까지 마셨잖아요.”
“괜찮습니다. 겨우 맥주 몇 캔 정도로-”
“퇴근해요! 라엘 엔터가 직원 과로사시키는 블랙 기업이라고 뉴스에 뜨는 꼴 전 못 보니까!”
김영희의 일갈에 오영식은 깜짝 놀랐다.
여기서 고집을 부리다가는 정말 화를 낼 것 같은 기세에 짓눌린 오영식은 조용히 스마트폰을 들었다.
“…택시, 택시 부르려고요.”
일은 집에 가서 몰래 하기로 했다.
* * *
대회 이후 다들 시끌시끌했지만, 도진의 집은 여전히 평화로웠다.
도진은 천지현이 포장해 온 수제 버거를 들고 테라스로 갔다.
“오랜만에 광합성 하면서 먹어야지.”
“네가 식물이야?”
“식물처럼 살고 있긴 하잖아.”
“아주 자랑이다.”
고개를 젓는 천지현과 킥킥 웃는 도진.
천지현은 제몫의 햄버거를 들고 도진을 따라갔다.
“괜찮은데?”
“그지? 여기 대기만 3시간 걸리는 곳이야.”
“그렇게 오래 줄을 서야 돼?”
“…도진아, 누가 요즘 줄을 서. 다 어플로 대기표 받는 거지.”
“내가 그런 걸 해 봤어야 알지.”
둘은 두런두런 잡담을 나누며 천천히 햄버거를 먹었다.
그런데 그때 천지현의 스마트폰에 알림이 울렸다.
이 소리는 회사에서 톡 오는 소린데. 천지현은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기사 링크였다.
“뭐지?”
혹시 나쁜 기사가 떠서 그러나 싶어 빠르게 터치하는 천지현.
“뭔데?”
도진이 보려 하는 걸 천지현이 못 보게 가렸다.
혹시 나쁜 기사면 도진에게 보여 줘서 좋을 게 없었다.
“개인적인 거야, 개인적인 거.”
도진은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천지현은 손바닥으로 스마트폰을 가리고 내용을 확인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도진’ 통 큰 기부. ‘힘든 시기를 겪는 분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었으면.’]
[최근 게임계의 화제로 떠오른 라엘 그룹배 LOST 인터넷 방송인 PvP 대회 콜로세움 L의 우승자 ‘도진’이 통 큰 기부를 해 화제다.
그는 대회 우승을 기념하여 소아암 환우, 소외 아동, 취약 노인을 돕기 위해 총 10억 원을 기부했다.
도진은 대회 기간 동안 응원을 해 준 팬들에게 감사하다며 우승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러기 위한 방법으로 기부를 선택한 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고 말하는 도진은 정말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그런데 가릴 필요가 없는 기사였다.
“…도진아, 너 기부했어?”
“뭐? 내가?”
“어.”
황망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내미는 천지현.
도진은 의아한 얼굴로 그걸 받아 확인했다.
“…했네. 기부.”
도진도 천지현도 어렵지 않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주강희 실장이다.
“통이 큰 것도 정도가 있지.”
도진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안 나왔다.
전에도 그렇고, 일종의 마케팅 비용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얼굴에 금칠을 너무 해 줘서 부담스러울 정도다.
-오늘부터 내 꿈은 너야, 우리 꼭 결혼하자, 도진아.
-하… 존나 짜증 난다. 왜 계속 멋있어지는데? 경고한다. 그만 멋있어라.
-요즘 젊은 사람답지 않게 정말 뜻깊은 일을 하는군요.
-진짜 온도차 뭔데 ㅋㅋㅋ 이 위에 있는 기사는 아이돌이 음주운전 했다는 기산데, 여기는 훈훈함이 돌아 버렸네
-진짜 이런 사람 때문에 대한민국이 아직 망하질 않는구나.
-ㅉㅉ 저게 다 세금 덜 내려고 하는 작업인데 순진하네
└기부 금액 전액 공제해 주는 것도 아닌데 개소리 작작 좀.
└어떤 삶이 당신을 이렇게 만들었나요? 응원하겠습니다.
└기부 기사에 이거 안 달리면 섭섭하지 ㅋㅋ
-도진이도 상처 많은 어린 시절을 보냈을 텐데… 정말 너무 멋있고 눈물 난다.
도진은 댓글 읽기를 멈췄다.
죄지은 게 없는데 가슴이 따끔거린다.
그때 도진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호랑이네.”
주강희 실장이었다.
“실장님…….”
[“목소리를 들으니까 이미 소식이 전해졌나 보네요. 크게 신경 쓸 거 없어요. 그냥 마케팅 비용으로 쓴 거니까. 좋은 일이기도 하고요.”]
“…….”
선물을 보낼 거면 차라리 그 돈으로 기부를 하라고 했으니 할 말이 없다.
이러다 남의 돈으로 기부왕 등극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이것 때문에 전화한 거예요?”
[“그것도 있고. 다른 용건도 있어서요.”]
“다른 용건이요?”
[“다른 게 아니라 콘텐츠 팀에서 해 보고 싶은 게 있다고 보고가 올라와서요. 그쪽에서 연락하겠다는 걸 제가 하겠다고 했어요. 이번 건도 얘기할 겸 겸사겸사.”]
도진은 쓰게 웃었다.
“10억짜리 협박이에요?”
[“설마요. 언제나 그랬듯이 듣고서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요. 해 주면 고맙겠지만.”]
“무슨 일인데요?”
[“듣기로는 대회 영상을 보면서 도진 씨가 직접 리뷰하는 거래요. 자세한 건 도진 씨가 하겠다고 하면 도진 씨 의견에 맞춰서 다 조정할 예정이라네요.”]
도진은 옅게 한숨 쉬었다.
‘이 집, 설득 잘하네.’
이런 상황에 거절을 어떻게 하겠나.
애초에 10억짜리 건도 아니다. 슬쩍 부탁하면 못 이기는 척 승낙해도 좋을 사소한 건이지.
‘어차피 이런 건 하루면 끝나는 일이니까.’
당황스럽긴 해도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타지도 않는 차, 알지도 못하는 명품이 늘어나는 것보다는 자신으로 인해 기부가 발생하는 게 낫다.
‘대회 영상 리뷰한다고 하면 아마 좋아 죽으려고 하겠지.’
기뻐할 팬들을 생각하면 하루의 귀찮음을 감수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