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
도진과 탄토의 만남에 세상은 난리법석을 떨었다.
인연부터 국적까지 엮을 거리가 많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도진과 탄토 두 사람은 덤덤했다.
[탄토: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
[도진: 그래? 난 대진표 보자마자 이렇게 될 거 같았는데.]
[테레사: 후우…….]
[탄토: 난 솔직히 예상 못 했거든. 도진이 넌 몰라도 나는 내가 불안해서.]
[도진: 대진표 보자마자 결승 상대는 형이겠구나 했어.]
[테레사: 하아…….]
[소소: ㅋ]
[테레사: 야, 김소소!]
[도진: 이왕 이렇게 됐으니까 잘해 보자.]
[탄토: 나야말로 잘 부탁해.]
단톡방에서는 결승에서 만났으니 좋은 경기 하자는 대화가 오갈 뿐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을 시끄러웠다.
그런 소란스러움은 결승 당일까지 식지 않았고.
도진과 탄토는 식기는커녕 더욱 뜨거워진 열기 속에 결승 무대에 올랐다.
[“드디어어어어어-! 콜로세움 L의 마지막 결승 무대가 펼쳐지는 날이 되었습니다아아아아!”]
숨넘어갈 듯한 해설자의 외침에 관객들이 호응했다.
-대일본! 대일본! 대일본! 대일본! 대일본!
-일본인으로 태어나 조선인에게 지는 건 수치잖아? 오늘 지면 탄토는 할복을 해야 해(笑)
-한국인 친구 여러분, 혐한을 일삼는 넷우익은 일본 내에서도 수치스러운 존재입니다. 저런 놈들은 잊어 주세요. 같은 일본인으로서 사과드립니다.
-…저기 대일본 도배하는 새끼랑 할복 어쩌고 하는 놈들 닉이 아무리 봐도 한국인인데? 일뽕 새끼들이잖아.
-ㅋㅋㅋ 진짜 어지럽네. 일뽕에 빠진 한국인이 일본 찬양하고, 일본인이 그걸 일본인으로 착각해서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이게 맞냐?
사실 호응보다는 그냥 하고 싶은 말만 해 대는 거에 가까웠다.
-젠장, 한국이랑 일본은 무슨 관계길래 이렇게 난리지?
-너 프사가 폴란드 국기인데 폴란드인임?
-그렇다면?
-한국=폴란드, 일본=나치 Do you got it?
-오, 신이시여. 빌어먹을 나란 새끼는 왜 나쵸를 들고 있는 거지? 이건 팝콘이 필요한 경기였는데!
시청자 채팅창은 그 어느 때보다 혼란했다.
혐오 발언 자동 필터링에 썰려 나가는 목들이 수두룩했다.
[“역시 한국과 일본의 만남은 양국을 뜨겁게 달구는 일이죠. 여러분의 관심이 얼마나 뜨거운지 잘못하면 화상을 입을 것만 같네요! 하지만 여러분, 조금만 진정하시기 바랍니다. 지금부터 시작될 도진 선수와 탄토 선수의 대결을 온전히 즐기려면 집중하셔야 하거든요!”]
[“후아. 시청자분들뿐만 아니라 저도 진정을 좀 해야 할 거 같은데요. 지금 너무 기대돼서 숨이 안 쉬어지는 거 같아요.”]
해설자와 캐스터는 너무 과열되어 가는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도진과 탄토가 경기장에 오르면서 물거품이 됐다.
-도진 선배! 전 일본인이지만, 당신을 응원하고 있어요! ( ´͈ ᵕ `͈ )◞♡
-국적 불문하고 도진은 오늘부터 내 적이다. 탄토 이 새꺄, 오늘 저 새끼 도륙 못 내면 내가 일본 가서 너 도륙 낸다.
-일본인들 중에도 도진 응원하는 애들이 적지 않네. 신기하네.
-K-POP 문화 때문에 일본 쪽에 도진 여자 팬이 좀 많음. 아이돌 팬덤이 그대로 옮겨 왔거든.
-시발, 하트 도배하는 여자들 프사가 다 존예야. 인생 좆 같네, 진짜. 탄토 이겨라!
[“무대에 오르는 두 선수! 격앙된 바깥과 달리 저 안에 선 두 선수의 눈빛은 기이할 만큼 고요하군요. 이걸 두고 폭풍전야라고 하는 거겠죠?”]
[“그것보다, 경기 시작에 앞서 시청자분들에게 전해드릴 깜짝 소식이 있지 않나요?”]
도진과 탄토가 경기장에 오르자마자 캐스터가 정해진 대본대로 운을 띄웠다.
[“아! 그랬죠. 저도 이 소식을 전달받고 정말 가슴이 뛰어서 어젯밤에 잠을 못 잤습니다.”]
[“전 다행히 현장에 출근해서 소식을 들었어요.”]
[“이 설레는 소식의 정체. 자료 화면과 함께 전해드리겠습니다!]
도진
티어: 1
레벨: 190+
착용 장비: Lv.170 C
해설자의 외침과 함께 도진의 선수 스펙이 떴다.
-?
-뭘 보라는 거야?
-호들갑 떨더니 똑같잖아.
-잠깐, 잠깐. 저렇게 호들갑 떠는데 이 화면이 뜬 건 뭔가 있다는 거잖아.
무엇이 올지 예상한 사람들이 술렁일 때쯤.
착용 장비: Lv.170 C → Lv.190 A
표기된 아이템 등급이 변했다.
그걸 본 모두가 경악하며 반응하려 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착용 장비: Lv.190 A → S+
장비 등급 표기가 S+로 바뀌었다.
도진
티어: 1
레벨: 190+
착용 장비: S+
탄토
티어: 1
레벨: 190+
착용 장비: S+
동시에 떠오르는 탄토의 스펙 정보.
탄토의 장비 등급 제한도 S+로, 사실상 제한이 사라져 있었다.
[“보이십니까! 대회 진행 기간 동안 꿋꿋하게 낮은 등급 장비를 고수했던 도진 선수가 처음으로 상대방과 동급의 장비를 착용하고 대결에 임합니다!”]
[“그것만이 아니죠! 대회 룰로 정해진 장비 등급 상한은 아시다시피 A급까지입니다만, 결승전에 한해 모든 제한이 사라집니다. 즉, 보시는 바와 같이 도진 선수와 탄토 선수 모두 본인이 원하는 최적의 장비 세팅으로 결승전을 치른다는 얘기죠!”]
[“장비 등급 제한 삭제는 도진 선수와 탄토 선수 측에서 먼저 제안을 했고, 주최 측에서는 공정성 문제를 검토하여 크게 문제가 될 사안이 아니라는 판단하에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와… 상황이 이렇게 돌아간다고?
-결승쯤 되니까 쫄리나? 왜 장비 등급 높임?
-아니, 룰을 이렇게 바꾸는 게 말이 됨? 자기 장비 끼고 싸웠으면 결과 달라졌을 경기도 있을 거 아냐.
-결과가 달라지긴 ㅋㅋ
-겜알못임? 핵심 장비 하나로 빌드 파워가 확 오르는 경우 생각하면 자기 장비 세팅으로 싸웠으면 결과 어떻게 됐을지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닌가?
-자기가 응원하는 사람 떨어졌다고 개소리 찍찍 싸진 말자. 장비 등급 제한 없었으면 결과가 달랐을 거라고? 지금 저기 서 있는 사람이 도진이랑 탄토인데?
-니들 대가리에 빵꾸 나서 뇌수 줄줄 흐르냐? 생각이란 걸 좀 해라. 지금 LOST에서 템빨로 저 새끼들 이길 사람이 어딨냐 ㅋㅋ
갑작스럽게 장비 등급 제한이 사라지자 억지 논란을 만들어 보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외면받았다.
애초에 도진과 탄토는 장비 등급 제한으로 인해 손해를 보면 봤지 이득을 볼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아… 진짜 우동사리가 니들 뇌보다 뉴런 함유량이 높겠다. 지금까지 진이 장비 등급 C로 고정해 뒀던 건 알고 있는 거지?
-ㅋㅋㅋ 이게 맞는 말이지. 진은 자기가 일부러 장비 등급 내려쳐서 핸디캡 짊어지고 싸웠는데 이제 와서 무슨 결과가 달라져.
-아잇, 지금 그딴 게 중요해? 풀템, 풀컨디션으로 도진vs탄토를 볼 수 있다는 게 중요하지.
심지어 도진은 장비 레벨과 등급을 잔뜩 할인한 상태로 결승전에 진출했다.
논란을 만들어 보려고 아무리 불을 피워도 연기가 날 수가 없는 것이다.
트집을 잡으려는 자들의 목소리는 ‘풀템전’을 볼 수 있다는 기대에 부푼 수많은 인파에 짓밟혀 사라졌다.
[“경기 시작을 앞두고 두 선수 서로에게 다가갑니다!”]
밖이 아무리 시끄럽다 한들 도진과 탄토에게는 중요치 않았다.
“괜찮겠어?”
장비 제한을 없애고, 완벽한 상태에서 대결하고 싶다는 말을 먼저 한 건 탄토였다.
도진의 물음은 그걸 묻는 거였다.
탄토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가면을 고쳐 썼다.
드러난 그의 눈은 웃고 있었다.
“같은 조건에서 싸워야 후회가 없을 거 같아서.”
도진이 피식 웃었다.
엄살은. 이 조건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는 눈빛이면서.
도진이 룬 건틀렛을 낀 주먹을 내밀었다.
탄토가 단검으로 도진의 주먹을 챙- 하고 두드렸다.
그리고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두 사람.
[“하는 말부터 행동까지 마치 소년 만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거 같습니다!”]
한차례의 호들갑이 지나가고, 카운트가 시작됐다.
짧은 시간 동안 도진은 탄토를 바라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랭커들 중에서도 내가 가장 아는 게 없었던 사람이지. 탄토 형은.’
전생에서 탄토는 어느 날 홀연히 방송 활동을 중단하고 모습을 감췄었다.
어느 시점부터 철저히 은둔형 랭커가 되었던 그이기에 도진이 아는 탄토는 ‘실력 좋은 도적’이 전부였다.
지금이야 이런저런 역경을 함께 극복하면서 많이 알게 됐지만… 사실 따로 떨어져서 활동할 때가 더 많았다.
서로에 대해 전부 안다고 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솔직히 조금 긴장되는데.’
그래서 재밌어.
카운트가 끝나고 경기가 시작됐다.
경기장에서 탄토의 모습이 사라졌다.
* * *
시작과 동시에 은신에 들어갈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도진은 바로 은신한 탄토를 견제하기 위해 넓은 범위에 불씨를 뿌렸다.
캐스팅할 것도 없이 「화염구」를 여러 개 생성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잘게 부숴서 흩뿌리는 거면 충분했다.
순식간에 탄토가 있던 주변이 불씨로 범벅이 됐다.
‘저기다.’
은신이 풀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허공에 흩날리는 불씨가 무언가에 닿아 화륵 타서 사라지는 거면 충분했다.
그곳에 탄토가 있다는 것이니.
도진은 탄토의 위치를 특정하자마자 마법을 난사할 준비에 들어갔다.
그런데 시야 구석에 위화감이 일었다.
탄토가 있는 쪽은 오른쪽인데, 왼쪽 끝에 뭔가가-
본능이 울리는 경종에 도진은 순간적으로 반대쪽을 확인했다.
‘저쪽 불씨도 사라지고 있잖아!’
본능의 속삭임을 무시하지 않길 잘했다.
반대쪽에서도 불씨가 무언가에 닿아 타서 사라지고 있다.
도진은 공격을 위해 들어 올리던 손을 회수했다.
순간.
쐐액-!
도진이 뒤늦게 발견한 지점에서 파공성이 울렸다.
투척된 단검이 내는 소리였다.
도진은 흡- 호흡을 삼키며 염동력으로 신체를 강화했다.
‘피했-’
안심은 일렀다.
도진이 처음 발견한 불씨 꺼진 자리에서 두 번째 파공성이 일었다.
[“이게 무슨 일이죠! 은신한 탄토가 단검을 던진 직후 반대쪽에서 도끼가!”]
더 빠르고 무겁게 던져진 도끼는 먼저 던져진 단검보다도 더 빨리 도진에게 날아왔다.
단검을 피하기 위해 움직인 도진을 정확히 노리는 궤도였다.
‘이건 못 피하겠네.’
하지만 도진은 안달내지 않았다.
여기서 어떻게든 대처하겠다고 허둥대기 시작하면 템포를 빼앗기게 된다.
침착함을 잃는 순간 끝장이란 뜻이다.
도끼가 도진을 쪼갤 듯 다가왔다.
하나 닿지 않는다.
콰직.
튀어나온 아네모네가 솜씨 좋게 도끼날을 중간에 물어 낚아챘다.
【큭!】
실린 힘이 대단하여 아네모네가 인상을 썼지만, 공격 자체는 파훼할 수 있었다.
그리고 탄토의 단검이 도진을 휙 지나쳤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요! 경기장 양쪽 끝과 끝에서 날아드는 시간차 투척 공격! 말 그대로 가불기를 걸어 버리는 탄토와 그걸 기어코 막아 내는 도진! 숨이 막힙- 아악!”]
해설자가 말을 하다 비명을 질렀다.
이유는, 허망하게 도진을 지나쳐 가야 할 단검이 허공에서 딱 멈춘 탓이었다.
등 뒤에서 탁, 하고 단검자루를 잡아채는 걸 느낀 도진은 씩 웃었다.
‘살벌하네.’
정말.
속으로 읊조리는 도진의 전신에 푸른 전광이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