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63화 (263/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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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구체와 물의 검이 만나며 일어난 수증기 폭발은 순식간에 경기장을 뒤덮었다.

그런데 그러기 무섭게 수증기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크라우스가 폭발하며 사라진 물의 검을 주변 수증기를 끌어모아 빠르게 재생한 것이었다.

그걸 그대로 휘두르는 크라우스.

[“아앗! 순식간에 수증기가 크라우스 선수 쪽으로 쏠립니다! 크라우스 선수 기세를 잃지 않고 그대로 공격을 감행! 마치 구름을 쥐고 휘두르는 것만 같습니다!”]

물의 거인이 구름의 검으로 공간을 횡으로 베어 갔다.

검극을 따라 길게 늘어지는 하얀 꼬리는 보는 이에게 위압감을 선사하기 딱 좋은 것이었다.

그것은 보기에, 그 앞에 선 작은 도진을 사정없이 뭉개 버릴 거 같았다.

《바람의 장벽》

하지만 크라우스의 공격은 도진에게 닿기 전 하늘로 치솟았다.

그가 물의 검을 다시 만드는 사이 도진이 완성한 「바람의 장벽」이 크라우스의 ‘물’을 가로막았다.

도진과 세상 사이에 그어진 선을 따라 일어난 돌풍의 장벽이 자신에게 닿은 물의 검을 휘몰아치는 바람으로 빼앗아 하늘로 날려 보낸다.

[“이런 미친! 용오름입니다! 회오리바람이 바닷물을 끌어 올리듯이 크라우스 선수의 공격을 도진 선수의 바람이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크라우스는 공격을 물렸다. 이대로 힘으로 뚫어내려고 하다가는 자신이 두른 ‘물’이 전부 빨려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이 정도의 방어 마법… 아무리 저 사람이라도 이 정도면 회로에 부담이 되겠지.’

강력한 마법은 마법회로에 부하를 일으키고, 이는 곧 마법사에게 강제되는 쿨타임이 된다.

‘도진’이니 만큼 그 한계가 훨씬 더 멀다 해도 지금을 노린다면.

‘몰아친다.’

크라우스는 도진에게 틈을 주지 않고 맹공을 이어 가기로 했다.

도진을 수세에 몰아 방어에 자원과 시간을 쏟게 만들어 마법회로에 부하를 더하려는 선택이었다.

“렉시아-!”

크라우스가 자신과 계약한 정령의 이름을 불렀다.

진명(眞名)을 불린 정령이 각성한다.

그가 두른 물의 거인이 푸른 안광을 번쩍 떴다.

그와 동시에 물의 거인이 든 검과 방패가 더욱 강력한 응집력으로 뭉치며 얼어붙었다.

“바람째 얼려 주마!”

그리 외치며 크라우스가 검을 내뻗었다.

그 순간 요란한 용오름이 거짓말처럼 흩어지며 도진이 나타났다.

도진의 눈을 본 크라우스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

‘뭔가 꾸몄다!’

크라우스의 생각대로 도진은 싸움이 시작된 이래 무언가를 꾸미고 있었다.

그건 바로 자신이 딛고 선 전장 그 자체.

‘마나 태우기 좋은 날이 됐네.’

경기 시작 전까지는 아무런 특색 없이 건조하고 깨끗하기만 해서 재미없던 전장에는 어느새 ‘바람’과 ‘물’이 가득했다.

도진은 이제는 캐스팅이 필요 없어진 아주 기초적인 속성 마법을 마나를 아낌없이 퍼부어 만들었다.

3개, 4개, 5개, 10개. 순식간에 만들어진 「바람 화살」과 「얼음 화살」이 크라우스가 내지르는 얼음검에 쏟아졌다.

‘이미 늦었어! 지른다!’

크라우스는 멈추지 않고 도진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퍼퍼퍼퍼펑- 하는 풍압 소리와 카가가가각 하는 얼음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무수히 울렸다.

얼음검을 지르는 쪽도, 그 검을 부수려는 쪽도 서로 물러서지 않았다.

[“도진 선수- 이대로는 꿰뚫립니다!”]

일촉즉발의 순간.

콰앙-!

요란한 소리와 함께 크라우스의 얼음검이 산산조각 났다.

‘룬 건틀렛이 없어서 아슬아슬했어.’

100퍼센트 크리티컬을 보장하는 유물 무기의 부재는 확실히 엄청나게 체감되는 딜의 공백이었다.

그러나 그걸 물량 공세로 메운 도진은 코앞에서 터진 얼음검이 내뿜는 냉기를 흘려보내며 더욱 가열 차게 마법을 만들어 냈다.

다행이다. 모든 아이템의 부재를 극복하고도 남을 만큼 확연히 성장해서.

도진은 성장 체감이 주는 뜨거운 흥분 속에서 차갑게 생각했다.

‘크라우스의 약점은 공격을 위해 만든 무기도 결국 정령의 일부라는 거지.’

특히 강력한 공격을 위해 무기를 강화하면, 거기에는 더 큰 정령력이 집중된다.

그걸 파괴하면?

[“미쳤습니다! 미친 담력이에요! 크라우스 선수의 거대한 아이스 블레이드가 도진 선수의 마법 공격에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그 탓일까요? 크라우스 선수를 둘러싼 아쿠아 나이트가 경직된 것처럼 보입니다!”]

공방일체를 이루는 핵심. 갑주를 이룬 ‘정령’ 그 자체가 잠시 마비된다.

물론 잠시 마비될 뿐 크라우스가 무방비 상태에 빠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단 한순간만 기세를 꺾고 수세에 몰아넣는 거면 충분했다.

[“도진 선수의 공세가 더욱 매서워집니다! 사방팔방에서 쏟아지는 얼음 화살에 크라우스 선수, 점점 더 밀리는 모습! 연신 방패를 생성하지만, 그때마다 번개가 작렬하며 크라우스 선수의 방어 수단이 박살 납니다!”]

도진의 끊임없는 마법은 크라우스에게 태세 전환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생기는 여유를 전부 방어에 쏟아야 하는 상황.

[“누가 더 꿋꿋이 버티느냐를 두고 싸우고 있습니다! 숨 쉴 틈 없이 공격하는 쪽과 단단하게 방어를 굳히고 버티는 쪽! 먼저 지쳐 쓰러지는 쪽은 누가 될까요!”]

도진과 크라우스의 대결은 화려했다.

바람과 물이 만나 폭발하고, 맹렬히 회전하는 물이 얼음 화살을 분쇄했다.

작렬하는 뇌전과 비산하는 물보라.

‘버티다 보면 기회는 오게 돼 있다.’

크라우스는 비장의 수를 꺼내 들 준비를 하며 꿋꿋이 버텼다.

도진의 마법회로가 한계를 맞이할 시점을.

“제기랄! 렉시아!”

그런데 먼저 한계를 맞이한 건 도진의 회로가 아니었다.

버티고 버티던 크라우스의 방벽이 먼저 터졌다.

퍼어엉- 하고 위로 치솟았다 무너지는 물의 거인.

하나 크라우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법이 끊겼다.

마지막 공세를 몰아치면서 도진도 한계에 봉착한 거다.

반면 크라우스는 아니었다.

크라우스는 아직 쓰지 않은 힘이 남아 있었다.

[“아니이이이이-! 크라우스 선수에게서 바람이 일어납니다! 이번에도 거인! 정령으로 만든 새로운 갑옷이 크라우스 선수를 감쌉니다!”]

크라우스는 ‘바람’을 둘렀다.

주변에 몰아치던 바람들이 그에게 복종하듯 조용해졌다.

“내 승리다!”

크라우스가 일갈했다.

그때. 도진의 기세가 일변했다.

《한정회귀》

사그라들던 도진의 마력이 다시 찬란하게 타올랐다.

《화염벽》

확 하고 치솟은 불의 벽이 크라우스가 내지르는 바람의 창과 상잔했다.

크라우스는 거슬리는 불길을 잠재우기 위해 더욱 큰 힘을 몰아쳤다.

《광염포(光炎砲)》

그러나 애써 가른 불길 틈으로 공격을 내뻗을 기회는 얻지 못했다.

그보다 먼저 완성된 도진의 마법이 크라우스를 강타한 것이다.

불을 품은 빛줄기는 크라우스가 두른 바람을 태우고, 뚫었다.

[“단 한 번도 유효타를 허용치 않았던 크라우스 선수! 도진 선수의 맹공에 결국 쓰러집니다! 마침내 쓰러졌습니다!”]

승자는 도진이었다.

* * *

-웅장함이란 이런 건가?

-이래도 마법사가 구려? 이래도 마법사가 구려? 이래도 마법사가 구려? 이래도 마법사가 구려?

-아이씨, 도배 쳐내!

-하, 미친. 진짜 모든 장면이 하이라이트였다.

-난 처음에 회오리로 크라우스 물검 막는 장면에서 지려 버렸자너.

-그 장면이 진짜 중요한 거였음. 마법사가 환경을 존나 타는데, 그거 하나로 순식간에 속성 마법 쓰기 딱 좋은 환경이 조성됐음. 바람, 물, 번개까지.

-저 회복기 진짜 사기네. 시간 되감기듯이 상처도 낫고 마나도 회복되고. 유물 아이템 스킬인 줄 알았더니 아닌가 봐.

-크라우스도 진짜 개지렸는데. 결국 져 버리네.

-ㅋㅋㅋ 천외천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지. 도진 개같이 패배할 거라고 지랄하던 새끼들 싹 사라진 거 나만 웃기냐?

-마지막에 바람 정령으로 거인 만들어서 일어나는 거 보고 난 크라우스가 이겼다 싶었어. 근데 시발 ㅋㅋ 바로 불로 지져 버리네.

-다른 마법사들은 이제 곧 7성의 영역이 어쩌고 하는데 혼자서 저 앞에 나가 있으니, 진짜 어나더긴 하구나.

-이 말 모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번 경기에서 도진 밑천도 다 드러났으니 크라우스가 반격에 나설 거임. ㅇㅇ

-아, 맞다. 3전 2선승제지. 시발; 너무 충격을 먹어서 다음 경기 있는 거도 잊고 있었네.

경기를 실시간으로 지켜본 시청자들은 1경기의 여운을 즐기며 다음 경기를 기다렸다.

-이번에는 진짜 승패 예측이 힘드네.

-힘들긴 ㅋㅋ 도진은 계속 몰아쳤고 크라우스는 개같이 맞기만 했는데.

-진짜 겜알못 새끼 ㅋㅋ 도진도 크라우스 억제하느라 식은땀 흘린 거 못 봄? 진짜 단 한 번이라도 삐끗했으면 크라우스 반격에 반갈죽이었어.

-그래도 다 컨트롤했죠? 모든 게 도진 손바닥 안이었죠?

-크라우스가 되감기 감안 못 한 게 패배 요인이었음. 이번에 크라우스가 그거 계산에 넣고 판 짜면 도진도 힘들 듯?

-부디 도진 개같이 패배! 제발 도진 개같이 패배! 도진이 이기면 신이란 새끼 직무유기로 고소한다!

-신이 직무유기 중인 건 확실하네. 이런 새끼가 아직 숨 쉬고 사는 거 보면.

워낙에 접전이었기에 2경기에 대한 승부 예측은 의견이 엇갈렸다.

도진의 승리를 믿는 사람의 비율이 높긴 했지만, 크라우스가 역전할 거란 의견도 적지 않았다.

크라우스가 새롭게 선보인 바람의 힘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처음부터 활용하면 승산이 충분할 거란 의견도 나왔다.

[“다음 경기를 기다려 주시는 시청자분들께 아쉬운 소식을 전해드려야 할 거 같습니다. 크라우스 선수 측에서 다음 경기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소식입니다. 그로 인해 크라우스 선수가 기권. 도진 선수의 승리로 오늘의 첫 경기가 마무리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승부 예측이 무색하게도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도진과 크라우스의 2경기 취소.

-뭐? 기권?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시청자들은 분노했다.

어마어마한 볼거리가 눈앞에서 사라졌으니 당연했다.

-이유를 밝혀라!

-지더라도 싸워는 보고 져야지. 무서워서 도망치는 게 말이 되냐!

-어차피 인스턴스 PvP존이라 쿨도 다 초기화되고 정령도 다 회복될 텐데 경기 못 할 사유가 뭐야?

-크라우스 방송 켰다!

주최 측에 해명을 요구하던 시청자들은 크라우스의 방송이 켜졌다는 소식에 우르르 몰려갔다.

그리고 허탈해하며 돌아왔다.

-허허.

-어이가 없네.

-…정령이 파업도 하냐?

-기권 사유갘ㅋㅋ 정령이 싸우기 싫다고 파업읔ㅋㅋㅋ

-그런데 솔직히 이해된다 ㅇㅈ? 내가 정령이어도 도진 같은 놈이랑 싸우라고 하면 바로 런치긴 할 거 같아 ㅋㅋ

크라우스의 기권 사유가 ‘정령의 전투 거부’였던 것이다.

정확한 이유는 크라우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정령들이 크라우스가 부상을 입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 침묵에 들어간 것이었지만.

제3자들이 보기에는 정령들이 겁을 먹고 파업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 ㅋㅋ 마법이 비처럼 쏟아지는데 무서워서 싸우기 싫다고 ㅋㅋ

덕분에 도진은 정령까지 파업하게 만든 지독한 마법사 타이틀을 얻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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