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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61화 (26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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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반응 속에 도진과 헥스는 이미 경기장에 올라 대기하는 중이었다.

헥스가 인상을 구겼다.

도진의 스펙 표기를 그도 본 것이었다.

그는 맞은편에 선 도진을 보며 말했다.

“이거… 무시를 해도 정도가 있는 거 아닌가? 이건 좀 자존심이 상할 정도인데.”

말하는 헥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창대를 꽉 쥐는 모습에서는 자존심 상한 그의 마음이 드러났다.

도진이 그런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불쾌하다면 사과하죠.”

상대 입장에서는 자신을 대놓고 무시하고 있다고 여길 수 있었기에 깔끔하게 사과했다.

하지만 이미 심기가 상한 헥스 입장에서는 도진의 이런 태도조차 고깝게 보이는 것이었다.

헥스는 비릿한 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뭐, 사과할 필요 없습니다. 시작부터 공짜로 승 하나 떠먹여 준다는데 오히려 이쪽에선 고마워하는 게 맞는 거 같네요.”

헥스의 역도발에 도진은 그저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걸로 응수했다.

경기가 시작되고, 잠시만 지나면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가 사라질 것이다.

[“카운트 들어갔습니다! 3, 2, 1- 경기 시작합니다!]

경기 시작 카운트가 끝나자마자 먼저 움직인 건 헥스였다.

그는 이미 경기 시작 전부터 도진을 요리할 방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둔 상태였다.

‘대회 룰 상 주문을 스택해 놓는 건 불가능하다. 처음부터 캐스팅을 해야지. 그럼 「점멸」로 도망칠 수는 없고. 장비까지 전부 C급으로 다운그레이드를 했으니-’

캐스팅 속도도 느려져서 공격에 대처하기 힘들 터.

군중 제어 스킬만 잘 반응해서 넘기면서 접근하면 필승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헥스는 도진의 움직임에 따라 자신이 선택할 행동과 스킬을 머릿속에 나열했다.

하지만 이런 헥스의 계산은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뭣?”

도진은 이미 템빨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캐스팅 없이 쓸 수 있는 마법을 가지고 있었다.

헥스는 정면에서 날아오는 7개의 「화염구」에 당황했다.

자신의 접근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는 궤도로 날아드는 불덩이들.

눈 깜빡할 새에 생성된 것도 아니었다.

그것들은 눈을 깜빡이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나타나서는 자신을 위협하고 있었다.

“크윽!”

헥스는 어쩔 수 없이 창을 휘둘러 접근하는 화염구 몇 개를 쳐내며 옆으로 몸을 틀었다.

그런 그에게 「섬광창」의 광점이 찍혔다.

이건 도진에게도 캐스팅이 필요한 마법이었지만, 그 속도가 무섭도록 빨랐다.

‘무슨 캐스팅이-’

장비 아이템의 다운그레이드? 그걸 감안해도 도진의 시전 속도는 다른 마법사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유물, S급. 장비의 등급은 물론 중요한 부분이지만, 도진의 사기성의 원천은 높은 등급의 장비 아이템이 아니었다.

뿌리부터 사기적인 클래스.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 무시무시한 시너지를 일으키는 특성들. 그리고 수많은 히든 피스 속에서 쌓인 괴물 같은 스탯.

그것만으로도 이미 도진은 괴물이었다.

‘제대로 된 장비 없이도 저게 된다고?’

헥스는 피하기 급급할 정도로 빠른 마법 공격에 당황했다.

그래도 프로 출신은 프로 출신.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헥스는 최대한 자신이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

‘한 방. 한 방만 제대로 꽂아 넣으면 이후로는 시전 한 번 못 하게 몰아칠 수 있어.’

빠른 반응속도로 도진의 공격을 회피하며, 헥스는 특정 방향으로 도진의 마법이 쏠리게끔 기동했다.

그러다 확 방향을 전환하며, 창으로 땅을 찍는다. 창술사의 이동기 「스피어 스탭」. 헥스는 순식간에 도진의 측면을 잡는 데 성공했다.

‘됐어!’

마법 시전과 발동 사이에 놓인 아주 짧은 빈틈.

그러나 창을 내지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이겼다. 헥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헥스가 어렵게 만들었다 생각한 빈틈은 도진이 일부러 만들어 준 것이었다.

‘주문이 발동되는 틈을 노리는 건 좋지만, 동작이 너무 노골적이잖아.’

도진의 시선은 어느새 헥스와 그가 내미는 창끝을 좇고 있었다.

헉. 하고 헥스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하나 대응하기에는 늦었다.

《대지 파편》

도진 주변의 땅이 쾅 내려앉으며 거미줄 같은 실금이 갔다.

그로 인해 발생한 작은 파편들이 일제히 솟구치며 발사됐다.

헥스가 일정 거리 안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마법회로에 장전해 두었던 마법이었다.

견제용 마법은 캐스팅이 필요 없는 걸로. 회심의 일격은 마법회로에 미리 장전해 둔다.

“컥-!”

공격을 내지르다 카운터를 얻어맞은 헥스는 몸이 굳었다.

순간적으로 방어 스킬을 사용해 피해를 최소화하긴 했으나 빈틈을 내주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도진은 그걸 놓칠 사람이 아니었다.

[“아아앗! 헥스 선수의 일격을 방어한 도진 선수! 대단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확실한 피해를 주지 못 하면 결국 헥스 선수가 회복할 텐데요! 역시 큰 마법을 준비- 예? 돌진합니다! 도진 선수, 마법사 주제에 전사의 거리로 뛰어들었습니다!”]

싸우고 있는 둘에게는 전해지지 않는 해설자의 격앙된 말처럼, 도진은 「대지 파편」을 맞아 잠시 멈칫한 헥스에게 달려들었다.

도진이 주먹을 내질렀다. 헥스의 안면에 꽂힌 주먹에는 「화염구」가 실려 있었다. 퍼엉- 하고 터지는 폭발에 헥스의 고개가 뒤로 넘어간다.

그런 와중에도 헥스는 창을 짧게 고쳐 쥐며 가까이 접근한 도진을 찌르려 했다. 창날 바로 아래를 역수로 잡아, 마치 단검으로 찌르듯 하려는 그때.

콰직. 그의 손목을 도진의 어깨에서 튀어나온 아네모네가 물어뜯었다.

“크아악!”

“고마워, 아네모네.”

“미친 새끼! 창술사한테 마법사가 이 거리까지 달라붙어?”

창질은 무산됐지만, 주먹질이든 발차기든 꽂히기만 하면 허약한 마법사 따위-

그렇게 생각하며 힘을 끌어올리던 헥스는 순간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힘에 당황했다.

두툼한 아네모네의 앞발이 그의 가슴을 짓누르는 것이었다.

“컥!”

아네모네는 도진의 영향을 그대로 받는다.

도진의 사기적 특성, 괴물 같은 스탯에 영향을 받으니, 당연히 소환수인 아네모네도 괴물일 수밖에 없다.

그녀의 완력은 순식간에 헥스를 땅바닥에 그대로 짓눌러 꼼짝도 못 하게 만들어 버렸다.

턱. 무력화된 헥스의 얼굴을 도진의 손이 덮었다. 싸구려 C급 매직 건틀렛의 감촉에 헥스는 자신의 패배를 직감했다.

“잠-”

영창도, 시전 동작도 없는 화염구가 연속으로 도진의 손에서 작렬했다.

퍼버버버벙- 하고 폭죽 터지듯이 겹쳐 들리는 폭음.

겹친 폭발은 화염구의 불길을 5미터나 치솟게 만들었다.

헥스의 몸은 처음에는 경련하다, 어느 순간부터는 폭발의 물리력에 힘없이 흔들렸다.

[“…어, 어어엇! 미쳤습니다! 제가 도대체 뭘 본 거죠!”]

중계 화면에 승자인 도진의 얼굴이 클로즈업됐다.

[“도진 선수의 대단함이야 이미 LOST계에 정평이 나 있었다지만, 헥스 선수 또한 PvP 분야에서는 이름값이 상당한 선수였는데, 이건 예상도 못 한 결과입니다!”]

[“맞습니다! 도진 선수가 지금껏 보인 실력과 별개로, 마법사와 창술사 간의 상성 차이로 인해 최소한 막상막하의 대결이 펼쳐질 거라고 저도 생각했는데요. 아니었습니다!”]

[“압도적, 압도적입니다!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히며 헥스 선수가 승기를 잡나 싶었으나 그건 무덤으로 들어가는 걸음이었습니다!”]

경기 장면을 본 해설자와 캐스터가 흥분해서는 자리에서 반쯤 일어난 채로 말을 주고받았다.

시청자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야이, ㅅ빌. 저게 말이 됨?

-너무 놀라서 먹던 치킨 키보드에 쏟았다 ㅅㅂ;

-진이 예전부터 접근전도 불사하는 미친놈인 건 알았지만, 헥스 정도 되는 창술사를 상대로 저딴 짓을 한다고?

-근데 2:1 아냐? 반칙 아님?

-2:1? 설마 아네모네 말하는 거임? 소환수잖아 미친놈아.

-내가 예전부터 도진 팬인데 ㅋㅋ 저거 일부러 저런 거야. 100퍼임. 누가 봐도 그냥 거리 두고 마법으로 조지면 끝나는 그림인데 퍼포먼스 조진 거야.

-자진해서 구린 장비로 도배하고, 마법사가 창잡이 상대로 접근전……?

-마지막에 헥스 항복하려고 한 거 아님? 근데 그냥 화염구 폭발음에 묻혀 버렸네 ㅋㅋ

-헥스 정도면 현질 말고는 할 줄 아는 거 없는 양아치들하고는 다르지 않나?

-다르지. 블러드 소울에서 우승 경력도 있는 앤데.

-근데 왜 저렇게 짐?

-상대가 도진이라.

도진을 찬양하는 팬들의 채팅은 거의 없었다.

그들 대부분이 이미 경기가 진행되는 도중에 이성을 상실한 탓에 ‘도배로 인한 채팅 정지’ 처분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공식 대회 채널만 난리인 게 아니었다.

대회 시작 전 이슈에 탑승한다고 도진에 대해서 왈가왈부했던 방송인들의 방송은 하나같이 펑펑 터져나가고 있었다.

-???: 우승할 자신은 없는데, 그분한테 질 자신은 또 없네?(실제로 한 말)

-ㅋㅋㅋ 두 번만 이기면 도진 님이랑 붙겠네요? 파이팅!

-지금 기분이 어떤지 말씀 좀 부탁드립니다.

-아아, 황천길 상조에서 나왔습니다.

도진을 상대로 질 자신이 없다는 발언을 했던 스트리머 ‘만타라’는 바로 태도를 바꿨다.

원래부터 광대 기질이 다분했던 만타라는 바로 뒷배경을 초록색 화면으로 바꾼 뒤 급하게 정장을 차려입고는 속칭 ‘도게자’라 불리는 일본식 큰절을 하며 사과를 했다.

-진짜 찐광대 미치겠네 ㅋㅋㅋ

-지금 PvP 부심 부리면서 한마디씩 했던 스트리머들 다 비상 걸렸다 ㅋㅋ

-최소한 도진이 고전이라도 했으면 모르겠는데 헥스가 완전히 개털려서 다들 벙 찐 상태더라

그러는 사이 경기의 승자인 도진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안녕하세요, 도진 선수! 지금 많은 분들이 도진 선수의 승리를 축하해 주고 계신데요. 시청자분들께 인사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도진입니다.”]

[“우와아, 진짜 시청자분들 반응이 엄청나요. 실시간으로 채팅 정지를 당하고 계시네요!]

[“…….”]

[“조금만 진정들 해 주시고. 그럼 도진 선수! 오늘 경기, 정말 놀라움과 경악의 연속이었는데요. 먼저 자진해서 장비 등급을 하향 조정한 이유부터 듣고 싶어요.”]

인터뷰를 맡은 아나운서의 질문에 도진은 담백하게 대답했다.

[“이유가 있긴 한데, 그건 지금 말씀드리기 힘들 거 같아요.”]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더 궁금한데요. 왜 지금 말하기 힘든지는 들을 수 있을까요?”]

[“지면 창피할 거 같아서요.”]

도진의 말에 아나운서가 눈을 크게 떴다.

[“네?”]

[“당장 다음 경기에서 질 수도 있는데 미리 이런 얘기를 하면 부담스럽잖아요.”]

도진의 말에, 인터뷰를 보던 시청자들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오늘 그딴 경기를 해 놓고 저딴 말을 해? ㅋㅋ

-진짜 미친놈이네 ㅋㅋ 저거 대회 시작 전에 입 턴 새끼들 저격하는 거잖아.

-무슨 소리예요? 우리 도진이 그런 애 아닙니다! 착하고 순진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애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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