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58화 (258/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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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사의 구덩이」를 더 쉽게 클리어하는 방법은 던전 안에 있지 않았다.

그 방법은 바로 퀘스트에 있었다.

불사 구렁이 퇴치 퀘스트를 받고 바로 던전으로 향하는 게 아니라, 그 퀘스트를 조금 더 깊게 파고드는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연계 퀘스트가 열리고, 그것을 수행하면.

[“산속에 있는 주술사 NPC가 가져오라는 물품을 다 모아서 주면 부적을 만들어 주거든요. 그 부적을 들고 던전에 입장하면 마나 회복 불가 디버프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생명석을 파괴할 때마다 보스가 약화되는 데 더해서 플레이어한테 강화 버프가 걸리고요.”]

공략 영상에 담겨 있듯 보스를 약화함과 동시에 플레이어 본인이 강화되는 새로운 기믹이 생겨난다.

요즘 한창 필수 퀘스트, 필수 던전으로 떠오르는 「불사사의 구덩이」를 더 쉽고 더 안전하게 클리어할 수 있는 공략법에 사람들은 좋아했다.

-특정 클래스는 아예 접근도 못 하게 만든 마나 회복 불가 디버프가 왜 붙어 있나 했더니… 이런 게 숨어 있었구나 ㄷㄷ

-이제 캐스터 직업군도 조금 숨 쉴 만하겠네. 힐러들도 엄청 고통스러워했는데.

-힐러뿐임? ㅋㅋ 던전 입장과 동시에 힐, 버프 주문 개수가 제한돼서 딜러들도 아주 개고생이었음.

-딜러도 중노동이었어 ㅋㅋ 생명석 부숴도 이상하게 보스가 안 죽는다 했더니, 플레이어한테 버프가 안 걸려서 그런 거였구나.

-그럼 우린 잡을 수 없는 걸 천장에 기어 올라가서 일방적으로 때려 죽였던 거야? ㅋㅋ 인간의 집념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근데 제목 나만 꼴받냐? ‘(솔플 가능)’ ㅇㅈㄹ ㅋㅋ 대마법사 씨, 잘 들으세요. 저거 덕지덕지 발라 줘도 우린 솔플 못.합.니.다. 아시겠어요?

-ㅋㅋㅋ 심지어 도진은 저거 일부러 활동화도 안 하고 솔플한 거 아님? 거기다 원킬까지;

-허… 댓창에는 마법사가 없나? 시발 지금 도진 저 새끼 점멸 썼잖아! 저 화염 마법도 점멸이랑 동급이라고! 시발; 어떻게 벌써 8성 마법을 쓰고 있는 거임? 지금 유저 레벨 생각하면 7성도 간당간당한데;

└나도 쓴 마법 보자마자 온몸이 벌벌 떨렸다; 설마 지능 스탯으로 한계 극복한 거면… 미친 진짜 얼마나 높다는 거임?

└내 말이. 정말 지능 수치로 메운 거면 저거 한 방에 황천길 보낸 게 이해가 됨.

-위에 법사들, 헛소리 그만하고 와서 화염구나 쏘셈. 지금 마나 회복량 버프 덕에 니들이 1티어 딜러 됨.

└정말요? 저희 이제 일자리 있는 거예요?

└ㅇㅇ 구덩이 한정이지만.

도진이 던진 돌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불사사의 구덩이」를 더 깨기 쉬워진 건 물론이고, 외면 받던 클래스, 고생하던 클래스를 구원했다.

거기다, 최소한의 쫄몹만 잡으면서 보스까지 진행하는 기존의 공략 방식이 아니라 올킬이 가능해짐에 따라 경험치 수급량이 훨씬 더 많아졌고.

-근데 네임드 하나 잡고 생명석 하나만 깨도 몬스터 개쉬워지는데? 레벨업 개잘됨.

새로운 레벨링 던전의 등장이었다.

특정 레벨 구간의 성장 공식을 도진이 바꿔 버린 셈이었다.

-진짜 유저 평균 레벨 도진 혼자 얼마나 끌어올리는 건지 모르겠네. 도진이 열어 줬던 경험치 이벤트가 몇 번에, 지금처럼 직간접적으로 유저들한테 레벨업 꿀팁 풀었던 거도 그렇고.

-도진 영상 보고 유저들 플레이 스타일도 존나 발전함 ㅋㅋ 같은 몬스터는 아니어도 비슷한 유형이면 어떻게 접근할지에 대한 레퍼런스가 되는 셈이라.

-이게 맞지. 머저리들이나 ‘우리가 어떻게 저런 걸 따라 해 ㅅㅂ’ 이러고 있지. 똑똑한 애들은 거기서 배울 점, 적용할 수 있는 점 찾아서 발전 잘만 하고 있음. 특히 마법사들은 진짜 고마워해야 함.

└공감한다 ㅋㅋ 아마추어 스포츠인들이 괜히 레전스 프로 선수들 영상 보면서 공부하겠음? 따라 할 수 있는 만큼만 따라 하면 다 도움이 되니까 그러는 거지.

└하아… 알지, 아는데… 네가 마법사 입장에서 영상 봐라. 현타 존나 온다고 진짜.

특정 레벨 구간의 성장 공식을 도진이 바꿔 버린 셈이었다.

* * *

라엘 엔터테인먼트에서 도진과 가장 자주 엮이는 부서는 콘텐츠와 마케팅이었다.

두 개 부서 모두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야 할지를 같이 고민하는 부서이기도 하고.

각각 그걸 만들고, 그것을 이용해 어떤 부가가치를 어떻게 창출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실행하는 일을 맡은 팀이기 때문.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도진과 관련된 일만 하는 건 절대 아니었다.

“후우… 정말 바빠 죽겠습니다.”

콘텐츠 팀의 리더 오영식이 죽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오영식은 정말 죽을 것 같았다.

도진 채널에 올라갈 영상에 영혼을 갈아 넣느라 시간을 많이 썼더니 준비 중이던 콘텐츠가 코앞으로 다가온 형국이 됐다.

“…오 팀장님, 병원 가 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거무죽죽하게 죽어 가는 오영식을 본 김영희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일 얘기를 하려고 얼굴을 마주했더니, 당장 응급실로 달려가야 할 것만 같은 몰골이다.

“후우, 잠이 고프긴 하지만 어쩌겠어요. 당장 닥친 일이 있는데.”

“일정을 더 미루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잖아요. 아직 발표도 안 했고.”

“아닙니다. 더 미루면 이 건 같이 진행하기로 한 분들한테 너무 죄송하잖아요. 이미 여러 이유로 몇 번이나 미룬 건데.”

“…그렇긴 하네요. 최근에 도진 씨 덕분에 한 번 더 밀렸으니.”

이들이 말한 ‘도진 때문에 밀린 일’은 라엘 엔터테인먼트가 자체적으로 진행하려던 LOST 이벤트였다.

무릇 이벤트라 함은 관심과 화제를 끌어들여 이슈화되는 게 중요한데, 도진이 연달아 대형 사고를 내면서 LOST 유저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으니 끼어들 엄두도 못 내고 연기만 해 왔던 것.

“뭐… 지금도 아주 좋은 타이밍은 아닌 거 같지만, 더 늦었다가는 진짜 기약이 없어질 수도 있잖습니까.”

LOST는 현재 신지역(다른 세계)으로 연결된 문으로 들썩이고 있는 중이다.

이걸 최초로 발견하는 콜럼버스가 나타나면 모든 어그로는 그쪽으로 쏠릴 터.

그러면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이벤트가 끌 수 있는 관심도, 그로 인해 벌 수 있는 기대 수익도 한참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오 팀장님 말이 맞아요. 지금 시점도 재도 너무 잰 게 아닌가 싶긴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최대한 해 보는 수밖에.”

그렇게 말하는 김영희 팀장의 손에는 ‘라엘 그룹배 LOST 크리에이터 PvP 대회’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렇다. 지금 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는 콘텐츠의 정체는 PvP 대회였다.

“일단 예정대로 내일 공지를 올리고, 참가 신청을 받는 것부터 시작하죠.”

“결국 미리 얘기를 해 보는 건 물 건너갔네요.”

“틈이 보여야 말이죠.”

이들이 시간을 끈 이유는 또 하나가 있었다.

라엘 엔터가 보유한 어그로 치트키. 도진에게 먼저 참가를 부탁하고, 함께 일정을 조율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도진은 쉬질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쉬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전력질주를 하다 잠깐 숨만 고르고 다시 달리고, 계속 달리고, 그러다가 아주 잠깐 멈췄다가 다시 보면 이미 달리고 있고.

“그래도 얘기는 꺼내 봐야죠. 참가까지는 어려워도 이벤트전 한번 치르는 것만으로도 엄청 이슈가 될 테니까요. 그나저나 천지현 씨한테 미움받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가끔 보면 도진 씨가 엄청 무리한다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던데.”

오영식의 말에 김영희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닐걸요? 오히려 저한테 아예 오프라인 스케줄이 좀 잡히면 밖에도 나가고 그럴 거 같다면서 상담도 했었어요. ‘애가 너무 집에만 있어요. 아니, 캡슐에서 살아요!’ 이러더라고요.”

표정 흉내까지 내는 김영희를 본 오영식은 상상이 된다면서 웃었다.

* * *

“PvP 대회요? 제가요?”

스마트폰 너머로 들린 김영희의 말에 도진이 눈을 크게 떴다.

조금만 더 쉬다 문 찾아 삼만 리를 시작하려 했는데, 갑자기 웬 PvP 대회?

[“엄청 진지한 대회는 아니에요. LOST 크리에이터들 모아서 토너먼트 형식으로 PvP 대회인데, 도진 씨는 이벤트전 정도만 해 주셔도 대회에 엄청 도움이 될 거 같아요.”]

“그냥 한 번 싸우면 된다는 거죠?”

[“그래도 되고. 가능하면 몇 번 더…….”]

도진이 가볍게 생각하는 듯하자 김영희가 은근슬쩍 찔러 봤다.

“제 채널 구독자들도 좋아할 거 같네요.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것도 아니고 이벤트전 정도면 충분히 가능해요.”

[“정말요? 하아, 다행이네요. 매번 강행군 끝내고 잠깐 쉬는 도진 씨한테 부탁하기 미안해서 계속 고민만 했었거든요.”]

“그럴 필요까진 없… 다고 말씀드리기에는 최근 제가 너무 미친놈처럼 게임만 하긴 했네요.

[“저희 입장에서는 도진 씨가 그렇게 열심히 해 주는 게 고맙지만, 이젠 걱정될 정도예요. 천지현 씨도 걱정 많이 하고 있는 거 알죠?”]

“안 그래도 이제는 조금 적당히 하려고요.”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걱정에 도진은 쓰게 웃었다.

[“음, 오지랖이었던 거 같네요. 죄송해요.”]

김영희는 자신이 선을 살짝 넘은 게 아닌가 싶어 한발 물러나며 사과했다.

하지만 도진은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괜찮아요. 걱정해 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어서 전 기분 좋은데요.”

자신을 걱정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도진은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누군가는 귀찮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도진은 그게 사치라는 걸 잘 알았다.

사람의 온도가 없는 삶을 살아 본 도진에게는 이런 따뜻함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어쨌든 전 그냥 정해진 상대랑 대결하면 끝인 거죠? 일정 알려 주시면 준비해 놓을게요.”

[“아, 네. 혹시 일정 조정이 필요하면 따로 연락 주세요. 최대한 도진 씨한테 맞춰 드릴게요.”]

이후 가벼운 인사를 끝으로 통화가 마무리됐다.

방송인들을 모아서 하는 이벤트성 대회라.

이런 건 처음이었다.

전생에는 어두침침한 음지에서 이런 양지를 바라보는 역할이었는데.

사실 바라보지도 않았다.

이런 건 도진의 관심 밖이었기에.

‘내 몫이 아닌 영역이라고 여겼었으니까.’

말 그대로 화기애애한 동네 축제 같은 느낌이라 괜히 다가갔다가는 더 우울해질 거 같아서 의도적으로 관심을 껐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도진은 겨우 이벤트전으로 참가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김영희가 말한 PvP 대회가 기다려졌다.

이튿날, 라엘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이벤트 공지가 올라갔다. LOST 크리에이터는 물론, LOST를 즐기는 방송인들의 대회 참가 신청을 받는다는 공지였다.

공지 말미에는 도진의 이벤트전 소식도 적혀 있었다.

사람들은 갑작스레 발표된 즐거운 볼거리에 열광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매사가 불편한 사람들은 존재했고, 그들은 즐기기만 해도 충분한 일에서도 불편한 점을 찾아 물어뜯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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