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57화 (257/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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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보한 8성 마법 스킬북을 기록하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공짜라는 이유로 눈에 띄는 8성 마법을 닥치는 대로 챙겨서 전부 기록한 탓이다.

잔뜩 배워도 결국 주력으로 쓰게 되는 건 효율 좋은 몇 개 주문에 불과하다는 걸 잘 알지만, 그래도 뿌듯한 건 어쩔 수 없다.

마법사에게 있어 마법은 사용할 일이 없다 해도 수집품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도진은 황금색 책장에 나열되어 있는 기록 마법 목록만 봐도 배가 부른 느낌이었다.

“이것도 슬슬 끝나가니까… 테스트할 사냥터를 골라야겠는데.”

속된 말로 야매긴 해도 8성 마법사가 됐으니, 그에 걸맞은 던전이 좋겠는데.

‘여기서 가까운 곳이면… 외눈 거인? 그놈도 괜찮을 거 같고.’

도진은 당장 떠오르는 200~210레벨 던전 보스들을 처형 후보에 올려두고 고심했다.

‘이왕이면 유튜브 각도 생각해서 골라야 돼.’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팬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있던 일들로 팬들만 도진과의 유대감이 깊어진 게 아니다.

도진도 팬에 대한 애정이 생겼고 깊어졌다.

그렇기에 도진은 조금이라도 더 영상을, 영상에 등장하는 자신을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을 위해 가끔 의미 없는 영상도 올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올릴지 안 올릴지는 나중에 생각하더라도 재료는 많이 모아 놓을수록 좋은 법이니까.’

고민하던 도진은 처음 후보에 올렸던 외눈 거인으로 희생양을 정했다.

‘200레벨 넘는 던전 보스 정도면 가볍게 올릴 영상 주인공으로 적당하겠지.’

그리고 발걸음을 뗐다.

그런데 한 걸음도 채 지나지 않아 도진이 멈춰 섰다.

“씁, 잠깐.”

뭔가 아쉬운데.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미 살짝 유튜브가 낳은 괴물이 되어 가고 있는 도진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200레벨 던전 보스? 잡아볼게요.]

기껏해야 이 정도? 뭔가 밋밋하다.

아무리 가볍게 올릴 영상이라 해도 임팩트가 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음… 좀 알아볼까?’

도진은 로트라넷에 접속했다.

요즘 핫한 주제가 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당신이 원하는 ‘THE 도진’ 전투 장면 모음집]

[이번 대규모 균열 사태가 알려 주는 떡밥 정리]

[LOST는 다중 우주론을 따르고 있다. (구슬 속에 담긴 세계)]

[이번에 밝혀진 ‘공허’는 어떤 걸까?]

[다른 세계(신지역)로 통하는 ‘문’은 도대체 언제 발견될 것인가?]

그런데 핫한 주제는 여전히 도진의 영상에서 파생된 떡밥들이었다.

‘다른 얘기가 거의 없네. 추천 많이 받은 인기 게시물만 봐서 그런가?’

도진은 실시간 인기글이 아닌 개별 게시판을 살피기로 했다.

자유 게시판은…….

‘헛소리들만 하고 있군.’

바로 탈락.

다음으로 도진이 간 곳은 마법사 게시판이었다.

그런데 마법사 게시판은 전체적으로 우중충했다.

다들 유저들 스스로 세계를 지켜냈다는 자부심에 더해 도진의 영상이 주입한 뽕.

거기다 신지역에 대한 기대로 지금 LOST 판에서 노는 사람들은 죄다 들떠 있는 상태다.

그런데 마법사 게시판에는 이상할 정도로 우울한 글이 많이 보였다.

[제목: 후우… 금연 깨고 담배 빨고 싶어진다.]

[다들 알지 모르겠는데 요즘 160 넘은 유저 사이에서 핫한 불사 구렁이 퀘스트라고 있거든?

그냥 가서 순서대로 말 걸고 인던 하나 깨면 갑옷 주는 180레벨대 퀘임.

160만 넘어도 몸 비틀면서 꼼수 쓰면 클리어가 가능한 데다 성능은 180레벨인데 착용은 퀘만 깨면 할 수 있는 갑옷 줘서 지금 사실상 필수퀘 됐다고 보면 됨.

법사 입장에서는 최대 마나랑 생명력 잔뜩 붙은 갑옷이라 진짜 가뭄의 단비 같은 갑옷인데… 이거 우리는 못 깸.

이 시발 뫼비우스 병신 새끼들, 밸런스를 진짜 거지같이 만들어서 파티에 마법사가 섞이면 클리어가 안 되게 만들었음.

던전에 깔린 독이 마나 재생 불가 붙어 있는 게 말이 되냐? 보스 가면 그냥 마나통이 거덜나 있다니까? ㅋㅋ

보스 피는 또 더럽게 많아서 그냥 마나통이 꽉 차 있어도 마법사의 좆구린 연비로는 안 됨. 그냥 안 된다고.

이건 직업이 아님.]

-에휴, 또 법징징 나왔네 ㅉㅉ 지금 현존 1위 개사기 직업이 법사인 거 LOST 유저면 다 아는데. 뫼비우스는 그냥 상향, 하향 없이 방치만 하니까 언플 좀 그만해라.

└이 씨ㅣㅣㅣㅣ발년아! 법사가 개사기라고? 해 보긴 하고 그딴 개소리 하는 거임?

└ㅋㅋㅋ 꼭 그걸 해 봐야 앎? 영상만 봐도 딱 보이는걸. 도진 못 봄?

└…하, 시발. 그냥 말을 말자.

-ㅋㅋㅋ 시즌 1,523,125호 현타 온 마법사 등장. 그냥 포기해라. 법사로 태어났으면 그냥 감수해야 하는 거임. 그나마 요즘에는 특정 사냥터랑 던전에서는 취업은 가능하잖아? 그걸로 만족하셈.

-위에 분탕 새끼 같은 놈들 진짜 쳐죽이고 싶음. 뭐 말만 하면 ‘도진, 도진.’ 아니, 시발 우리가 도진이냐고 ㅋㅋㅋ 그거 걔만 그렇다고!

-타 직업 하는 새끼들 대가리 열어서 뇌에다 인두로 지져서 각인시켜야 됨. 도진≠마법사. ㅇㅋ?

-요즘 마법사들 그나마 어디 파티라도 취업할 수 있게 인식 개선해 준 건 고마운데… 사기 직업 프레임 씌운 건 원망스러울 지경임.

음… 분위기가 참.

첫 번째로 본 글이 풍기는 음울함이 상당했다.

다른 글은 어떨까?

도진은 다음 페이지에 있는 글을 무작위로 열어 봤다.

[제목: 아름다운 밤이다.]

[난 가끔 내가 새벽 인력사무소에 앉아 있는 노가다꾼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파티를 모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늘은 자리가 있을지 눈치를 보는 때에 말이다.

오늘은 일을 나갈 수 있을까? 오늘은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저기, 마법사세요?’.

그런데 오늘은 운이 좋다. 누군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파티도 했고, 사냥도 했다.

그러다 쉬는 시간에 소소한 이야기가 오고갔다.

‘제가 도진 님 팬이거든요. 그래서 마법사분들만 보면 정이 간다고 해야 하나? 내적 친밀감이 장난이 아니에요. 힘내세요.’

사람 좋게 웃으며 말하는, 파티장, 전사. 그렇다. 난 또 누군가의 호의로 사냥을 할 수 있었던 거다.

힘내세요. 그 말이 내 가슴에 날아와 꽂혔다.

나는 도진이 밉다, 밉다, 밉다. 나는 도진이 좋다, 좋다, 좋다.]

-…울었다.

-하, 시발 난 오늘 하루 종일 파티 구하다 포기했는데. 소주나 빨아야지.

-법사의 가장 큰 문제는 효율 나오는 사냥터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거임. 어떤 레벨 구간에서는 귀족 취급하다가 법사 쓸모없는 구간에서는 그냥 불가촉천민 취급임.

-올해 노벨 문학상은 얘 줘라. 이렇게 눈물이 줄줄 흐르는 글은 본 적이 없다.

도진은 코끝을 긁었다.

“이 정도라고?”

그래도 마법사가 특화된 사냥터가 몇몇 곳 있어서 입에 풀칠은 하는 수준 아니었나?

자신이야 전생에 하자가 잔뜩 있는 이상한 마법사라 그런 곳도 제대로 못 다녔다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도진이 간과하는 점이 있었다.

그건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었다.

도진이 회귀하기 전에는 마법사 자체가 별로 없었다.

워낙 안 좋다는 평이 지배적이어서 시작하는 사람 자체가 드물었던 것.

그런데 지금은 도진이 약을 있는 대로 파는 바람에 마법사 인구가 같인 시기 대비 훨씬 더 늘어 버렸다.

마법사가 낄 자리는 한정적인데 머릿수가 늘어 버렸으니 인력 시장에서 가치가 하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니, 그래도 장비 좋고 실력 있는 법사는 경쟁력이 충분할 텐데…….”

하긴. 장비도 좋고 실력도 좋아야 일자리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부터가 문제인가.

마법사란 클래스가 진입장벽이 높아도 너무 높긴 했다.

‘근데 처음에 그 사람이 말한 던전이 그거 맞나? 생갑 파밍 던전이면 마법사로 날먹이 가능한 던전일 텐데.’

기억을 더듬어 필요한 정보를 찾아 낸 도진은 눈 하나짜리 거인 대신 그만큼이나 덩치가 큰 구렁이를 잡기로 했다.

레벨이 180에 불과하다지만, 던전 기믹을 따로 공략하지 않으면 오히려 보스로서의 강함은 200레벨을 훌쩍 뛰어넘는 놈이니 퍼포먼스 면에서도 더 나을 거 같았다.

하는 김에 불쌍한 마법사들 좀 돕고 말이다.

* * *

「불사사(不死蛇)의 구덩이」 공략의 핵심은 던전에 퍼져 있는 생명석을 파괴하는 것이다.

던전 곳곳에는 세 개의 생명석이 배치되어 있는데, 생명석을 지키는 네임드 몬스터를 처치하고 생명석을 부수면 최종 보스의 능력치가 다운된다.

하나를 부술 때마다 방어력, 생명력 재생, 공격력이 다운되는데, 현재 정석으로 굳은 공략법은 생명석을 두 개까지만 파괴하고, 비밀 통로를 이용해 보스룸 천장으로 이동해서 보스를 일방적으로 딜하는 것이었다.

야비하다면 야비한 공략법. 그리고 아주 훌륭한 보상이 겹치면서 「불사사(不死蛇)의 구덩이」는 현재 잡을 수 있으면 바로 가서 잡아야 하는 필수 코스가 되어 가고 있었다.

[「불사사(不死蛇)의 구덩이」 보스 원킬 컷.]

그런 와중 도진 채널에 올라온 영상 하나.

알림을 본 사람들은 생각했다.

‘도진이 여길 왜 가?’

도진이 영상까지 올리기에는 너무 평범한 던전 아닌가?

레벨도 낮고.

‘원킬’이라는 단어가 주는 충격도 ‘도진’이 붙어 버리니 감탄을 자아내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그러나 영상을 보기 시작한 순간 평범하거나 시시하다는 생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 뭐야? 구렁이 새끼 머리에 왜 뿔이 3개야?’

던전 내의 생명석을 부술 때마다 불사 구렁이의 머리에 달린 뿔이 하나씩 부러진다.

뿔 세 개가 그대로 남아 있는 구렁이 새끼는 말 그대로 ‘불사’에 가까운 놈이었다.

끔찍하게 높은 물리, 마법 방어력도 문제고, 순식간에 차오르는 생명력도 문제다.

추측이지만, 생명석 3개 모두가 공통적으로 뱀의 최대 생명력을 올려 주는 게 아닌가 하는 설도 있었다.

그런데 영상 속 도진이 마주하고 있는 건 뿔이 아주 멀쩡하게 전부 남아 있는 불사 구렁이였다.

보는 이들 모두가 생각했다.

‘저거 안 죽을 텐데? DPS가 아무리 높아도 거의 생명력이 무한히 재생되는데 원킬이라도 내지 않는 한- 잠깐 원킬? 아니, 말이 안 되잖아. 뿔이 다 있으면 사실상 잡으라고 만든 몬스터가 아닌 수준인데.’

시작부터 보스를 앞에 두고 시작된 영상은 보는 이들의 혼란함을 무시한 채 재생됐다.

던전 전체를 독기로 뒤덮을 정도로 강력한 독 속성을 지닌 뱀이 인간을 보며 울음소리를 냈다.

이를 드러내고, 숨을 삼킨다. 압축된 독액을 쏘아 거슬리는 인간을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녹여 버릴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맞다! 뿔 다 남아 있으면 저 패턴 나오잖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범위를 휩쓰는 포이즌 브레스.

뿔을 한 개라도 부숴서 약화시켜야 나오지 않는, 사실상 전멸을 강요하는 패턴이었다.

하지만 도진은 죽음이 확정된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도진의 팬들이라면 익히 아는 시동을 거는 중이다.

황금의 책을 펼치고, 황금 마력의 날개를 펼치고, 여유롭게 물약을 마시고 연초를 태워 자신을 강화한다.

뱀이 숨 삼키는 일을 멈췄다. 뚝 끊긴 호흡 소리는 놈이 공격 준비를 마쳤음을 의미했다.

영상을 보는 이들의 숨도 함께 멈춘 건 그걸 모두가 알기 때문이었다.

‘죽는다.’

아무리 튼튼한 탱커라도 순식간에 녹여 버리는 지속 대미지의 지옥.

저 위치에서는 죽어도 못 피한다.

그러나 도진은 피했다.

펑 하고 터지는 소리와 함께 독액 숨결이 뿜어지는 순간.

시점이 확 바뀌었다.

「점멸」로 위치를 독 뿜는 구렁이보다 훨씬 더 위쪽으로 옮긴 것이었다.

“뭣?”

상상도 못한 전개에 영상을 보던 사람들 중 태반이 몸을 들썩였다.

이어서 도진이 차곡차곡 쌓은 마법이 격렬하게 휘몰아쳤다.

거대한 뱀을 휘감고 타오르는 화염의 관.

도진의 압도적 능력치, 특성, 속성 우위 그리고 마법 자체의 높은 위력이 겹쳐지며 엄청난 딜이 뱀을 몰아쳤다.

끔찍하게 높은 불사 구렁이의 회복력도 결국 살아 있어야 발휘되는 능력. 도진이 만든 「화염관(火炎棺)」은 뱀의 생명력을 단번에 불살랐다.

영상은 짧았다. 그러나 담긴 내용이 주는 충격은 컸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건 역시 마법사 유저들이었다.

-야, 솔직히 이번 거 나만 좀 그럼? 법게에서 저거 잡는 파티에 끼지도 못한다고 한탄하는 글이 몇 개인데. 꼭 ‘겨우 이걸?’ 하면서 놀리는 거 같잖아.

-…후, 좀 그렇긴 함. 푸대접 받으면서 서러워도 도진이 무슨 잘못인가 싶어서 애써 원망은 안 하려고 했는데, 이젠 솔직히 많이 그렇네.

영상이 올라온 직후부터 마법사 게시판에는 스멀스멀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ㅋㅋㅋ 내가 말했지? 도진 그 새끼 정신병자라고. 지 잘난 맛에 사는 새끼 똥꼬나 빨고 있었으니 ㅉㅉ 이제라도 실체를 눈치챈 새끼들이 나와서 다행이긴 하다만.

이때다 싶어 고개를 내미는 도진의 안티들.

그러나 이것도 한순간이었다.

바로 이어서 올라온 영상 하나가 여론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었다.

[마법사도 불사 구렁이 잡을 수 있습니다.(솔플 가능)]

도진이 자신의 기억에 남아 있는, 현재는 풀리지도 않은 날먹 공략을 올린 것이었다.

-새끼들아, 오늘 개종하는 날이다.

-유일신 욕한 병신 새끼들 캡쳐 따서 라엘 엔터로 보냈다.

마법사 게시판은 순식간에 종교인 게시판으로 돌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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