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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55화 (255/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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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님께서 만든 치료용 용액은 산소 공급까지 책임지는 기적의 액체였지만, 맛은 더럽게 없었다.

그런 걸 삼켰으니 목에서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도진은 사레가 들고 말았다.

유리관 안에서 도진이 콜록콜록 고통을 호소하며 기침을 해 대자 혼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던 시온이 인상을 찌푸리며 돌아봤다.

“무얼 하는 게냐. 이제 몸도 멀쩡해진 녀석이 나올 생각은 않고. 그것도 모자라서 이젠 아주… 그러다 그 안에서 병이 나겠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시온이 손가락을 까딱했다.

시온의 염동력에 의해 유리관이 개방되고, 도진이 쏟아지듯 밖으로 끌려 나왔다.

시온은 치료 용액을 염동력으로 갈무리해 별도의 처리 장치로 옮겨 담고는 혀를 쯧쯧 찼다.

그런 그녀에게서는 방금 도진의 몸에서 뿜어진 요란한 빛을 본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도진을 감쌌던 황금색 빛은 진리의 서의 것만이 아니라 세계율의 빛도 함께 섞여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앤을 새로운 몸으로 옮길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니 내 관심이 필요하다 해도 조금만 참거라.”

오랜만에 바깥 공기를 느끼며, 바닥에서 쿨럭쿨럭 먹었던 용액을 토하던 도진은 억울한 눈을 했다.

누가 들으면 관심에 고파서 꾀병이라도 부린 줄 알겠네.

아니지. 지금 그런 게 문제가 아니다.

도진은 주르륵 뜬 메시지를 다시 한번 제대로 확인했다.

적혀 있는 글자를 하나하나 정확히 읽어 봤으나 잘못 읽은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속성 자체에 대한 보너스.

해석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마법은 전체 스펙이 오름과 동시에 캐스팅 삭제.

특히 이건 앞으로 해석을 끝내는 족족 다른 마법에도 적용이 되는 점이라는 게 고무적이다.

지금은 저위계 마법들 몇 개만 적용되지만, 언젠가는 더 많은 마법을 캐스팅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었다.

이거에 비하면 개별 속성 해석으로 인한 ‘마법’의 전체적인 위력 상승과 마나 효율 상승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생각될 정도.

‘최상위권쯤 되면 공격력 한 줄, 마나 소모 감소 한 줄 챙기려고 수억 원을 우습게 쓰는 걸 생각하면 이게 미미하다는 게 말이 안 되긴 하는데…….’

어쩌겠나.

정말 미미한걸.

세상은 언제나 상대평가다.

그런데.

‘이것마저도 마지막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냐.’

1성 더 높은 단계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특권.

이건 마법사로서의 도진을 다른 차원의 영역으로 보내는 한 줄이었다.

몇 번의 대형 퀘스트를 거쳤고, 이번에도 엄청난 경험치를 수급하면서 190레벨대에 진입했지만, 도진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한계는 7성이었다.

이마저도 다른 마법사 유저에 비하면 7성의 영역에 훨씬 더 빠르게 진입한 거였다. 각종 특성과 높은 지능 스탯.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강화된 「진리의 서」 덕분에 말이다.

그런데 「진리의 탐구자」 특성 하나로 바로 8성의 영역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됐다. 이제 막 7성 마법을 배워 나갈 시기에 말이다.

도진은 급히 몸을 일으켰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당장 8성 마법서를 구해 진리의 서에 기록하고, 그걸 써 봐야겠다.

“스승님,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급한 마음에 그렇게 말한 도진은 시온의 뒷모습을 보고는 멈춰 섰다.

‘…왜 저렇게 짠하게 보이냐.’

계속해서 시온이 몰두하고 있는 일은 이미 말했듯 앤을 새로운 육체로 옮기는 일이었다.

공허에서 버티기 위해 자신의 창에 영혼을 옮긴 앤은 현재 하루 활동 시간이 2시간이 채 안 됐다.

거기다 로스타니아로 돌아오면서 다시금 환생자로서의 굴레에 속박된 앤의 영혼은 창에서 분리되려 하는 상황이었다.

영혼을 담을 그릇으로 적당하지 않은 ‘창’에 영혼이 담겨 있으니, 제대로 된 그릇으로 옮기기 위한 환생 시스템이 작동한 것.

‘그렇게 바라던 재회인데. 만나자마자 다시 이별하게 생겼으니…….’

환생자인 앤은 언젠가 다시 태어날 테니 기약 없는 이별은 아니겠지만, 시온 입장에서는 하루도 떨어져 있기 싫은 게 당연하다.

도진은 자신이 한 말은 듣지도 못하고 미간을 찌푸린 채 작업에 몰두하는 시온에게 다가갔다.

“가능할 거 같습니까?”

다가와 묻는 도진의 질문에 시온이 입술을 쓸며 대답했다.

“가능성은 충분해. 지금까지는 앤을 옭아맨 환생의 굴레가 지닌 강제성을 뛰어넘을 수가 없었다. 허약한 환생자의 육체에서 영혼이 분리되는 순간 바로 환생을 위한 절차에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

고민하는 표정과 달리 시온의 목소리에서는 기대감이 묻어나왔다.

“지금은요?”

“지금도 마찬가지지. 하지만 환생 시스템을 속일 방법을 찾지 않았느냐.”

톡톡. 시온이 자신이 그린 그림을 두드렸다.

도진에게 한번 보라는 제스처였다.

다른 마법사가 봤다면 부러움에 피거품을 물었을 광경이었으나 도진은 별 감흥 없이 시선을 아래로 내릴 뿐이었다.

“음… 뭐죠?”

복잡할 게 없는 그림이다.

원을 그리는 선과 그 중간에 놓인 룬문자.

그리고 원과 교집합을 이루는 다른 작은 원.

“무엇인 거 같으냐?”

시온은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며 도진을 봤다.

제법 스승다운 모습이었다.

도진은 생각에 잠겼다.

‘원은… 맥락상 환생과 관련이 있을 거고. 원은 윤회의 원이라고 치자. 그럼 저 룬문자는… 사람? 아니, 영혼이네.’

마법사로 산 세월이 있어서, 도진도 눈에 익은 룬문자는 꽤 됐다.

원과 영혼.

‘확실해. 원은 환생을 의미하고, 영혼은 앤이다. 그러면 저 교집합을 이루는 원은…….’

공허.

얼마 전까지 앤이 머물던 공간이다.

아.

도진은 시온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 거 같았다.

“생각해 보니 공허에서는 육체를 벗어난 영혼이 창에 고정될 수 있었네요. 환생의 운명인지 굴레인지 하는 게 이 세계를 벗어나면 적용이 안 된다는 얘기겠죠. 그러면…….”

“그래. 환생자의 영혼을 견딜 정도로 튼튼한 육체를 인공적으로 만든 뒤에 영혼이 창으로 옮겨갈 수 있었던 환경에서 영혼을 옮기면 된다.”

“다시 공허로 나가려고요?”

도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뭔 일이 벌어질 줄 알고 또 하는 눈이다.

다행히 시온은 고개를 저었다.

“한번 그런 일을 겪었는데 그런 무모한 짓을 하겠느냐. 넌 참 날 뭘로 보는지 모르겠구나.”

뭘로 보긴.

사고뭉치 대마법사로 보지.

도진은 하고픈 말을 속으로 삼켰다.

“중요한 건 장소가 아닌 환경이다. 이 세계와 분리해서 다른 세계에 있는 것처럼 환경만 만들면 그만이지.”

“…그거 엄청 어려워 보이는데요.”

“어렵겠지. 하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시온은 창의 모습을 하고 잠들어 있는 친구를 보며 말을 이었다.

“떨어져 나가려는 영혼을 붙잡는 정도는 지금도 가능하지.”

공허에 빠진 앤을 구하기 위해 공간과 차원의 마법에 매진했었다.

그것이 지금은 친구의 영혼을 붙잡아 두는 데 쓰인다.

그리고 잦은 헤어짐을 막을 희망이 되기도 했다.

시온은 자신이 마법사임에 감사했다.

“그나저나 몸도 다 나았으니 이만 가 보거라. 신경이 쓰여 집중을 하기 힘들다.”

방금 간다고 인사도 했는데 듣지도 않고서는.

도진은 속으로 툴툴댔다.

“안 그래도 이제 갈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제자라면서 이렇게 쫓아내듯 가라고 하는 게 맞나?

있든 없는 신경도 안 쓰는 것 같더만.

그렇게 생각하는데, 시온이 그렇게 말한 이유가 드러났다.

“너는 여기저기 많이도 들쑤시고 다니는 몸이니 어디서라도 커다란 영혼을 담기에 적합한 것을 발견할 수도 있겠지. 무엇이라도 좋으니, 그럴 것 같은 것을 보면 나한테 가져와 줄 수 있겠느냐?”

부탁이 있었던 것이다.

[퀘스트]

대마법사의 부탁

등급: 히든

[시온 그레이스는 친구의 영혼을 튼튼한 그릇으로 옮기고 싶어 한다.

그 일에 도움이 되는 게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그녀에게 가져가 보도록 하자.]

목표: 영혼 이식에 도움 주기

보상: ???

곧바로 뜨는 퀘스트 창.

도진은 그 퀘스트 창을 보며 시온에게 대답했다.

“제가 뭘 발견하기 전에 해결이 될 거 같은데요.”

“그렇다면 다행이겠지. 어쨌든 이제 가거라. 이제부터 나는 이곳을 앤의 영혼을 안정적으로 창에 붙잡아 둘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는 작업을 해야 하니. 모든 작업이 끝난 후라면 몰라도, 공간을 만드는 중에 휘말리면 핏물 한 줌 남기지 못할지 모른다.”

“…빨리 가야겠네요.”

도진은 시온을 일별했다.

도움이 될 만한 걸 발견하면 바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후우, 일단 나가자마자 8성 마법서부터 구해야지.’

근데 이 시점에 어떻게 8성 마법서를 구하지?

200레벨 넘는 몬스터를 사냥하면서도 8성 마법서는 한 권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시점에 다른 유저들이 얻어서 팔고 있는 8성 마법서 매물을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이었다.

그렇다고 NPC 상점에서 살 수 있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8성 마법서는 각각의 마탑 입장에서도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일종의 전략 물자다.

밖으로 유출하는 게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어서 돈을 많이 낸다고 마음대로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떤 마탑이든 붙잡고서 노예처럼 퀘스트를 해서 기여도를 올려야 제한적 수량을 구매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레벨이 한참 높아지면 구하는 게 쉬워지긴 하지만…….’

무슨 물건이든 적정 레벨에, 다른 이들보다 이른 시기에 구하는 건 어려운 법이다.

하물며 원래 필요할 시기보다 한참 먼저 구하는 건 말할 것도 없-

생각을 이어 가던 도진이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막 손을 저어 자신을 다른 공간으로 보내려는 시온에게 비명을 질렀다.

“잠깐만요! 잠깐만요, 스승님!”

그러자 시온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언제나 차분함이 과했던 도진이 저러니 아무리 시온이라도 놀란 것이다.

“무슨 일이냐? 갑자기 그리 호들갑을 다 떨고.”

도진은 그런 시온을 보며 생각했다.

아니, 내가 왜 이런 걸로 고민했지?

아무래도 너무 갑작스럽게 대어를 낚는 바람에 뇌가 마비된 게 틀림없었다.

마탑? 기여도? 마법서가 귀해?

그게 다 무슨 상관인가.

“스승님, 혹시 8성 마법서 좀 구할 수 있을까요?”

내가 시온 그레이스의 제자인데.

가장 존엄한 마탑의 가장 위대한 대마법사가 내 물주인데.

“8성 마법이라고?”

도진의 부탁에, 시온은 8성 마법이 얼마나 시시한 거였더라? 하는 얼굴로 생각을 좀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런 거라면 만리서고까지 갈 것도 없겠구나. 여기, 이걸 아무한테나 보여 주거라. 그러면 알아서 네가 원하는 마법서를 내줄 테니.”

시온은 시선만으로 허공에 마법 문서를 만들어 냈다.

그것은 반투명한 두루마리가 되어 도진의 손에 안착했다.

“감사합니다. 많이 가져가도 되죠?”

8성 마법서면 아무리 그래도 지금 시점이면 값을 매기기도 힘든 물건이다.

이런 걸 막 가져가려니 전직 빈민 출신 도진의 양심이 살짝 찔렸다.

그래서 허락을 구하고자 이렇게 말했더니.

“괜한 걸 묻는구나. 그깟 마법서쯤. 마음대로 가져가거라.”

마법계의 재벌님께서는 신경 쓰는 기색도 없이 화끈하게 허락해 주셨다.

‘역시 잘 살았어.’

도진은 주강희가 선물한 화려한 명품보다 시온이 주는 마법서가 훨씬 더 소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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