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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은 솔직히 영화관에서 개봉해야 했다, 인정?”
“…….”
“오늘은 내 우주 배경 명작 영화 목록에 하나가 더 추가된 날이다.”
“…….”
“만약 내가 악마에게 영혼을 판다 해도, 도진을 좋아하는 부분만은-”
“그만.”
“남겨둘 것이다아-”
도진의 ‘그만’은 천지현의 폭력을 멈추지 못했다.
그녀의 폭력은 잔인했다.
샐러드를 먹는 도진 맞은편에 앉아서 이번 영상에 달린 주접 댓글을 찾아서 읽고 있었다.
혼자서 보면 피식하고 말 것들이지만, 제3자가 육성으로 읽고 있으니 도진은 오글거림을 참기 힘들었다.
“왜? 다들 엄청 좋아하는데. 지금 역대급 조회 수 대박이라고 난리야, 난리.”
요즘 천지현의 취미는 도진 채널 탐방이었다.
재밌는 주접 댓글들은 캡쳐도 해 놓고.
괜히 시비 거는 것들한테는 서브 계정으로 태클도 걸고.
그런 천지현에게 지난 며칠은 그야말로 최고의 날들이었다.
3시간 10분짜리 본편이 공개된 이후로 채널에 상주하는 주접러들이 물 만난 고기처럼 한껏 날뛰어 대고 있어서 볼 맛이 났다.
“크으, 뭐지, 이 사람? 진짜 주옥같은 댓글만 달았었네. 지금 읽어 줄게.”
보너스라도 입금됐나?
도진이 보기에 오늘의 천지현은 신이 난 정도가 과했다.
‘누나가 기분 좋아하는 건 좋지만…….’
왜 자신 앞에서 이러는 걸까.
본인 앞에서 저런 댓글을 낭독하는 건 법적으로 금지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법은 멀고 천지현은 가까웠다.
“전 세계 모든 언어는 반성을 해야 한다. 도진을 본 인간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어휘를 가진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음음.”
“미친 사람이네.”
저 사람만 미친 게 아니다.
도진이 부탁하고, 자신들은 그 부탁대로 로스타니아를 지키는 데 일조했다는 서사가 녹아 있어 그런지 사람들 반응은 말 그대로 광적이었다.
“근데 이 사람 프로필 사진부터 광기가… 어? 이 사람, 유튜버였어, 도진아. 구독자도 30만이나 되는데?”
혼자서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중얼거리던 천지현이 자신이 보면 화면을 도진에게 쑥 내밀었다.
“도진아, 이것 좀 봐.”
도진은 눈만 힐끗 돌려서 봤다.
“진짜 미친 사람이었네.”
천지현이 보여 준 건 주접 댓글을 단 사람의 유튜브 페이지였다.
프로필 사진이 얼굴을 하얗게 칠하고 오리 분장을 한 본인의 사진이었다.
카테고리는 놀랍게도 뷰티.
“와, 엄청 예쁘시다. 이런 분도 네 팬이구나. 네 팬이니까 나도 구독해야지.”
그래. 누나라도 기분 좋으면 됐지.
도진은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안 바쁠 때라도 이렇게 제대로 먹는 모습을 보여야 걱정을 덜 끼친다.
‘다들 기분 좋아 보이네.’
먹으면서, 도진은 지난 며칠을 떠올렸다.
주변 모두가 기분 좋다고 팡파레를 울리고 샴페인을 터뜨리는 상황이다.
특히 주강희는 바쁜 와중에도 선물을 잔뜩 챙겨 보내기도 했다.
급격히 성장 중인 라엘 엔터와 라엘 그룹 일로 바쁘다고 들었는데.
어쨌든, 그녀가 보낸 선물은 도진은 잘 알지도 못하는 명품 브랜드 시계와 지갑, 의류 등이었다.
현관에 잔뜩 쌓인 상자를 봤을 때는 어안이 벙벙했었다. 제발 주차장에 차 좀 그만 늘리라고 했더니 그걸 다 명품으로 환산해서 보낸 느낌이었다.
거기다 쌓인 명품 사이에는 여성용도 몇 개 있었다.
도진의 눈에는 그저 작은 가방, 중간 가방, 큰 가방으로만 보였던 것들.
「미래의 여자 친구분 선물까지 챙겼어요. 나중에 기념일 선물 고민하지 말라고.」
그것들 사이에는 주강희의 짓궂은 쪽지도 함께 있었다.
여자 친구는 무슨.
도진은 그냥 소, 중, 대 사이즈의 가방들을 주변에 있는 여자 사람들한테 뿌리려 했다.
주변 여자 사람이라고 해 봐야 누가 있겠나.
천지현과 테레사, 김소소가 전부지.
한데 셋 다 반응이 별로였다.
테레사는 준다니까.
「핸드백? 그런 걸 왜 들어? 얼마 들어가지도 않는데. 백팩을 메고 말지. 그런 것보다 사냥 고?」
게임 폐인다운 소리만 했다.
「있어.」
소소는 재벌가 딸내미다운 대답을 돌려줬고.
천지현은 그런 비싼 걸 받을 수는 없다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결국 떠넘기긴 했지만.’
자신은 이미 보너스도 받았고, 실장님이 따로 선물도 챙겨 주셨으니 신경 쓰지 말라는 천지현.
하지만 도진은 그녀에게 강제로 선물을 안겨 줬다.
「누나가 써. 내가 가지고 있으면 가죽 썩을 때까지 상자 밖으로 나올 일도 없어.」
「내가 뭘 한 게 있다고 이런 걸 받아? 미안해서 안 돼.」
한 게 없긴. 옆에서 챙겨 주고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는 게 얼마나 큰 건지 도진은 잘 알았다.
아무도 없는 전생과 지금 살고 있는 삶의 온도 차를 비교할 수 있는 입장이기에.
도진은 ‘우리 사이에 이 정도도 못 줘? 나 섭섭해.’ 스킬로 천지현을 격침시켰다.
그리고 이틀 뒤였나?
천지현이 매우 조심스럽게 받은 선물을 가족한테 다시 선물해도 될지 물었었다.
아마 어머니한테 선물을 하려는 것 같아서, 아버지도 드리라고 제일 비싸 보이는 걸로 더 줬다.
작지 않은 저항이 있었지만, 갑을 관계가 확실한 상황에서 그 정도 저항을 무너뜨리는 건 쉬운 일이었다.
‘음… 그거 때문에 이렇게 신난 건가?’
의식의 흐름을 따라서 기억을 더듬다 보니 천지현이 한껏 신이 난 이유가 뭔지 알 수 있었다.
본인이 선물을 받은 것보다 일터에서 명품까지 선물 받고, 그걸 가족들한테 전달까지 했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회귀한 게임 폐인의 매니저가 되었습니다.’
이거 소설 한 편 뚝딱이겠는데.
실없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 한입을 마무리한 도진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다들 좋아한다. 그러니 자신도 기분이 좋아야 했다.
하지만 도진은 사실 요즘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오늘은 복구가 되면 좋겠는데…….’
이유는, 시온과 연결된 부작용으로 먹통이 된 진리의 서 때문이었다.
“후우.”
“더 먹을래?”
“아니, 많이 먹었어.”
“많이 먹긴. 누가 보면 여자 아이돌 지망생인 줄 알겠어.”
적은 식사량에 투덜대는 천지현을 애써 모른 척하며 도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걱정거리 없이 평온한 현실을 떠나 고민거리가 기다리는 가상현실로 갈 시간이다.
* * *
눈을 뜨자 익숙한 액체가 반겼다.
유리관 너머 시온의 등도 보였다.
“깨어났느냐.”
이젠 무게감을 잡아도 별로 어울리지 않는 스승님의 인사.
도진은 여전히 시온의 물약통 안에 있었다.
계속 여기에 인게임 아바타를 넣어 둔 이유는 이러면 「진리의 서」 복구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였다.
한데 보상 정산도, 진리의 서 복구도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나도 빨리 다른 세계랑 연결된 문이나 찾고 싶은데.’
바깥은 그걸로 난리다.
신지역으로 통하는 문을 찾아서 최초 발견자가 되겠다는 유저들로 로스타니아 전역이 떠들썩하다.
도진도 그 대열에 합류하고 싶었다. ‘문’이 있을 만한 위치 몇 군데는 짐작이 가기도 했고.
하지만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심각해 그러지 못하고 있어 답답했다.
‘이쯤 되면 약탕 목욕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닌 거 같고. 몸이랑 마법회로는 이미 진작에 다 나은 거 같으니 슬슬 다른 방법을 찾긴 해야겠는데…….’
딱히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게 문제다.
‘스승님한테 물어봐도 소용이 없었고.’
너무 답답하여 시온 그레이스에게까지 상의를 하려 했었지만.
세계율의 빛이 그걸 막았다.
‘하긴. 뭔가 개입하지 않았으면 벌써 저쪽에서 먼저 관심을 보였겠지.’
세계를 조율하는 빛은 로스타니아의 존재가 진리의 서에 접근하는 걸 원치 않는 듯했다.
‘클리셰대로 상황이 돌아가면 이거 복구하려면 또 엄청 구르고 굴러야 할 거 같은데…….’
그나마 클리셰대로 흘러가면 다행이다.
현실은 소설보다도 잔혹해서, 고생할 기회도 없을 수 있었다.
이대로 먹통인 채로 유지될 가능성도-
[「진리의 서」 기능 복구 완료.]
[입력된 모든 정보의 처리가 완료되었습니다.]
[입력된 정보 중 현재 처리 불가한 정보의 분류 완료.]
[해석 가능한 정보의 해석 및 활용 방안 검토 및 해당 사항 적용 완료.]
[해석한 정보를 바탕으로 「진리의 서」 최적화 프로세스를 업데이트하였습니다.]
혼자서 머리를 싸매고 끙끙댔던 것이 허망할 만큼 문제의 해결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메시지와 함께 도진의 전신에서 황금빛 물결이 일었다.
그 황금색 빛은 다시 도진의 전신에 퍼져 있는 마법회로로 녹아든다.
[「진리의 서」가 진리에 한없이 가까운 마법적 정수를 손에 넣었습니다.]
[새로운 기능이 해금됩니다.]
[‘속성’에 대한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이미 쌓인 속성에 대한 이해가 적용됩니다.]
[지금껏 이루어진 해석의 결과가 새롭게 입력된 정보와 연동됩니다.]
[「화염구」의 해석률이 최고치에 도달했습니다.]
[완전 해석을 마친 「화염구」의 위력이 상승하며, 마나의 소모가 줄어듭니다. 또한 별도의 시전이 필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속성’에 대한 해석이 가능해지고, 지금껏 쌓인 해석치가 한꺼번에 적용되면서 모든 마법의 해석률이 껑충 뛰었다.
그로 인해 도진이 자주 사용했던 저위계 마법 몇 가지는 해석률이 100퍼센트에 도달하게 됐다.
「화염구」를 시작으로, 엄청난 양의 메시지가 도진의 눈앞을 물들였다.
‘이게 무슨…….’
그걸 본 도진은 눈을 의심했다.
능력치, 레벨, 유물… 이런 게 문제가 아니었다.
이건 클래스의 뿌리가 달라지는 성장이다.
위력과 마나 효율. 이미 높은 상태에서 오르니 이것도 엄청난 성장이 맞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한 변화는 캐스팅이 사라진 것이었다.
캐스팅이 ‘없는 것 같다’와 ‘아예 없다’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는 것이다.
마법사가 숙명처럼 짊어져야 하는 캐스터로서의 한계가 완전히 사라진 것과 같으니 말이다.
그런데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이건 진리의 서가 대마법사와 연결된 상태에서 얻은 정보를 녹여 내면서 이루어진 성장이었고.
[보상 정산이 완료되었습니다!]
[신화적 위업에 어울리는 보상은 「진리의 서」 성장치에 가산됩니다!]
진리의 서가 복구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급하게 보상 정산 완료 메시지가 떴다.
[알림.]
[접근 및 해석이 불가능했던 일부 정보의 잠금이 해제되었습니다.]
더 성장한 후에나 손댈 수 있는 영역의 마법적 이해가 그 속살을 드러냈다.
[특성 「진리의 탐구자」가 생성되었습니다.]
[지금부터 더 높은 경지의 마법을 열람하고 구현할 수 있습니다.]
[진리의 탐구자]
[현재 사용할 수 있는 마법보다 1단계 높은 위계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뭣-
마침내 뜬 마지막 문구를 본 도진은 너무 놀라서 치료용 용액을 삼켜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