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53화 (253/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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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과 통화를 마친 오영식은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

“도진 채널 담당들, 하던 거 그만하고 원본 영상부터 확인해.”

오영식의 말에 콘텐츠팀 팀원들의 분위기가 갈렸다.

맡은 작업의 스케줄이 빡빡해서 이번 작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쉬워했다.

반면 도진 채널 전담이거나 맡은 작업 스케줄이 비교적 여유로워 작업에 참여하기로 되어 있던 팀원들은 죽어 있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아이돌 쇼츠, 웹 예능, 댄스 커버 등 양산 영상을 찍어내는 일벌레에서 한순간이나마 할리우드 영화판에서 일하는 진짜 영상장이가 된 착각을 하게 해 주는 마약.

‘도진’은 그들에게 그런 마약에 가까웠다.

“팀장님, 이번 영상은 예정대로 가는 건가요?”

“일단은 전투 영상 먼저 쳐 내고, 본편은 이어서 가기로 했다.”

“아… 도진 씨 의견이 그러면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아쉽네요. 팀장님 이번에 엄청 준비하셨는데. 아무래도 하이라이트인 전투 장면부터 풀어 버리는 건.”

말한 팀원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표정으로 아쉬움을 드러냈다.

“후우, 어쩌겠어. 크리에이터 의견을 최우선으로. 우리 회사 방침이잖아.”

오영식은 손을 휘휘 저어 분위기를 환기했다.

“일단 원본 영상부터 확인해. 뽑아낼 전투 장면 타임 라인부터 정리하자고.”

자리에 착석한 오영식은 바로 원본 영상 확인에 들어갔다.

도진을 만난 뒤로 오영식은 이 순간이 가장 떨리는 순간이 됐다.

러닝타임 수십 시간짜리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이런 원본 영상을 정주행하는 건 시간상 불가능한 일이다.

오영식은 배속을 3배속으로 올리고, 중요한 장면을 찾기 위해 영상을 앞으로 빠르게 넘기기 시작했다.

‘잠깐, 근데 배경이…….’

우주? 우주라고 보기에는 별도 없이 깜깜한데.

오영식은 자신도 모르게 영상에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부서진 세계의 일부를 도진이 찾아내고, 그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장면에서는 아예 숨도 조심스럽게 쉬는 지경이 됐다.

“허…….”

숨, 한숨, 헛웃음, 감탄사를 흘리게 만드는 장면들이 계속 이어졌다.

‘야, 이…….’

시온과 만난 후에 펼쳐지는 장면들을 보고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런, 미친!”

결국 마지막으로 넘겨서는 육성으로 분노를 터뜨렸다. 억울함이 잔뜩 함유된 분노였다.

비슷한 속도로 원본 영상을 휙휙 빠르게 넘겨 확인한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팀-”

“취소야, 취소!”

오영식 팀장을 부르려던 직원의 목소리는 그보다 큰 팀장의 샤우팅에 묵살됐다.

“이걸 전투 장면만 잘라서 영상으로 만들어 달라고? 이게 말이 돼?”

허공에 묻는 오영식.

“저기 방금 전에 우리 회사는 크리에이터 의견을 제일 우선으로 한다고…….”

“콱, 씨! 장난해? 그것도 어느 정도껏이지. 이건 아니잖아.”

그렇죠, 그렇죠. 고개를 끄덕이는 콘텐츠팀 팀원들.

이 순간 그들은 한마음 한뜻이 되었다.

“궁금해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팬들 생각해서 급하게 영상 만들어 올린다? 좋지. 좋은 마음이지. 근데 좋은 마음으로 하는 행동이 다 옳은 게 아니잖아. 이거, 팬들 입장에서도 폭행 당하는 거야.”

“맞습니다. 이런 원본 소스에서 하이라이트만 다 뽑아서 미리 올려 버린다니. 이거 완전 스포하는 거예요, 스포.”

“도진 씨… 정말 그렇게 안 봤는데 잔인한 사람이었네요.”

“그런데 이미 그렇게 한다고 정한 거 아닌가요? 어떻게 하시게요……?”

팀원들 눈이 오영식에게 모여든다.

약속은 당신이 했으니, 책임도 당신이 지라는 눈빛들.

순식간에 전쟁터로 내몰린 오영식은 비장한 각오를 한 장수의 눈으로 말했다.

“전투 장면, 올리기로 했으니까 올린다. 다만 궁금해 미쳐 버릴 정도로 감질나게. 그런 장면만 뽑아서 1분 안으로 끊는다.”

팀원들이 표정으로 환호했다.

내용을 다 까발리는 건 비통한 일이다.

하지만 궁금해 죽을 정도로 아주 일부만 보여 주며 약 올리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당장 시작한다. 이번 작업 참여자들, 예고편 하나씩 뽑아서 보내. 제일 잘 만든 게 바로 채널에 올라간다.”

“정말요?”

“기준은요?”

“평가 기준은 알려 주셔야죠.”

사악한 의견에 감탄하며 아우성치는 팀원들에게 오영식이 말했다.

“제일 열 받는 영상.”

* * *

“으윽…….”

자다 잠이 깬 도진은 그대로 다시 자려고 했다.

그런데 목이 너무 말라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너무 오래 자서 그런가?

도진은 옆으로 몸을 굴렸다.

푹신한 침대에서 두 바퀴쯤 구르니 테이블에 손이 닿는다.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3시였다.

몇 시간이나 잔 거지? 모르겠다. 시간도 제대로 확인 안 하고 자서.

마지막에 오영식 팀장과 통화를 했으니, 그 시간을 확인하면 대충은 계산이 되겠지만, 비몽사몽 상태인 도진은 거기까지 생각을 뻗지 못했다.

“으으… 물…….”

그저 도진은 물이 마시고 싶었다.

침대 옆 테이블에 있는 생수병을 따서 마시니 약간 정신이 돌아온다.

“음, 엄청 잔 거 같은데.”

물 한 모금에 정신이 맑아지는 걸 보니 꽤나 많이 잔 모양이다.

몸은 아직도 피곤하지만, 이건 젊음으로도 해결 안 될 만큼 무리한 업보라고 봐야겠지.

‘생활 패턴 진짜 레전드네.’

새벽 3시에 눈을 뜨다니.

그런데 또 스마트폰을 잡으니 자연스럽게 유튜브를 켜게 된다.

현대인의 습관이란 게 이렇게 무서운 것이었다.

자신의 채널에 들어간 도진은 새 영상이 업로드 된 걸 확인했다.

역시 빨라.

‘조회 수가 뭐 이렇게…….’

확인하던 도진은 멈칫했다.

영상 재생 시간이 이상해서였다.

왜 영상이 58초밖에 안 되지?

혹시 잘못 올린 건가 싶어 눌러 보니.

공허에 첫발을 들인 자신의 시야가 보였다.

그리고 3인칭으로 멀게 잡히는 화면.

더더 멀어지다, 화면 속 자신이 점으로 사라진다.

낮게 깔리는 음악.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BGM이다.

그러다 음악의 음이 가장 낮아졌을 때-

둥, 하고 화면이 전환됐다.

시온이 쓸어버린 마수들의 시체가 가득 찬 장면을 보여 주고, 1초 단위로 자른 자신의 전투 장면.

그리고 확 전환되어 펼쳐지는 발 아래로 보이는 유리 안에 갇힌 광활한 세계. 파편 조각을 처음 만났을 때의 장면이다.

‘이거 순서가 바뀐 거 아냐?’

그런 생각을 하든 말든 영상을 숨 막히게 장면을 전환했다.

지친 얼굴을 한 도진이 안타까운 시선으로 정면을 본다.

터지는 섬광들. 전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다.

[“찾았다.”]

도진의 대사와 함께- 숨 가쁘게 달리는 시점이 나왔다.

시온이 가슴을 꿰뚫리고.

[“시온 그레이스!”]

외침과 함께 도진이 그녀를 끌어안는다.

파악- 하고 두 사람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깔렸던 음악이 뚝 끊어졌다.

주변에 깔린 광원들. 마법진과 파편, 마법회로 등이 서서히 어두워지며 화면은 완전히 검게 물들었다.

검게 물든 화면에서는 도진의 거친 숨소리만 흘러나왔다.

그렇게 5초가 지난 뒤.

[“지랄 마.”]

지친 한숨이 지나가고.

[“…이 정도로 포기할 거 같았으면 시작도 안 했어.”]

도진의 대사를 마지막으로 영상이 끝났다.

“어… 이게 뭐야?”

내가 주문한 건 이런 게 아니었던 거 같은데…….

팬들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으니, 전투 장면이라도 원본 그대로 빠르게 볼 수 있게 올려 달라고 했었다.

‘이건 대놓고 궁금하라고 칼 들고 협박하는 거잖아.’

장면, 대사, 상황. 그 모든 걸 짜깁기한 실력이 거의 아이돌 지망생들 모아 놓고 악마의 편집을 갈기는 걸로 유명한 오디션 프로그램 뺨칠 정도였다.

“이건 내가 당사자가 아니면 나도 미치겠는데?”

이게 영화 예고편이었으면, 예고편 때문에라도 예매를 하게 만들 힘을 지닌 영상이다.

도대체 왜 자신의 주문과는 완전 정반대에 놓인 영상이 업로드된 건지는 궁금했지만, 이 정도면 불만도 안 생길 정도였다.

1분이 채 안 되는 영상이지만, 영혼을 갈아 넣은 게 보인다. 보는 이로 하여금 궁금증을 갖게 하기 위해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그냥 보였다.

뭐랄까… ‘궁금함에 미쳐 죽어라’ 같은 중2병 대사를 치면서 미친놈처럼 웃고 있는 제작자의 모습이 비친다고 해야 하나.

“댓글 보기 무서운데.”

도진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급하게 댓글창을 봤다.

이쯤 되니 사람들이 무슨 반응을 보일지 도진도 궁금했다.

-……?

-하… 돌았음? 본편 공개일도 안 적은 거 뭔데?

-오늘 깨달았다. 도진 이 새낀 악마다. 반박 시 내가 다 맞다.

-진… 너란 사람… 진짜 못됐다. 지독해. 이런 걸 올려 버리면… 우린 숨을 못 쉬게 되어 버린다구…….

└시발 말투가 왜 이래?

-아니, 그래서 뭔데? 왜 우주에서 싸우는 건데? 균열이 우주랑 연결된 거였어?

-와… 진짜 궁금해 미치겠는데, 그래서 화가 나는데. 그런데 한편으로는 진짜 고맙다. 벌써부터 기대돼서 한동안 이거 기다리느라 행복할 수 있을 거 같아.

-진짜 최고의 선물이다. 우리한테 뒤를 부탁한다고 떠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여 주는 방식이 미쳤어. 우리도 저기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기여했다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뛴다.

-서사 돌았냐고 ㄷㄷ 내가 웬만하면 궁금해 미치겠으니까 당장 영상 내놓으라고 몸에 불이라도 지르고 싶은데… 이번에는 너무 기대돼서 참고 싶다.

-꾹 참고 기다리겠습니다. 역대 최고의 이벤트 피날레가 될 수 있게 최고의 작품으로 만들어 주세요.

-이건 악마나 할 짓이잖아! 이건 악마나 할 짓이잖아! 이건 악마나 할 짓이잖아!

-나 마지막 장면에서 탈출을 못 하겠어. 유치한 대사인데 왜 탈출을 할 수가 없지?

└그건 분위기, 서사, 외모가 모든 걸 했기 때문이지.

└목소리도 잊지 마.

어, 음.

궁금해 죽겠다고 다 드러눕고 나쁜 말로 도배됐을 줄 알았더니.

의외로 사람들은 기대된다며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뭔가 아쉬운데.”

반응이 좋으니 됐다 싶으면서도 약간 아쉬운 건 왜일까.

도진은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영상을 보는 순간 이걸 보고 괴로워할 사람들의 모습을 기대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궁금증을 빨리 풀어 주려 했는데. 악동의 마음은 갈대와도 같았다.

어쨌든 몇몇 사람 빼고는 다들 좋아하니 다행이다.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야 뭐… 응급실 쪽에서 알아서 할 일이고.

도진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생각했다. 알아서들 하겠지.

아, 그 전에. 영상 만들 때 각색은 좀 해 달라고 해야겠지만.

이후, 도진의 주문이 가미된 영상이 만들어져서 채널에 올라갔다.

3시간하고도 10분이 더해진 영상은 웬만한 영화보다도 긴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상을 지겹다 평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진 채널은 한 번도 꺾인 적 없던 성장세와 사라진 적 없는 전성기를 갱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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