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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49화 (249/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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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을 잃고 검은 안개의 형태로 전락한 검은 조각 안의 존재가 스러졌다.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존재를 유지할 마지막 장소가 깨졌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걸 기점으로 세계 포식자 전체의 구조가 분해되기 시작했다.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기도 했고, 최초로 다른 조각과 파편을 끌어당기며 연결고리를 만들기 시작한 구심점이 방금 깨진 검은 조각이었기 때문.

공격으로 인해 일부분이 붕괴될 때와 달리 이번에는 전체가 와해되는 과정이었다.

죽음을 맞이한 거대한 생물이 죽음을 맞이하고, 그 육식이 부패 끝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

공허라는 바다를 떠다니던 유실물의 섬은 최후를 맞이하고 있었다.

[달성 불가능한 위업을 달성하였습니다!]

[로스타니아에 닥칠 신화적 재앙을 막아 냈습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모든 힘을 짜낸 도진은 밀려드는 탈력감 속에서 공허를 부유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가 힘들다.

[연산 능력 초과 사용으로 인해 모든 기능이 일시적으로 마비됩니다.]

찬란한 빛을 내뿜던 진리의 서는 결국 한계를 한참이나 넘어선 탓에 빛을 잃고 잿빛 가루 같은 빛을 남기고 사라졌다.

‘회로도 죽었군.’

마법회로의 상태도 처참했다. 마나 한 점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철저히 망가져서 반응조차 없다.

시온이 빌려 줬던 것들과의 연결도 끊어지기 시작했다.

잠시 빌렸던 힘을 반납할 때가 온 것이다.

툭, 툭, 툭. 가위에 실이 잘리듯 하나하나 연결이 잘려 나가는 동시에 밀랍인형처럼 굳어 있던 품속의 시온이 꿈틀 움직였다.

아, 그러고 보니까 계속 안고 있었지.

워낙 긴박해서 그러고 있던 사실조차 잊고 있던 도진은 쓰게 웃었다.

옅지만, 가슴팍의 작은 사람에게 돌아온 호흡도 느낄 수 있었다.

여유와 시간이 주어지니 육체의 손실을 수복하고 안정화해서 의식을 고정한 모양이다.

“…무사해서 다행이네요.”

“…….”

아직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는 회복이 안 된 모양이다.

하긴 입은 상처가 단순히 육체적 손상만 일으킨 게 아닐 테니 당연한 일이다.

도진은 시온이 회복할 동안 말없이 기다렸다.

사실 그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기도 했고, 무엇보다 본인도 주절주절 떠들 만큼 힘이 넘치지도 않았다.

‘더럽게 예쁘네.’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하얀 유리 같은 파편들은 완전한 소멸 단계에 접어들며 안에 담고 있던 다양한 색채의 빛을 뿌리고 있었다.

깜깜한 밤하늘 같던 공허가 이렇게 반짝거리는 걸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어느 영화였나? 아마도 인터넷을 망령처럼 떠돌다 이런 장면을 본 적 있다.

아주 오래된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이렇게 별로 가득한 우주에서 마지막을 맞이했었다.

‘자세도 비슷하네. 그 주인공은 혼자였고, 이쪽은 짐덩이 하나 있는 거 빼면.’

시온의 체온이 조금씩 따뜻해진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보려 하는 걸 느낀 도진이 힘겹게 물었다.

“친구는… 무사하죠? 나름 신경 써서 중앙 쪽은 빗겨 맞게 쐈는데.”

뭐, 워낙 거대해서 「극광」조차 중앙까지 피해를 주진 못했다.

그러니 무사하겠지.

무엇보다 친구가 털끝만큼이라도 위험할 거 같으면 시온이 알아서 브레이크를 걸었을 거다.

‘그래도 신경 써서 싸웠다고 생색은 좀 내야지.’

이만큼 고생했으면 말이야.

“이번 전투에 영향을 받았을 확률은 거의 없어. 다만… 모르겠구나.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건 아닌지.”

그리 말하는 시온의 시선은 주변에서 소멸하고 있는 것들을 담고 있었다.

혹여 자신의 친우 또한 저런 상태인 건 아닌지를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갈망한 재회였기에, 그 재회가 어떤 모습일지…….

“아무리 긍정적인 가능성을 따져 보려 해도, 마법사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런 공허 차원을 오랜 시간 떠돌다 보면 자연스레…….”

시온은 과하게 잘난 마법사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지식으로 얼마나 계산을 하고, 또 상상을 했겠는가.

공허에 대한 지식은 부족해도, 이와 비슷한 환경이 필멸자의 정신과 영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주 잘 알았다.

그녀의 불안은 근거가 확실한 불안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한 걸음을 남겨두고 불안에 떠는 시온에게 도진이 말했다.

“괜찮을 겁니다.”

“…그걸 어찌 아느냐.”

“처음 만났을 때 말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세계와 세계 사이를 건널 때 목소리를 들었다고요.”

도진은 이번 생에서 시온을 처음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 도진은 시온에게 경계를 넘던 순간 그녀의 동료의 목소리를 들었노라 거짓말을 했었다.

“스승님이 흘려보낸 목소리는 그분한테 닿았습니다. 그게 자신을 자신으로 남아 있게 해 주었다고, 저한테 그랬다니까요?”

거짓말을 하면서도 도진은 찔리지 않았다.

사실 거짓말도 아니다.

이거 다 전생에는 다 풀린 설정이다.

“하지만… 이곳에선 시공간의 개념이 의미가 없어. 너나 나의 경우에는 아직 원래 세계를 떠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로스타니아의 법칙을 적용받고 있지만-”

이대로 뒀다가는 시공간 마법학 전공 수업이라도 할 기세여서 도진은 이렇게 말했다.

“앞뒤 안 가리고 여기까지 달려올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이렇게 망설여요? 스승님답지 않게. 결과가 두려워서 확인 안 할 거 아니잖아요. 그럼 봐야죠. 언제까지 외롭게 둘 거예요?”

친구분도 스승님이 보고 싶을 겁니다. 간절하게요.

도진의 말에 시온이 고개를 돌렸다.

앤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신기했다.

겨우 몇 마디 말일 뿐. 도진의 말이 실질적으로 현실에 미치는 영향은 전혀 없는데.

이상하게 그럴 것만 같다.

타인의 말에 마음이 이만큼 움직였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지?

없었지. 앤을 제외하고는.

“그래. 더 이상 시간을 끌어 외롭게 두어선 안 되겠지. 어떤 모습이더라도… 앤을 더 이상 혼자 둘 수는 없으니.”

시온은 마나를 그러모아 추진력을 만들었다.

멀리서 보면 도진은 보트나 보드처럼 보였고, 시온은 그 위에 엎드려 있는 소녀로 보였다.

그렇게 그들은 마지막 순간을 태워 아름다움을 흘리고 사라지는 세상의 파편들을 지나 세계 포식자의 중심에 접근했다.

“그… 오래 걸릴 거 같으면 저한테 걸어 줬던 마법 좀 다시 걸어 주셔야 할 거 같은데요.”

그런데 시간이 꽤 걸렸다. 남은 시간이 얼마 안 남아 곧 죽을 위기에 처한 도진이 그렇게 말하자.

“참 손이 많이 가는 제자구나.”

시온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도진을 보호할 마법을 사용했다.

“그런데 왜 멈춰 있죠?”

“좀 기다리거라. 널 보호할 마법을 만들어 내느라 이동에 쓰려고 애써 모은 마나를 다 써서 그런 것이니.”

“그 정도로 힘들면 회복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됐다. 그쪽은 알아서 하는 중이니.”

“상태가 안 좋아 보이니까 그렇죠.”

“어허. 넝마 같은 꼴을 하고는 누구보고-”

“넝마라뇨? 다른 마법사들 같았으면 극광 주문 외우다가 증발했을 겁니다. 저 정도 튼튼하니까 살아 있는 거지.”

티격태격하던 도중에 시온이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눈만 보고도 도진은 도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탁.

도진이 그녀를 밀어냈다.

제자와 떨어진 시온은 너무나 익숙한 물건을 향해 다가갔다.

“앤…….”

앤의 창이다.

검은 지겹도록 쓴 거 같다며, 창을 만들어 달라 떼를 썼었다.

못 이기는 척 만들어 줬더니 엄청 좋아했었다.

시온은 앤의 창을 감싸 안았다.

“내가 왔어, 앤.”

창만 있는 게 아니다. 이 안에 앤이 있다.

앤의 영혼이 이 안에 담겨 있었다.

앤의 육체는 빠르게 시드는 꽃과 같았다.

이런 공간에서 오래 버틸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선택을 한 거다.

자신의 육체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을 견딜 수 있는 무구에 자신의 영혼을 담는 선택을.

【시온…?】

잠들어 있던 창, 아니 앤이 익숙한 기척에 깨어났다.

그러나 곧 실망한 투로 중얼거린다.

【환청… 아니, 꿈이구나. 시온이 눈앞에 있을 리가 없잖아.】

그래도 좋네. 오랜만에 목소리도 듣고, 얼굴도 보니까.

은은한 기쁨이 묻어나는 중얼거림에 시온이 눈물을 흘렸다.

“멍청아… 진짜 나야. 네가 버리고 간…….”

너의 시온.

앤의 정신이 더욱 명료해졌다.

아주 가끔 들리던 희미한 환청과 다르다.

그리고 목소리보다도 더 차이가 나는 건 익숙한 마력.

아주 오랜 시간을 함께한 친구에게서 느꼈던 모든 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럴 리가… 시온, 정말이야?】

너무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탓일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

그래서 앤은 말을 않기로 했다.

어떻게나 왜 같은 질문으로 지금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아주 정교한 꿈이나 환상이라면 더더욱 낭비하지 않을 거다.

조금이라도 더 이 착각에 오래 빠져 있고 싶으니.

시온과 앤은 한참을 말없이 서로의 영혼을 확인했다.

“…….”

그리고 시간이 흘러 도진도 그곳을 지나치게 됐다.

시온이 부여한 추진력은 꾸준히 그를 계속 이동시킨 것이다.

도진은 재회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조용히 지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적야」에 비치는 세상이 아주 난폭하게 휘몰아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파편들이 소멸하면서 방출하는 마나가 뒤엉키며 마력의 소용돌이를 생성하려 하고 있다.

“스승님!”

도진의 비명 같은 부름에 시온보다 앤이 화들짝 놀랐다.

【누, 누구세요?】

갑작스런 촌극에 눈물을 흘리던 시온이 눈을 떴다.

“하아… 손이 많이 가는 제자.”

그러고는 주변 상황을 파악하며 도진을 친구에게 소개했다.

도진은 아까부터 ‘손이 많이 가는’이라는 말을 반복하는 시온이 매우 괘씸했으나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좋으니까 빨리 여길 벗어나야 됩니다!”

이딴 마력 소용돌이에 휘말리면 당신들은 몰라도 난 확실히 죽는다고!

【제자라니, 그게 무슨- 아, 아니. 일단 날 잡아!】

앤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당장 눈에 보이는 사람은 구하고 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온과 도진을 구하기 위해 힘을 발휘했다.

창이 빛나며 앤의 영혼이 나타났다. 앤의 영혼은 창을 잡고 투창 자세를 취한 뒤 탄력적인 투창 자세를 취했다.

파앙.

앤은 그대로 창을 던졌다. 투창과 동시에 날아가는 창에 사아악 녹아든 앤은 시온과 도진을 매달고 엄청난 속도로 위험 지역을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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