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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47화 (247/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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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마지막 스테이지 필드를 빠져 나온 도진은 깜빡이며 점멸하는 ‘열쇠’를 인벤토리로 돌려보냈다.

시온이 도진에게 걸어 줬던 마법은 그가 필드 안에서 구르는 사이 소멸했다. 자연히 타이머는 다시 줄어들기 시작했다.

시온 덕에 23시간 후반에 멈춰 있던 제한 시간은, 4개 필드를 거치며 12시간으로 줄어 있었다.

모든 지표가 최악을 가리키고 있다고 봐도 될 상황.

그러나 도진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이 지랄 맞은 난이도에서 이 정도 남겨서 여기까지 왔으면 선방한 거지.’

지금까지 지나온 과정을 생각하면 이곳에 도달한 거 자체가 기적이다.

그것도 운으로 얻은 기적이 아니라 스스로 쌓아 올려 만든 기적.

‘저기에 뭐라도 있겠지.’

후. 짧은 숨으로 피로를 털어 낸 도진이 움직였다.

무수한 마법과 마찬가지로 무수한 조각과 파편이 충돌하며 일어나는 폭발을 눈에 담으며 달렸다.

그냥 보아도 경이로울 광경이지만, 조금 더 세계의 본질에 가까운 층을 볼 수 있는 마안에 비치는 세상은 한층 더 경이롭다.

세계에서 떨어져 나온 크고 작은 조각과 파편들이 드디어 끝을 맞이하며 터져 나오는 단말마들. 난폭하고, 황홀하고, 아름다운 마력의 향연이다.

그것들이 가까워지는 속도는 무서울 정도였다. 거리를 가늠할 시각적 지표가 생기니, 도진은 자신이 정말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고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퀘스트 이동 보정을 받은 엄청난 속도로도 2시간이 넘게 걸릴 만큼 도진이 있던 곳과 격전지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시온 그레이스!”

보인다. 마법의 힘을 빌려 보는 시야에 시온이 들어왔다.

그런데 눈에 들어오는 그녀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직경 수백 미터 크기로 확장해 놓은 마법회로는 너덜너덜하다.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마법을 끊임없이 만들고, 그로 인해 마법회로 일부가 무너지고.

실시간으로 복구가 되고 있지만, 그것도 한계에 다다른 듯 무너지는 부분이 더 많았다.

‘이쪽만 너덜너덜해진 게 아냐. 저쪽도 한계다.’

하지만 피해를 입은 건 시온만이 아니었다.

세계 포식자는 한눈에 보아도 확연히 알 수 있을 만큼 망가져 있었다.

한데 뭉쳐 있던 파편들이 내부에서 폭탄이 터진 짐승의 육편처럼 흩어져 있다.

거기다 그 파편 안에 담겨 있던 것들이 쏟아져 나와 아비규환을 이루었다.

【이제 조금만 더 부수면 되겠구나.】

확장된 회로와 공명하며 울리는 시온의 목소리.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해 커다란 한 방을 준비했다.

앤이 있는 지점은 이미 특정했다.

그곳을 제외한 부분을 베어 내기 위한 사전 작업은 이미 완료했다.

《차원-》

그녀의 마법이 발동되는 순간이었다.

촤아아아악.

세계 포식자의 중심부에서 공허만큼이나 어두운 촉수 수백 가닥이 뻗어 나왔다.

콰과가가각.

“……!”

그것은 막 마법을 발동시키고 있던 시온의 확장된 마법회로와 함께 주변에 띄워 놓은 수많은 마법진을 일제히 관통했다.

‘이런. 저런 게 숨어 있었다고?’

천체의 중심.

최초로 다른 파편을 끌어모으며 덩치를 불리기 시작한 시작점.

그곳에 도사린 괴물이 위기를 느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파편 바깥 공허에서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강대한 괴물.

‘조금만…….’

마법회로를 복구하고, 저것부터 저지해야 한다.

하나 존재를 드러낸 괴물은 그걸 허용치 않았다.

놈도 목숨을 걸고 거는 승부였던 것이다.

파바바박.

박아 넣은 어둠 줄기를 휘둘러 마법회로를 찢어발기는 동시에, 시온의 가슴을 꿰뚫는다.

“스승님!”

가슴을 관통당해 뻣뻣하게 굳어 가는 시온에게 아스라이 도진의 목소리가 닿았다.

‘이건… 가라 했더니, 고집은.’

멀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시온은 걱정이 되었다.

자신이야 여기서 덧없이 부서져 저것의 일부가 된다 해도 상관없었다.

저 안에 있을 앤을 혼자 두는 것보다야 나을 테니.

하지만 고집 센 제자 놈은 걱정이다.

죽어도 살아나는 리제니안이라지만, 여기서는 어떨지…….

‘그러고 보니 앤과 비슷한 면이 있구나.’

아, 그래서였나? 녀석에게 왠지 마음이 갔던 게.

관계를 만드는 게 거부감이 들지 않았던 것도 그래서.

‘잠시 한눈을 판 사이 휙 사라지지 않을-’

시온의 의식이 꺼졌다.

화악 꽃이 피어나듯 그녀에게서 ‘마법’이 뛰쳐나왔다.

그녀의 존재를 구성하고 있던 개념으로서의 마법들은 마법 문자로, 회로로, 마법진으로, 아니면 더 근원적인 형태로 주변을 부유했다.

“당연한 소리 집어치워!”

그 광경과 겹쳐 뜨는 메시지를 도진이 신경질적으로 치웠다.

시온이 쓰러졌고, 저 빌어먹을 하안 덩어리 안에 괴물이 눈을 뜬 건 이미 보고 있다.

문자로 나열해서 띄워 주지 않아도 다 보인단 말이다.

‘지금이다. 지금이 내가 뭔가 해야 하는 순간이야.’

거리는 좁혔다.

도진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극적인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시온은 가슴을 관통당했고, 시온을 그렇게 만든 미증유의 적은 검은 촉수를 이리저리 움직여 떨어져 나간 조각들을 다시 뭉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한 순간일 것이다.

이번 퀘스트의 클라이맥스는 이 지점이다.

도진은 냉철하게 현재 상황을 분석했다.

‘내 마법으로 저걸 어떻게 한다는 건 말도 안 돼. 내가 할 수 있는 유의미한 기여…….’

적한테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러면 남는 건 시온을 보조하는 것.

가슴이 뚫린 채 피 대신 마법을 흘리며 침묵한 그녀를 어떻게?

포션을 먹이나? 개소리다. 그런 걸로 치유가 될 만큼 호락호락한 부상이 아니다.

‘퀘스트인 이상 분명 방법은 있다.’

이미 끝난 건가 하는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그건 끝나기 전에 미리 자신의 손으로 상황을 놓는 거다.

뇌가 익도록 고민하는 도진의 눈에 시온 주위를 부유하는 다양한 마법의 산물들이 들어왔다.

‘잠깐.’

가슴이 뚫리는 장면이 임팩트 있어서 잠시 간과했는데. 시온 입장에서 육체의 손상이 그렇게 큰 문제일까?

인지도 못 한 상황에 머리가 날아가면 모른다. 하지만 심장 정도는 평소 두르고 다니는 마법이 알아서 수복할-

‘마법이다. 마법만 쓸 수 있게 만들면 되는 거였어.’

나름의 해답을 찾은 도진은 달리던 기세 그대로 시온을 끌어안았다.

파악- 하고 그녀가 가슴팍에 부딪친다.

이것밖에 없다. 이 순간 이 장소에서 한없이 미약한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이것 하나다.

자신만 가지고 있고, 마법과 관련되어 있는 아주 큰 변수를 일으킬 가능성을 품은 그것.

《진리의 서》

도진은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부어 진리의 서를 펼쳤다. 진리의 서가 활성화된 도진은 찬란한 황금빛 마력을 발산했다.

‘망가진 회로를 수복해!’

도진의 강한 의지가 지금껏 그래왔듯이 진리의 서를 움직였다.

시온의 회로와 마법의 문자, 부서진 마법진과 진리의 서에서 흘러나온 빛이 뒤섞인다.

[현재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을 아득히 넘어섭니다.]

[연산 불가! 연산 불가! 연산 불가! 연산 불가! 연산 불가!]

눈앞이 붉게 점멸한다.

시스템이, 아니 진리의 서가 보내는 위험 신호다.

[무리한 연산 진행 시 일정 기간 「진리의 서」가 마비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뭐?

지금 대단한 걸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저 어마어마한 재앙 덩어리를 반 이상 해체하는데 자신이 기여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 거대한 사건 속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녔던 자신의 가치는 겨우 나사 하나. 후하게 쳐야 톱니바퀴 하나에 불과했다.

이 한순간을 위해 이 세계는 자신에게 퀘스트를 줬고, 쓰임새는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없어지고 말 것이다.

‘톱니바퀴 한 조각만큼도 쓸모를 증명하지 못할 거면… 부서져야지.’

도진은 더욱 강하게 의지를 품으며 말했다.

“고쳐.”

당장이라도 터질 듯한 압박감이 전신에서 느껴졌다.

안구의 실핏줄이 터져 흰자위가 검붉게 물들었다.

요란한 경고 메시지 알림이 귀를 때린다.

그것마저도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의식이 꺼져 가는 것이다.

‘게임 오버를 당해도 좋으니, 끝까지… 끝까지…….’

그 순간.

도진의 의식이 명료해졌다.

【정말 지독하게 고집 센 제자로구나.】

동시에 들려온 목소리.

시온이었다.

도진은 품에 안은 그녀를 내려다봤다.

한데 여전히 그녀의 육체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밀랍인형처럼 굳은 시온 그레이스는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거기가 아니다.】

다시 한번 목소리를 듣고서야 도진은 소리가 한 방향에서 나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

연한 푸른색으로 빛나는 주변의 다양한 형태의 ‘마법’들이 일제히 말을 하고 있었다.

“저게 회복하게 방치하면 안 됩니다! 여기서 막아야 해요!”

도진이 다급히 외쳤다.

어떤 형태로든 시온의 의식이 깨어났다면 저걸 막는 게 급선무였다.

그것만 생각하며, 그렇게 말했다.

【곤란하구나. 아직 내 스스로 마법을 쓰기에는… 당장 이런 식으로 의식이 각성한 이유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현재 자신이 놓인 상태를 확인하던 시온이 말을 멈췄다.

자신의 회로와 도진이 지닌 무언가가 연결되어 있는 걸 느낀 것이었다.

심지어 그것은 부서진 마법회로를, 아니 마법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착실하게 복구하고 있었다.

문제는, 무의식의 영역에서 자신이 쳐 둔 방벽 때문에 작업 효율이 처참하다는 것.

【신기한 걸 지녔구나. 참으로 너는…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란 말이지.】

그렇게 말한 시온은 의식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방벽을 모두 거두었다.

그뿐 아니라 도진의 「진리의 서」와 연결 효율을 높이기 위해 코드를 다시 정렬하기까지 했다.

【음. 이걸로도 제때에 회복하긴 힘들어 보이는구나.】

가장 중요한 부분. 마법회로에서 마법 발동의 트리거가 될 부분이 너무 심각하게 훼손됐다.

“…방법이 없는 겁니까?”

묻는 도진에게 시온이 대답했다.

【방법은 있지. 내 대신 네가 마법을 쓰면 될 일이 아니냐.】

“예?”

순간 도진은 자신이 잘못 들은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제 마법이 저놈한테 통할 리가 없잖습니까!”

【저놈에게도 통할 마법을 쓰면 되지.】

역정 내기는.

시온은 자신의 마법회로에 대한 통제권을 도진에게 넘기기 시작했다.

처음 해 보는 일이었으나 어렵진 않았다.

이미 연결은 되어 있기도 했고, 마법적, 정신적 방벽도 다 해제해 두었기에.

그것을 도진도 느꼈다.

“스승님? 젠장, 이게 도대체 뭡니까!”

공허를 수놓고 있던 시온 그레이스의 거대한 마법회로가 도진의 색으로 물들어 갔다.

찬란한 황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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