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46화 (246/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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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퍼센트. ‘사실상 영향 없음’입니다…….”

말을 들은 팀장은 ‘시발’ 하고 욕을 내뱉었다.

그러나 크게 실망한 얼굴은 아니었다.

“어차피 시온 그레이스와 합류한 이상 중간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수는 제로에 가까우니 조금 일찍 만났다는 게 긍정적 변수가 되진 않는다는 뜻이겠지. 신경 쓰지 말고 할 일들 해.”

작은 기대를 품긴 했지만, 예상했던 결과였다.

시온과 합류에 성공한 이상 실질적인 위협이 될 만한 건 퀘스트의 최종장을 제외하면 없다고 보면 된다.

그 최종장이 너무 끔찍한 난이도로 설정됐다는 게 문제지만.

‘제발 부탁한다. 진짜 농담이 아니라 여기에 운명이 걸렸단 말이다.’

문자 그대로 지금까지 딴 ‘운명’의 자원을 전부 투입한 프로젝트였다.

따면 도진도, 세계도 많은 걸 얻겠지만, 실패하면 얻은 이득을 모두 반납하는 걸로도 끝나지 않을 거다.

결정이야 위에서 했지만,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입장에서 피가 마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 *

시온과 함께하면서부터 도진은 엄청나게 편했다.

이동도 알아서 해 주고, 전투도 알아서 했다.

미로나 퍼즐 같은 종류의 필드가 나와도 대마법사님께서는 마법으로 모든 걸 해결하셨다.

‘이런 게 무임승차의 맛인가?’

우주를 달리는 초고속 열차의 특등석에 탄 기분.

하지만 몸이 편하다고 마음까지 편해지는 건 아니었다.

LOST라는 게임은 ‘초반에 고생하셨으니 후반은 쉽게 가셔야죠.’ 할 만큼 제정신 박힌 게임이 아니다.

무수한 파편으로 이루어져 있을 세계 포식자가 도대체 어떤 빌어먹을 난관을 펼쳐 놓을지 가늠도 안 되는데 마음이 편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생겼으려나.’

전생에는 로스타니아 안에서 ‘재앙’으로서만 목격했을 뿐이었다.

로스타니아와 그것이 충돌했고, 그 여파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균열이 생겼다.

세계의 일부분이 삭제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균열이 말이다.

‘보면 알겠지.’

시온의 압도적인 마법이 스러지지 못한 여러 세계의 기억을 분쇄하기를 여러 번.

얼마나 지났는지 가늠하기가 조금 헷갈릴 때쯤, 더 이상 아무것도 도진과 시온의 앞을 가로막지 않게 됐다.

아무리 이동해도 새로운 무언가가 보이질 않는다.

‘이제 이다음이 될 확률이 높겠군.’

도진은 본능적으로 이제 곧 최종 페이즈가 시작될 거란 걸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르구나.”

아주 먼 곳을 보는 눈으로 대마법사가 말했다.

그런데 말을 마친 시온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진다.

“왜-”

왜 그러는지 물으려 했으나 시온은 이미 도진의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앤-!”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무언가에서 애타게 찾고 있는 친구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시온의 세포 하나하나가 마법을 구현하기 위해 빛을 내뿜었다. 전신이 마법회로 그 자체인 그녀는, 전력을 다해 공간을 접었다.

순간적으로 아득한 거리를 이동한 도진과 시온.

“허억-!”

갑작스러운 이동에 도진이 멈췄던 호흡을 뱉었다.

그리고 고개를 든 도진은 몸이 굳고 말았다.

‘세계 포식자.’

생김새는 하얀 블랙홀처럼 보였다.

먼지처럼 빛나는 것들 하나하나는 지금까지 보아 왔던 유리 조각들이다.

부서진 세계의 파편 말이다.

블랙홀이 어마어마한 질량과 그로 인해 갖게 된 중력으로 모든 것을 삼키듯.

저것은 파편을 뭉쳐 얻은 나름의 질량과 인력으로 다른 세계를 뜯어 가는 공허 차원의 천체였다.

“스승님, 더 접근하면 안 됩니다!”

도진이 다급히 말했다.

시온이 펼쳐 놓은 결계가 통째로 일그러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수한 파편이 뭉쳐 있다는 건 곧 무수한 필드를 내재한 던전 덩어리라는 뜻.

그것이 지금 근처에 다가온 도진과 시온을 강제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었다.

이대로 대책 없이 저 천체 안으로 끌려 들어가면 클리어 하고 또 클리어 해도 계속해서 새로운 필드와 던전이 열리는 지옥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역시… 데려오는 게 아니었어.”

시온이 도진을 봤다.

그녀의 눈에서 무언가를 읽은 도진은 다급히 만류하려 했다.

하지만 대마법사의 마법은 말보다 빨랐다.

“여기서 네가 할 일은 없다. 가.”

시온은 도진과 자신 사이에 벽을 쳤다.

공간과 공간을 가르는 벽은 아주 거대해서, 도진은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게 됐다.

“스승님!”

도진은 보이지 않는 벽을 두드리며 시온을 불렀다.

그녀는 그런 도진을 일별하고는, 다시 한번 공간을 접었다.

세계 포식자와의 거리를 좁힌 시온은 마법의 눈으로 그것의 전체를 보았다.

“이 안. 깊숙한 곳에 있어.”

방해되는 유리 쓰레기가 너무 많다. 그것 하나하나를 일일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지워 내려 하면 수백 년, 수천 년이 걸려도 모자랄 터.

“앤이 있는 조각을 뺀 모든 걸 부수면 그만이야.”

해서, 시온은 방해되는 모든 걸 부수고 해체하기로 했다.

시온의 마법이 공간과 차원을 가르고 부수기 시작했다.

단단하다. 뭉쳐지는 과정에서 극단적으로 조각 하나하나의 부피가 줄어든 대신 그 단단함은 더해졌기에 부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 어려운 일을 해낼 만큼 시온의 마법은 강력했고, 이는 세계 포식자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조각의 생존 본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곱게 당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냐?”

세계 포식자 여기저기에서 하얀빛으로 이루어진 촉수 같은 게 뻗어 나왔다. 유리 조각을 길게 이어 붙여 만든 그것은 수백 가닥을 우습게 넘기는 숫자를 자랑했다.

착.

수많은 촉수가 일제히 방향을 틀어 시온을 조준했다.

그것을 본 시온은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앤.”

내가 갈게.

그런 시온의 등 뒤로 수백 개의 마법진이 일제히 펼쳐졌다.

* * *

먼 거리에서도 어마어마한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잘 알 수 있었다.

엄청난 크기의 마력 폭발이 1초에도 수십 번씩 일어나고, 그 섬광과 충격파가 시온이 치고 간 결계에 부딪친다.

그뿐인가? 저 먼 곳에 있는 세계 포식자에게서 떨어져 나와 흩어지는 유성과 같은 빛무리도 보였다.

도대체 어떤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젠장!”

도진은 답답함에 다시 한번 자신을 가로막는 벽에 주먹을 날렸다.

더 화가 나는 건 이 벽이 없다 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다는 거였다.

그걸 너무 잘 알아서, 도대체 이 상황에서 뭘 하라고 던져 놓은 거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때, 그런 도진의 마음에 응답이라도 하듯 줄곧 침묵하고 있던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퀘스트 정보 갱신!]

[로스타니아로 접근 중이던 위협 ‘세계 포식자’와 시온 그레이스의 격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대로 싸움이 지속될 경우 시온 그레이스는 필연적인 패배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정해진 미래이며 운명입니다.

운명을 바꿀 변수가 필요한 때입니다.

변수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십시오.]

[※특별 힌트: 잠시 후 결계를 통과할 ‘길’이 생길 예정입니다.]

당연한 소리만 해 대는 메시지.

그러나 마지막 줄은 달랐다.

‘길?’

무슨 길을 말하는 거지? 구멍이라도 뚫리는 건가?

뭐든 상관없다.

길만 열린다면.

파칭-

그렇게 생각한 순간 전방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직후 엄청난 숫자의 파편이 시온이 만든 결계를 두드렸다.

‘세계 포식자의 파편이다.’

그것 중 몇몇 개가 결계를 반쯤 관통하다 멈췄다.

그걸 본 도진은 메시지가 말한 ‘길’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저길 통해서 지나가라는 거야.’

벽에 박힌 유리 조각, 세계의 파편이 지닌 필드를 통해 넘어가라는 거다.

도진은 망설임 없이 벽을 관통한 조각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 * *

“제타, 움직입니다! 빠르게 필드 진입. 바로 몬스터와 교전에 들어갔습니다!”

“보면 알아!”

팀장은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거 같았다.

물을 마셔도 갈증이 해소가 안 된다.

“메시지는?”

“방금 메시지로 정보를 너무 많이 제공했습니다. 이제 한 줄이 한계입니다.”

“제기랄, 그냥 뻔한 소리만 했는데 정보를 너무 많이 제공했다고? 지랄.”

“…….”

“하아… 그래도 한 줄 남은 게 어디야. 그건 마지막 순간에 쓴다. 시뮬레이션 내용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미리 작성해 놔.”

“알겠습니다.”

말을 하는 동안에도 도진은 고군분투를 하고 있었다.

정말 감탄만 나오는 움직임이다.

누가 저걸 마법사라고 생각하나?

“제타! 치명적 대미지에 노출됐습니다. 연속해서 피해를 입는 바람에 3회 사망 판정. 3시간 차감됩니다.”

“시발.”

그런 괴물 같은 도진도 저 모양이라니. 정말 치가 떨리는 난이도다.

‘내가 저기서 굴러야 하는 입장이었으면 그냥 혀 깨물고 죽고 말지.’

“유저 제타, 첫 번째 필드 통과! 이제 3개 필드만 더 통과하면 됩니다!”

그럼에도 도진은 극복하고 있었다.

잠깐 삐끗하고, 잠시 무릎을 꿇을지언정 절대 포기하지 않고.

그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를 골라 가며 기고, 걷고, 뛰었다.

“…….”

“…….”

“…….”

어느 순간 모니터링 룸에 고요가 내려앉았다.

자신들이 내뱉는 말이 의미 없는 브리핑이라는 걸 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도진이 그렇게 만들었다.

[“지랄 마.”]

거칠어진 호흡으로 내뱉는 말.

[“…이 정도로 포기할 거 같았으면 시작도 안 했어.”]

자신을 가로막은 난관과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

도진은 자신을 지켜보는 모두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유저 제타, 아니 도진. 필드 4개 격파로 결계 통과 조건 충족. 메인 스테이지에 진입합니다.”

벽을 넘었다.

벅찬 감정을 억누르며 팀장이 메시지를 담당하고 있는 직원을 바라봤다.

“준비는!”

자기도 모르게 고함을 치듯 묻는 팀장.

한데 직원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예 사색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얼굴로 다급하게 말한다.

“시온 그레이스 탈진 시점 이후를 연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면 저희 쪽에서 힌트를 줄 수가 없습니다!”

운명 계산식이 공략 방법을 도출해 내야 힌트를 줄 수 있다.

그런데 그게 멈춰 버렸다.

“벽을 통과했어도 격전 지점이랑 거리가 있잖아! 그 시간 동안이라도-”

“아예 연산이 멈췄습니다. 안 된다고요!”

팀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만 그런 게 아니었다.

팀원 중 상당수가 눈을 감거나 탄식을 뱉고 있었다.

아예 방법이 없는 거였나? 그래서 멈춰 버린 걸까?

우리는 결국 불가능한 일에 매달리고 있던 거였나.

그런 생각이 퍼져 나갈 때.

“…믿는 수밖에.”

팀장이 말했다.

“마지막 메시지는 정확한 상황을 미리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 그다음에는…….”

지켜보는 수밖에. 그렇게 말하며 팀장은 지쳤지만, 여전히 이글거리는 도진의 눈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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