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44화 (244/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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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 레벨 보정 과정에 들어간 필드는 완전한 정지 상태에 들어갔다.

생성되던 몬스터들이 일시 정지된 화면 속 홀로그램들처럼 멈춰 있다.

그것들을 보며 도진은 확신했다.

‘이건 싸워서 이기라고 만든 건 아니겠군.’

근거는 지평선까지 이어지는 마수의 물결.

난이도 조정이고 레벨 보정이고 따질 것도 없이, 이만한 물량을 감당하는 건 문자 그대로 ‘불가능’이다.

아무리 LOST가 정신 나간 게임이라지만, 이걸 곧이곧대로 다 죽이라고 던져 주진 않을 터.

‘…확신하지 못하는 내가 밉긴 한데. 일단 닥친 난관부터 넘고 보자.’

그럼- 남는 것은 여기서 탈출을 하는 것. 그리고 그 방법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탈출구 찾기다.’

[필드 레벨 조정이 끝나는 순간 필드를 나갈 수 있는 출구가 생성될 예정입니다.]

도진이 나름의 답을 도출한 순간 시스템 메시지가 그걸 긍정했다.

언제는 뜨는 빈도가 뚝 떨어져서 고장이라도 났나 싶더니, 요즘에는 꽤 친절해졌다.

[필드 레벨 조정 완료.]

[다가올 위협에 대비하십시오.]

메시지와 동시에 투명한 섬광이 기둥처럼 치솟았다.

위치는 꽤나 먼 전방.

심적으로는 아득하다는 표현이 나올 법한 거리다.

잠깐 스치듯 나타났다 사라진 빛의 기둥이 아마도 탈출구의 위치일 것이었다.

도진은 더 기다리지 않고 움직였다.

탓.

-그아아아아아!

도진의 발구름과 몬스터들의 음계 낮은 포효가 맞물렸다.

정지된 그림 같았던 마수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투는 최소한으로, 이동에 방해되는 것들만 치운다.

살기 위한 방법을 마음에 새기는 도진에게 짓쳐드는 버팔로를 닮은 마수.

크기가 많이 줄었지만, 그럼에도 오두막이 통째로 달려드는 질량감이 들 정도다.

《얼음벽》

도진은 자신의 발아래에 치솟는 얼음벽을 생성했다.

훅 하고 시점이 높아졌다.

콰앙- 하고 도진이 만든 얼음벽 아랫부분이 박살났다.

간발의 차로 도진이 있던 곳을 마수 몇 마리가 덮친 것이었다.

도진은 충격이 자신에게 전달되기 직전 얼음벽을 박차고 더 높이 도약했다.

그런 뒤 공격 직후 잠시 경직되어 있는 버팔로 마수의 등을 밟고 그대로 직진했다.

-그악!

날파리 같은 도진의 움직임이 짜증이 난 마수가 몸을 비틀며 입과 앞다리를 휘둘러 도진을 공격하려 했다.

“얌전히 있어라, 좀!”

발광하는 마수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뛰어넘는 도진.

그러다 「염동체술」과 개인의 기량만으로 극복하기 힘든 발광에, 도진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러나 이미 대비를 하고 있던 도진은 훅 가까워지는 바닥을 짚으며 몸을 굴렸다.

깔끔한 낙법은 패시브 스킬 없이도 대부분의 충격을 분산하였고, 떨어지던 힘을 앞으로 나아가는 힘으로 바꾸었다.

도진은 이미 봐 두었던 마수의 가랑이 사이로 몸을 빼냈다.

‘이럴 줄 알았어!’

그런 도진을 기다리고 있는 건 막 고개를 든 자신을 내려찍고 있는 마수의 발굽이었다.

원래 시야 확보가 안 된 장소로 나갈 때가 가장 위험한 법이라지만, 꼭 이런 예상은 틀리질 않는다.

도진은 몸을 옆으로 날리며 마수의 안면에 불덩이를 날렸다.

퍼엉- 하는 소리와 쿵- 하는 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일단 피하긴 했는데…….’

살긴 살았다. 그런데 공격이 전혀 통하지를 않는다.

많이 쳐 보면 안다.

상대한테 딜이 들어가는지 안 들어가는지.

움찔하지도 않고 고개를 휙 돌려 다시 공격에 들어가는 걸 보면 타격이 아예 없는 수준이란 뜻.

그때 다시금 발굽 찍기를 위해 몸을 비트는 놈의 가슴팍에서 붉은빛이 보였다. 털에 가려져 있던 마석이었다.

‘혹시?’ 하는 생각을 떠올리지도 않았다. 의심되면 바로 치고 봐야 한다는 걸 아는 도진은 이미 마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티잉-

도진이 마법으로 만든 전격이 붉은 마석에 닿는 순간 맑은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공격을 하던 놈이 뻣뻣하게 굳는다.

‘급소? 아니면 그냥 저길 때리면 잠깐 마비되는 기믹인가?’

의문은 머리로만 품을 뿐 몸은 이미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우우우.

낮은 울음소리를 내며 달려드는 다수의 짐승의 가슴을 노리려 했다.

가슴팍에 있어야 할 붉은 급소가 없다.

‘이건 너무하는 거 아냐? 급소 위치가 다 다르다니!’

완성된 마법을 쏠 타이밍을 놓쳤고, 한 호흡 밀렸다.

퍼억.

그에 대한 대가는 세상이 뒤집어지는 충격이었다.

“커헉-!”

파악, 팍, 퍼억 하고, 물수제비에 사용된 돌멩이처럼 도진이 바닥을 굴렀다.

박치기 한 방에 이 정도 충격이라니. 즉사하지 않은 게 신기할 지경이다.

[공허 차원의 존재에게 생명이 위험한 수준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당신을 보호하는 힘의 일부가 소진됩니다.]

[예상 보호 유지 가능 시간이 1시간만큼 줄어듭니다.]

그냥 산 게 아니구나.

시스템 메시지를 통해 도진은 자신이 살아 있는 이유를 알게 됐다.

‘보호’라는 게 그냥 숨 쉬게 해 주고 이동이 가능하게 해 주는 게 끝이 아닌 모양이다.

‘열쇠에 충전된 힘이 다 소모될 때까지는 죽지 않게 해 준다, 이건가?’

퉷 하고 피를 뱉은 도진은 다시 움직였다.

한 대 거하게 얻어맞고 요단강 물맛까지 보고 나오며 익힌 공략은 간단했다.

피하고, 달리며, 피하지 못할 공격을 감행하는 놈만 급소를 노려 마비시킨다.

제각기 다른 곳에 달린 급소는 극한까지 활성화한 「적야」로 찾으면 그만이다.

쉽다. 알고 보면 정말 쉬운 일-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순간 암전됐다.

‘마석을 뒤에 달고 있으면 어쩌라는 거야!’

황금 같은 제한시간이 1시간 더 줄었다.

깔끔하게 1시간씩 줄어드는 걸 보니, 한 번 죽음이 무마될 때마다 줄어드는 게 1시간인 모양이다.

그때마다 생명력 등 모든 자원은 절반까지 차오르는 거 같고.

지독한 자비로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기회만 된다면 정말 감사의 뜻으로 입에 수류탄이라도 꽂아 주고 싶은 심정.

도진은 다시 달렸다.

만든 놈도 안 죽고 통과 못 할 걸 알고 만든 난이도다.

억지로 몸을 사리는 선택보다는,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하는 대신 빠르게 탈출하는 걸 목표로 하는 게 낫다.

구르고 부서지고 날아가면서 가진 시간의 상당 부분을 더 썼다. 그리고 탈출구가 코앞에 있는 지점까지 도착했다.

“가지가지 하는구나, 미친놈들.”

지면이 뒤집어진다.

그 아래에서 머리 셋 달린 마수가 튀어나왔다.

어차피 곱게 보내 줄 거란 기대도 없었다.

도진은 탈출구 앞을 가로막은 놈을 빠르게 스캔했다.

양쪽 어깨, 명치, 이마.

보이는 족족 광점을 찍는다.

폭발 타이밍은-

-그아아아아아아아아!

콰과가가가가각!

놈의 공격이 지척에 다가오는 순간으로 잡았다.

파아앗.

섬광이 일고, 아주 잠깐 거대한 마수의 몸이 굳었다.

찰나를 뚫고 마수의 육중한 몸통 아래를 지나 탈출구로 몸을 던지는 도진.

그러나 거리가 멀다.

그사이 마수가 움직인다.

노린 급소가 적어서다.

도진이 노린 건 놈의 몸 곳곳에 박힌 15개의 급소 중 일부였던 것이다.

‘피하긴 늦었어!’

도진은 염동력을 방출했다.

순간 가속과 마수의 신경질적인 발굽질이 겹쳤다.

도진보다 세 배는 커다란 발굽이 도진을 짓이겼다.

그러나 닿았다.

[공허 차원의 존재에게 생명이 위험한 수준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당신을 보호하는 힘의 일부가 소진됩니다.]

[예상 보호 유지 가능 시간이 1시간만큼 줄어듭니다.]

[-필드 출구에 도달. 통행 자격 확인 절차가 완료되었습니다.]

[필드가 종료됩니다.]

1시간을 대가로 죽음에서 돌아온 도진은 밭은 숨을 내뱉으며 눈을 떴다.

“…젠장.”

다시 보게 된 어둠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죽음에 이르기에 차고 넘칠 만한 충격을 연속해서 받는 경험은 최악이었다.

차라리 한 번에 깔끔하게 죽는 게 낫지.

반만 마취된 상태로 트럭에 연속으로 치이기라도 한 기분이다.

‘남은 시간은… 47시간이라.’

몇 시간이나 쓴 거지? 계산이 잘 안 된다.

뇌가 너무 심하게, 자주 흔들린 모양이다.

‘일단 가자.’

생각은 나중에. 지금은 추적이 먼저다.

도진은 들어갔다 나오고서야 비로소 다시 눈에 보이기 시작한 시온의 흔적을 따라 이동했다.

* * *

시온과 도진의 술래잡기가 이어졌다.

마수로 가득했던 세상 이후로 시련은 계속해서 찾아왔다.

그것들은 형태도 다양했고, 난이도도 천차만별이었다.

30분짜리, 1시간짜리, 어쩔 때는 5시간 이상.

시온이 먼저 지난 곳을 도진은 가진 시간을 지불하며 지나갔다.

남은 시간이 줄어들수록 도진의 불안은 깊어졌다.

충분히 빠르지 못한 걸까? 이대로 따라잡지도 못하고 타이머의 시간이 0이 되어 버리면 어쩌지? 이런 불안들.

[예상 보호 유지 가능 시간: 23:59:59]

남은 시간이 하루가 채 안 되는 영역에 접어들면서 불안은 극에 달했다.

‘제기랄, 또 필드형인가? 이게 제일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데.’

또 유리 조각이다.

미로나 퍼즐 같은 게 나와 줬으면 좋았을 것을.

하나 어쩌겠나.

닥치면 닥치고 해야 하는 입장이다.

‘죽지만 말자.’

그렇게 생각하며 인력에 몸을 맡겼다.

몸과 함께 세상이 쭈욱 늘어나는 것만 같은 감각과 함께 필드 안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캬오오오오오!

필드에 들어가자마자 눈을 뜬 곳은 땅이 아닌 하늘이었다.

아직도 지상은 까마득하게 멀다.

눈앞에는 거대한 날개 달린 뱀이 아가리를 벌리고 날아오고 있고.

“ㅆ-”

쌍시옷이 절로 나오는 상황에 놀라 마법회로를 활성화해 보지만, 이미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대처를 하기에는 늦었다. 아니, 애초에 대응할 수 없는 상황에 던져진 거라고 봐야 할 것이다.

곧 불합리한 죽음이 찾아올 거고, 피 같은 제한 시간이 줄어들겠지.

‘이런 식으로 시간을 까먹게 만들다니……!’

못 죽여도 장전한 건 쏴야지. 하는 생각으로 도진이 뇌전 줄기 하나를 쏜 순간.

파칭.

공간이 어긋났다. 어긋난 지점은, 도진을 향해 날아가던 용종 몬스터의 몸통 중간 지점.

-크아악…….

놈이 지르던 괴성이 길게 늘어지며 잦아든다.

긴 몸통이 ‘머리 쪽/꼬리 쪽’으로 절단된 탓이었다.

꼬리 쪽은 벽에 막힌 듯 남아 있고, 머리 쪽은 다가오던 기세를 잃고 포물선을 그리며 추락했다.

‘이게 무슨-’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몰라 당황하는 도진 옆으로 뭔가가 나타났다.

그것이 떨어지는 불쌍한 마법사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도진이 고개를 돌렸다.

“스승님!”

노답 대마법사가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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