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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42화 (242/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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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연결 이벤트가 시작될 당시 얻었던 텅 빈 열쇠.

이벤트 기간 내내 차원의 힘을 먹여 가득 채워 놓은 열쇠의 용도를 이제야 알겠다.

[가득 찬 열쇠]

도진은 인벤토리에서 열쇠를 꺼냈다.

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무서울 정도로 투명한 큐브가 도진의 손에서 맑은 광채를 한 번 뿌린다.

그에 반응해 시온의 창(窓)이 있던 지점에 투명한 윤곽이 한 번 나타났다 사라졌다.

열쇠의 소유자에게만 보이는 ‘열 수 있는 문’이다.

[퀘스트]

세상 밖으로 사라진 대마법사

등급: 운명

[대마법사 시온 그레이스가 사라졌다.

차원을 다루는 대마법사의 실종과 동시에 균열 폭주 사태가 일어난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자신이 바라보고 있던 세계 밖으로 사라졌을 그녀를 찾아야 한다.]

목표: 대마법사 시온 그레이스의 행방 추적

보상: ???

※핵심 퀘스트 아이템 「가득 찬 열쇠」는 사용량이 제한되어 있으므로 퀘스트 진행은 1인으로 진행됩니다.

오랜만에 뜨는 제대로 된 퀘스트 창.

내용을 숙지한 도진은 퀘스트 창을 밀어 치웠다.

‘말은 쉽지.’

혼자서 하라니.

누가 보면 잠깐 옆방에 가서 대마법사님 좀 불러오라는 줄 알겠다.

하지만 다른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니, 혼자서라도 감당해야지.

도진은 옅은 한숨을 뱉으며 메신저 기능을 활성화했다.

‘아직 다들 자고 있으려나? 그래도 일어나면 보겠지.’

도진은 아마도 아직 꿈나라에 있을 파티원들에게 메시지를 남기기로 했다.

균열 던전 중에도 외부와 연결이 차단되는 데가 있는데 저 밖은 보나마나지 않나.

「일어나면 알겠지만, 지금 난리가 났거든. 근데 이 난리랑 내가 가진 퀘스트 아이템이랑 연관이 있었나 봐. 가능하면 같이 가려고 했는데, 퀘스트가 1인용이라네. 더럽게 힘들 거 같긴 하지만, 혼자서 어떻게든 해 볼게. 이쪽을 부탁해.」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3명에게 보낸 도진은 7명의 마법사들을 향해 돌아섰다.

눈물을 흘리는 마법사, 공허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마법사, 눈을 꽉 감고 있는 마법사…….

사라진 시온에 대한 마음을 다스리는 노인들이 보인다. 그리고 나머지는 도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자신들은 존재조차 모르던 시온 그레이스의 제자라는 자가 나타났으니 궁금할 만도 했다.

“네가… 아니, 아니지. 당신이 시온 님의 제자라는 게 사실이오?”

결국 그들 중 한 명이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이미 증표도 보았고, 알버트가 확언하기까지 했음에도 바로 현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일단 질문하는 사람이 나오니 다른 이들의 시선도 함께 모였다. 그들 가운데서 알버트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일단 제자는 맞습니다. 스승님이 그렇게 정했거든요.”

정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딱히 배운 건 없는 거 같지만, 명목상으로는 제자가 맞았다.

‘엘토마기아 프리패스권 선물하는 느낌으로 등록해 놓은 게 아닌가 싶긴 하지만.’

그런 거치고는 받은 호의가 상당한 거 같긴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도진에게 자색위 마법사들이 질문을 쏟아내려 했다.

그에 앞서, 도진이 먼저 선수를 쳤다.

“왜 절 제자로 받아들였는지는 모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시온 그레이스다.

종잡을 수가 있어야지.

그러면 결국 답은 하나다.

“스승님께 직접 물어보는 게 확실하지 않을까요?”

도진의 말에 7명의 노마법사들이 눈을 크게 떴다.

“그게 지금 무슨 말인가?”

“저 밖으로 나가신 분이잖나. 방법이 있단 말인가?”

“우리가 조사해 본 바 밖으로 통하는 길은 시온 님께서 직접 닫으신 걸로 보입니다. 시온 님 스스로 돌아오시지 않는 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시온 님이시니 경계에 길을 터놓고도 안정화시킬 수 있으셨던 거지, 우리같이 어설픈 자들이 구멍을 뚫었다가는…….”

말투, 표정, 태도 모두가 제각각인 마법사들의 말.

그러나 의견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로 통일됐다.

줄곧 침묵을 지키는 과묵한 자도 마찬가지.

도진은 그런 그들을 납득시키고자 하지 않았다.

‘설명할 시간도 아깝거든.’

지금도 실시간으로 세계는 균열에 신음하고 있다.

시간이 더 흐르면 그런 피해는 우스울 정도의 대재앙이 찾아올 거고.

지금은 시간이 그 무엇보다 소중한 순간이었다.

도진은 인벤토리를 확인했다.

평소보다 지닌 게 많지 않다.

사냥이 끝난 직후에 로그아웃을 한 탓이다.

‘그래도 충분해.’

소모품을 워낙 넉넉히 챙겨 다녔기에 부족하지 않은 만큼은 들고 있다.

그럼 이쪽은 됐고.

바로 출발-

‘그 전에 하나만 더.’

도진은 인게임 인터페이스를 조작해 로트라넷에 접속했다.

채널로 가진 않은 이유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게 있어서였다.

“됐어.”

로트라넷에 글을 올리는 것으로, 당장 떠오르는 일들을 끝낸 도진은 다시금 몸을 돌렸다.

자색위 마법사들이 질문을 해 왔지만 무시했다.

“제가 데려오겠습니다.”

불가능을 말하는 자들에게 더 할 말은 없다.

“…방법이 있는 겁니까? 그렇다면 저도-”

이미 도진을 시온 그레이스의 제자로 받아들이고 있던 알버트만이 그렇게 말했으나.

“죄송하지만, 1인승이라서요.”

좀 많이 데려갈 수 있으면 나도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하며 도진은 손을 뻗었다.

손에 들린 투명한 큐브가 시온이 바깥을 보던 창이자 뛰쳐나갈 때 쓴 문이 있던 자리를 통과했다.

그러자 도진 앞 공간이 수백 개의 투명한 큐브 조각들로 쪼개졌다. 그것들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지고 경계가 열렸다.

“허억-”

“이게 무슨……!”

“이렇게 갑자기 열어 버리면-”

노마법사들은 반사적으로 가까이 다가가려 했다.

그러나 어떠한 격벽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경고: 통과 자격이 없는 존재의 접근이 제한된 공간입니다.]

이걸 왜 나한테 띄워? 저 밖에 있는 사람들한테 보여 줘야지.

도진은 경악한 눈을 한 마법사들을 보았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모든 게 차단됐다.

그럼에도 도진은 이렇게 말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알버트와 눈을 마주치고서.

도진이 세계 밖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로스타니아에서 그의 흔적이 지워졌다.

* * *

균열 폭주 사태로 함께 폭주하고 있는 로트라넷.

[차라리 사냥을 안 하는 게 나은 이유.txt]

[뫼비우스가 병신 새끼들이라고 생각하면 개추]

[ㅎㅎ 뫼비우스 직원들 집에다가도 구멍 뚫어 주고 싶네]

[이 새끼들은 적당히라는 걸 모르나?]

실시간으로 휙휙 바뀌는 인기 게시글 목록은 뭐가 올라오든 다 부정적인 것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다른 게시글을 전부 밀어내며 순위가 급상승하는 글이 생겨났다.

[도진입니다.]

도진이 로스타니아를 떠나기 전 남긴 글이었다.

[운 좋게 균열 폭주 사태에 관련된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지금 그걸 해결하러 가려고 하는 중인데 로스타니아가 계속 걱정되더라고요.

이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차원 연결 이벤트 직후 시작된 균열 폭주 사태는 우연이 아닙니다.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로스타니아가 균열에 유린당하는 걸 최대한 억제해야 합니다.

본인의 능력이 닿은 한도 내에서, 안전한 지역만을 사수해도 좋습니다.

최대한 많은 균열을 닫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믿고 다녀오겠습니다.]

-뭐야? 월드급 사건 터질 전조 같은 거였어?

-근데 이번에도 도진이야?

└당연한 거 아님? 제일 선두에서 메인 스트림 따라서 퀘스트 진행하고 있을 텐데.

└선점 효과 지리네;

-하… 괜히 피 보느니 몸 사리려고 했는데 이 글 보니까 뽕 차오르네.

-내 예상대로면 진짜 엄청나게 크거나 강한 메인 균열 닫으러 들어가는 거 같네. 저번에 탄토 갇혔을 때처럼 외부랑 차단될 거 같으니까 글 미리 남긴 듯?

└나도 이 의견에 한 표. 원래 규모 큰 균열 주변으로 작은 균열 생길 확률 올라가잖아. 아주 큰 초대형 균열이 이번 사태 원인이면 상황 설명이 완벽함.

-그런 던전이면 진짜 위험할 텐데. 거기 들어가기 전에 바깥 걱정돼서 이런 말 남기고 간 거야? 간지 돌았네 ㄷㄷ

└억빠 역겹네 ㅋㅋ 다 이미지 메이킹이지

└이미지 메이킹은 ㅋㅋ 팬들이 하도 매달려서 방송도 켜 주고 하는 거지 기본적으로 도진은 처음부터 영상 올리는 거 말고 다른 부분은 노출을 꺼려 했었음.

-근데 겨우 게임인데 저렇게 비장할 거 있나? ㅋㅋ 솔직히 게임 중독증 환자 같음

└게임 중독증 환자 ㅇㅈㄹ하고 있네 ㅋㅋ 도진이 1년에 버는 돈이 얼만데

└얼마임?

└나도 모르지 근데 존나 많은 건 앎

-윗댓 진짜 요즘도 게임 중독 타령하는 애들이 있네. 진지하게 가상현실이나 그 안에 있는 가상인물이 더 인간다워진 세상 아님? 그런데 어떻게 몰입을 안 하냐. 오히려 그걸 비웃는 걸 보니 현실 세상이 왜 이만큼이나 각박해졌는지 잘 알겠다.

-다른 의미 찾지 마. 처음부터 지켜본 사람들은 잘 알걸? 도진은 정말 NPC, 아니 사람들이 죽고, 그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망가지는 게 싫어서 쓴 거야. 그런 사람임.

도진의 팬이 대다수인 채널과 달리 로트라넷에는 훨씬 더 다양한 의견을 지닌 사람들이 상주했다.

그럼에도 도진이 쓴 글은 하나의 흐름을 만들었다.

-난 뫼비우스는 진짜 죽탱이 마렵거든? 근데 LOST는 좋아. 로스타니아도 좋음. NPC 친구들도 있고. 생각해 보니까 내가 이 세계를 지킬 이유가 넘치더라. 난 간다. 죽든 말든 이번 사태 진정될 때까지 계속 싸울 거야.

-사망 페널티가 별거냐? 난 뒤져도 살아나는데 모험가 길드 창구 눈나는 죽으면 끝이잖아. 뒤져도 내가 죽는 게 낫지. 퀘스트 완료하러 갈 때마다 웃어 주던 그 눈나 죽는 꼴은 못 본다.

-죽는 게 너무 싫으면 자기 레벨보다 훨씬 낮은 지역이라도 가서 균열 닫자. 우리 놀이터 우리가 지켜야지 누가 지키냐.

사망 페널티를 감수하느니 게임 자체를 하지 않겠다며 뫼비우스를 규탄하던 유저들이 로스타니아를 지키겠다며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유저들이 나서니 여론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스트리머들이나 대형 길드들도 따라서 움직였다.

성장이나 보상을 위해서가 아닌 ‘지키기’ 위한 싸움의 시작이었다.

* * *

[경계를 넘어 차원 틈새에 존재하는 공허 차원에 진입했습니다.]

[「가득 찬 열쇠」의 힘이 당신을 공허로부터 보호합니다.]

[충전량이 모두 소모되면 위험에 노출될 것입니다.]

[예상 보호 유지 가능 시간: 71:59:52]

[※주의: 충전량 소모를 최소화하십시오.]

[※주의: 공허 차원에서 접속을 종료하면 모든 충전량이 소모됩니다.]

공허는 우주와 닮아 있었다.

별이 희박한 아주 어두운 우주.

‘시간이 없어서 일단 들어오긴 했는데… 이제 어떡한다.’

망망대해에 떠 있어도 막막할 것을.

우주도 아닌 텅텅 비어 있는 공허에서 어떻게 시온을 찾아야 하나.

고민하며 어두운 공간을 둘러보는데, 그런 도진의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마법의 흔적이다.’

익숙한 빛깔의 마력이 발자국처럼 남아 있다.

「적야」의 활성도를 올리니 더욱 선명히 보인다.

공허 차원의 간섭을 차단하며 움직이면서 남긴 마법의 흔적.

그렇다 보니 남은 마법의 잔향마저 공허 차원의 힘에 휩쓸리지 않고 그대로 남은 것이었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 이거라도 따라가 보는 수밖에.’

이것저것 고민할 여유는 없었다.

지금도 타이머는 착실히 남은 시간을 지워 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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