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41화 (241/271)

‘이건 할리갈리가 아니야…….’241

-어떻게 된 거야? 이벤트 끝난 거 아니었어?

-내가 있던 사냥터에 균열만 3개가 생겼어!

-균열이 문제가 아니에요. 여기는 지금 균열 던전이었던 자리에 검은 구멍이 뚫렸다니까요?

-검은 구멍 조심해라; 균열 안에서 괜히 저기 빠지면 그대로 즉사임.

차원 연결 이벤트가 종료되자마자 균열의 폭주가 시작됐다.

유례없는 숫자의 균열이 발생하고, 그곳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차원 침식의 속도였다.

환경을 바꾸는 성질의 균열은 물론이고, 로스타니아를 뜯어내 공허 저편으로 집어삼켜지게끔 만드는 속도도 엄청나게 빨랐다.

-뫼비우스 미친놈들이 또 뇌절하네;

-좋게 좋게 이벤트 끝내면 될걸, 뭘 꾸미는 거야?

-뭐가 됐든 지금 사냥터 근처로 가면 개죽음이잖아.

-에휴. 그냥 공지 올라올 때까지 사려야지. 한동안 뒤지게 달렸으니 그냥 며칠 쉬련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균열을 피해 살아남는 난이도가 오히려 차원 연결 이벤트가 진행될 때보다 올라가자 유저들은 몸을 사리는 선택을 했다.

그렇게 되자 생성된 균열은 방치되는 꼴이 됐고, 그것들은 순식간에 안정화를 거처 로스타니아를 자기들 입맛대로 바꿔 갔다.

환경과 마나의 성질이 바뀌고, 서식하는 몬스터가 바뀌고, 검은 구멍이 뻥 뚫리고 그곳에서 몬스터들이 기어 나오는 장소가 됐다.

-이거 정도가 심해도 너무 심한데? 버그 아님?

-이러다 로스타니아 다 망한다, 이놈들아!

-팩트: 진짜 망하게 생겼음.

균열이 빠르게 세계에 완전히 동화되니 그 안에서만 있어야 할 몬스터가 밖으로 뛰쳐나와 돌아다녔다.

이렇다 보니 유저뿐만 아니라 로스타니아의 주민들도 실질적인 위협에 노출됐다.

어떤 지부든 모험가 길드 게시판에는 균열 관련 의뢰가 도배됐다.

특별 보너스가 덕지덕지 붙은 퀘스트들.

그러나 그걸 수주하는 유저는 드물었다.

아무리 평소보다 많은 보상을 준다 해도 짊어져야 하는 리스크가 그것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었다.

이 모든 일이 도진이 잠든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 * *

내리 14시간을 잔 도진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 즉시 천지현에게 붙잡혀서 식탁 앞에 앉아 혼이 나고 있었다.

말로 혼이 나는 건 아니었다.

“마셔.”

도진은 식후 녹즙으로 혼나고 있었다.

장장 28일이 넘도록 에너지팩으로만 연명한 도진을 천지현은 엄청나게 걱정했고, 그 복수를 이렇게 하는 것이었다.

도진은 지금도 기포가 퐁퐁 올라오는 녹즙을 바라봤다. 걸쭉하고 초록색이다. 보라색도 조금 섞인 거 같다.

평소에 마시던 거보다 훨씬 심각하게 몸에 좋아 보였다.

“우리 소속 연예인들 관리해 주시는 의사 선생님한테 여쭤보고 업그레이드 좀 했어. 요즘 ‘에너지팩만 꽂고 살다 건강 망가진 환자’들한테 부족한 영양소를 채워 줄 수 있는 드링크래.”

말속에 뼈가 있었다.

생글생글 웃는 천지현을 보며 한숨을 쉰 도진은 녹즙을 들고 꿀꺽꿀꺽 삼켰다.

끔찍했다.

평소 챙겨 먹던 건 과일도 섞였었는데, 이건 채소만 넣고 간 모양이다. 거기다 샐러리 비중이 높아서 채소가 아니라 화학약품을 마시는 거 같은 느낌도 들었다.

“…조선 시대에 사약이 이런 맛이었을 거 같아.”

겨우 녹즙을 다 마신 도진이 우울하게 중얼댔다.

그걸 본 천지현이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원래 입에 쓴 게 건강에 좋은 법이야. 앞으로도 에너지팩만 꽂고 살아. 더 맛있는 걸 만들어 줄 테니까.”

“이거보다 더 맛있게? 그거 범죄야, 누나.”

그래, 범죄다. 방금 녹즙은 인터폴 적색수배를 당해도 할 말 없는 범죄의 산물이었다.

“자.”

툴툴대는 도진에게 천지현이 뭔가를 내밀었다.

받아 보니 알사탕이었다.

“…….”

잠시 그걸 보던 도진은 조용히 사탕을 입에 넣었다.

어이가 없긴 한데 이거라도 먹어야 할 만큼 썼다.

그걸 본 천지현은 자신도 어이가 없는지 풋 하고 웃었다.

“아으, 그래도 젊은 게 좋다. 이렇게 강행군을 했는데도 하루 푹 자니까 개운하네.”

도진이 기지개를 켜며 하는 말에 천지현이 이상한 눈으로 말했다.

“말하는 거만 보면 뭐 마흔 넘은 아저씬 줄 알겠다.”

“마흔까지는 아니고.”

대충 답하며, 도진은 스마트폰을 들고 습관처럼 로트라넷에 접속했다.

“뭐야?”

그리고 난리가 난 상황을 보았다.

도진의 눈이 심각해졌다.

빠르게 게시판을 살피고, 올라온 영상들을 확인했다.

균열이 완전히 세계에 동화되어서 밖으로 뛰쳐나온 몬스터들, 검게 뚫려 버린 균열이 있던 자리, 같은 장소에 동시에 2개의 균열이 발생하며 합쳐지는 현상 등.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일을 유저들이 찍어 올린 영상들이 한가득이었다.

“왜 그래?”

도진의 심각한 표정을 본 천지현이 걱정하는 투로 물었다.

“아, 별거 아냐.”

이건 별일이다.

차원 연결 이벤트가 종료됐는데 오히려 균열 현상이 더 심해지다니.

‘라베스의 빛이 강해졌나? 그런 말은 없는데.’

이건 꼭 차원 연결과 비슷한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된 후에나 볼 법한 광경이었다.

도진은 기억을 뒤졌다.

균열, 차원과 관련된 키워드는 모조리 끄집어냈다.

‘균열 현상이 이 정도까지 갑자기 심해졌던 시기… 그때 무슨 일이 있었지?’

지금은 아니다.

애초에 차원 연결 같은 이벤트가 진행될 시간대도 아니니까.

미래. 그것도 가깝지 않은 미래까지 더듬어야 했다.

‘시온……?’

로스타니아가 본격적으로 외부 차원의 존재들에게 위협을 받기 시작한 시점.

그 계기가 된 사건은, 시온 그레이스가 일으켰던 ‘차원 경계 붕괴’다.

하지만 이 사건은…….

‘설마 아니겠지.’

도진은 급히 캡슐로 향했다.

그걸 본 천지현이 깜짝 놀라 따라왔다.

“도진이 너 벌써 게임하려고?”

그런 그녀를 돌아보며 도진이 말했다.

“미안. 급히 확인해야 할 게 있어.”

말리려던 천지현은 도진의 표정을 보고는 한 걸음 물러났다.

미안. 그녀에게 그렇게 말한 도진은 LOST에 접속했다.

그런 뒤 도진이 향한 곳은 당연히 시온이 있는 엘토마기아 본탑이었다.

‘달라.’

도진은 마탑을 보자마자 느꼈다. 평소와 다르다.

높게 솟은 탑을 감싼 신비의 절반 이상이 증발한 것 같다.

거기다 엘토마기아는 외부로부터의 출입을 완전히 막아 둔 상태였다.

사달이 나도 제대로 났다는 뜻이다.

입구 없는 탑은 시온이 준 엘토마기아의 증표를 지닌 도진의 출입을 막지 않았다.

로비에 있던 마법사가 도진을 보고 놀라 몸을 벌떡 일으켰다.

“출입이 막혀 있을 텐데 어떻게!”

탑에만 사는 마법사는 정말 무방비했다.

도진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자신이 직접 단말에 증표를 찍었다.

그러자 엘토마기아에 저장된 도진의 정보가 화려하게 떠올랐다.

“어억, 어?”

어설프게 대항하려던 로비 지킴이는 허공에 뜬 걸 보고는 기겁을 했다.

도진의 얼굴과 그 옆으로 떠 있는 시온 그레이스의 문장.

그리고 ‘제자’라는 글자가 주는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포탈 좀 쓰겠습니다.”

“자, 잠깐, 제가 안내해야 됩니다! 어디 가시는데요?”

“최상층.”

마법사는 뇌가 타는 거 같았다.

“그, 그 마법진으로는 거긴 못 가요!”

도진이 뱉은 건 대답이 아니었다.

시온 그레이스의 증표를 들고 탑에게 의지를 전달한 거지.

로비에서 도진의 모습이 사라졌다.

엘토마기아를 보호하는 수많은 수단들은 탑주의 제자를 건드리지 않았다.

이윽고 도진은 시온의 공간에 도착했다.

“허억?”

“웬놈이냐!”

“아니, 어떻게 여기가 뚫려!”

그곳에는 이미 사람들이 있었다.

엘토마기아의 자색위 7명이 모여 있었던 것.

그들은 갑자기 나타난 인물을 보고는 놀라며 마법을 쓰려 했다.

하지만 대마법사의 공간은 대마법사 본인을 제외한 자의 마법 행사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잊고 마법을 쓰려 한 노인은 셋이었다.

그들은 빠짐없이 마법회로가 타들어 가는 통증에 신음을 흘렸다.

“잠깐!”

그 혼란을 잠재운 건 알버트 그레이스였다.

그는 이미 도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시온 님의 제자이시다.”

알버트의 폭탄 발언에 노인 여섯이 동시에 굳었다.

“…뭐라고?”

목소리를 낸 건 한 명뿐이었다.

나머지는 말도 잊고 눈빛으로만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드디어 저 새끼가 노망이 났구나 하는 눈빛이었다.

“갑자기 들이닥쳐서 죄송합니다. 확인해야 할 게 있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도진은 놀란 사람들에게 자신의 증표를 내보였다.

그걸 알아보지 못할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알버트를 제외한 여섯의 눈빛이 이번에는 ‘저게 왜 저기에?’ 하는 말을 담아냈다.

“비밀로 하신 모양이군요.”

“물론입니다. 그분께서 먼저 밝히지 않으시는 걸 제가 먼저 떠들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도진은 알버트 뒤편을 봤다.

시온이 서 있어야 할 공간은 텅 비어 있었다.

아무것도 없다.

그녀가 경계 밖을 바라보기 위해 만들어 두었던 창(窓) 또한 사라져 있었다.

“…확인할 것이 있어 왔는데 제 생각보다 더 나쁜 상황이군요.”

도진의 말에 알버트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역시 시온 님께서 사라진 걸 알고 계시는군요. 혹시 어디로 가셨는지 아는 바가 있으십니까?”

엘토마기아 본탑은 언제나 시온의 신비로 보호받고 있었다.

한데 그게 사라졌다.

엘토마기아의 일곱 마스터가 무단으로 시온의 공간에 들어온 건 그런 이유였다.

아니,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라고 하는 게 옳은 표현일 것이다.

시온이 이곳에 멀쩡히 있었다면 그녀의 허락 없이 이곳에 들어설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혹시 언질이 있었다면…….”

“미리 들은 바는 없지만, 짐작가는 바는 있습니다.”

도진의 시선은 여전히 뒤쪽에 머물러 있었다.

알버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들도 예상하긴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길 바랐을 뿐이다.

“결국…….”

시온 님께서는 세계 밖으로 나가신 건가.

엘토마기아도, 자신들도 그녀를 붙잡아 두기에는 너무나 가벼운 닻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저 아이의 존재가 더 반가웠었다.

질투보다 안도가 컸던 건 저 아이가 그녀의 새로운 닻이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건 헛된 바람이 되었다.

‘결국 이 세계에 남을 모든 것보다… 세상 바깥을 떠도는 하나가 더 무거우셨던 겁니까.’

도진이 알버트 옆을 스쳐 지나갔다.

다른 이들이 반사적으로 막으려 했으나 그들을 알버트가 제지했다.

시온이 섰던 자리에 선 도진은 생각했다.

‘일이 너무 복잡하게 꼬였어.’

전생과 전개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전생에 시온은 이곳을 떠나지 않았었다.

자신과 이 탑을 고정대로 삼아 이쪽으로 끌어당기려 했지.

한데 지금 시온 그레이스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럼 이후로 일어날 일은 일어지나 않는 걸까?

그럴 리가. 그러면 지금 로스타니아가 균열 현상에 신음할 일도 없다.

곧 닥칠 것이다. 시온이 경계 저편의 공허에서 발견하고, 강하게 끌어당긴 그것이.

‘…시온, 아니 스승님을 빨리 찾아야 돼.’

세계 밖으로 나간 그녀를 어떻게 찾을지가 문제였으나 도진은 자신이 그 답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다.

미식축구를 연상시키는 손의 격돌 게임.

우린 누구의 손이 얼마나 튼튼한지를 시험받고 있었다.

이어진 게임.

사기가 한풀 꺾인 일행은 게임에 집중하지 못했고, 불도저 같은 데카르의 독주 또한 막아 내지 못했다.

그렇게 우린 패배했다.

“아쉬워. 빠르기론 너희도 괜찮았는데.”

구경하던 오스카가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패배자인 우리에겐 비웃음으로 느껴졌다.

“패배에는 대가가 따라야 하는 법!”

데카르는 우리에게 육중한 흑색 팔찌 한쌍을 채워 줬다.

“이건 패자의 팔찌다.”

한 손에 10킬로 정도.

그리 부담 오는 무게는 아니었지만, 100일 동안 벗을 수 없어 마냥 가볍게 볼 수만도 없었다.

거기다 앞으로 이어질 게임으로 무게의 추가 계속 더해진다면…….

‘설마 1톤을 채우진 않겠지?’

밖이라면 모를까.

마력이 봉인되고 중력도 괴이한 이곳에서 추를 더했다간 압사당할지도 몰랐다.

귀인과의 내기 게임을 끝으로 오늘의 일정이 끝나며 자유 시간을 갖게 됐다.

오늘 하루 귀력전에서 먹은 거라곤 물 반 컵뿐.

나무를 치며 혹사한 신체.

다람쥐에게 당한 상처들.

내기에서 깨져 나간 손.

이를 회복하려면 충분한 영양 섭취가 동반돼야 하는데…….

영양실조 상태의 우리에게 초록 죽을 내미는 오스카.

“먹어. 몸에 좋은 거야.”

비릿한 냄새.

매우 익숙한 상황.

동료들이 하나씩 죽을 삼키곤 몸을 비틀었고, 빠르게 회복되는 걸 보며 이 죽이 매우 뛰어난 영약이란 걸 깨닫는 나.

데자뷔를 느끼며 죽을 마신 나는 전날의 충격적인 맛의 기억을 떠올리며 의식을 잃었다.

진득한 액체가 담긴 관짝에서 눈을 떴다.

‘기억이 끊겼어.’

전날 게임이 끝나고, 오스카가 무언가 가져오는 것까지는 기억이 났는데…….

‘군체와의 연결이 끊겨 오는 부작용인가?’

동료들이 하나둘 깨어났을 무렵, 데카르가 찾아와 우릴 1단계 사냥터로 데려갔다.

우는 철목을 치며 미비하지만, 전날보다 강해졌다는 걸 느꼈다.

“죽는다냥.”

그렇다 해도 디아, 타르, 크라스는 자신이 마실 정도의 물을 확보하진 못했다.

동료들의 나눔으로 목을 축인 셋.

오후가 되며 족쇄를 차곤 근육 다람쥐 사냥에 나섰다.

이번에는 무모하게 다람쥐를 쫓지 않았다.

다람쥐가 오가는 지점에 자리를 잡고서 그들의 습격에 대응하여 목숨을 취했다.

“놈의 동료가 몰려올지도 몰라. 이동하자!”

놈들이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서식지 외곽에서 돌려 깎기를 펼쳤다.

그렇게 겨우 세 마리를 잡으니, 숲을 비추던 마광석의 빛이 옅어지며 밤이 왔음을 알려 왔다.

‘오거 사냥보다 힘들군.’

두 귀인을 처음 만났던 공터, 별칭 태초의 공터.

우린 다람쥐 세 마리를 어떻게 나눌지 의견을 나눌 때, 오스카가 보드게임 하나를 들고 왔다.

“세 마리론 부족할 거야. 내가 너희들이 먹을 수 있게 요리해 줄 테니 맡겨.”

다람쥐를 오스카에게 맡긴 우린 데카르와 젠가를 하게 됐다.

쌓인 나무토막이 쓰러지지 않게 빼낸 다음 위로 쌓는 게임.

매우 단순한 게임이지만, 귀인식으로 바뀌면 조금 달라진다.

“위로 올릴 필욘 없다. 뽑을 게 마땅치 않게 되면 너희들의 승리다.”

‘무거워.’

흑색의 토막은 모두 같은 형태지만, 무게가 달랐다.

제일 가벼운 토막이 10킬로.

위쪽의 토막은 비교적 가볍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무거운 토막이 자리했다.

이런 걸 손가락으로 뽑아내야 한다니.

아래쪽 토막이 무겁다 보니, 무너질 걱정은 없었다.

“으랴랴랴!”

힘껏 뽑기만 하면 되는 게임.

뽑을 수 있는 것만 다 뽑으면 우리의 승리다.

타르는 냥냥 펀치로 토막을 쳐 내기도 했다.

“흠… 규칙상 손가락을 쓰는 거지만, 너는 특별히 허용하지.”

게임이 진행되면서 점차 아래쪽 토막을 뽑게 됐고, 우린 밀도란 물리적 현상에 위배된 육중한 토막을 집어야 했다.

그렇게 동료들의 손가락과 이어진 근육들이 파열되며 게임에서 이탈하게 됐고, 내가 포기를 선언하며 헤라클레스만이 살아남아 아래쪽 토막을 뽑아 갔다.

헤라클레스와 번갈아 가며 토막을 뽑던 데카르.

뽑을 수 있는 토막이 몇 개 남지 않자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꽤 하는군.”

손가락을 풀기 시작한 데카르가 토막 하나를 두고 중지를 구부려 엄지로 눌렀다.

“이걸로 끝내지.”

탕!

데카르의 딱밤이 토막에 작렬했다.

뽑힌 토막은 헤라클레스를 향해 쇄도했다.

쾅!

육중한 토막에 가슴을 정통으로 맞은 헤라클레스.

멀찍이 날아가 벽과 충돌하며 쓰러지고 말았다.

“이번에도 내 승리군.”

우린 패배의 대가로 10킬로짜리 족쇄를 차게 됐다.

오스카가 헤라클레스를 치료실로 옮겼고, 다람쥐 고기가 들어간 초록 죽을 나눠 줬다.

“회복에 도움을 줄 거야.”

비릿한 냄새, 익숙한 상황.

데자뷔를 느끼던 나였지만…….

“큭…….”

충격적인 맛의 기억과 함께 의식이 끊어졌다.

압도적 폭력이 가미된 귀인식 승부에 치이며 수일이 지났다.

‘이상해.’

수일간 무언가 먹은 기억이 없음에도 컨디션은 최고조였고, 무게의 추가 늘어감에도 잘 적응해 냈다.

우리 중 최약체였던 타르.

그는 오스카의 조언에 따라 일곱으로 분리되어 수련을 쌓기 시작했다.

“냥! 냥!”

타르는 분신이 활동하며 축적한 경험, 마력, 신체 능력 등이 본체로 합쳐질 때 하나로 모임으로 7배속 수련이 가능했고, 이를 통해 근육 고양이가 되어 갔다.

귀력전에 발을 들인 날로부터 10일 차.

팔, 다리, 몸.

다섯 부위에 각각 20킬로씩 무게를 짊어졌고, 식수 부족에서 벗어났다.

20일 차, 각진 근육을 얻게 된 우린 맨몸으로 다람쥐들과 전쟁을 치렀다.

30일 차, 다람쥐들과의 전쟁에서 승리.

놈들은 패배를 인정하며 백기를 들었다.

“삑! 삑!”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패자의 운명은 잔혹한 법.

“저기도 있다냥!”

“한 놈도 놓치지 마!”

그동안 놈들에게 맺힌 게 많았던 우린 유린의 시간을 만끽했다.

오스카는 생으로 다람쥐를 뜯어 먹는 우릴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줄게.”

다람쥐가 멸종하여 사냥감을 바꾸게 됐다.

“냥? 무섭다냥!”

물을 극복하지 못한 타르는 지상에서 나무를 치기로 했고, 나머지 일행은 물속에서 몽둥이를 휘두르게 됐다.

무거운 물.

그 안에서 몽둥이로 물고기를 잡는 건 불가능.

그렇다고 물고기 사냥을 거부할 순 없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물고기가 맛있어 보이기도 했고, 오스카가 물속을 돌아다니며 매의 눈으로 우릴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너희도 충분히 강해졌으니, 공놀이를 할 수 있겠어. 너희 중 하나가 키퍼를 하고 나머지는 날 막으면 된다.”

귀인식 축구.

5분 동안 골을 지키거나 데카르에게서 볼을 뺏으면 승리.

문제는 놈과 부딪히면 어깨가 탈골됐고, 우리의 발은 공과의 충돌을 견디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골키퍼였던 헤라클레스는 데카르의 슛에 정통으로 맞아 의식을 잃었다.

35일 차.

공의 무게에 적응해 갈 무렵, 귀인식 농구를 하게 됐다.

“오늘은 농구다! 너희들이 공격이고, 내가 방어다!”

육중한 볼을 골대 밑으로 가져가 슛을 해야 한다.

볼을 쥔 내게 데카르가 다가왔고, 주변을 둘러보던 난 포스에게 패스했다.

“포스 님!”

퍽!

“컥.”

방심하던 포스가 나의 패스에 당했다.

바닥을 찍고서 굴러가는 공을 타르가 주웠다.

다가오는 데카르에게 놀란 타르는 이제 막 몸을 일으킨 포스에게 패스했다.

조금 전의 충격을 해소하기도 전에 날아온 공은 포스에게 치명타를 가했다.

퍽!

“포스!!”

쓰러진 동료는 어쩔 수 없다.

남은 동료끼리 서로를 박살 내며 골대를 향해 전진했다.

40일 차.

비대해지던 근육이 마력을 머금더니 점차 작아졌고, 밀도를 넘어선 괴력을 끌어낼 수 있게 됐다.

‘이건 대체…….’

나는 이 현상을 근육의 진화 혹은 각성이라 여겼고, 데카르는 이를 귀력이라 말했다.

“축하한다. 드디어 귀력을 깨우쳤군.”

“이게… 귀력.”

그동안 근력이라 여겼던 귀력의 실상을 알게 된 순간, 나의 마안은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됐다.

‘고밀도의 마력을 품은 신체 조직… 이게 바로 귀인들이 갖춘 진정한 힘이었어.’

동료들도 하나둘 귀력을 깨우치며 우리의 수련은 더욱 가속됐다.

50일 차.

물고기 사냥에 성공.

물고기는 오스카가 요리해 주기로 했는데, 먹은 기억이 없다.

50일간 분명 우린 오스카가 준비해 주는 뭔가를 먹었다.

“감동의 맛이다냥.”

하지만,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하는 건 타르뿐.

10일 정도 물고기 사냥에 적응한 우린 2단계 사냥터에 안내됐다.

이곳의 중력은 1.8g

1단계 장소보다 0.4g나 높았다.

2단계 사냥터에도 우는 철목이 있었고, 무거운 물과 숲이 있었다.

우는 철목은 1단계에 있던 것보다 충격에 강하여 물을 얻기 힘들어졌고, 숲에는 괴력 원숭이들이 무리를 지어 돌아다녔다.

원숭이들과 육탄전을 거치며 그들을 몰살하기까지 20일이 걸렸고, 틈틈이 물고기를 사냥했다.

귀력전에 밟을 들인 날로부터 90일 차.

3단계 사냥터 2.4g 공간에서 근육 캥거루들을 몰살시켰고, 100일 차에는 4단계 사냥터 3.0g 공간에서 회색 늑대들을 찢어 버렸다.

“크하하하!”

우린 확실히 강해졌다.

강해졌지만…….

이런 우리라도 귀인식 게임에선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동안 나는 다양한 게임으로 귀인들에게 도전했다.

‘체스의 수읽기라면 내가 이길 수 있어.’

오스카가 가져온 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두 배로 무거워지는 체스 말이었다.

귀력의 한계가 수의 한계로 작용하며 패배했다.

‘도구를 쓰는 게임은 귀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숲에서 숨바꼭질이라면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귀인들은 숲 끝에서 손을 휘둘러 강풍을 일으켰고, 빗자루로 쓰레기를 모으듯 우릴 한곳에 모아 버렸다.

그렇게 또 패배.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도전이 있었지만, 모든 게임이 귀인식으로 적용되며 패배만이 쌓였다.

마지막 날.

귀인들은 우리에게 겁을 줬다.

“100일간 이곳에 있어야 한다곤 말했지만, 100일 후에 너희를 내보내 준다고 말한 적은 없다.”

승부에서 지면 우릴 죽이겠다는 선언.

강렬한 압박이 전해졌지만, 나는 마안을 통해 그들의 속내를 알 수 있었다.

‘졸업 시험인가…….’

오스카가 가져온 게임.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숫자만큼 자신의 말을 이동시켜 땅을 확보하는 게임으로 부루마불과 비슷했지만, 상대방이 확보한 땅을 밟으면 돈을 지급하는 대신 몸으로 때워야 하는데.

비싼 땅은 펀치, 싼 땅은 딱밤.

운의 요소로 덜 맞을 순 있어도 맞지 않을 순 없다.

2대 6의 순서 있는 난타전.

먼저 쓰러지는 쪽이 패배.

이길 수 없는 승부였지만, 우린 최선을 다했다.

“이만큼 버텨 내다니, 멋진 승부였다.”

“즐거웠어.”

훈훈한 분위기 속.

오스카가 우릴 위해 마지막 만찬을 준비해 줬다.

음식을 보는 순간 타르를 제외한 동료들이 입에 거품을 물었고, 나 또한 부상하는 기억들로 인해 의식을 잃고 말았다.

“여긴…….”

“밖이다냥. 오스카가 나가는 문을 열어 줬다냥.”

들어온 곳과는 다른 곳이었고, 목에는 귀인들의 선물로 여겨지는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오스카가 줬다냥. 둘의 분신을 잠시 소환할 수 있는 목걸이다냥. 일회용이니 꼭 필요할 때 쓰라고 했다냥.”

어째서인지 목걸이는 나에게만 주어진 선물이었다.

“그런데 여긴 대체 어디지?”

주변이 흙더미로 꽉 막혀 있어, 나가려면 한동안 땅을 파야 할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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