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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날먹만큼 신나는 일은 드물다.
그걸 위해서 도진은 한껏 노력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적당한 지형을 찾는 일이었다.
그러나 도진 마음에 쏙 드는 이상적인 곳은 발견되지 않았다.
해서, 도진은 직접 필요한 곳을 만들기로 했다.
먼저 좁은 구멍을 찾아서 「융해」를 사용해서 암석을 녹이는 방식으로 폭과 안쪽의 공간을 넓히고, 바닥도 좀 울퉁불퉁하게 만들고.
많은 마나와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었으나 도진은 꿋꿋하게 노동에 임했고, 이윽고 배수의 진을 치기 딱 좋은 작은 터널 하나를 만들어 냈다.
꽤 길게 연장한 터널은 곧 몬스터를 죽이는 죽음의 길이었다.
테레사가 밖으로 나가 근처에 있는 몬스터 무리를 끌고 터널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를 따라 차원 파편들이 터널 안으로 들어왔다.
가장 먼저 놈들들 반긴 건 탄토의 독덫이었다.
넓게 퍼진 독은 속도를 감속시키는 종류의 신경독이었다.
유의미한 피해는 줄 수 없는 독이란 소리다.
하나 탄토의 유물 단검 「파헤치는 저주」의 스택을 쌓는 건 가능했다.
터널 입구에서 더럽게 많은 개체 수를 자랑하며 끼어 있는 동안 놈들은 저주에 절여졌다.
독으로 인해 느려지고, 저주로 인해 연해진 놈들이 다음으로 맞이한 건 도진이 만든 불바다였다.
이성도, 감각도 붙어 있지 않은 차원 파편들은 자신들의 무덤이 될 화염 지대로 몸을 밀어 넣었다.
열은 가해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가 증폭되는 성질을 지녔다. 불을 만져도 스치듯 만지면 뜨겁지 않지만, 계속해서 손을 대고 있으면 익어 버리는 것과 같이 말이다.
도진이 설계한 터널은 이런 성질을 최대한 활용하는 구조로 짠 사형장이었다.
펑… 펑… 펑…….
차원 파편들은 불이 깔린 터널을 건너오다가 절반을 조금 넘긴 지점쯤에서 하나둘씩 터졌다.
펑, 펑, 펑, 펑, 펑.
처음에는 간헐적으로 일어나던 폭발의 간격이 점점 짧아지더니.
퍼퍼퍼퍼펑-
종국에는 팝콘을 튀길 때나 날 법한 잘은 폭음이 터널 안을 메웠다.
“이게 말이 되나 싶네…….”
그 광경을 보며 테레사가 중얼댔다.
심지어 몬스터가 터져 나가면서 발생하는 소음과 충격파에 이끌려 먼 곳에 있는 몬스터들까지 몰려들어서 입구는 꽉 막혀 있는 수준이었다.
앞에 들어간 놈이 죽으면 뒤에서 대기 중이던 것들이 그 자리를 채워 가며 순서대로 죽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연출됐다.
놈들 사이에는 간격이라 부를 공간도 없었다. 밀집도가 높아서 다닥다닥 붙어서 들어오고, 붙어 있는 채로 죽어서 경험치로 환산된다.
“딱 내 생각대로 굴러가네.”
도진은 뿌듯하게 자신이 만든 처형장을 바라봤다.
아주 효율적으로, 가장 적절한 속도와 리듬감을 살려서, 최대한 많은 죽음을 양산할 수 있게끔 디자인한 날먹의 길은 어마어마한 사냥 효율을 보였다.
쉬지 않고 몬스터를 죽여 대니 경험치는 쭉쭉 오르고, 도진 파티 앞에는 엄청난 재화가 산처럼 쌓였다.
이 자동화된 학살이 얼마나 뛰어난 효율을 자랑했느냐면, 얼마 지나지 않아 터널로 들어오는 몬스터의 수가 확연히 준 게 보일 정도였다.
차원 파편이 등장하는 균열 던전의 악명 높은 몬스터 리젠 능력조차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도진 파티의 학살이 빨랐던 것이다.
“도진아, 너 진짜 진짜구나.”
휑해진 입구를 보며 테레사가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진짜 인류 역사에 남은 학살범들도 너만은 못 했을 거야. 넌 악마야, 악마.”
“…칭찬 맞아?”
“극찬이지!”
테레사가 읏차 하며 일어났다.
“내가 몰아올까?”
“됐어. 어차피 조금 지나면 다시 생길 테니까. 이럴 때 쉬어 둬야지.”
도진 말대로 조금 시간이 지나자 다시 차원 파편들이 태어나서 몰려왔다.
경험치 파티가 이어졌다.
그러기를 얼마간.
“어? 메시지가 왔는데?”
테레사에게 외부에서 온 메시지가 도착했다.
극한의 아웃사이더인 도진, 탄토, 소소와 달리 그녀는 이 파티 외에도 지인이 있었던 것.
“어떻게 메시지가 온 거지? 설마 이제 되나?”
“되네.”
테레사의 말을 듣자마자 확인에 들어간 도진의 말.
정말 메시지 기능을 포함해서 외부와 차단되었던 연결이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균열이 약해진 거지. 균열이라고 힘이 무한한 게 아니잖아. 우리가 하도 죽여 대니 그 몬스터 물량을 채우는 데 계속 힘을 써서 밖이랑 차단할 여력이 사라진 걸 거야.”
균열도 사람과 똑같다.
한쪽 장기가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그쪽으로 혈류가 몰리고, 다른 쪽은 기능이 떨어지는 것처럼 현재 이 균열은 몬스터 재생산에 모든 자원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럴 정도면 침식 쪽은 전혀 걱정할 거 없겠어.’
그렇게 생각하는 도진에게 테레사가 물었다.
“도진아, 방송도 가능할 거 같은데 켜도 돼?”
평소라면 어수선한 게 싫기도 하고 사냥에 집중하기 위해 방송을 지양했겠으나.
“뭐, 약속도 했으니까.”
가능하면 바로 방송으로 상황을 알려 주겠다고 약속한 것도 있고, 딱히 집중력이 필요한 상황도 아니었다.
도진, 테레사, 탄토는 각자의 방송을 동시에 켰다.
세 명의 방송에 시청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왔다.
-어케 됐음?
-탄토는 살았어?
-헉 4명 다 살아 있다!
-난 걱정도 안 했음. 저 파티가 어떤 파티인데 겨우 균열 던전에서 죽겠어? ㅋㅋ
안 그래도 탄토를 구하러 간 도진 일행이 어떻게 됐나 걱정되어서 알림만 기다리던 사람들은 화면에 비치는 멀쩡한 일행을 보고는 안도했다.
[‘ゆうき’ 님이 ¥100,000을 후원하셨습니다.]
[저희 탄토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탄토의 팬이 고액의 후원을 방마다 뿌리기도 했다.
“아이구, 뭘 이런 걸 다 주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테레사는 활짝 웃으며 망치로 방패를 꽹과리처럼 두드리며 나름의 리액션까지 했다.
-근데 그 균열 던전에는 어떤 몬스터가 있어요?
-탄토 님이 갇힐 정도면 엄청 위험할 거 같은데 그렇게 무방비하게 있어도 되나요?
-아직 클리어 안 했으면 우리도 싸우는 거 보여 줘!
시청자들의 요청이 쇄도했다.
균열 던전은 각각의 던전마다 워낙 다른 모습의 몬스터가 등장하니 궁금했던 모양.
“아, 싸우는 거요? 지금 싸울 일이 없어서… 아! 지금 막 젠 됐나 봐요. 이제 들어오네요.”
테레사가 앵글을 돌렸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움직인 앵글이 도진이 만든 터널 입구를 담았다.
그렇게 독덫을 밟고, 넓게 퍼진 독에 감염되어 불바다에서 허우적대다 대량으로 펑펑 터지는 차원 파편들의 모습이 방송을 탔다.
-저게 뭐임?
-아니, 미친 새끼들인가? 균열 몬스터를 대량으로 몰아서 터뜨리는 게 가능한 거였음?
-ㅋㅋㅋㅋㅋ 공격력이 도대체 얼마나 높으면 저딴 짓거리를 함? 마법사 새끼들 도대체 얼마나 사기 직업인 거냐고!
그걸 본 순간 사람들은 지금까지 있던 상황 전부를 잊었다.
LOST에서 타워 디펜스 게임 하듯이 몬스터를 녹여 대는 모습을 봤으니 당연했다.
-다른 방에서는 곡소리만 나는데 여긴 뭐임?
-난 균열 들어갔다가 죽어서 지금 접속도 못 하는데 ㅅㅂ;
-아니, 근데 이거 우리도 할 수 있는 거 아냐? 얼추 비슷한 균열만 찾으면 마법사들 데리고 가서 할 만하겠는데?
박탈감을 호소하는 사람들 사이로 이걸 기회로 삼으려는 사람도 있었다.
-되겠냐? 다른 마법사 새끼들은 저거 흉내도 못 내.
-이 사람 세팅이 얼마나 살벌한지 모름?
-안 된다는 생각부터 하니까 니들 수준이 거기인 거임. 마법사를 여러 명 데려가면 되잖아.
순식간에 마법사 게시판은 난리가 났다.
자신들과 레벨 비슷한 마법사 인력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간 것.
인력시장에서 찬밥이었던 기간이 LOST 서비스 기간의 99퍼센트쯤 되는 마법사들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기뻐했다.
그리고 얼마 뒤.
-하지 마라.
-마법사 병신 새끼들.
-마법사 여러 명 데리고 가서 공격력만 확보한다고 되는 거 아님. 이 새끼들 조루도 보통 조루가 아니라서 순식간에 잉여 전력으로 전락함. 왜 아냐고? 묻지 마, 시발놈들아.
차원 파편만큼 무식한 리젠 타임을 자랑하는 곳이 아님에도, 일부러 몬스터가 몰려 있는 곳에서 흉내를 낸 파티들이 연속해서 전멸 인증글을 올렸다.
단순 몰이 사냥이면 모를까 퇴로도 없는 곳에 틀어박혀 쉴 틈 없이 몰려오는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쉬워 보인다고 따라 했던 사람들은 왜 다른 게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사냥법이 LOST에서는 생소해 보였던 건지 깨닫게 됐다.
애초에 도진과 비슷한 수준의 유지력과 범위 공격 능력을 지닌 사람이 아니면 시도해 봐야 결말은 전멸뿐이었던 것.
-이게 사냥 방송일까, 불멍 방송일까?
-하… 뒤져서 며칠 겜도 못 하는데 방송이나 실컷 봐야지.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하며 가랑이 찢어진 뱁새들이 도진 일행 방송으로 돌아왔다.
도진은 계속해서 같은 방법으로 사냥을 했다.
쉴 때는 몬스터는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깊고 좁게 판 굴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러기를 며칠.
갑자기 강력한 기운을 방출하는 몬스터가 도진이 있는 곳으로 접근했다.
쿠웅- 쿠웅- 쿠웅- 하고 차원 파편들이 뭉쳐 있는 입구 부분을 두드리는 거대한 크기의 차원 파편.
보스였다.
균열의 중심부에 있어야 할 놈이 이곳까지 온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이대로 두면 잔몹들이 갈려 나가다가 균열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할 위기에 봉착하니 헐레벌떡 달려온 것이었다.
다급하게 달려와서 다른 차원 파편을 뭉개 가면서까지 입구를 넓히려고 허우적대는 보스에게서는 위기감과 생존본능이 함께 느껴졌다.
-…살다 살다 던전 보스가 짠해 보이는 건 처음이네.
-자기 집 다 터져 나갈 거 같으니까 급해진 거 좀 봐.
-진짜 독하다, 독해. 이제 좀 쟤 죽이고 끝내 주자. 니들 이미 먹을 만큼 먹었잖아?
-인간이 미안해 ㅠㅠ
며칠 동안 함께 지켜본 시청자들은 몬스터 쪽을 동정했다.
하지만 도진의 대응은 상상을 초월했다.
“저거 잡으면 이 균열 닫혀. 밀고 빠져나가서 다른 데 구멍 파자.”
보스를 따돌리고 다른 곳에 새로운 학살장을 만들었다.
‘아직 열쇠 충전량을 반도 못 채웠는데 가긴 어딜 가?’
도진은 이곳에서 뽑아먹을 수 있는 모든 걸 뽑아 먹을 생각이었다.
아예 몬스터 리젠이 안 되면 모를까. 골수를 다 파먹을 때까지 도진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결국 도진은 차원 연결 이벤트가 거의 끝나갈 때까지 균열 보스를 따돌리며 균열 던전을 유린했다.
[‘텅 빈 열쇠’가 가득 찼습니다.]
그 결과 도진은 열쇠를 가득 채웠고, 파티 전체는 천문학적인 경험치를 수급하게 됐다.
-난 이제 인정할래. 이벤트 기간 동안 하루 평균 2시간만 자고 저러고 있는데 저 정도 크는 게 맞지.
-진짜 독하단 말도 부족하다 ㅋㅋ 그동안 방송 안 할 때도 계속 이러고 있었을 거 아냐? 난 절대 못 함.
-열흘째부터는 테레사 동공 풀려 있었던 거 봤음? 근데 진은 마지막까지 눈이 말똥말똥하더라. 진짜 천재는 다 미친놈이라더니 진은 그중에서도 제대로 미친놈이 맞음 ㅋㅋ
다사다난했던 차원 연결 이벤트의 마지막쯤에는 모두가 도진의 성장을 수긍했다.
“후우… 이제 이벤트도 끝나겠네요. 그 전에 보스 처리하고 저도 쉬러 갈게요. 이번엔 조금 무리를 한 편이긴 해서 피곤하네요.”
-조금 무리……?
-당신 마지막으로 잔다고 한 게 일주일 전인 건 알고 있죠?
-빨리 자러 가셈. 진짜 죽었다는 뉴스 나올까 봐 조마조마하니까.
언제는 방송 켜지길 기다리던 시청자들이 이젠 빨리 자러 가라고 등을 떠미는 수준이 됐다.
도진은 지금까지 상대하지 않고 피해만 다니던 균열 보스를 처치하고 방송을 종료했다.
현실로 돌아간 도진은 바로 잠들었다.
매니저님께서 화가 단단히 나신 거 같았지만, 뭐라고 하는지 들을 여유도 없었다.
몇 시간 뒤 차원 연결 이벤트가 종료됐다.
그리고 잠시 후 로스타니아 전역에서 새로운 균열이 급격하게 생겨나기 시작했다.
차원 연결 이벤트 기간 때보다 더 많고, 더욱 빠르게 세계를 침식하는 균열들이었다.
행사는 끝났다.
그러나 재앙은 이제 시작이었다.
무한자원 개미군단
201화. 졸업
포스의 오른손이 뭉개졌지만, 이론상 우리에겐 일곱 개의 손이 남아 있다.
이론은 이론일 뿐.
실제로 손 하나가 뭉개진 포스는 게임에 전력을 다할 수 없었고, 가벼웠던 장내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사마귀, 네 차례다.”
“알고 있다.”
나를 포함한 나머지 인원들의 카드 뒤집는 속도가 한 템포씩 느려졌다.
그만큼 긴장된 상황.
카드는 상대방이 먼저 볼 수 있도록 밖으로 뒤집어야 하며, 카드를 뒤집은 손으로 종을 쳐야 한다.
그러므로 뒤집는 쪽이 불리하고, 맞은편의 상대가 좀 더 일찍 카드를 볼 수 있어 유리하다.
내가 뒤집은 카드로 인해 모두의 눈이 크게 뜨였다.
‘고블린 카드 6!’
나의 맞은편 상대는 데카르.
카드를 먼저 확인할 수 있었던 데카르의 스타트가 일행에 비해 한 템포 빨랐다.
‘이런!’
이대로 놈이 종을 울려 쌓인 카드를 먹어 가면 우리 쪽에선 최소 3~4번은 종을 더 울려야 카드를 회수해 올 수 있다.
‘무리해서라도 우리가 먹어야 해!’
일행들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모두 손을 뻗었으나, 종 위로 데카르의 손이 도착하고 말았다.
늦었다고 판단한 일행이 손을 거둘 때, 크라스의 손이 가속하며 아래를 파고들려 했다.
‘빠르기라면 우리 중 크라스가 최고야.’
모두의 응원 속 순속으로 치고 빠지려던 크라스.
이를 저지하기 위해 데카르가 손의 각도를 꺾었다.
골키퍼의 등장에 크라스가 잠시 당황했으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서 더욱 가속했다.
그의 팔이 뱀처럼 휘어지며 데카르의 팔을 우회하려 했는데.
“어딜!”
잔영을 남기며 고속으로 움직이던 손이었지만 데카르의 가드를 뚫기에는 부족했다.
빠각―
손등에 막힌 크라스의 손가락이 부러졌다.
“크악!”
도전자들을 모두 물리친 데카르가 여유롭게 종을 치며 판에 깔린 카드를 회수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