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39화 (239/271)

239

균열 공간에 진입했다는 메시지와 함께 주변 공기가 달라졌다.

방금 전까지 딛고 서 있던 세계와 이곳은 전혀 다르다는 걸 확연히 알게 해 주는 변화였다.

숨도 쉴 수 있고, 중력도 존재하지만, 우주 공간에 서 있는 느낌이다.

도진은 주변부터 둘러봤다.

드문드문 벽 표면이 검게 물든 지점이 눈에 띄었다.

‘벌써 이런 단계라고?’

그걸 본 도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나 싶어 눈을 가늘게 뜨고 살피는 도진.

‘확실해. 밖으로 떨어져 나가고 있어.’

검게 물든 건 벽이 깨지면서 그렇게 된 거였다.

문제는 깨지면서 발생한 미세한 입자가 이쪽이 아니라 검게 물든 공간 저편으로도 떨어져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균열 던전이 이쪽 세계의 환경을 바꾸는 현상이 1차적인 거라면, 이건 최종 단계쯤에나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균열에 침식된 공간이 뜯겨나가고 있다. 즉, 로스타니아가 공허 저편으로 뜯겨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떨어져 나가는 정도가 아주 미세해서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모를 정도라는 것 정도다.

‘아직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지만,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균열을 방치할 수는 없지.’

뜯겨져 나가는 걸 계속 방치하면 균열이 있던 자리에는 커다란 구멍이 뻥 뚫리게 된다.

그러면 외부 차원의 간섭을 방어하는 막이 사라지는 셈이라 침식 현상이 더 심해지고, 주변에는 균열 현상이 잦아지고 심해진다.

자연히 로스타니아는 더 망가지고, 멸망은 가까워지며, 그로 인해 멸망성 라베스는 더욱 힘을 불리는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탄토 형이 여길 발견해서 다행이야.’

발견했다기보다는 어쩌다 보니 갇힌 쪽에 가깝지만, 어쨌든 구멍이 뚫리기 전에 미리 대처할 수 있게 된 건 행운이었다.

이 정도 침식 속도면 균열 안에서 몬스터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컨트롤이 가능한 수준이다.

“도진아, 몰려오는 거 같은데?”

침식된 부분을 살피는 사이 안쪽에서 몬스터들이 몰려나왔다.

타각타각 하는 특이한 발소리를 내며 집단으로 우르르 어둠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모양의 유리 공예품들.

차원 파편이다.

어떤 것은 굴러오고, 어떤 것들 두 발, 또 어떤 것은 뾰족한 발 다섯 가닥으로.

이동 방식마저 통일되지 않은 놈들은 인간을 발견하고는 잠시 멈칫했다.

생소한 기운을 지닌 것들이 무엇인지 판단하려는 듯이.

“일단 탄토 형부터 찾자.”

“엄청 많은데 정면으로 돌파하려고?”

“다른 수 있어?”

하긴. 그렇게 말한 테레사가 무기와 방패를 들었다.

소소가 버프를 돌리려 마나를 끌어올리고, 도진도 마법회로에 마나를 흘려 넣는다.

그 순간 차원 파편들도 일제히 움직였다.

“누나, 잠깐.”

도진은 앞으로 튀어나가 맞서려는 테레사의 어깨를 잡아 만류하며, 그녀의 앞으로 나아갔다.

《화염 파도》

그리고 마법을 썼다.

지형, 환경, 상황을 모두 고려하고, 마나 효율까지 생각해서 고른 마법이다.

딱 통로를 가득 채울 만큼 범위를 키운 불길이 접근하는 모든 차원 파편을 집어삼켰다.

타각타가가각 하는 소리가 불길이 휘몰아치는 소리와 겹쳤다.

‘생각보다 훨씬 단단하네?’

도진은 마안으로 불길 속에 있는 차원 파편의 상태를 확인했다.

화염이 가진 압력과 열기에 주춤하긴 했어도, 움직임을 멈춘 놈은 하나도 없었다.

꾸역꾸역 다가오려는 게 보였다.

이대로라면 화염지대는 돌파당하고, 난전이 시작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공격력이 부족한 마법사들이 겪는 일.

‘그럼 이 정도면 되려나?’

도진은 화염의 출력을 더욱 높였다.

인간 화염방사기가 된 도진은 아예 앞으로 한 걸음씩 걸어 나갔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조금씩 마법의 위력을 높인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파앙- 하고 마력 폭발이 일어났다.

차원 파편 하나가 터지면서 발생한 폭발이었다.

한 템포 늦게 유리 깨지는 소리를 수십 배 키운 것 같은 소리가 뒤를 잇는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첫 번째를 시작으로 내구도에 한계가 온 파편들이 연속으로 터져 나갔다.

퍼퍼퍼펑 하는 요란한 폭발의 여파가 도진이 만든 격렬한 화염지대를 더욱 요동치게 만들었다.

“음, 딱 이 정도면 되겠네.”

도진은 지금 사용한 마법의 감각을 기억했다.

끊임없이 리젠되는 데다 그 간격이 극단적으로 짧은 차원 파편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이런 최적화가 필수적이다.

화력의 넘침 없이 최소의 소모값을 찾지 않으면 자칫 이쪽이 먼저 방전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정도까지 위력을 높여야 하는데 이걸 최적화라고 할 수 있나 싶긴 한데…….’

차원 파편의 단단함을 직접 겪은 도진은 탄토가 괜히 갇힌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단일 공격 위주의 클래스로는 절대 혼자서 클리어할 수 있는 난이도가 아니다.

마법사라고 쉽냐면, 그건 또 아니지만.

평범한 마법사는 잠깐은 고위력을 뽐낼 수 있지만, 방전이 말도 안 되게 빠르게 올 거다.

도진이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와… 이것들 엄청 끈질기다. 네 마법에 이 정도로 버티다니. 거기다 평소보다 훨씬 더 뜨거웠던 거 같은데도…….”

열기에 몇 걸음 물러났던 테레사가 감탄 반 질림 반을 담아 말했다.

“탄토 형이 괜히 고생한 게 아닌 거지. 일단 형부터 찾자.”

도진은 안으로 진입했다.

밖과의 소통은 물론이고, 안에 있는 사람끼리도 연락은 막혀 있었다.

탄토를 찾으려면 결국 직접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는 소리였다.

도진은 압도적인 공격력을 앞세워 차원 파편들을 대량으로 소각하며 전진했다.

“뒤쪽에서도 접근한다!”

그러나 역시나 차원 파편이 도사린 균열 던전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전진이 조금만 늦으면 이미 소각을 끝낸 뒤쪽에서 새롭게 태어난 파편들이 특유의 뾰족한 소리를 내며 몰려들었다.

아니, 전진 속도가 느려서도 아니었다. 할 수 있는 최선의 속도로, 충분히 빠르게 전진을 해도 리젠 속도를 온전히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틀어막고 있어! 앞에 지우고 뒤쪽 처리할게!”

차원 파편의 공세는 도진도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수급되는 경험치는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전리품?

알아서 들어오는 건 들어오는 거고, 줍는 건 지나가면서 정말 귀해 보이는 것만 챙기기도 바빴다.

진행 방향에 꽉꽉 들어찬 놈들을 「화염 파도」로 치우기 무섭게 뒤로 돌아서 어느새 리젠돼서 쌓인 적을 또 한 번 처리하고.

앞에서 다시 몬스터가 리젠되기 전에 통과하기 위해서 불길이 채 꺼지지도 않은 화염지대를 뚫고 전진해야 했다.

어떨 때는 불길 속에서 새로운 차원 파편들이 일어날 때도 있었다. 우연히 타이밍이 겹친 거겠지만, 보고 있는 입장에서는 질리기 딱 좋은 광경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진입했을까. 커다란 공간이 나왔다. 그런데 그곳에는 엄청난 수의 차원 파편들이 있었다.

‘벌레 떼가 다로 없군.’

지나온 통로가 좁은 건 아니지만, 앞쪽 공간이 넓고, 그만큼 몬스터 개체 수도 많았다.

그로 인해 발생한 병목현상에 의해 꽉 막힌 진입로는, 벌레로 막힌 구멍처럼 보였다.

그걸 발견한 도진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힘들어 죽겠다. 그럼에도 예쁘게 몰려 있는 몬스터를 보니 가슴이 설렌다.

퍼어엉-

도진의 마법이 일으킨 열폭발이 구멍을 막고 있던 놈들을 일제히 날려 버렸다.

타가타각타각.

그 빈자리를 채우려는 놈들.

도진은 아예 그 지점에 「불기둥」과 「화염벽」을 세워 버렸다.

“하아-”

거기까지 하고 도진이 바쁜 숨을 반쯤 내뱉을 때쯤.

반대편에서 카앙- 하는 소리가 났다.

자신의 마법이 내는 소리 아니고, 차원 파편들이 내는 소리도 아니다.

탄토였다.

안전한 곳에서 은신하고 있던 탄토가 도진 일행이 만든 소란을 듣고서 나온 것이었다.

“반대쪽이야!”

하지만 도진, 테레사 소소가 있는 곳과 탄토가 있는 곳은 서로 공동의 끝과 끝이었다.

도진은 반대편으로 가기 위해 앞을 가로막은 것들을 처리하고자 했다.

“젠장, 너무 많아!”

그러나 오랫동안 쌓인 몬스터가 문제였다.

워낙 많이 쌓여 있는 탓에 한 번에 처리하는 게 불가능했다.

차근차근 처리하려 해도 몬스터가 쌓이면서 마나도 쌓이고, 쌓인 마나도 병목현상을 일으켜서 리젠 속도가 너무 빨랐다.

하나를 죽이면 동시에 하나가 태어나는 미친 상황이 펼쳐지니 도진도 함께 돌아 버릴 것만 같았다.

“아니, 죽이면 줄어야 할 거 아냐!”

“말할 시간 있으면 마법 한 번이라도 더 써! 나 진짜 죽겠단 말야!”

“둘 다 입 다물고 할 거 해! 제일 힘든 건 나라고!”

도진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뒤쪽에서 몰려오는 놈들을 틀어막는 역할을 맡은 테레사는 말 그대로 몸으로 뚜껑을 대신하는 중이었다.

그런 그녀의 피통을 책임져야 하는 소소는 대수술 중인 사람에게 공급되는 혈액이 된 기분을 느끼고 있고 말이다.

‘이런 식으로는 합류하기 힘들 거 같은데.’

탄토 쪽에서 넘어오길 기대하는 건 지나친 욕심이다.

발광하는 차원 파편이 가득 찬 공간을 은신 하나 믿고 통과하려고 했다가는 갈기갈기 찢길 테니 말이다.

‘장소가 너무 안 좋아. 여기서 계속 소모전을 하면 결국 먼저 나가떨어지는 건 우리다.’

이런 최악의 자리에서 버티는 건 균열 던전 전체와 힘싸움을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도진은 길게 힘을 쓰다 결국 탈진하느니, 한 번에 상황을 타개하기로 했다.

《초월》

목걸이에 담긴 힘이 도진에게 시동을 걸었다.

황금빛 마력이 찬란히 타오르고, 날개를 닮은 형상이 도진을 감쌌다.

그걸 본 소소가 급히 도진에게 버프를 새로 걸었다.

동시에, 도진은 앞을 가로막는 것들을 지우며 돌진했다.

“거리 유지하면서 따라와!”

넓은 곳으로 들어왔다.

그건 곧 사방에서 적이 몰려들 조건이 갖춰졌다는 소리였다.

확- 하고 벌어졌던 공간이 다시 확 채워진다.

도진의 눈에 달려드는 차원 파편들이 느릿느릿하게 보였다.

대공에게서 받은 마안에 안광이 번뜩였다.

《깨어난 저주》

범위 안의 적들의 능력이 도진에게로 옮겨졌다.

도진의 한계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 늘어난 한계와 힘을 이용해 도진은 불을 뿜었다.

지금까지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강력한 불을 전방으로 방출하며, 도진이 외쳤다.

“내 뒤로 붙어서 같이 돌아!”

도진이 한 바퀴 회전하자 접근하던 차원 파편들이 일제히 퍼퍼펑- 하며 터져 나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도진은 「염동체술」의 힘까지 빌려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당연히 여전히 불은 뿜고 있었다.

닿는 순간 펑 터져 나가는 정도의 화력은 도진을 화염방사기를 넘어 지우개로 만들었다.

이만한 위력을 내기 위해서 엄청난 마나를 소모하고 있고, 그에 따라 「초월」의 지속 시간이 엄청나게 줄긴 했다.

1분은 유지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연비가 엉망이다. 그러나 어떨 때는 어중간한 30분보다도 격렬한 1분이 소중할 때가 있는 법이었다.

“와, 미쳤다!”

도진을 꽤나 겪은 테레사도 놀랄 만큼 무식한 전술이었다.

그래도 효과는 확실했다.

워낙 빠르게 지워 버린 덕에 리젠 속도보다 개체를 줄이는 속도가 앞서 나갈 수 있었다.

길도 뚫을 수 있었고.

“도진아!”

꾸역꾸역 싸워 가며 버티던 탄토가 동료들을 보며 미안한 눈을 했다.

그런 그에게 도진이 말했다.

“뒤로, 뒤로!”

당신 숨어 있던 곳으로 가자고.

다급한 말에 탄토가 자신이 있던 공간 쪽으로 물러났다.

겨우 공동을 빠져나온 도진은 바로 자신의 시간을 되돌렸다.

그걸 본 테레사가 말했다.

“도진이 히든 카드도 썼으니까 빨리 던전 클리어부터 하자. 그래야 빠져나가지. 여기 너무 위험한 거 같아.”

이에 도진이 말했다.

“나가긴 아까운데. 여기 경험치가 너무 잘 올라.”

“아니, 도진아, 너 설마……?”

테레사가 불안한 눈을 했다.

“걱정 마. 탄토 형이랑 합류하려고 무리한 거지. 단순히 경험치를 먹으려고 사냥하자면 어려울 게 없을 거 같으니까.”

도진은 그런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건 진실이었다.

들어와서 싸우는 동안 견적을 낸 결과 자리만 잘 잡으면 자동 사냥에 버금가는 사기를 칠 수 있을 거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