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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은 도진 나름대로 진땀이 났다.
적이 난사해 대는 공격에 살짝 스쳤을 뿐인데 HP 게이지가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삭제됐다.
‘이거 세 개만 동시에 스쳐도 바로 황천길 걷겠는데?’
도진 정도 튼튼함이라 세 개지, 평범한 마법사였으면 한 방에 생사의 갈림길에 놓일 정도의 공격력.
이러니 방송에 집중할 수가 있겠는가. 살아서 클리어를 하려면 당장 눈앞에 닥쳐오는 적의 공격에 집중해야 했다.
놈들은 미동도 않고 가만히 서 있다가 가시 발사가 준비되면 갑자기 팔을 한 바퀴 회전시키며 가시를 발사했다.
일단 움직이면 발사까지 걸리는 시간이 정말 찰나에 가까웠다. 보고 대응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이에, 도진은 적의 쿨타임을 이용하기로 했다.
높은 공격력만큼이나 가시 공격은 쿨타임이 꽤 길었다.
가장 먼저 도진은 적 일부에게만 자신을 노출하는 방식으로 공격의 쿨타임의 리듬을 깼다.
비유하자면, 적 병사들의 탄 소모 타이밍을 조절하여 화력 공백을 만드는 것과 같았다.
‘지금이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도진은 꽤나 긴 화력 공백 시간을 만들었다.
막 쏜 놈들은 장전에 들어갔고, 먼저 쏜 놈들은 아직 장전 중에 있는 1초도 안 될 짧은 틈.
《섬광창》
도진은 그 틈을 노려 마법회로에 장전해 두었던 마법을 풀었다.
이미 자신을 향해 가시를 쏜 순서는 외워 놓았다.
도진은 공격 준비가 빠르게 완료될 놈들부터 광점을 찍어 줬다.
투사체가 날아갈 시간도 없는 마법을 고른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새롭게 만들어 낸 가시를 발사하기 위해 몸을 경직시키고 팔을 들어 올리던 놈들은 광점이 찍힌 순서대로 섬광 폭발에 휘말렸다.
키이이잉- 파앙- 하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더러 섬광창 한 방에 죽지 않는 놈들도 있었으나 그런 놈들은 옆에 놈이 맞는 섬광창 폭발에 휘말려 죽었다.
단일 공격에 가까운 처참한 범위를 자랑하는 마법이라지만, 저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있으면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젠장, 늦었-”
하지만 모든 일이 다 잘 풀리지는 않았다.
마법회로에 장전한 마법을 다 쏘고, 새로 만든 마법까지 다 썼음에도 모자랐다.
도진은 반사적으로 몸을 비틀며 염동력을 방출했다.
도진이 놓친 두 놈이 쏜 가시가 순간적으로 방출되는 염동력에 의해 도탄됐다.
정면으로 들어왔으면 무조건 치명상이었을 공격이 다행스럽게도 살짝 비껴 맞으며 옆으로 튄 것이다.
이걸 노리긴 했지만, 솔직히 정말 될 줄 몰랐던 도진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욕심부리지 말자.’
‘한 발만 더’라고 생각하다가 피하는 게 늦어 발생한 실수였다.
도진은 죽음을 부르는 욕심을 자제할 것을 다짐하며, 남은 놈들을 처리했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욕심을 부리는 실수 아닌 실수로 요단강에 발을 살짝 담그고 나온 상황이었다.
-ㅋㅋㅋㅋㅋ
-ㅎㅎㅎㅎ?
-어이가 없네 ㅋ
하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그런 걸 알 수 없었다.
그냥 눈에 보이는 게 전부일 수밖에 없는 시청자들은 채팅창을 허탈한 웃음으로 물들였다.
실제로 각자 앉은 자리에서 육성으로 집 나간 어이를 찾는 이들이 다수였다.
그 와중에 당장 위협이 되는 것들을 치워 버린 도진이 물약을 끊어 마시며 말했다.
“후우, 중간부터 말을 못 했는데 이런 놈들 상대할 때는 이렇게 하면 돼요.”
채팅창이 다시금 ‘ㅋㅋㅋ’로 도배됐다.
-저기 선생님,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말씀하시는 ‘이런 놈들’이랑 ‘이렇게’가 뭔지 설명을 좀 해 주실 수 있을까요?
-ㅋㅋㅋ 나름 설명하는 게 ‘이렇게’가 다인 거 보니까 진짜 우리 같은 놈들을 이해 못 하고 있는 게 보여서 진짜 개웃기네.
사람들 반응을 본 도진은 ‘내 설명이 부족하긴 했네’라고 납득하며, 방금 있던 전투를 풀어서 설명해 주기로 했다.
“딱 한 번만 설명할 테니까 잘 들으세요.”
말하며 마법사용 연초를 꺼냈던 도진은 그걸 다시 집어넣었다.
게임은 성인용이지만, 방송은 미성년자도 볼 텐데 하고 생각하면서.
“적을 봤는데 원거리 몬스터 같다? 바로 엄폐물부터 찾아야죠. 움직여서 인식되는 순간에 허허벌판에 있으면 벌집 될 테니까. 이건 기본이니까 다들 알잖아요.”
시청자들도 긍정했다. 그걸 모를 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그다음에 벌어진 일들이지.
“아예 정보가 없는 놈들도 대충 특징 살피면 예측은 가능하단 말이에요. 레벨에 비해 공격력이 높다? 다른 부분이 떨어지겠죠. 한 방 한 방이 위협적인 놈들은 공격 사이에 공백이 좀 있을 거고.”
드디어 문제의 구간이 나왔다.
“특징을 파악했으면 몬스터의 강점에 대응할 방법이랑 약점을 공략할 방법을 동시에 세우는 거예요. 방금 제가 한 거처럼.”
도진은 후다닥 지나가 버린 자신이 했던 대응들을 친절한 해설을 곁들여서 설명해 줬다.
“공격한 직후면 쿨 돌겠죠? 그동안 최대한 화력을 퍼부어요. 이건 기본이죠? 그런데 이러면 몬스터 AI가 워낙 좋아서 일부는 공격하고 일부는 대기하고 이래요. 이걸 못 하게 하려면 적 일부한테만 날 공격할 각을 주면서 적들 쿨타임을 관리하면 돼요.”
-이게 뭔 소리야?
-그냥 들어. 어차피 우린 서로 이해 못 해.
이쯤에서 시청자들은 해탈했다.
“이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적을 몇 개 그룹으로 나눌 수 있거든요? 이걸 또 잘 관리만 하면 순간적으로 화력 공백을 만들 수 있어요. 그때 날 먼저 공격할 수 있는 놈들부터 순서대로 공격하는 거죠.”
‘내 처리 속도가 적들 준비 속도보다 빠르면 이때 거의 한 번에 다 쓸어버릴 수 있어요’로 설명이 마무리됐다.
-진지하게 설명해 주는 게 진짜 고맙긴 한데…….
-우린 절대 못 쓸 팁이네 ㅋㅋ
-쭉 듣고 나니까 더 어이가 없음. 두두둑 쾅쾅 두두둑 쾅쾅 이러고 끝난 전투에 저런 생각을 다 하고 움직였다고?
-원래 천재형 선수들이 은퇴하고 최악의 감독이 되는 법이지 ㅋㅋ 평범한 재능 가진 선수를 이해 못 하거든.
-도진 님, 근데 한 번에 다 처리 못 해서 공격당했던 건요?
허탈함을 토로하는 사람들 사이로 도진이 설명을 생략한 부분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 나왔다.
“아, 그건 실수였어요. 생각보다 몬스터가 단단해서 처리가 늦어졌는데, 안 되겠다 싶으면 바로 회피나 방어할 궁리부터 해야 하는데 한 방만 더 쏘려고 욕심부리다 그렇게 된 거예요. 원래 마법사는 실수하면 죽어야 돼요. 살고 싶으면 알아서 임기응변으로 살아야 하고.”
-??: 실수했으면 뒤져라. 나 정도 할 거 아니면.
바로 올라오는 채팅에 도진이 억울함을 담아 반박했다.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어요. 모함하지 마세요.”
당연히 반박은 통하지 않았다.
표현을 조금 과격하게 했을 뿐 도진 본인이 한 말을 그대로 옮긴 거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 ㅋㅋ 방금 당신이 그렇게 말했잖아요.
-교수님, 교수님이 하실 수 있다고 학생들이 다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대화가 이어질수록 도진과 시청자 의견은 평행선을 이루었다.
그러다 어느 현자가 명쾌한 답을 도출했다.
-얘들아, 생각해 봐. 저기서 마법사 혼자서 저러고 있는 사람이 우리 말을 이해나 하겠냐 ㅋㅋ
그렇다. 본 장면이 충격적이라서 잊고 있었다.
원래 어려운 걸 더더욱 더럽게 어렵게 바꿔 놓은 균열 던전에 마법사 홀몸으로 입장하는 놈한테 뭘 기대했단 말인가.
-그러네. 혼자 들어갈 때 놀랐던 걸 잊고 있었네.
-ㅉㅉ 무능한 천재 놈들. 범재의 영역은 이해도 못 하죠?
투덜대는 시청자를 본 도진은 억울했다.
기껏 열심히 해설까지 덧붙여서 길게 풀어 줬더니 이런 반응을 보이다니.
“제가 설명에는 소질이 없나 보네요. 딱히 도움이 안 된다니까 이만 방종하겠습니다.”
도진의 방종 선언에 투덜대던 사람들은 싹 돌변했다.
-누구야, 누가 도움 안 된다고 했어?
-와! 엄청나게 도움이 되는걸?
-난 벌써 여기서 본 팁 참고해서 균열 던전 30개 클리어했음.
-뭐? 도진 님한테 배우고 겨우 30개? 난 100개 깼음.
집단 허언증에 걸린 시청자들을 보며 도진은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도움 안 된다고 한 사람이 누구긴 누구예요. 지금 그 말 하고 있는 님이 제일 열심히 채팅친 거 다 봤는데.”
-헉.
“헉은 무슨 헉이야. 어이가 없네.”
웃음과 한숨을 반씩 섞어 뱉은 도진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마냥 도움 안 된다고 생각하면 진짜 그렇게 돼요. 당장 적용하기 힘들면 다운 그레이드를 하든 다른 상황을 가정하든 해서 써 먹을 생각을 해야지. 오늘은 계속 방송 켜 둘 테니까 계속 보면서 각자 건질 거 건지세요.”
시청자들은 매우 착해졌다.
-네, 네, 교수님!
-벌써 많이 배웠어요!
-ㅎㅎ 너무 유익한 교육 방송이네요.
손바닥 뒤집는 것도 저거보다는 어렵겠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도진은 다시금 사냥에 나섰다.
방금 죽인 건 균열의 문지기쯤 되는 놈들이었다.
균열 중심부로 향할수록 위험한 전투가 이어졌다.
도진은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난이도 속에서 일반, 엘리트, 보스를 차례로 격파했다.
특히 보스의 난이도는 미친 수준이었다.
기본적인 형태는 가시를 쏘던 다른 놈들과 똑같았으나 땅속이 물속이라도 되는 거처럼 지하에서 헤엄쳐 다니는 놈이었다.
가진 모든 능력을 사용하고, 마지막에는 「한정회귀」로 그걸 한 번 더 반복한 끝에 겨우 잡을 수 있었다.
치열했던 만큼 전투 속에는 명장면이 한가득 담겨 있었고, 그걸 실시간으로 본 시청자들은 잔뜩 흥분했다.
-그래. 공략이 뭐가 중요함? 이런 거 보여 주면 됐지.
-왜 법사 새끼들이 진뽕 잔뜩 들어서 돌아다니는지 알겠네 ㅋㅋ 편집빨이 아니라 진짜 이렇구나.
-몰랐음? 가끔 라이브 할 때 보면 편집본보다 더 쩔었는데. 편집돼서 올라오는 건 보기 좋게 다듬어져서 나름의 맛이 있는데, 이쪽은 현장감이랑 긴박감이 미쳤음 ㅋㅋ
도진이 방송을 종료하기도 전에 방송의 장면 장면이 편집되어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억울함을 토로하는 도진]
[학생 마음을 전혀 모르는 교수님]
[그냥 잘생겨서 올림]
[땀 훔치는 도진, 머리 정리하는 도진, 한숨 쉬는 도진]
[돌아 버린 고인물이 싸우는 방식]
그리고 도진은 다음 날에도 방송을 켰다.
“생각해 봤는데 제가 가르치는 방식이 잘못된 거 같지가 않아요. 아마 님들도 보다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반복 학습을 하다 보면 다 비슷하게는 하게 돼 있다니까요?”
도진은 이벤트 기간 동안 웬만하면 방송을 켜겠다고 약속했다.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겠다면서.
그리고 도진은 매일 명장면과 명대사를 쏟아냈고, 자신이 틀렸음을 분 단위로 증명했다.
사냥과 방송이 진행될수록 ‘텅 빈 열쇠’의 충전량은 착실하게 쌓였으나 도진의 교수능력(敎授能力)에 대한 믿음은 밑바닥을 쳤다.
하지만 그럴수록 구독자나 팬 유입은 늘어났다. 억울해하는 모습이 친근하고 귀엽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