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35화 (235/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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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의 영상은 사람들의 관심을 생산하는 공장과 같았다.

자신에 대한 관심은 물론이고, LOST에 대한 관심, 마법사에 대한 관심 등.

관련된 분야 전반에 걸친 대중의 관심을 끌어들이는 자석과 같았다.

이렇다 보니 그걸 먹고 사는 LOST 크리에이터들 입장에서 도진은 고마운 존재였다.

전투 심층 분석 영상을 만들어 올리면 조회 수가 팍팍 나오고, ‘당신이 모르는 도진의 12가지’ 같은 영상도 잘 팔렸다.

평소에는 찬밥 신세인 마법사 정보 채널도 유입이 더 잘되기도 했고.

이런 이유로 도진 채널에 12편의 영상이 다 올라간 뒤로도 한동안 세상은 그 이야기로 시끌시끌했다.

하지만 화제의 중심이자 당사자인 도진은 벌써 한참 전에 그쪽에서 관심을 끈 지 오래였다.

딱 사흘. 도진은 그만큼만 인기를 즐기다 일상으로 돌아왔다.

사냥터와 던전, 모험가 길드 퀘스트로 성장하고, 쌓인 전리품을 처분하고, 스펙 향상을 위해 이것저것 건드리는 게이머로서의 일상으로.

모든 게 순조롭다.

멸망교단한테는 엿을 먹였고, 현실은 알아서 잘 돌아가고 있다.

친구들도 잘 지내고 있다.

테레사는 떡상한 본인 방송과 채널을 챙기느라 바빠 보인다.

탄토도 가끔 방송을 켜서 수금을 달달하게 챙기고 있고.

딱 봐도 모든 게 좋았다.

당장 도진의 신경을 거슬리게 할 건 없어 보였다.

하지만 현재 도진의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다.

‘오늘도 안 들어와?’

벌써 한참이 지났음에도 이번 퀘스트의 보상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기본적인 보상은 바로 들어왔었다.

[퀘스트 클리어 과정에서 가장 높은 기여를 했습니다. 특별 보상 정산 작업이 진행 중이오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이거였다.

특별 보상을 준다고 해 놓고 아직 주질 않는다.

뜰 때도 이상할 정도로 뒤늦게 메시지가 뜨더니, 빌어먹을 정산 작업이 한 달이 넘게 지나도록 끝나지 않다니.

‘버그인가?’

매일 접속하자마자 띄우는 창이 요즘은 이거였다.

뭐라도 달라졌나. 진행된 사항은 없나. 내 보상은 언제 주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접속한 순간만 그런 게 아니었다.

사냥하다 쉴 때, 포션을 마실 때, 어디로 걸어갈 때, 모험가 길드에서 대기할 때 등등.

틈만 나면 슥 띄워서 확인하는 게 버릇이 됐다.

그게 쌓이고 쌓이다 오늘 터졌다.

“미친 새끼들 아냐, 이거. 뭐 나 늙어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뭐야?”

옆에서 보면 허공에 대고 화를 내는 미친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사정을 알고 나면 다들 고개를 끄덕거릴 것이다.

도진은 한국인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빨리빨리’의 나라로 유명한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이 이 정도 딜레이를 참았으면 박수를 받아 마땅한 참을성이었다.

“얼마나 대단한 걸 주려고 이렇게 굽는 거야? 아주 그냥 새까맣게 탄 걸 주겠다는 건가?”

뫼비우스 이 새끼들은 문의해 봤자 ‘이상 없음. 게임에 관련된 어떤 정보로 도움을 줄 수 없음. 그게 원칙임 ㅅㄱ.’ 이럴 게 뻔하고.

다른 게 짜증 나는 게 아니었다.

사실상 언젠가는 받겠지 하는 마음으로 잊고 사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게 짜증 나는 거지.

‘후우, 그래. 스트레스 받아 봐야 나만 손해지. 이거 없다고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훅 하고 튀어 오른 분노 게이지를 조절하며 도진은 메시지를 치워 버렸다.

당장 조금 있다 다시 확인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일단 신경 끄고 살자는 다짐을 해 본다.

그런데 다짐을 하기 무섭게 요란한 알림과 함께 메시지가 떴다.

평범한 메시지는 이렇게 요란한 알림을 동반하지 않는다.

이건-

‘월드 메시지?’

뫼비우스든, 아니면 로스타니아든, 이 세계 전체에 무언가를 알릴 때 울리는 종류의 소리였다.

[월드 이벤트 알림]

역시나 예상이 맞았다.

요란한 이펙트와 함께 뜬 건 월드 메시지였고, 내용은 월드 이벤트였다.

월드 이벤트. 얼핏 봐서는 이상할 게 없다.

도진의 개입으로 월드 보스 레이드(갈란테)가 한 번 끼어든 걸 감안해도 다음 월드 이벤트가 진행돼도 이상할 게 없는 시기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 알맹이였다.

[월드 이벤트 ‘차원 연결’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이벤트 기간 동안 로스타니아에 등장하는 모든 균열 던전이 업그레이드됩니다.

더욱 다양한 형태의 몬스터가 등장하고, 난이도와 보상 모두 강화됩니다.]

도진의 기억에 이건 현 시점에 진행되지 않은 이벤트였다.

‘이 시기쯤 월드 이벤트가 있긴 했어. 근데 그건 크라켄 퇴치였는데?’

어마어마한 크기의 크라켄과 놈들 따라서 나타난 엄청난 수의 해양 몬스터 떼.

그것들을 퇴치하기 위한 모험가 길드 차원의 원정이 도진이 기억하는 다음 월드 이벤트였다.

그런데 갑자기 차원 연결에다 균열 관련 이벤트라니?

거기다 단순히 균열도 아니고 ‘차원’이 언급됐다.

이 단어는 균열 현상의 빈도와 강도 모두가 과열된 끝에 대참사가 몇 번 발생한 후에나 언급될 단어였다.

월드 이벤트 때나 볼 수 있어야 할 대규모 균열 사태가 일상이 되어 버릴 몇 년 뒤의 미래에나 말이다.

‘멸망교단을 자극해서? 아냐. 지금 놈들한테는 이 정도 사이즈의 사고를 칠 능력이 없어.’

그럼 단순히 월드 보스 레이드가 한 번 진행됐으니 그로 인해서 다음 순서의 월드 이벤트 내용이 바뀐 걸까?

이런 도진의 희망회로는 가동 시작과 동시에 바로 부서졌다.

[퀘스트 기여도 및 보상 정산 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아무리 노려봐도 변화라고는 없던 퀘스트 보상 정산 메시지가 강제로 팝업됐다.

[이번 보상에는 지금까지 쌓은 모든 기여도가 함께 반영되었습니다.]

[세계의 운명을 많은 부분에서 바꿔 놓은 당신에게 또 한 번 변화를 일으킬 기회가 주어집니다.]

[‘텅 빈 열쇠’를 획득했습니다.]

시간을 있는 대로 끌던 보상 정산이 순식간에 완료됐다.

우연? 바보도 아니고.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이런 의미심장한 문구로 도배된 메시지를 받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리가 있나.

‘이건 무조건 연계되어 있는 거다.’

이걸 기다리느라 시간을 그렇게 끈 거였나.

도진은 인벤토리에 들어온 보상을 꺼냈다.

손바닥 크기의 투명한 큐브였다.

[텅 빈 열쇠]

[무언가를 열기 위한 열쇠.

지금은 텅 비었기에 무엇도 열 수 없다.

하지만 다시 열쇠를 가득 채울 수 있다면 다른 방법으로는 열 수 없는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도진은 이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차원 던전의 열쇠군.’

다른 세계의 장소와 생물이 경계의 벽을 넘어 균열 현상이 되기 전.

세계의 경계를 넘으며 손실과 약화를 겪지 않은 강력한 적을 조우하고, 그만한 보상을 얻을 기회를 주는 열쇠다.

‘이것도 지금 타이밍에 볼 수 있는 물건은 아니지.’

투명한 큐브 형태의 열쇠를 바라보고 있으니 정말 자신이 많은 걸 바꿨음이 실감됐다.

단순히 운명을 바꿨다는 메시지를 볼 때와는 느낌이 아예 달랐다.

‘흐름이 빨라졌다.’

이건 세계의 페이즈가 바뀐 수준의 변화다.

도진은 설렘과 불안과 답답함을 동시에 느꼈다.

갑작스럽고 급진적인 변화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감당 못할 위기가 될 수도 있다.

균열 빈도의 증가야 이번 생에도 몇 번인가 있었지만, 당장 이번 월드 이벤트부터는 그 난이도가 달라질 거다.

이는 유저들에게 성장의 기회가 될 수도 있겠지만, 밀리는 순간 다른 차원에서 온 몬스터들이 터를 잡고 영역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 안에서 내 역할은 뭐고, 이건 어떤 식으로 쓰라고 준 걸까.’

별 의미 없을지도 모른다.

아주 많은 의미가 담겨 있을지도 모르고.

떠오르는 게 너무 많아 뭐가 진실에 가까운 추측일지 알 길이 없다.

‘결국 코앞에 닥친 일부터 차례대로 처리하는 수밖에 없겠군.’

회귀자는 회귀자인데 미래를 너무 바꿔 버려서 미래를 모르는 회귀자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는 것이었다.

뭘 하라고 쥐여 준 건지는 몰라도, 일단 텅 빈 열쇠로는 아무것도 못 할 테니 사용할 수 있게 충전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걸 충전하는 방법은 차원의 힘을 지닌 것들을 갈아 넣는 거였다. 즉, 균열 몬스터를 처치하고, 균열 던전을 닫으면 알아서 충전된다는 소리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차원 연결 이벤트는 그냥 이걸 충전하라고 벌인 판인 거 같은 느낌이야.’

정말 그런 거라면 도대체 얼마나 큰 게 오려고 월드 이벤트를 이런 수단으로 쓰는 거지?

도진은 그게 궁금했다.

* * *

“팀장님, 저희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요?”

직원의 물음에 팀장이 한숨을 섞어 대답했다.

“모르지. 근데 어쩌겠냐. 시키면 하는 거지.”

“그래도… 저 유저가 쌓은 운명을 전부 써서 이런 일을 벌인다는 게…….”

보상 정산이 오래 걸린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대화를 나누는 둘과 다른 많은 직원들이 도진이 지금까지 쌓은 각종 포인트를 횡령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이번 운명 퀘스트에서 발생된 부분까지 빼돌려서 보상을 다른 형태로 개조하느라 시간을 잡아먹었던 것.

이번에는 특히 세계에 처음으로 멸망이 아닌 결말의 가능성이 생긴 타이밍이었기에 쌓인 포인트가 엄청났다.

‘유저한테 가야 할 보상 생성에 쓸 자원을 월드 이벤트를 변형하는 데 쓰는 게 맞아……?’

직원은 불안한 눈으로 자신이 작성한 메시지를 봤다.

[세계의 운명을 많은 부분에서 바꿔 놓은 당신에게 또 한 번 변화를 일으킬 기회가 주어집니다.]

팀장도 같은 문장을 가리켰다.

“기회를 보상으로 줬다고 생각해야지.”

“너무 큰 기대를 거는 거 아닐까요? 전 불안해요.”

직원의 말에 팀장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자신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너무 큰 도박이다. 우리 쪽 장비로는 결과 예측도 안 되는 수준이라니.’

끔찍하게 많은 변수가 없다시피 한 정보는 운명 계산식을 먹통으로 만들다시피 했다.

더 좋은 장비로 굴려 보면 다를지 모르겠지만, 이미 그런 걸 따져야 한다는 거 자체가 문제다.

가장 높은 확률이 31퍼센트라니. 이 정도면 그냥 ‘모르겠음’이라고 쓰여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됐어. 우린 시키는 대로 한 거니까 그냥 지켜보면 돼.”

팀장은 애써 침착한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며 말을 덧붙였다.

“우리 나름대로 열심히 판을 짰잖아. 무난하게 진행되면 진 이 유저도 결과적으로 더 큰 보상을 얻게 될 거야.”

차원 연결 이벤트가 무사히 진행되고, 열쇠도 충전하고, 굵직한 차원 던전을 처리하는 쪽으로 그림을 그린 걸까?

아니, 그런 것보다.

‘정말 자기들 생각대로 진행될 거라고 생각한 건가?’

그냥 진을 믿고 기다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아니, 너무 믿어서 문제인 걸지도.’

도대체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있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변수 덩어리 상황 속으로 던져 넣을 수 있는 건지.

‘후우, 어쨌든 상황 끝나기 전까지는 제대로 자긴 글렀군.’

팀장은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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