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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이 머리를 처리하기 위해 총통 관저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아수라장이었다.
멸망교단이 끝까지 수작질을 부리고 떠난 탓에 관저에 있는 자들 반수 이상이 집단 광증을 일으킨 상태였던 것.
혼란을 틈타 총통 암살을 시도했던 알토스와 동지들, 여전히 총통에게 충성하는 자들, 광증에 몸을 맡긴 좀비 같은 자들이 서로를 죽여 대는 현장은 혼란했다.
한데 총통은 이미 자기 책상 앞에서 엎어져 죽어 있었다. 무슨 일을 당했는지 코로 뇌수를 줄줄 흘린 상태로 말이다.
이미 죽은 자를 죽이려고, 또 지키려고. 서로가 서로를 죽여 대며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시체만 있으면 된다. 독재자가 어떤 식으로 죽음에 이르렀든 ‘죽음’만 있으면 혼란을 수습하는 데 도움이 되니 말이다.
한데 가뜩이나 바쁜 와중에 죽은 총통을 본 알토스가 자살을 기도했다. 도진으로서는 상상도 못 한 전개였고, 다른 생각을 하느라 바빠 반응도 못 했다.
그때 반응을 한 건 케이트였다. 그녀는 이럴 줄 알았다는 눈으로 바로 알토스에게서 총을 빼앗더니 그를 바닥에 짓눌러 제압했다.
「혼자서 편해질 생각하지 마십시오!」
케이트의 일갈은 매서웠다.
이후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니 어릴 때 자신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다면서 횡설수설하는 거 같았지만, 도진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죽은 총통 시체 가지고 여기저기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소요를 가라앉힐 궁리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그런 데 신경 쓸 시간이 어디 있었겠나.
죽은 총통은 착했다. 독재자의 시체는 빠르게 상황을 종식시켜 나갔고, 이윽고 총통 관저는 쿠데타 세력에 의해 장악됐다.
멸망교단이라는 격한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온 혁명이 끝이 났다.
* * *
뫼비우스사(社) 775 모니터링 팀.
직원 한 명이 심각한 표정으로 복잡한 숫자가 나열된 화면을 바라봤다.
무언가를 계산하는 듯 화면 속 숫자는 계속해서 바뀌고 있었다.
그러다 맑은 소리를 내며 계산 작업을 끝낸 화면이 어떤 숫자를 표시했다.
그걸 본 직원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직원은 책상에 있는 버튼을 누르고는 상사를 찾았다.
“팀장님!”
【…무슨 일이야?】
자다 깬 듯한 목소리로 팀장이 답했다.
팀장의 목소리에는 졸음보다 긴장감이 더 많이 묻어나왔다.
지금 이 직원이 어떤 걸 모니터링하고 있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이번 퀘스트가 진행되는 동안 플레이어에게 출력됐어야 할 시스템 메시지가 70퍼센트 이상 출력되지 않았습니다.”
빠르게 몸을 일으키는 소리가 났다. 팀장이 일어나는 소리였다.
잠시 후 모니터링 룸에 팀장이 들어왔다.
“정확히 몇 퍼센트야?”
“아직 정확한 계산은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추정치만 해도 최소 72퍼센트는 됩니다.”
팀장의 눈썹이 꿈틀하고 경련했다.
“이전 퀘스트에서는 95퍼센트 넘게 제대로 출력됐었지?”
“네. 저희가 따로 입력하지 않은 것만 해도요.”
갑작스레 플레이어에게 출력돼야 할 시스템 메시지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이 현상이 의미하는 것은 명백했다.
“벌써 동화됐다는 건가…….”
플레이어가 로스타니아에 녹아들었다.
로스타니아가 이 플레이어, 도진을 로스타니아에 속한 자로 여기기 시작했다는 거다.
로스타니아의 존재에게 시스템 메시지를 출력하지 않는 거처럼 도진에게도 그것들이 생략되는 것.
“아니지. 이미 너무 많이 바꿨지.”
팀장이 고개를 돌렸다.
그쪽 화면에서도 계산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미 정해져 있던 운명이 얼마나 새로운 가능성을 품게 되었는지에 대한 계산이다.
팀장의 시선이 닿은 순간에는 어지러운 문자열만 보였다.
하지만 몇 초 뒤 그쪽도 결과값을 표시했다.
[50.1]
팀장과 같은 걸 보고 있던 직원이 입을 열었다.
“넘었… 어요! 절반을 넘겼습니다!”
지금까지 도진은 수많은 변수를 만들었다.
여러 사람과 사건의 운명을 바꿨다.
하지만 결말이 바뀐 건 아니었다.
도진이 만든 변수는 컸다. 그러나 정해진 결말로 향하려는 세계와 운명의 항상성이 지닌 힘이 더 컸다.
그런데 방금 전. 도진이 루마누스 공화국의 미래를 바꾼 순간 고정되어 있던 결말이 사라졌다.
정확히는 그 미래로 향하지 않을 가능성이 생겼다.
팀장은 직접 운명 계산식을 다시 가동했다.
키워드는 바뀐 세계의 예상 결말.
[새롭게 바뀐 예상 결말은 ‘멸망’입니다.]
팀장이 ‘아…….’ 하는 탄식을 뱉었다.
그러나 곧 눈빛이 살아났다.
‘가능성이 생겼다는 게 중요하다.’
‘예상’ 결말이 어디인가.
이전까지는 명확하게 정해진 결말이 있을 뿐이었다.
“역시… 겨우 절반을 넘긴 걸로는 변하는 게 없는 걸까요?”
우울하게 묻는 직원에게 팀장이 말했다.
“절반을 넘긴 거 자체가 기적이다. 거기다 이렇게 빠른 시점에 불확정성을 손에 넣었다는 건 앞으로 더 많이 바뀔 여지가 있다는 거야.”
“하지만 세계의 운명에 진짜 발을 담근 입장이 되면 난이도는 더 올라가지 않을까요? 세계율이…….”
“그만큼 이겨 냈을 때 얻어내는 게 많아지겠지. 이겨 낼 수만 있다면 더 많은 변화를 가산해 줄 거야.”
팀장은 직접 계산된 내용을 보고로 올렸다.
그러자 즉시 새로운 명령이 내려왔다.
[뫼비우스 소속 159 모니터링 팀의 임무 변경.
기존 LOST 플레이어 ‘도진’ 모니터링을 수행하던 인원 전원은 플레이어 ‘도진’ 특별 관리에 전념해 주십시오.]
이후 주르륵 세부적인 사항들이 나열되었다.
[1. 플레이어에게 출력되어야 할 시스템 메시지 등 시스템의 보조 기능을 대신 수행할 것.]
도진에게 뜨는 시스템 메시지가 줄었다는 건 곧 시스템의 보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됐음을 의미했다.
도진이 플레이어로서 불편을 겪게 되는 건 필연인데,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뭔가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리고 그건 인력을 갈아 넣는 것이었다.
“이거 설마 저희보고 떠야 할 메시지를 그때그때 맞춰서 작성해서 띄우라는 건 아니겠죠……?”
턱. 팀장이 부하직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원래도 하던 거잖아.”
아까 말했듯 도진은 이미 4퍼센트가 조금 넘는 정도의 시스템 메시지가 누락되고 있는 유저였다.
그걸 누가 메웠겠나. 여기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그건 중요한 퀘스트를 진행할 때만 신경 썼던 거죠. 그것도 누락되는 거 전부도 아니고 꼭 필요한 부분이 비면 그때만 임기응변을 하면 됐었던 건데……!”
직원은 살려 달라고 비명 지르는 자의 눈으로 소리쳤다.
“지금은 갑자기 누락되는 것만 70퍼센트가 넘어간 상황이잖아요! 이번처럼 원래는 없던 퀘스트를 진행할 때는 누락율이 87퍼센트가 넘습니다! 거기다 앞으로 더 누락되어 갈 걸 생각하면…….”
희망이 생긴 건 좋다. 그런데 자신한테도 희망이 있어야지.
오늘은 잘 수 있다는 그런 소박한 희망 말이다.
무한히 이어지는 띠 안에서 이게 뭐란 말인가.
거의 울먹이는 직원에게 팀장이 위로를 담아 말했다.
“후우. 앞으로는 최소 2명, 가능하면 3명이 같이할 수 있게 인원을 조정해 달라고 해 볼게. 그러면 일을 나눠서 할 수 있으니 어느 정도 대처가 되겠지.”
“그게 가능할까요?”
“아마도 가능할 거다.”
팀장은 아직도 떠 있는 ‘예상’이란 글자를 보며 말했다.
“이렇게 빠른 시점에 이 정도 성과가 나온 건 처음이니까.”
그러니까 당장 누락되고 있는 메시지를 어떻게 작성할지나 고민하란 말이야, 지금은.
팀장은 눈으로 부하를 압박했다.
* * *
뒷수습을 하면서도 이상했다.
뒷수습을 어느 정도 끝내 가고 있는 지금은 더 그렇고.
‘이번 퀘스트는 알림이 왜 이렇게 안 떴지?’
생각해 보면 지금만 이상한 게 아니었다.
몰입해 있느라 신경을 안 쓰고 넘겼지만, 생각해 보니 이번 퀘스트는 퀘스트 메시지든 다른 알림 메시지든 제대로 뜨질 않았던 것 같다.
‘LOST가 아무리 시스템 메시지가 제멋대로 뜨고 형식도 매번 바뀐다지만…….’
꼭 떠야 할 때는 뜨는 게 LOST인데.
도진은 지난 메시지 로그를 확인했다.
정말 출력된 이력 자체가 별로 없었다.
심지어 이번 퀘스트는 구간별로 갱신조차 제대로 안 된 상태.
혹시 뭐 오류라고 생긴 건가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메시지가 떴다.
[게임을 플레이한 지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과도한 게임이용은 정상적인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수 있습니다.]
뭐야, 이거. 이번 운명 퀘스트 관련된 내용일 줄 알았더니 웬.
어이가 없어 하는 도진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케이트였다.
“떠난다고?”
보자마자 하는 소리가 이거였다.
그녀의 말대로 도진은 이제 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싸울 일은 끝났고, 이곳에 멸망교단은 없다.
쿠데타 이후에 닥칠 정치적 혼란과 다양한 문제들은 알아서들 해결해야 할 문제.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없다.
그래서 조용히 가려고 했는데… 아마 아까 마주쳤던 데닉한테 얘기를 했더니 저쪽까지 흘러 들어간 모양이었다.
“가야지.”
“전투 끝난 지 몇 시간이나 됐다고 벌써 떠난다는 거야?”
“더 할 일이 없잖아.”
“이 정도 했으면… 조금이라도 멀쩡해지는 모습은 보고 가야지.”
“그걸 언제 기다리고 있어?”
루마누스 공화국이 안정되려면 한참 멀었다.
당장 누가 다음 머리가 될지도 정해지지 않아서 서로 눈치를 보는 게 보이는데.
이 나라는 살아난 게 아니다. 살아날 기회를 얻은 거지.
도진은 거기까지 개입할 생각은 없었다.
“알토스는?”
“진정됐어. 적어도 공화국이 다시 안정될 때까지는 역할을 하기로 약속했고. 그 이후에는 여기에 자신이 남아 있어 봐야 불화의 씨앗만 될 거라면서 떠난다고…….”
눈을 보니 그때 같이 떠날 생각인가 보네.
하긴 예전부터 혁명군과 함께했다 해도 독재자의 아들이 계속 남아 있어 봐야 좋은 꼴은 못 보겠지.
법정에서 부친에 대한 증언이나 한 뒤에 떠나는 게 나을 거다.
“고마웠어.”
그런 생각을 하는 도진에게 불쑥 케이트가 말했다.
갑작스러운 말에 도진은 잠시 굳었다가, 적당한 말을 돌려줬다.
“잘 지내. 어딜 가서든. 그리고… 땅에 묻었던 건 미안했다. 그래도 그건 정당방위였어.”
케이트가 어이없는 눈으로 도진을 봤다.
지금 그게 할 말인가?
“도진아, 다 끝냈어!”
그때 제국으로 돌아갈 채비를 마친 도진의 동료들이 왔다.
도진은 훌쩍 그쪽을 향해 걸었다.
케이트는 자신들의 운명을 바꾼 마법사의 뒷모습을 보았다.
“벌써 떠나신다니, 이게 무슨 소립니까!”
그때 우르르 레지스탕스 대원들이 몰려왔다.
범인은 그들 사이에 섞여 있는 데닉이었다.
“하아…….”
도진은 한숨을 쉬며 달릴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