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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32화 (232/271)

232

실시간으로 드러나는 루마누스 공화국군의 무능함은 사실 당연한 현상이었다.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실력이 곧 위로 올라가는 데 필요한 전부인 나라의 군대가 제대로 돌아가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겠나.

더 많은 뇌물을 걷어 위로 올려 보낸 자들이 안전하고, 쉽고, 더 많은 권한을 지닌 자리에 앉는 구조.

이런 구조 속에서 진짜 군인은 계급이 올라가도 일이 많고 중심 권력에는 접근 못 할 곳으로 좌천되어 왔다.

그런 식으로 인적 자원을 거르는 거름망이 계속해서 작동해 온 것이다. 그것을 쌓아 보여 주는 무능은 연기나 과장 같은 가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무능함과 멸망교단의 사력을 다한 패악질은 별개였다.

“도진아! 키메라가 계속 넘어오고 있는데?”

전장의 소음을 뚫기 위해 소리쳐 말하는 테레사.

그녀의 말대로 벽 너머의 소요에도 불구하고 인간형 키메라는 계속해서 벽을 넘어 전장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키메라의 3분의 1쯤 되는 수가 전장에 뛰어들고 얼마 안 가 스스로 붕괴해 죽을 만큼 품질은 최악이었지만, 물량 자체가 많아 문제다.

거기다 품질 떨어진 키메라라 해도 퀘스트가 진행되며 레벨이 스케일링된 것인지 플레이어가 상대하기에는 더 질겨졌다.

‘뚫어야겠어.’

도진은 이 사태를 최소한의 죽음으로 마무리할 길을 찾기로 했다.

“넘어가자!”

도진이 벽 쪽으로 방향을 잡고 외쳤다.

“잠깐- 그렇게 갑자기……!”

다른 방향에서 날아드는 위협에 대응하던 테레사가 쾅- 하고 무언가를 쳐내고는 도진 뒤를 따랐다.

“탄토 형은 여기서 키메라들을 처리해 줘!”

따라붙는 탄토에게 도진이 부탁했다.

탄토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은신에 들어갔다.

“아네모네, 소소 누나 좀 부탁해!”

달리면서 아네모네를 소환했다.

벽을 오를 능력이 부족한 소소를 위해서.

도진은 테레사를 발판 삼아 도약했다.

“헉!”

“뭐, 뭐야!”

벽 위쪽 상황은 참으로 볼 만했다.

프레깅이라도 일어난 건지 중년 남자의 뒤통수에 구멍이 뚫려 있고, 젊은 병사들은 그 중년 남자의 시체를 뒤지고 있었다.

도망치기 전에 죽인 상관의 금품이라도 훔치려고 한 걸까?

“우, 우아악!”

병사 하나가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도진에게 총구를 돌렸다.

탕- 하는 소리가 났지만, 도진은 멀쩡했다.

총구를 돌리는 순간 병사의 미간에 이미 도진이 만든 날카로운 얼음이 꽂혔기 때문이었다.

탄은 위를 향해 발사됐다.

“우, 우린 싸울 생각이 없습니다!”

그걸 본 병사들은 일제히 총을 버리며 손을 번쩍 들었다.

보면 안다. 싸우기 싫다고 상관 머리에 구멍 뚫고 도망칠 여비를 마련하는 중이었던 건.

“하던 거 마저 해.”

그래. 저 키메라를 보고도 끝까지 싸우겠다고 드는 놈들보단 낫다.

저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하는데 무슨 말을 하겠나.

“히익!”

아네모네가 소소를 태우고 올라왔다. 커다란 늑대를 본 병사가 주저앉아 소변을 지렸다.

테레사는 도진이 벽 위에 올라섬과 동시에 내려 줬던 밧줄을 타고 올라왔다.

도진은 벽 안쪽으로 뛰어내렸다.

소소를 태운 아네모네도와 테레사도 그를 따라 밑으로 내려갔다.

그들이 사라진 벽 위에서는 다시 병사들의 바쁜 작업이 재개됐다.

* * *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곤란할 일은 없었다.

키메라가 오고 있는 루트를 역으로 추적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나 방향을 고민할 일이 없다 해서 난이도가 쉬운 건 아니었다.

전장으로 합류하기 위해 이동 중인 키메라와 연속으로 싸워야 했고, 군인들과의 교전도 피할 길이 없었다.

연속된 전투로 지친 호흡을 억지로 정돈하며, 테레사가 중얼댔다.

“헨젤과 그레텔도 아니고…….”

그걸 들은 도진이 피식 웃었다.

“그건 과자였지.”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건 과자로 만들어진 줄이었다.

사람으로 만든 키메라가 아니라.

뭐, 띄엄띄엄 길을 표시하는 걸 따라간다는 면에서는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잔혹동화에도 이런 건 안 나오겠지.”

키메라들의 이동 경로를 되짚은 끝자락에는 커다란 창고나 공장 혹은 교도소처럼도 보이는 건물 몇 채가 있었다.

‘기분 나쁠 정도로 조용해.’

방금 전까지는 저기서 나오는 키메라와 사방팔방에서 덮쳐오는 군인들로 정신이 없었다.

몬스터 웨이브를 뚫고 전진하는 기분이었다고 해도 좋다.

그런데 이 앞에 선 순간 모든 게 뚝 끊겼다.

도진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함정이 있을지 모르지만, 어차피 극복해야 하는 난관이라 생각하면서.

그런데 들어간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넓은 공간 가운데에 쓰러져 있는 여자를 제외하면.

가장 먼저 반응한 건 테레사였다.

“아직 살아 있어!”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여자의 등을 보고서 구하려고 뛰어나가려 했다.

“아냐.”

그런 테레사를 도진이 막았다.

저 여자는 이미 죽었다.

도진의 눈에는 보였다.

언데드에게서만 보이는 마나 파장이.

저건 죽은 자를 되살리는 마법의 흔적이었다.

“…안 속네?”

여자의 목이 이상한 각도로 꺾이며 도진 일행을 보았다.

빠지직, 빠지직- 하는 소리를 내며 여자가 일어났다.

사후경직으로 굳은 몸을 억지로 움직이는 바람에 몸 이곳저곳이 망가지며 나는 소리였다.

“아아- 정말 비참한 기분이야. 이런 못난 몸뚱이에 빙의해야 하는 내 심정을 누가 알까.”

여자가 한숨을 포옥 쉬었다.

도진은 턱에 힘이 들어갔다.

아마도 저 여자에 빙의한 놈이 이번 일을 일으킨 장본인일 터.

그런 놈이 저런 소리를 하고 있으니 명치 아래에서 불이 일어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화풀이를 할 수는 없다.

‘이미 다 떠났어. 여기에 남은 건 저거 하나다. 날 조롱하려고 하는 짓이겠지만, 거기에 놀아나는 척을 해서라도 정보를 얻어야 해.’

그렇게 생각하며 도진이 물었다.

“너냐?”

“나지.”

여자의 입꼬리가 찢어졌다.

정말 기분 나쁜 웃음이었다.

역겨운 웃음을 짓고서, 여자가 박수를 쳤다.

턱, 턱, 턱, 턱. 굳은 시체의 박수는 둔탁한 소리를 냈다.

“축하해. 이번에도 우리 일을 방해하는 데 성공했구나. 정말 대단해~ 벨라의 졸개님. 그런데…….”

여자가 양팔을 벌렸다.

“네 입장에서 이게 승리라고 할 수 있을까? 말랑말랑한 벨라 밑에서 구르는 입장에서 말이야. 아니지! 넌 진 거야! 우리도 실패했지만, 너도 같이 실패했어!”

그와 동시에 주변이 일렁였다.

‘환영?’

환영을 깔아 주변을 가려 뒀던 것이다.

전체를 환영 결계로 뒤덮은 건 아니었다.

진입로부터 딱 이 지점까지만 환영의 벽을 쳐두면 어차피 못 보는 건 마찬가지이니.

별거 아닌 마법으로 대규모 마법에 준하는 효과를 모방하는 간단한 트릭이었다.

“……!”

그 간단한 트릭이 가리고 있던 건 끔찍한 현장이었다.

이곳에서 학살당한 자들의 유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육가공 공장에서나 볼 법한 갈고리에 걸린 고깃덩이들은 인간의 것이 태반이었다.

가려져 있던 악취가 도진 일행을 덮쳤다.

“아하하하- 표정들 좀 봐! 이별 선물로 충분한 낯짝들이야!”

죽은 여자의 몸에 빙의한 쓰레기가 자지러지게 웃었다.

“이름이 뭐냐.”

도진이 서슬 파란 기색으로 물었다.

“팔라키아.”

웃음을 뚝 그친 팔라키아가 대답했다.

팔라키아. 처음 듣는다.

도진이라고 여섯 성자에 대해 모든 걸 아는 건 아니었다.

전면에 드러난 적이 없는 자들도 있기 때문.

하지만 지금 들었다. 아마도 전생에 멸망교단이 키메라를 가지고 쳤던 장난 뒤에는 저놈이 있었겠지.

“기억하지.”

“해야지. 나도 널 기억할 거거든. 너는 거기 옆에 있는 것들이랑 섞어 줄게. 물론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말-”

도진은 화염포로 죽은 여자를 치웠다.

어차피 분노를 참으며 대화를 이어 가 봐야 더 정보를 뱉을 놈이 아니다.

거기다 주변에 쌓인 시체 더미 안에서 키메라가 기어 나오고 있다.

“이건 좀 숫자가 버거울 정도로 많은데?”

테레가사 굳은 얼굴로 말했다.

도진은 그녀에게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진리의 서가 갑자기 빛을 냈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지하에서 두웅- 하고 마력의 울림이 느껴졌다.

아래에 뭔가 있다.

깨닫기 무섭게 전방의 바닥이 무너지며 무언가가 기어 올라왔다.

거대한 식물에 사람과 동물과 벌레 등을 박아 넣어 만든 괴물이었다.

꿈틀꿈틀 움직이는 식물에 박힌 살점들은 징그러운 꽃처럼 보였다.

‘정말…….’

너희는 좋은 기억이 될 생각이 없구나. 전생이나 지금이나.

도진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키메라들이 달려든다.

거대 식물 키메라도 줄기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주변을 쓸어버리려 했다.

《깨어난 저주》

도진이 감았던 눈을 떴다.

동시에 잠들어 있던 저주도 함께 깨어났다.

범위 안의 적에게 자동으로 적용되고 있던 「잠든 저주」가 적의 능력을 빼앗아 도진에게 옮겼다.

《초월》

거기에 더해 도진은 자신의 모든 걸 불사르는 「초월」까지 발동했다.

이외에도 자신이 쓸 수 있는 모든 걸 사용한 도진은 금색과 흑색, 적색 마력을 발산했다.

그건 마치 가까이서 보는 태양과 닮아 있었다.

-크악?

도진이 주변에 냉기를 방출했다.

키메라들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생존본능에 의해 순간적으로 당황한 그것들은 움찔 뒤로 물러나려 했다.

그러나 그것들 머리에 하얀 광점이 찍히는 게 먼저였다.

퍼버버버벙-

다섯 개의 광점이 터지는 걸 시작으로 연속해서 키메라들의 머리에 「섬광창」이 만드는 광점이 찍히고, 또 폭발했다.

여러 개의 강화 효과를 중첩하여 곱연산의 곱연산을 거듭한 도진의 능력은 어마어마했다.

그런 도진의 모습에 죽음의 위협이라도 느낀 걸까.

식물형 키메라가 발작을 일으켰다.

어쩌면 강력한 마력에 반응한 걸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았다.

수십 가닥의 식물 줄기가 도진, 테레사, 소소, 아네모네를 가리지 않고 노렸다.

도진의 시선이 그것들을 좇았다.

날카로운 바람과 화염이 식물 줄기를 베어 낸다.

하지만 그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누나.”

그러나 도진의 마법 세례를 뚫고 들어온 공격도 결국 테레사에 의해 막혔다.

텅- 하고 방패에 부딪힌 줄기들이 반발력에 의해 반대로 치솟는다.

식물형 키메라에게 연속으로 화염포가 꽂혔다.

대단한 맷집으로 버티며 저항했으나 도진의 공격 간격은 무서울 정도로 짧았다.

강력한 대미지가 연속으로 들어오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꿈틀거리던 시체로 만들어진 꽃은 결국 넝마가 되어 시들었다.

이겼다.

그러나 기뻐하기에는 주변에 쌓인 죽음이 너무나 많았다

이미 죽어 있던 자들과 이제야 죽을 수 있었던 자들이 만드는 우울함은 승리의 기쁨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멸망교단에 의해 누적된 죽음이 역치를 넘어서일까. 별의 사도로서의 능력이 다시 발동했다. 죽은 자들을 별로 인도하는 푸른빛이.

“가자. 마무리는 해야지.”

빛이 잦아들기를 기다린 도진이 돌아섰다.

놈들이 떠났다고 끝이 아니다.

아직 꺼야 할 잔불이 남아 있었다.

휴식은 그 후에나 바랄 수 있는 사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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