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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31화 (23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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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꼴이 이런 순간은 많은 이들의 머리가 복잡한 때다.

독재 정부가 이 정도로 망가진 모습을 보였으니 애국자는 애국자의 이유로, 탐관오리는 탐관오리의 이유로 쿠데타라는 선택지가 머릿속에 떠올랐을 거다.

이런 상황 속에서 도진이 레카르도에게 기대한 것은 자극제 역할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갱도에 고립되어 죽어가는 국민을 구한 죄로 강등당한 전 장성이다.

고민하는 애국자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이만한 인물은 드물다는 게 도진의 판단이었다.

독재자 아래에서 부정부패를 즐겼던 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는 레카르도가 중요한 게 아니다.

충성심, 애국심보다는 자신의 안위가 무엇보다 중요한 그것들은, 이기는 편에 서고 싶어서라도 행동할 것이다.

혁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는 가정하에 부패한 관료와 부패한 군인이 설 곳은 교수대뿐이라는 걸 잘 알 테니.

도미노 현상의 가능성은 충분했다. 어차피 곪고 곪다가 결국에는 터졌을 일이니, 그걸 조금 앞당긴다고 보면 말이다.

‘성공은 성공인데… 내 예상을 뛰어넘어 버렸네?’

그런데 도진이 간과한 게 있었다.

바로 레카르도의 저력. 아니, 짬중령의 저력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도진은 전생에도 이번 생에도 군대와는 연이 없었기에 ‘짬’의 위력을 계산에 넣지 못했던 것.

현직 장성들을 동기, 후배로 두고 있는 짬중령의 영향력은 도진이 상정한 ‘상징성 있는 중령’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레카르도는 겨우 하루 만에 3개 사단을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엄청난 일을 해낸 상태였다.

‘이제 흐름은 내 손을 떠났군.’

지금까지는 물길의 방향을 틀고, 때로는 새로운 물길을 만들기도 했다.

아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단계는 지나갔다.

3개 사단이 쿠데타에 동참했고, 동쪽과 서쪽에서 동시에 수도 진군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는 물길을 바꿨다는 표현보다는 댐을 부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일이다.

댐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은 걷잡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대로 바로 수도로 가는 거야?”

국경을 넘자마자 시작되는 수도행에 테레사가 당황한 눈을 했다.

“질질 끌어 봐야 성공률만 낮아지니까. 역사적으로 성공적인 쿠데타는 빠르고 신속했던 게 대부분이야. 단시간 안에 모든 걸 끝내지 못하는 경우에는 보통 실패하거나 언제 종식될지 모를 내전으로 이어져. 그걸 아는 거겠지. 레카르도인가 하는 그 아저씨랑 동조한 군인들은.”

놀랍게도 이 말을 한 건 도진이 아닌 소소였다.

“오… 역시 의대 중퇴는 다르네. 가방끈이 고급이라 그런지 유식해.”

테레사가 소소의 머리를 쓱쓱 쓸며 말했다. 소소는 기분 나쁜 얼굴로 테레사의 손을 쳐냈다.

그리고 탄토는 경악한 눈으로 곁눈질을 했다.

‘의대……?’

탄토는 고개를 돌렸다. 많은 의문과 의미를 담은 눈빛을 눈치 빠른 소소에게 들키면 곤란했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이동이 시작됐다. 소소의 말대로 군사 쿠데타에서 속도가 갖는 중요성은 상당했기에 이동에는 병력 운송용 마차(魔車)가 동원됐다.

치장물자로 비축되어 있던 마석까지 몽땅 끄집어내어 전격 작전에 쏟아붓는 선택을 한 덕분이었다.

루마누스는 국토가 넓은 나라가 아니었다. 수도까지의 거리는 멀지 않았고, 가는 길을 막는 것도 거의 없었다.

정상적인 연락망과 명령체계가 죽어버린 상황에서 갑작스런 정규군의 동시다발적 반란에 대응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중간에 전투가 있긴 했으나 그건 방해라기보다는 버프에 가까웠다.

전투에 동원된 인간형 키메라는 그걸 사용하는 쪽의 사기는 바닥을 치게 하고, 그걸 상대하는 쪽에는 사람으로서의 분노와 함께 자신들에게 정의가 있다는 믿음을 부여했다.

그렇게 도진은 해가 저물기 전에 루마누스 수도를 둘러싸고 있는 5미터 높이의 담장을 마주하게 됐다.

독재자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쌓은 성벽이었다.

【나라가 혼란한 때를 노려 반란이라니-! 제정신인가! 수도 방위의 신성한 임무를 맡은 사령관으로서 명한다. 소속을 밝히고 무기를 내려놓아라!】

수도 함락의 위기를 코앞에 둔 상황이라 그런지 대치가 시작되자마자 사령관이 튀어나왔다.

마공학 확성기를 통해 외치는 적장의 목소리를 들은 도진은 헛웃음을 흘렸다.

“진짜 당나라 군대네.”

이 지경이 되었는데 반란을 일으킨 부대의 소속을 묻고 있다는 게 말이 되나?

이미 상황 파악은 끝냈어야 하고 벌써 대처할 준비 정도는 마쳤어야 정상이다.

자기들 코앞에 누가 와 있는 건지도 모를 정도라는 건 무능함을 증명하는 걸 넘어 지금 저쪽이 얼마나 혼란한 상태인지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하기야. 다른 일로 많이 바빴을 테니.’

키메라 생산 공정에 대한 기밀을 최소한이나마 유지하려면 총통 직속 친위대쯤 되는 수도의 군인들을 일손으로 써야 했을 거다.

재료가 될 사람들을 공급하고, 학살하고, 그걸로 키메라를 만들고. 거기서 발생하는 폐기물 등을 치우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겠지.

‘그게 아니면 정말 답이 없는 집단인 거고.’

그런 수준까지 무능함이 뻗어 있다면 진심으로 박수를 쳐 줄 용의가 있었다.

도진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사단기가 올라갔다.

【3사단! 베일즈인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미친 짓을 저지르는 건가! 베일즈 중장, 당장 조국을 향한 총구를 거두고 전선으로 돌아가라! 사악한 반동분자들이 나라를 노리는 와중에 반역이라니!】

수도 방위 사령관이 일갈하는 사이 조금의 시간차를 두고 다른 깃발로 올라갔다.

루마누스 자유 혁명군의 깃발이었다.

방금 언급된 ‘사악한 반동분자’들의 깃발 말이다.

【이, 이게……! 하찮은 반동분자와 손을 잡아!? 베일즈, 진정으로 미친 것인가!】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이에 답한 것은 레카르도였다.

【자비존, 날세. 레카르도.】

수도 방위 사령관 자비존 느조프의 눈이 찢어질 기세로 커졌다.

두 사람은 동기였다.

【자네의 위치라면 알고 있겠지. 이 나라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반동 놈들은 테러를 일삼고, 너희 같은 쓰레기 군인들은 반역을 꾀하고! 통탄할 일들을 말하는 거냐!】

【나의 조국이 사람이길 포기한 것을 말하는 것이네. 인간을 써서 만든 키메라라니. 그걸 보고 어찌 가만히 있겠나.】

【나라를 위협하는 쓰레기들만 없었다면 그럴 일도 없었다! 너희같이 기회만 엿보다 조국에 총을 겨누는 쓰레기 군인들만 없었어도 됐고! 너희가 제대로 했으면 이런 상황 자체가 안 왔어!】

한때는 함께 술을 나누며 좋은 군인이 되자며 이야기를 나눴던 동기의 일갈에 레카르도는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비존, 나는 이렇게 생각하네. 설령 국가가 무너지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고. 그리고 내가 보았던 그건 분명 해서는 안 되는 일의 산물이었어.】

【웃기지 마! 개인보다는 국가다! 개돼지나 다름없는 밑바닥 놈들이 뭘 안다고! 자유를 부르짖는 놈들에게 진짜 자유가 주어진다고 제대로 된 세상이 될 거 같나? 더 개판이 될 뿐이다! 선천적으로 모자라게 태어난 것들은 찍어 눌러 통제를 해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간단 말이다!】

눈앞에 닥친 위기에 몰려 이성을 상실한 건지.

레카르도가 발작 버튼이기라도 한 건지.

자비존 사령관은 눈에 핏발을 세우고 소리쳤다.

【미련하게 굴다가 밑바닥에 처박혀 끝장난 놈이 뭘 안다고! 그들은 국가에게 충성할 기회를 얻은 자들이다. 아무 의미 없이 그저 가축처럼 살다 죽을 자들에게 의미라는 걸 갖게 해 준 거-】

타앙-

자비존의 목소리를 확대된 총성이 끊었다.

자비존 옆에 있던 젊은 장교가 총을 쏜 것이었다.

일어나고 있는 학살극을 견디기 힘들었던 자의 선택이었다.

【이 개 같은 반동 놈이……!】

다만 이 세계에서는 우발적 총격 정도로는 강자를 죽일 수가 없었다.

순간적으로 고개를 꺾어 상처 하나 없이 위기를 넘긴 자비존은 자신에게 총을 쏜 부하의 머리를 맨손으로 터뜨렸다.

뻐엉- 하고 두개골 터지는 소리가 그대로 마공학 확성기를 타고 전장에 울렸다.

【어차피 갱생의 여지가 없는 자들이다! 한 놈도 놓치지 마라. 조국을 향해 총구를 돌릴 정도로 썩어빠진 피를 가진 놈들이니, 그 피붙이들까지 전부 잡아 갈아 버려야 하니 말이다!】

사실상의 공격 명력이었다.

입에 담은 대사 하나부터 총성, 두개골 파열음, 마지막으로 연좌제에 대한 언급까지.

도진은 감탄스러웠다.

도대체 몇 개의 버프를 전장에 뿌려 대는 건지.

적장이 뿌린 버프의 효과는 굉장했다.

타락한 조국을 구하기 위해 무기를 든 자들은 꼭대기부터 말단까지 전부 타오르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우리 쪽 응원단장 정도는 시켜도 되겠는데.’

전투가 다가오는 걸 느낀 도진은 전신에 마나를 휘돌렸다.

그러기 무섭게 벽 안쪽에서 다수의 커다란 덩어리들이 벽을 넘어왔다.

쿵- 쿵- 쿵- 하고 연속해서 육중한 소리를 내는 것들은 인간형 키메라들이었다.

지금까지 본 것들보다 훨씬 더 우악스럽게 개조를 해 놓은 그것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만드는 과정에서의 잔혹함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징그러운 겉모습 이상의 혐오감이 퍼져 나가는 건 그런 이유였다.

“으아아아!”

키메라들이 내지르는 포효를 듣다 못한 병사 하나가 방아쇠를 당겼다.

공격 명령 전에 쏘아진 총탄 하나는 적과 아군 모두를 자극했다.

정신없는 난전의 시작이었다.

“될 수 있는 한 우리가 키메라 숫자를 줄여 줘야 돼!”

도진은 난전 속에서 다른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특수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형 키메라의 수를 줄이는 데만 집중했다.

일반병들은 상대하기 어렵고, 어렵사리 처치를 한다 해도 피해가 상당할 것이기 때문.

도진은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간헐적으로 포격이 쏟아지는 전장을 휘저으며 인간형 키메라들을 요격했다.

개체 하나하나의 강력함이 있는 만큼 반란군의 피해는 상당했다. 수도를 지키는 인간 군인들도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니 더 그랬다.

하지만 승기는 명확하게 이쪽에 있었다.

【사령관님, 서쪽에도 반란군이 나타났습니다!】

3개 사단 중 2개 사단이 서쪽에서 들이닥쳤다.

그 소식을 적이 전해줬다.

여전히 꺼지지 않은 마공학 확성기를 통해 말이다.

사기의 고저가 더욱 극명하게 갈리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카앙- 테레사가 방패로 포탄을 쳐 내는 소리가 많고 많은 소음에 섞였다.

도진이 마법이 내는 폭음과 섬광도 마찬가지였다.

키메라 하나의 숨을 끊은 도진은 잠시 자신의 숨을 돌리며 회색 벽을 봤다.

폭발이 일었다. 회색 벽 위쪽 일부분이 무너지는 게 보인다.

안쪽에서도 편이 갈라져 싸우기 시작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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