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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30화 (230/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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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 입장에서 적진은 모두 던전이다.

던전 및 퀘스트 안에서 등장하는 인간형 적도 모두 몬스터고.

그런 맥락에서 일반병은 일반 몬스터이며 인간형 몬스터다.

인간형 몬스터는 은신 감지 능력이 다른 종에 비해 떨어진다.

하지만 이게 곧 잠입의 난이도가 낮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부족한 감각을 보조하는 각종 은신 감지 기물들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당장 탄토가 잠입하려는 국경수비대 주둔지도 그러했다.

초소에 있는 초병은 은신 감지 레벨이 올라간다.

주둔지 곳곳을 밝히고 있는 불빛은 탄토의 은신 레벨을 낮춘다.

이외에도 신경 쓸 게 산더미만큼 많이 있다.

자신이 내는 소리는 물론이고, 적들이 어느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얼마나 집중을 하고 있는지까지 체크해야 한다.

가상현실 MMORPG가 아닌 극한 난이도를 지닌 잠입 액션 게임을 한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탄토는 지키는 자들의 눈과 그들의 시야를 밝히는 빛이 부족한 지점을 찾아 조용히 담을 넘었다.

담을 넘을 때도 조심했다. 신체 능력이 받쳐 준다 해서 한 번에 훌쩍 뛰어넘으면 낙하 시 소리가 샐 수 있기 때문이다.

‘안쪽은 더 밝네.’

대낮처럼 밝은 수준은 아니지만, 살금살금 잠입하는 입장에서 충분히 위가 쓰려 올 만한 밝기.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모든 조명 장치가 빛을 내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빛을 내는 것들의 절반 정도는 꺼져 있다.

그 대신 횃불을 여기저기 밝혀 둔 모습이지만, 마나를 태워 빛을 내는 장치들에 비하면 밝기가 한참 부족하다.

‘우리가 마석을 몇 번 털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어.’

탄토의 추측은 진실에 닿아 있었다.

가뜩이나 어마어마하게 마석을 많이 소모하고 있는 와중에 몇 차례나 대량의 마석을 탈취당했으니, 보급 문제가 발생하는 게 당연했다.

탄토는 자신들의 테러 행위가 만들어 준 잠입 루트를 머릿속에 그렸다.

여기서 저기까지 뛰고. 그림자에 숨어서 잠깐 기다리자.

저쪽을 볼 수 있는 초소는 반대편 저 둘이 있는 곳뿐이니까 아무리 밝아도 지날 수 있다.

다른 곳을 보는 동안 달리면 된다.

‘좋아.’

탄토가 움직였다.

잠입이란 과감할 때는 한없이 과감해야 하는 법.

패시브 스킬로 줄어들 발소리를 믿으며 탄토는 빠르게 달렸다.

‘이 건물인가?’

목표 건물을 찾은 탄토는 벽을 탔다.

혁명군으로부터 받은 정보에 의하면, 3층이 레카르도의 관사 겸 집무실로 쓰이는 층이라 했다.

‘퇴근 없이 부대에 사는 군인이라니.’

부하들 입장에서는 이보다 두려운 괴물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조심스레 3층까지 올라간 탄토는 불이 켜진 방 창문을 조심스레 살폈다.

새벽에도 불이 켜져 있다니. 일을 하는 걸까? 아니면 전시나 다름없으니 부하들과 함께 있을지도 모른다.

위치만 확인해 두고 혼자 되길 기다렸다 쪽지를 넣고 도망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접근했는데.

창문이 벌컥 열렸다. 그림으로 본 레카르도다.

술 냄새가 확 풍겼다. 부하들과 함께 있는 게 아니라 술을 마시고 있던 모양.

탄토는 숨을 죽였다. 어차피 바깥 공기를 좀 쐬려는 걸 테니 기다리면 된다.

“그렇게 매달려 있으면 힘들지 않나?”

그런데 아니었다. 캄캄한 밤하늘을 보며 레카르도는 탄토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직 거리가 상당한데 벌써 눈치를 챘다고?’

찰나의 순간 탄토의 머릿속에 오만 생각이 스쳤다.

도망칠까? 제압할까?

지금도 중령이고, 옛날부터 장성급에 올랐던 인물을 조용히 제압하는 게 가능할 리가 없는데.

그렇지만 도진이가-

“걱정 말게. 소란은 이쪽에서도 사양이니. 잠시 대화나 나누지.”

레카르도가 먼저 탄토를 안심시켰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탄토는 혼란스러웠으나 중요한 건 해야 할 일이었다.

이왕 들킨 거 그냥 지르자.

탄토는 슥슥 벽을 타고 레카르도 근처까지 가서 창문 안쪽으로 쪽지를 던져 넣었다.

그리고-

휙 탁 타다닷, 하고 미친 듯이 도망쳤다.

“…허허.”

거리가 어느 정도 벌어지자 자신의 눈으로도 찾을 수 없게 어둠 속으로 녹아 사라지는 괴한의 모습에 레카르도는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레카르도는 괴한이 남기고 간 쪽지를 주웠다. 잠시 그것을 쥐고 있던 그는 조심스레 그것을 펼쳤다.

* * *

탄토가 돌아왔다.

가슴 졸이며 기다리던 셋은 무사히 귀환한 탄토를 반겼다.

“어떻게 됐어?”

그런 뒤 도진이 물었다.

모두의 시선이 탄토에게 집중됐다.

“들켰어.”

탄토의 테레사가 ‘아…….’ 하고 안타까운 탄식을 뱉었다.

“그럼 들켜서 탈출한 거야?”

탄토가 고개를 저었다.

“레카르도가 있는 곳까지 갔거든. 근데 마지막에 레카르도가 먼저 날 발견했어. 그래서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데… 먼저 말을 걸더라고. 대화나 좀 하자면서. 너무 당황해서 쪽지만 던져 넣고 도망쳤어.”

“그래……?”

탄토의 설명을 들은 도진은 오히려 상황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접근을 눈치챈 거나 은신을 간파한 건 변수지만, 그러고도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은 걸 보면…….’

상황이 생각대로 풀릴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전달했으면 됐어. 이젠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네.”

도진 일행은 얌전히 기다렸다.

적이 몰려오면 도망치면 된다.

쥐구멍 하나를 잃겠지만, 그거까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반대로 성공하면 많은 걸 얻을 테니 해 볼 만한 도박이었다.

도박의 결과가 나온 건 22시간이 흐른 뒤였다.

날이 밝았다가 다시 밤이 깊어진 시간에 레카르도가 나타났다.

그는 혼자였다.

도진은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가 접근할 걸 미리 알고 있었습니까?”

도진의 첫마디였다.

“그럴 리가 있겠나? 솔직히 놀랐네. 나 같은 퇴물 군인에게 순번이 돌아올 줄은 몰랐거든. 다만 이런 상황이니, 이런 접촉을 누군가에게 시도할 거란 생각 정도만 했을 뿐.”

“단순한 암살 시도라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을 텐데요.”

“나 같은 퇴물을 굳이 암살하려 들 자가 있을 거 같진 않았거든. 난 상속을 앞당기려 들 자식도,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고 싶어 할 처도 없어서 말일세.”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고 있는 군인의 농은 상당히 매웠다.

어쨌든 첫 번째 말은 꽤 깊은 통찰력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많은 게 생략된 말이지만, 그래도 그가 상황을 정확하게 보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도진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국경 일부의 수비를 담당하고 계시니, 그걸 보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봤지.”

그뿐인가. 자신이 맡은 부대에도 그걸 쓰라며 가져다 놓았다.

레카르도는 그 명령을 무시하고 어디에도 배치하지 않았다.

“그걸 보셨다면 사실상 루마누스 공화국의 현 정부는 끝났다는 것도 아실 거라 믿습니다. 총통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곧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겁니다.”

레카르도는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상대의 책임에 대해 물었다.

“이런 상황이 된 데 자네들 책임이 상당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나?”

“아주 조금은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아주 조금이라.”

레카르도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설명을 해 보라는 눈빛을 보냈다.

“전 지금 상황이 혁명군이나 다른 무엇이 총통을 자극하고 선동해서 일어난 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럼?”

“총통을 방치한 탓이죠. 수술은 빠를수록 예후가 좋은 법입니다. 당장의 아픔이 무서워 피 흘릴 때를 놓치면, 수술대 위에서 죽을 확률만 높일 뿐이죠. 이 나라는 훨씬 더 빨리 수술대 위에 누웠어야 했습니다.”

“…….”

레카르도는 칼에 찔리는 기분이었다.

너무 아픈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흐를 피가 두려울 수도 있지 않은가. 그게 내 피만이 아닌 다른 많은 이들의 피가 될 테니.’

거기다 자신은 고작 좌천된 군인이었다.

자신이 나선다고 뭐가 됐겠나.

다른 이들도 같은 생각이었겠지.

하지만 이런 생각과 생각들이 모여 지금을 이룬 거다.

저 청년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왜 하필 나였나?”

“강등의 이유가 갱도 붕괴 사건 당시 명령을 무시하고 구조 작전을 지시했던 명령 불복종 건이더군요. 그걸로 충분했습니다.”

“내게 원하는 게 뭔가?”

“당신과 같은 생각을 품은 자들의 도화선이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받는 월급에 만족하며 혁명군을 욕하던 자들도 그 키메라를 보면 다른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하물며 이런 진실을 알게 된다면 더더욱.

“그 키메라. 만듦새가 그만큼이나 엉망이면 생산 효율도 엉망일 수밖에 없죠. 하나를 만드는 데 적어도 인간 서른 명은 들어갔을 겁니다.”

레카르도가 처음으로 감정을 내비쳤다.

크게 부릅뜬 눈에는 경악과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그게… 정말인가?”

“저도 거짓말이면 좋겠지만, 이게 최소로 잡은 수준입니다.”

말을 잃은 레카르도에게 도진이 말했다.

“최후가 결정된 총통에게 저승길 노잣돈으로 이 나라를 주고 싶은 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겨우 중령에 불과한 노인네 어깨에 너무 무거운 짐을 얹는 거라는 생각은 안 드나?”

도진은 레카르도의 어깨를 봤다.

노인네는 무슨. 어깨가 태평양이다.

탄토의 은신을 멀리서도 꿰뚫은 것만 봐도 엄청난 강자고.

“더 무거운 짐도 거뜬하실 거 같군요.”

확답은 듣지 못했다. 아직도 고민하는 눈이기도 했다.

그러나 저건 가짜 고민이다.

이미 본인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테니.

“이 나라는 희망의 불씨가 필요합니다.”

그 희망의 불씨가 되어 주십시오.

말을 마친 도진은 침묵에 빠진 군인을 두고 물러났다.

도진은 아지트로 복귀했다.

혁명군은 전투 준비를 완전히 마친 상태였다.

어느 정도 기다린 도진은 그들과 함께 아지트를 뒤로했다.

무장한 인원은 남자가 대부분이었으나 여자도 꽤 섞여 있었다.

자식에게 더 나은 미래를 주려는 어머니들이었다.

도진은 레카르도의 부대가 수비를 맡은 구역으로 방향을 잡았다.

“정말 괜찮을까?”

완전무장한 상태로 묻는 사령관.

무방비하게 전진해도 되겠냐는 물음이었다.

“전투가 발생하면 싸워야지. 하지만… 우리한테 총탄이 날아오는 순간 이 나라는 끝난다고 봐야겠지.”

여기까지 와서 수술을 거부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새로운 인물, 새로운 방법 같은 대안을 고르기에는 공화국이 죽어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도진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테레사가 약간 속도를 높여 도진 앞으로 나갔다.

다른 이들도 도진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숨 막히는 정적 속에 혁명군이 나아가는 소리만 울렸다.

거리가 좁혀졌다. 서로가 서로를 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포성도 총성도 울리지 않았다.

심지어 총구를 겨누는 군인도 보이지 않는다.

도진은 아무런 공격도, 제지도 받지 않고 공화국의 국경을 넘었다.

계급장을 가린 군인이 다가왔다.

이곳을 책임지고 있는 장교였다.

그는 ‘마법사’에게 다가가 자신의 상관에게 들은 말을 전했다.

“레카르도 중령님의 전언입니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아주 늦은 것은 아니길 바란다 하셨습니다.”

젊은 군인이 내미는 손을 잡으며 도진이 말했다.

“그렇게 만들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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