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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27화 (227/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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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장비를 챙기기 위해 레지스탕스 대원들을 동원했다.

적을 함정에 빠뜨려 교전에서 승리한 시점부터 이미 흥분해 있던 그들은 초토화된 군 기지를 보고는 아예 눈이 돌아갔다.

“우아아아!”

“총통의 개새끼들아! 그렇게 잘난 척하면서 목 뻣뻣하게 세우고 다니더니!”

그들은 발치에 걸리는 이미 죽은 자들의 시체를 걷어차며 괴성을 질러댔다.

“대장! 기지 구석구석 뒤져 보면 숨어 있는 새끼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다 찾아내서 죽이자구요!”

“그래요!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우리가 그놈들 목숨을 쥐락펴락하겠어요!”

승리에 도취된 약자들은 가슴속에 묻어 뒀던 포악성을 드러냈다.

그러고 있는 꼴을 본 도진이 인상을 팍 찌푸리고는 사령관에게 소리쳤다.

“헛짓거리할 시간 없으니까 빨리 대원들 통제해서 따라와! 여기서 느긋하게 시간 끌다가 포위돼서 싹 죽고 싶은 거면 마음대로 하고.”

안 그래도 제멋대로 구는 대원들을 보며 부글부글하던 사령관은 도진이 한마디 하자 폭발했다.

“이 못난 새끼들아! 혁명을 할 거면 좀 멋들어지게 해야지! 산적 새끼들처럼 굴지 말고 빨리 따라와서 일이나 해!”

사령관은 대원들을 이끌고 도진에게 따라붙었다.

“하나씩 챙겨 입고 장착할 수 있는 만큼 무장도 챙겨.”

노획하기 위해 부수지 않은 장비들을 가리키며 도진이 말했다.

“어어… 어!”

사령관이 사람의 언어를 잃고 이상한 소리를 낼 만도 했다.

도진이 가리킨 건 그냥 장비가 아니었다.

마공기갑병들을 무장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마공학 갑주와 갑주에 맞춰 제작된 무기들이었다.

“이, 이거 우리 같은 사람이 쓸 수 있는 건가……?”

“성능이 제한되지만 쓸 수는 있어. 애초에 쓸 수 없는 물건이면 내가 챙기라고 하겠어? 그러니까 쓸데없는 질문할 시간에 빨리 움직여.”

“아, 알았어!”

사령관을 필두로 대원들이 마공학 갑주에 몸을 욱여넣었다.

그런 뒤 각자 챙길 수 있는 무장들을 챙겼다.

마공기갑병 사이즈에 맞춰 제작된 칼, 창, 도끼 등과 방패는 물론이고, 몇 정 안 되지만 마공기갑병용 마총도 있었다.

딱 다섯 정이 있는 걸 보니, 양산에 들어가기 전 만들어 둔 프로토타입으로 보였다.

‘다른 장소에 생산 라인이 있는 게 아니면 장비 양산 체제를 다시 꾸리는 데는 꽤 시간이 들겠지.’

정황상 신병기 양산에 들어가기 직전에 들이닥친 거 같은데. 정말 타이밍이 좋았다.

“앞으로 30초. 30초 후에 빠져나간다.”

들어오는 타이밍이 좋았으면 빼는 타이밍도 좋아야지.

30초라는 촉박한 시간 제시에도 사령관은 토를 달지 않았다.

“이제 그만 챙겨! 나갈 준비부터 해라!”

첫날 무기를 털 때 보았던 때와 비교하는 게 민망할 정도로 오늘 도진이 보여 준 모습은 압도적이라는 표현을 몇 차원은 넘어선 것이었다.

‘이건 우리, 아니 이 나라에 다시는 없을 기회다!’

도진의 지시에 따라 레지스탕스들은 일제히 현장에서 물러났다.

콰콰쾅-

물론 챙겨가지 못하고 남겨야만 하는 여분의 장비들을 완벽하게 파괴하는 건 잊지 않았다.

‘급조돼서 몰려오는 지원 부대라고 해 봐야 수준이 거기서 거기겠지만, 굳이 계획에 없는 전투를 할 필요는 없지.’

전투 시작부터 강탈까지 짧은 시간에 작전을 마무리한 도진은 바로 루마누스를 이탈하기로 했다.

강탈한 장비로 엑소 스켈레톤 슈트를 입은 보병이 된 레지스탕스 대원들이 다른 대원들을 어깨와 등에 얹고 이동하자 그 속도는 평범한 인간 부대는 낼 수 없는 빠르기를 자랑했다.

원래부터가 국경 관문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루마누스와 바깥을 가르는 경계까지는 금방이었다.

“저, 저게 뭐야?”

관문 초소에 있던 군인들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몰려오는 마공기갑병들을 보고는 기함을 토했다.

루마누스는 구석구석까지 마법 연락망이 구축되어 있지 않았기에 상황 전파가 아직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

물론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었을 것이다.

마공기갑병과 같은 무장을 차린 인원만 20명에 달하는 집단을 막을 힘이 작은 초소에 있을 리 만무하니 말이다.

국경 관문을 뚫고 루마누스를 벗어나는 데는 전투다운 전투도 필요 없었다.

전의를 상실한 적들은 알아서 길을 비켰고, 도진과 레지스탕스 대원들은 그대로 걸리는 걸 때려 부수며 루마누스를 이탈했다.

쥐구멍으로 몰래 빠져나왔던 얼마 전의 탈출과는 궤를 달리하는 파괴적인 퇴각이었다.

* * *

루마누스 공화국 총통 관저.

어떠한 측면에서는 전통적인 왕의 성보다도 더 위압적인 건물은 공화국 군사 기능의 핵심을 담당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케이트는 지나치게 높은 천장을 지닌 건물의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알토스에게 보고할 자료가 들려 있었다.

가장 위에 ‘극비’라는 빨간 글자가 적힌 문서를 이미 1차적으로 훑어본 케이트는 현실을 믿기 힘들었다.

‘이게… 진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혁명군이 루마누스를 탈출한 뒤로 알토스와 케이트는 그들과의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그래서 탈출 뒤에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 걱정하던 차였다.

그런데 그런 걱정 전부가 의미 없는 것이었다.

극비로 분류된 문서에는 이틀 전 있었던 서쪽 국경에 위치한 군 기지 습격에 대해 적혀 있었다.

‘그날 무기를 탈취하고 무사히 탈출한 것만 해도 다행이었어. 그런데…….’

적힌 바에 따르면 혁명군은 탈출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인 이틀 전 서쪽 국경 인근에 위치한 군 기지를 공격했다고 한다.

심지어 압도적으로 승리한 것도 모자라서 무력으로 장성이 된 디그노스 장군마저 전사시켰다.

‘병환으로 인한 전역이라더니…….’

더 놀라운 건 그곳에서 혁명군이 마공기갑병 장비를 탈취했다는 것이었다.

알토스와 자신조차 마공기갑병과 키메라에 대한 정보는 접근조차 불가능했었다.

‘우연히 얻어걸렸을 확률은 제로다. 거기가 마공학 장비를 생산 혹은 비축하는 장소라는 걸 알고 공격한 거야.’

그런데 어떻게 알아내서 공격을 한 걸까.

누가 그런 건지는 명확했다.

‘그 마법사…….’

정보력? 아니면 어떤 통찰력? 어느 쪽이든 대단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루마누스 자유 혁명군은 좋은 말로 표현하려 해도 정예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합지졸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편이지.

그런데 마법사가 합류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아 장성이 배치된 비밀 생산 거점을 함락시켰다.

심지어 어제는 20기의 마공기갑병을 필두로 한 레지스탕스 타격대가 다른 국경 초소를 통해 침투하여 보급 거점을 습격했다고.

기지를 함락시키고 장비를 탈취한 지 24시간도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다. 각각의 사건 사이의 간격이 매우 짧다.

그 마법사가 합류한 혁명군은 신출귀몰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공화국의 실질적인 위협으로 급부상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언급되어 있던 4인방은 뭘까? 마법사와 관련된 자들이겠지만…….’

자료 말미에 적혀 있는 가장 큰 피해를 야기한 ‘악마의 사생아 4인방’에 대해 생각하며 복도를 걷고 있을 때였다.

“……!”

험악한 표정으로 정면에서 총통이 걸어오고 있었다.

케이트는 즉시 복도 벽으로 붙으며 부동자세로 경례를 했다.

총통은 자신을 향해 경례하는 자들을 무시하고 지나쳤다.

케이트는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자칫 잘못하면 죽을 듯 노려보는 눈빛을 들킬지도 모르기에.

그런데.

아래로 향한 시야에 새하얀 발이 보였다.

새하얀 로브 자락에 스치는, 그만큼이나 새하얗고 아름다운 발이었다.

맨발? 아니 그것보다.

‘총통 뒤에 사람이 있었나?’

저만큼이나 눈에 띄는 복장인데 왜 눈치를 못 챘지?

하고 생각하며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드는 케이트.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총통을 따라가면서, 목을 뒤로 꺾어 소름 끼치는 웃음을 짓고 있는 여자와.

“……!”

아름답다. 예쁘다. 이런 말만 어울릴 것만 같은 여자였다.

소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앳되고, 또한 하얀 여자.

그런데 그녀가 짓고 있는 웃음은 근원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것이었다.

숨을 마시는 것과 뱉는 것을 평생 동안 어떻게 해 왔는지 잊게 할 정도의 두려움.

여자가 고개를 앞으로 향했다.

그 순간 시야가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총통과 여자가 한참이나 멀어졌다.

잠깐 동안 의식이 끊어진 것이었다.

“카학……!”

케이트는 가슴을 움켜쥐고 멈췄던 호흡을 재개했다.

죽을 뻔했다.

케이트는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방금 심장이 멈췄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그래, 누군가가 심장을 움켜쥐기라도 한 듯이…….

‘저 여자다.’

저런 여자가 총통 옆에 있었으면 지금까지 이야기가 돌지 않았을 리 없다.

제국에서 왔다는 마법사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일 것이다.

방금 전까지 혁명군에 합류한 마법사로 인해 들떴던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도대체 총통은 이 나라에 어떤 자들을 들인 걸까.

‘…움직이자.’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을 때가 아니다.

케이트는 마비된 듯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다리를 움직였다.

‘지금은 섣불리 움직이는 게 독이겠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해야 한다.

적어도 거센 파도가 몰아치기 시작할 때 무언가 시도라도 해 볼 준비 정도는.

* * *

같은 시각.

도진은 새로운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 막 강도 된 거 같다, 그지?”

목표물을 기다리는 동안 테레사는 약간 들뜬 모습이었다.

어디서 준비했는지 검은 복면까지 쓰고 있는데… 솔직히 이상했다.

“홍길동? 뭐 그런 느낌 알잖아.”

도대체 뭘 알아야 하는 걸까. 도진은 그게 알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첫 만남 때도 이상한 역할극을 했었지.

테레사는 어떤 역할에 심취해 노는 걸 좋아하는 거 같았다.

“어휴.”

그런 그녀에게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을 소소마저 딱 달라붙는 은행 강도 같은 복면만큼은 용납하기 힘들었는지 가슴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소소가 벌써 아까 벗기려고 했는데 저 위에 투명화시킨 투구가 덧씌워져 있어서 벗겨내지도 못했다.

테레사의 기행을 구경하는 사이 기다림의 끝이 다가왔다.

멀리서 다가오는 마차 행렬 사이에서 피어나는 마나의 일렁임을 포착한 도진이 파티원들을 향해 말했다.

“왔다. 제일 후미에 있는 마차 세 대. 그게 마석을 실은 마차야.”

도진 일행은 지금 루마누스로 들어가는 마석을 강탈하려 하고 있었다.

루마누스는 마석 자체 생산량이 매우 적은 편에 속하는 국가.

다른 생산 시설이 있다고 해도 마석 공급에 차질이 생기게 만들면 모든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다시 생산 기반을 꾸리려고 하는 중이면 더 말할 것도 없지. 그 경우에는 마석이 더 많이 들어갈 테니.’

도진이 움직였다.

당연하게도 이날 루마누스 공화국은 대량의 마석을 빼앗기는 결과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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