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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를 특정했다 해서 바로 공격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제대로 된 타격을 주기 위해서는 준비할 게 산더미였다.
그 준비의 일환으로, 현재 도진은 루마누스 공화국 내부로 잠입하고 있었다.
“이런 길이 사방팔방에 널려 있는 건가?”
지금은 쓰지 않는 듯 완전히 메마른 수로를 걸으며 묻는 도진.
도진이 질문을 한 사람은 길잡이를 자처한 데닉이었다.
“계획 없는 확장이랑 팽창의 결과물이죠. 그 과정에서 확장에 방해가 되거나 지하에 뭘 하려는데 거슬리면 그냥 폐쇄하고 방치하는 걸 반복하다 보니 이렇게 됐대요.”
도진은 수로 벽을 보았다.
정말 수십 년은 방치된 듯 바짝 마른 것도 모자라 켜켜이 먼지가 쌓여 있었다.
“이쪽이에요.”
한눈파는 도진을 데닉이 불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앞이 완전히 막혀 있었다.
수로 일부를 무너뜨린 뒤 그 위에 석회와 모래와 물을 잔뜩 끼얹어 굳혀 놓은 모습.
데닉은 수로가 무너지면서 벽에 생긴 틈 옆에서 손짓했다.
“여기로 들어가면 통로가 있어요. 이놈들, 수로는 막았으면서 수로 관리용으로 만들어 놓은 통로는 그냥 뒀거든요.”
데닉의 말대로 벽 틈새로 비집고 들어가니 통로가 나왔다.
통로를 이용해 막힌 지점을 건너가고, 통로가 막히면 다시 수로로 나와 이동하고.
그것을 반복하다가 지상으로 올라오니 보인 것은 산처럼 쌓인 쓰레기였다.
빈민가에 쓰레기가 쌓이다가 어느새 정말 쓰레기장이 되어 완전히 방치된 곳.
캄캄한 밤을 골라 들어온지라 주변에 인기척이라고는 없었다.
도진과 데닉은 어둠에 녹아들어 은밀히 움직였다.
순찰을 도는 경찰도 있고,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감시 초소도 있었지만, 그들은 밤이 되면 쥐새끼 한 마리 없는 근무 환경에 익숙해져 있었다.
태만한 군경의 눈을 피해 움직이는 건 밤과 어둠의 제약을 전혀 받지 않는 도진에게는 지나치게 쉬운 일이었다.
황무지까지도 쉬웠다. 아무리 감시에 미친 독재자라도 드넓은 황무지 전체를 감시하란 명령을 내리진 않은 모양이었다.
다만 공격 목표인 군 기지는 달랐다.
강력한 조명을 뿌려 대고 있었고, 주변을 감시하는 눈도 많았다.
거리를 충분히 두고 있기에 들킬 염려는 없겠지만, 접근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저런 곳을… 어떻게 공격하죠?”
“그러게 말이야.”
도진의 눈에는 밤이 되었음에도 노골적으로 피어나는 마력의 운무가 보였다.
저 안에서는 지금도 계속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루하루 시간이 갈수록 적의 전력은 강해진다.’
반면 이쪽은 그렇지 않았다.
탈취한 무기를 들려주고 싸우는 훈련을 시킨다고 해 봐야 레지스탕스 대원의 한계는 퀘스트 레벨에 맞춰 보정된 엑스트라 전투원 A~Z에 불과하다.
‘어쨌든 빨리 결판을 내는 게 맞아.’
그렇다고 총 쥐여 주고 저기에 돌격하라고 했다가는 참호에서 갈려 나간 옛 군인들의 참사를 재현하는 꼴이 될 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도진은 기지 쪽에서 시선을 거둔 뒤 데닉에게 말했다.
“주변 지형을 좀 파악해야겠어.”
도진은 바라만 봐서는 알아낼 게 없는 기지 쪽 대신 주변에 집중했다.
그런 뒤 귀환한 도진은, 더 많은 레지스탕스 대원들을 이끌고 다시 기지 근처까지 잠입했다.
야심한 밤을 경비원 삼아 소리 없이 땅을 팔 수 있는 마법의 힘까지 동원해서, 도진은 레지스탕스 대원들이 숨을 공간을 황무지에 만들었다.
도진은 레지스탕스를 황무지로 배송하고, 그곳에 녹아든 대원들은 밤에만 나와 도진이 시킨 일을 수행했다.
그렇게 자유를 갈망하는 자들의 발악이 준비되었다.
* * *
공격을 하기로 한 날이 됐다.
철저히 준비를 마친 사령관은, 작전을 위해 별동대를 움직이려 했다.
한데 그걸 도진이 반대했다.
“전면에 나서서 적의 이목을 끄는 역할은 내가 해.”
자신들은 심혈을 기울여 기지 주변에 매복과 기습을 할 환경을 조성했다.
그래서 적을 끌어내려는데 도진이 그걸 혼자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사령관은 반사적으로 반대를 하려 했으나, 도진은 그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나는 자살 희망자들이랑 같이 뛰어다닐 생각 없어.”
“혼자서 저기 뛰어들겠다는 건 자살이 아니고?”
“누가 혼자야?”
말문이 턱 막힌 사령관이 도진을 이상한 눈으로 보았다.
방금 혼자 뛰어들겠다고 한 주제에 혼자가 아니라니.
자신을 미친놈 보듯 하는 상대의 눈빛에 도진이 웃었다.
“준비나 잘하고 있어. 될 수 있으면 적게 죽으라고.”
시간은 동이 트기 직전이었다.
이제 곧 사위가 푸른색으로 물들다 밝아질 그런 시간.
도진은 차분한 걸음으로 적진을 향해 걸었다.
그런데 어느 지점에서 땅바닥이 들썩거렸다.
쿵쿵- 하고 땅 밑에서 무슨 소리가 울리더니.
우지직- 하고 무너진다.
“으악! 답답해 죽는 줄 알았네!”
테레사였다. 뒤이어 오만상을 찌푸린 소소도 땅 밑에서 올라왔다.
그녀들이 도진을 째려봤다.
“사람을 땅 밑에 이틀을 두는 게 어딨어!”
혼자서는 힘든 일이면 같이하면 된다.
도진은 이제 모든 걸 혼자 해야 하는 전생의 외톨이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첩보 영화 찍는 거 같아서 좋다고 했잖아.”
막막함을 느낀 순간 도진이 가장 먼저 떠올린 건 동료들이었다.
도움을 요청한 도진을 위해 세 사람이 도착한 게 이틀 전.
도진은 레지스탕스들도 모르게 은밀히 테레사, 소소, 탄토를 숨겨 들어왔고, 지금에 이른 것이다.
“이 빚은 언젠가 받아낸다.”
소소가 낮은 목소리로 선언했다.
테레사의 툴툴거림이야 웃어넘길 수 있지만, 소소는 진심이 느껴져서 그러기 힘들었다.
“…어쨌든 닥친 일부터 처리하자.”
때마침 적진에서 반응이 일고 있었다.
조명이 도진이 있는 방향으로 몰리고 있다.
누군가가 망원경으로 주변을 살피다 발견하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테레사가 망치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정문으로 걸어 들어가는 걸 기습이라고 하나?”
잠시 멈췄던 걸음을 재개하며 도진이 답했다.
“경고 안 했으면 기습이지.”
적진에서 경보가 울렸다.
“소소야, 내 뒤에 바짝 붙어!”
거동이 수상한 자들에 대한 경고 따위는 없었다.
적들은 바로 공격을 시작했다.
마나를 연료로 쓰는 병기들이 일제히 도진 일행을 노렸다.
콰콰쾅-
직격을 당하면 도진도 피해를 감수해야 할 포탄들.
그걸 막는 역할은 테레사의 것이었다.
직선으로 날아오는 포탄을 테레사가 방패 든 손으로 후려쳤다.
꽝!
짧게 울리는 소리와 함께 포탄이 테레사 왼쪽으로 빗겨나가 땅에 박혔다.
퍼억- 하고 흙더미가 치솟는다.
이어서 날아오는 포탄은.
《암석 방패》
연속으로 세워지는 벽에 가로막혔다.
투두두둥- 하고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테레사를 선두로 한 세 사람은 빠르게 기지와의 거리를 좁혔다.
급격히 거리를 좁히는 적에게 대응하기 위해 우르르 병력이 몰려오는 게 보였다.
타타탕-
유효 사거리 안으로 적들이 들어오자마자 총구가 불을 뿜었다.
마력 반응으로 발생하는 마총 특유의 푸른색 포연이 일제히 일어난다.
“겨우 이 정도로 날 막을 수 있을 거 같아!”
그러나 기껏해야 ‘쫄몹’에 불과한 것들의 사격은 테레사를 뚫지 못했다.
빗나가는 게 반이고, 명중탄 중 또 절반이 방패에, 그나마 다른 것들도 두꺼운 갑주에 가로막힌다.
돌격 전차나 다름없는 테레사 뒤에 딱 붙어 달린 일행은 순식간에 철조망이 쳐진 곳에 도달했다.
도진은 「적야」를 통해 철조망에 튀는 푸른 스파크를 확인했다. 무언가 수작을 부려 놓았음이 분명했다.
달리던 도진이 손바닥으로 땅을 짚었다. 그와 동시에 돌기둥 3개가 솟아오르며 철조망 일부분을 들어 올렸다.
“틈으로 들어가!”
철조망 라인이 허망하게 뚫렸다.
그걸 본 군인들이 다급하게 외친다.
“빨리! 빨리 나오라고 전해! 뭐 하는 놈들인지 몰라도 우리가 막을 수준이 아니라고!”
그들이 기다리는 건 이곳이 지키기 위해 배치된 마공기갑병들이었다.
“꼭두새벽부터 어떤 좆 같은 새끼들이 난리를 피우는 거야!”
철컥, 철컥- 하는 소리와 걸걸한 목소리가 겹쳤다.
병사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철로 만든 인간형 골렘 같은 모습을 한 마공기갑병의 등장이었다.
“접근하는 거수자는 셋! 마법사로 보이는 자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겠다. 우리가 처리하지.”
급히 나온 마공기갑병은 다섯이었다.
그들은 그대로 높은 벽을 뛰어넘어 기지 밖으로 나갔다.
“저놈들이군.”
막 철조망 라인을 지나는 도진 일행을 발견한 그들은 일제히 전투를 준비했다.
손등 부분에 튀어나와 있는 일체형 칼날을 번뜩이며 도약하는 마공기갑병들.
그들은 도약인지 뜀박질인지 헷갈리는 기동을 선보이며 도진 일행에게 접근했다.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움직임이었다.
“으하하- 겁대가리 없는 놈들. 뭐 하는 놈들인지 몰라도 아주 곤죽을 만들어 주-”
마공학으로 만들어 낸 외장골격의 힘이 자신의 힘인 양 취해서 일갈하던 자의 말이 끊겼다.
대신.
“그륵……?”
기도로 핏물이 새어 들어갈 때 나는 소리가 났다.
3미터쯤 도약했던 커다란 마공학 갑옷 덩어리가 균형을 잃고 바닥에 꽂혔다.
“무슨 일이야!”
적만 보고 달리던 자들은 동료가 갑자기 쓰러지자 화들짝 놀라 돌아봤다.
그런데 쓰러진 놈만 있고 아무 이상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때.
콰직.
“커-”
하나가 더 당했다.
“이런 씹- 뭔가 있어!”
불안감에 붕 하고 주변을 베어보는 한 놈.
그런데 그 공격의 틈을 비집고 무언가가 휙 나타났다.
“흐아악!”
탄토였다. 큰 공격으로 그만한 틈이 생긴 마공기갑병 정면에 나타난 탄토는 비명 지르는 자에게 도끼를 선물했다.
전신을 빈틈없이 보호한다 해도 최소한의 유연성과 가동 범위를 위해서는 비교적 덜 튼튼하게 설계되는 틈새 및 관절부가 있기 마련.
탄토는 그곳만 집중적으로 노려 안에 있는 인간을 파괴했다.
“이런 머저리 같은 새끼들!”
앞선 놈들이 허망하게 당한 걸 본 마지막 놈은 제대로 된 기회를 잡기 위해 기다렸다.
탄토가 접근하기를.
‘기습당한 놈들은 몰라도 뻔히 보고 있던 놈들은 이걸 썼어야지!’
마공기갑병이 괜히 마공기갑병이 아니다.
이 갑옷에는 마법 발동 장치가 내장돼 있었다.
주변에 강력한 전기 충격을 주는 기능을 사용하면-
“헉!”
콰직!
갑자기 나타난 도끼 살인마만 신경 쓰느라 마법사가 지척까지 다가오는 걸 허용한 자의 최후는 처참했다.
끝이 뾰족한 암석에 의해 두부(頭部)가 순두부처럼 으깨진 놈은 허물어지듯 바닥에 쓰러졌다.
‘굳이 내가 며칠 동안 은신하면서 암습을 준비할 필요가 있던 건가?’
무식한 위력을 자랑하는 도진의 마법에, 탄토는 그런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