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24화 (224/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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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누스에서 군대와 경찰은 총통의 권력을 수호하는 칼과 숯돌이다.

그런 만큼 루마누스인들에게 군인과 경찰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독일의 비밀경찰, 중국의 공안보다 더한 이미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젠장, 우리가 이겼어!”

“그 자식들 표정 봤지? 다들 우리한테 겁을 집어먹었었어! 군인이고 경찰이고 다 겁을 먹고 살려 달라고 빌었다고!”

그런 그들에게 억압받고, 빼앗기기만 하며 살았던 자들에게 이번 승리는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여! 아직 끝난 게 아니다!”

하지만 약자들에게는 작은 승리에 기뻐할 여유조차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승리의 결과라고 해 봐야 드넓은 병기 창고 구석에서 무기를 조금 탈취한 게 전부다.

반면에 걸어야 하는 건 목숨이었다.

그것도 자신들만의 목숨이 아니라 연루된 자들 모두의 목숨.

“총통의 개들이 정신 못 차리는 사이에 갱도로 여길 빠져나가야 된다!”

그래서 레지스탕스들은 작전 성공 직후 뒤도 안 돌아보고 루마누스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도주 루트로 정해 놓은 갱도로 가는 중간지점에서는 여자와 아이들로 이루어진 그룹이 합류했다.

작전에 투입된 대원의 가족들이었다.

‘아주 멍청하진 않네.’

그들과 함께 움직이며 도진은 살짝 감탄했다.

테러리스트로서는 한참 모자란 초보자들이지만, 도망치는 것과 숨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어 보였다.

자신들이 사고를 치면 필연적으로 따라올 후폭풍을 피하기 위해 아예 나라 밖으로 도망칠 생각을 하는 것도 그렇고, 가족까지 함께 도주하는 것도 그렇고.

“아악!”

도진의 사색을 끊은 언 어느 사내 아이였다.

열심히 달리다가 도진의 바로 앞에서 철퍼덕 쓰러진다.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던 여인이 사색이 된 얼굴로 돌아보는 순간.

“조심해야지.”

도진이 아이를 번쩍 들어올렸다.

“제가 챙기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갱도에 도착했다.

저 멀리 뒤쪽에서 강한 조명이 이곳저곳을 훑듯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추적이다.

“안으로, 안으로! 길잡이는 앞으로 나서고, 따르는 사람들은 절대 앞선 사람을 놓치면 안 된다! 안에서 길을 잃으면 끝장이라는 걸 명심해야 돼!”

사령관의 말에 레지스탕스 대원들과 가족들이 비밀스럽게 만들어 놓은 굴을 타고 갱도로 진입했다.

어둠을 틈타 작은 구멍으로 줄지어 들어가는 그들의 모습은 인간에게서 도망치는 쥐를 닮아 있었다.

루마누스가, 총통이 그리고 총통의 졸개들이 그들을 줄곧 ‘쥐새끼’라 부르며 멸시해 왔던 걸 생각하면 묘한 광경이었다.

“빨리! 빨리!”

사령관은 마지막 한 사람까지 들어가는 걸 확인하기 위해 남아 있었다.

“느, 늦어서 죄송해요.”

행렬의 마지막은 어느 여인과 아이 그리고 마법사였다.

등에 아이를 업고, 달리는 것을 버거워하는 여인을 부축한 마법사의 모습에 사령관은 큰 괴리감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는 악마 같더니.’

불과 얼음을 뿌리고 적을 몰아내던 마법사는 말 그대로 악마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빨리 갑시다!”

시간이 촉박한데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사령관은 자책하며 여인의 등을 약하게 떠밀었다.

그렇게 모두가 들어간 걸 확인한 사령관은 장치를 조작했다.

자신들이 만든 작은 샛길의 입구를 무너뜨리는 장치였다.

* * *

밤은 망자의 시간이다.

그런 만큼 갱도에 존재하는 망령 몬스터들이 더 날뛰는 건 당연했다.

이곳을 도주로로 선택한 혁명군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열심히 싸워도, 열심히 도망쳐도, 희생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쯤 그들 모두가 알았다.

그럼에도 작전 실행과 도주의 때를 밤으로 정한 건 망령보다 총통의 하수인들이 그들에겐 더 큰 두려움이고 위협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도진이라는 행운이 있었다.

필연이 됐을지도 모를 누군가의 죽음이 이 밤을 찾는 일은 없었다.

레지스탕스, 그 가족들, 도진은 무사히 갱도를 빠져나와 오래전부터 준비해 둔 은신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꽤 열심히 준비한 모양이네.”

은신처는 상상 이상으로 그럴싸했다.

보존 기간이 긴 식량도 꽤 많이 준비되어 있었고, 생활에 필요한 다른 것들도 나무 상자에 담겨 쌓여 있었다.

주변 환경은 사람 살기에 최악이라고 할 만큼 열악했지만, 그만큼 들킬 위험은 적어 보인다.

“열심히 준비했지. 없는 형편에 이만큼 준비하는 게 쉽지는 않았어.”

혼잣말에 대한 대답은 뒤쪽에서 들려온 것이었다.

돌아보니 사령관이다.

그는 도진에게 따뜻한 잔을 내밀었다. 냄새를 보니 감자 스프였다.

도진은 그걸 받아들며 말했다.

“습격 작전이 워낙 엉성해서 답이 없구나 싶었는데, 다른 부분을 보니 아주 구제불능은 아닌 거 같군.”

“그야… 우린 싸우는 법은 모르니까. 하지만 도망치고, 숨고, 몰래 빼돌리는 건 자신이 있거든. 그래야 덜 배고프게 클 수 있으니 아주 어릴 때부터 체득하게 되는 기술이지.”

씁쓸한 이야기였다.

도진은 입안을 감도는 씁쓸함을 짠맛 나는 스프로 달랬다.

“그래, 이제 어쩔 생각이지?”

“우리 혁명군은 아주 은밀하게 넓게 퍼져 있어. 사고를 친 자들은 다 여기로 빼냈으니, 안쪽에서는 숨만 잘 죽이면 들킬 일이 없겠지.”

후륵- 하고 스프를 한입 머금은 사령관이 말을 이었다.

“파 놓은 쥐구멍도 아직 많이 있으니 안팎에서 흔들어야지. 정보를 통제하는 데도 한계가 있을 테고, 언젠가 많은 이들이 우리 존재를 알게 되면 안팎에서 들고 일어나는 우리를 감당하기 힘들어지겠지…….”

후우, 사령관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내 생각이고, 우리 생각이었다. 전군 사열이 있기 전까지 말이야.”

제국에서 왔다는 마법사들이 단기간에 총통에게 쥐여 준 힘이 그 정도라면,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

조바심이 난다. 뭔가 해야 하는 걸 알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그게 사령관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 사령관의 속내를 읽은 도진은 먹다 남긴 스프를 내려놓고, 연초를 꺼내 불을 붙였다. 밤공기와 연초의 연기가 뒤섞이며 마력의 냄새를 풍긴다.

“그놈들까진 내가 도와주지. 당신들 조직, 정보력은 쓸 만한가?”

사령관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정보력? 당연하지. 우리 혁명군은 어디에나 있어. 싸울 줄 아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지. 심지어 이젠 총통의 아들까지 우리한테 협력을 하고 있으니 저 윗선의 정보도 제한적이지만 손에 넣는 게 불가능한 게 아니라고.”

“그래 봐야 그 마법사들에 관한 정보나 키메라 등에 관한 정보는 접근도 못 한 거 아냐?”

“…….”

그걸 손에 넣을 수 있었으면 제국까지 오지 않았을 테니.

“나도 한 대 주지.”

사령관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답답함 때문인지 연초가 땡기는 모양.

도진은 순순히 연초 한 대를 건넸다.

불도 붙여 줬다.

“케헥, 커, 크흐……!”

그리고 사령관은 괴성을 냈다.

“이런, 젠장! 이게 뭐야? 독초를 피우는 거야, 뭐야!”

눈물을 머금고 원망을 한가득 담아 노려보는 눈초리에 도진은 소리 내어 웃었다.

“이건 담배가 아냐. 마법사들이 회로 안정과 강화를 위해서 피우는 거지.”

도진은 피우던 연초를 완전히 소각해 재로 만들어 날려 보내며 말했다.

“당신 말대로 저쪽에 시간을 길게 줘서 좋을 건 하나도 없어. 놈들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힘을 찍어 내는 데만 열중할 테니. 정보력이 꽤 좋다고 했지? 그럼 최근에 마석이랑 식량, 특히 육류가 집중적으로 보급되는 장소를 조사해 봐.”

“마석? 육류? 그건 왜 찾지?”

“전군 사열 때 키메라랑 마공학 장비로 무장한 병력이 나왔다고 했잖아? 그걸 가내수공업으로 찍어 냈겠어?”

도진의 말에 사령관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뭔가 눈치챈 자의 얼굴이다.

“키메라나 마공학 장비나 만드는 데 들어가는 설비가 있고, 재료가 있어. 그리고 설비, 재료 모두 공통적으로 대량의 마석을 잡아먹지. 거기다 키메라는 합성에 들어가는 생물에게 먹일 대량의 먹이도 필요하단 말이야.”

“그래서 마석이랑 식량이…….”

“아무리 숨겨도 숨겨지지 않는 게 물류거든. 원래는 마석을 1만큼 쓰던 곳에 마석이 갑자기 5씩 들어간다? 100씩 먹던 곳이 갑자기 300씩 먹기 시작했다? 거기에 뭔가 있다는 소리잖아.”

도진의 말을 듣고 사령관은 급히 자리를 떴다.

“마석이랑 육류… 아니, 식자재 정보면 된다는 거지? 알 만한 자를 찾아볼게.”

멀어지는 사령관을 보며 도진은 생각했다.

‘이쪽에서 알아내기 힘들다 해도 알토스를 통하면 이 정도 정보는 얻을 수 있겠지.’

알토스와 케이트는 이번 작전에서 빠졌다.

총통의 아들인 알토스와 군 장교인 케이트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적진에 남아 있는 게 훨씬 전략적 가치가 높기 때문.

그들을 통하면 도진이 지금 말한 정보 정도는 얼마든지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멸망교단 놈들 목적은 총통의 힘을 불려주는 게 아니다. 총통을 허수아비로 만들든 아니면 다른 수를 쓰든 지금 쌓고 있는 전력을 전부 자신들이 흡수할 생각이겠지.’

그렇게 만든 힘으로 또 사고를 치려 할 테고.

그걸 위해 생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본격적인 방해가 들어가면, 멸망교단에서도 어떤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면 뭐, 놈들의 계획을 분쇄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셈이니까.’

그러니까 일단 다 때려 부수고 보자. 이게 도진의 생각이었다.

“찾았다!”

몇 분 지나지도 않았는데 사령관이 돌아왔다.

약간 흥분한 듯 보이는 그는 정보를 아는 사람을 찾았다고 했다.

“저, 전 도축장에서 일하는 도로시라고 해요.”

정보의 출처는 젊은 여자였다.

도축장에서 잡부로 일했다는 그녀는 쭈뼛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일하는 도축장에서는 돼지를 잡아서 군부대 여러 군데랑 높은 분들 사시는 동네 식당으로 보내는 게 일이었거든요. 근데 그게 최근에 바뀌었었어요.”

‘여러 군데로 나가야 할 고기들이 전부 하나의 군부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고 도로시는 말했다.

“거기다 언제부턴가 뼈만 빼고 다 포장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피고 내장이고 껍질이고 전부. 폐기되는 게 없어져서 저희는 너무 아쉬웠죠.”

이어서 마석과 관련된 정보를 아는 자도 등장했다.

“전 국경에서 짐꾼을 했습니다. 다른 나라 상인들이 물건을 가져오면, 그걸 내리고 옮기는 일을 했죠.”

그는 자신이 흠씬 두들겨 맞았던 날의 이야기를 했다.

“넷이서 같이 상자를 옮기다 동료 한 놈이 쓰러진 일이 있었습니다. 워낙에 무거웠거든요. 그래서 상자가 부서져서 안에 들어 있는 게 바닥에 다 쏟아졌죠. 파란 돌이었습니다. 동료 중 한 놈이 그게 마석이라고 하더라고요.”

실수한 짐꾼들을 흠씬 두들겨 팬 군인들은 마석이 잔뜩 실린 마차를 끌고 작은 기지 하나밖에 없는 황무지 쪽으로 갔다고 했다.

“반대 방향이네.”

공교롭게도 이번에 테러를 일으킨 지역과는 정반대에 위치한 곳이었다.

‘총통님이 정신이 좀 없으시겠는데.’

다음 테러 장소는 그렇게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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