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23화 (223/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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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토스 일행은 내보내졌다.

혼자가 된 도진은 수십 명의 레지스탕스 대원 사이에서 두목, 아니 사령관과 마주 앉았다.

“루마누스 자유 혁명군 사령관이다.”

딱딱한 자기소개였다.

사령관이라는 남자는 복면을 쓰고 있었다.

드러난 건 눈매밖에 없지만, 목소리나 눈매만 봐도 40대는 훌쩍 넘어 보인다.

“도진. 제국에서 왔고. 직업은…….”

모험가 펜던트와 엘토마기아 증표를 차례대로 들어 올리는 도진.

사령관의 눈매가 꿈틀 움직였다.

“가장 유명한 데서 일하는 마법사셨군.”

마법이 메마른 땅에서도 엘토마기아는 유명한 마탑이었다.

게다가 최근 제국에서 건너왔다는 마법사들 때문에 그쪽으로 조사까지 하고 있었으니 알아보는 게 당연했다.

잠시 침묵 속에서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던 사령관이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우린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덕분에 아주 위태롭게 살고 있지. 갑자기 나타난 당신 같은 인물을 덥석 믿을 여유 따위 없는 처지란 소리다.”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당연하지. 이해해.”

“…당신에게 이해받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지만, 이해해 준다니 고맙군.”

고마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건조한 목소리와 말투였다.

도진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골치 아파 보이는군.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법사 하나가 여기까지 온 것도 그렇고, 죽여서 치우자니 데려온 사람이 또 왕자님인 것도 그렇고.”

레지스탕스와 독재자의 아들이라니. 듣기만 해도 참 골치 아픈 관계가 아닌가.

“내가 말 빙빙 돌리면서 시간을 끄는 걸 매우 싫어하거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난 당신들이 나라를 뒤엎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어.”

“…….”

사령관이 계속 말하라는 듯 눈짓했다.

도진은 계속 말을 이어 갔다.

“난 총통 옆에 붙었다는 마법사들만 보고 온 거다.”

“그들에 대해 알고 있다고 했지.”

“개인적으로 쫓던 놈들이거든.”

“개인적으로? 이유는?”

잠시 생각하는 눈을 한 도진이 입을 열었다.

“내가 좋아하는 걸 부쉈거든. 마법사 된 입장에서 보자면… 금기란 금기는 다 범하고 다니는 놈들을 방치하기 싫다는 이유도 있고.”

“먼 제국 땅에서 여기까지 위험을 무릅쓸 이유로는 충분하지 않아 보이는데.”

“어린아이 수백 명, 그 아이들의 부모가 또 수백 명. 사지가 멀쩡히 달린 사람은 드물었고, 엄마를 찾던 아이들은 끝끝내 구하지 못한 일이 있었어.”

사령관이 당황했다.

대놓고 의심하고 있다고 티를 낼 수 없는 사연이었다.

“유감이군…….”

도진은 사령관과 눈을 마주쳤다.

“당신들 입장에서도 총통의 힘을 키워 주는 놈들을 빨리 치워 버리고 싶겠지. 나도 마찬가지다. 계획이 있다면 도울 거고, 이렇다 할 계획이 없다면 계획 단계에서부터 협력하지.”

“그쪽 사정은 알았어. 하지만 그걸 쉽게 믿기엔… 걸린 목숨이 너무 많아. 하아… 젠장,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

사령관이 고민할 때였다.

밖에서 대원 하나가 들어왔다.

그는 도진 쪽을 곁눈질하며 사령관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속삭였다.

“사령관님의 믿음과 별개로, 마법사를 적대하지 말라는 왕자의 전언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 쪽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을 거라고…….”

티를 내지 않으려 했으나 사령관의 턱 근육은 긴장으로 인해 옅게 경련했다.

‘저자가 그 정도로 위험하다고?’

하기야. 어쩌면 사지가 될지도 모를 곳에서 시종일관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는 걸 보고 보통 놈은 아니다 싶긴 했다.

‘후우, 어쩔 수 없지. 허튼짓할 새도 없게 계속해서 굴리는 게 차라리 안전할 수도 있고.’

도진의 레지스탕스 생활 1일 차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

문제의 전군 사열 이후 루마누스 자유 혁명군은 자극을 받은 상태였다.

꾸준히 힘을 키우기 위해 숨어 있어 봐야 시간이 갈수록 총통과의 전력 차가 벌어지기만 할 거란 불안이 조직 전체를 휩쓴 것.

그런 불안은 그들의 레지스탕스 활동에 불을 지폈고, 적극적인 테러를 감행하게끔 등을 떠밀었다.

“오늘 밤 병기 창고를 습격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도진이 혁명군과 접촉한 날은 그들이 병기 창고 습격을 감행하기로 한 날이었다.

뭐, 갑작스럽긴 해도 예상을 아예 벗어난 건 아니었다.

레지스탕스니 혁명군이니 하는 자들과 함께하기로 한 이상, 테러 쪽으로 퀘스트 방향이 잡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니.

시작부터 총통 옆에 있을 놈들에게 돌격할 수는 없으니, 이렇게 차근차근 연계되는 퀘스트 라인을 따라가는 게 정석이었다.

‘여기까진 괜찮아. 괜찮은데…….’

병기 창고를 습격하겠다는 레지스탕스들의 무장 상태가 문제였다.

“대장! 총이 두 자루가 먹통인데요? 마석이 불량인 거 같습니다!”

“사령관, 이 자식아! 그런데 뭐? 마석이 왜 불량이야! 어떻게 구한 건데!”

그들의 무장은 마총 중에서도 총신이 긴 마나 머스킷이었다.

마공학 병기 중에서도 가장 구식이고 성능이 떨어지는 물건이다.

한데 그것마저도 총수량이 48정에 불과했고, 그중 2정은 마석이 불량이었다.

철컥철컥, 하고 직접 마나 머스킷을 조작해 본 사령관이 인상을 찌푸린다.

“젠장, 어렵게 구한 물건이 이 모양이라니.”

그때 알토스가 들어오며 말했다.

“사령관님! 이 작전은 자살행위입니다! 제가 분명 말씀드렸을 텐데요. 방법을 찾을 때까지는 최대한 숨을 죽이고 기다려야 한다고요.”

불량 머스킷을 내려놓으며 사령관이 말했다.

“후우. 왕자님, 아니지 왕자라 부르는 걸 싫어하셨지. 어쨌든 나라고 이게 미친 짓이란 걸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다린다고 답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죠.”

“제가 힘을 써 보겠습니다. 무기가 됐든 정보가 됐든 어떻게든 해 볼 테니…….”

“지금까지 기다린 게 한계입니다. 막말로 키메라나 마공 기갑병이 주요 거점에 다 배치될 정도로 늘어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린 아무것도 못 하게 될 겁니다.”

“…….”

“그 전에 제대로 된 무기를 확보하려면 이 방법뿐입니다.”

루마누스 자유 혁명군의 계획은 아주 심플했다.

비교적 털기 쉬워 보이는 병기 창고를 습격한다.

양질의 무기를 손에 넣는다.

그걸로 혁명에 목숨을 건 대원들을 무장시킨다.

더 중요한 거점을 습격한다.

요인들도 납치한다.

최근 총통의 힘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하려는 키메라, 마공 기갑 제작에 관련된 정보를 손에 넣어 그 생산 기반을 부순다.

이렇게 계단식으로 올라가며 루마누스 내부의 혼란을 키우고, 그걸 본 뜻 있는 자들을 합류시켜 세력을 키우고…….

‘결국에는 자유다, 엔딩을 노리는 건데.’

철컥, 펑.

“아악!”

격발 불량 머스킷을 계속해서 만지작대다가 결국 폭발시키는 대원을 보면, 첫 번째 계단에서 걸려 넘어져 그대로 즉사할 것만 같았다.

‘어쩔 수 없나. 이들이 제대로 활동하는 건 나중 일인데, 멸망교단이 총통 옆에 붙어서 이들을 자극하는 바람에 이렇게 된 거니까.’

무르익고서도 실패한 자들이다.

아직 제대로 익기도 전에 피어나려 하고 있으니 오합지졸 같은 면모는 당연했다.

그리고 이런 사태의 책임이 도진에게도 약간은 있었다.

도진이 멸망교단에게 연달아 엿을 먹인 스노우볼이 여기까지 굴러온 것이니 말이다.

‘책임감이랑 별개로 여기서 이 사람들이 싹 다 자살 특공으로 증발해 버리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야.’

퀘스트 진행이 매끄럽게 이어져야 목표물인 멸망교단 놈들에 닿는데, 시작부터 좌초되면 끝장이다.

“후우.”

도진은 한숨을 내쉬며 사령관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가 내려놓은 머스킷을 들어 올렸다.

“뭐 하는……?”

도진은 머스킷 마석 카트리지를 열고 마석을 제거했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꺼낸 양질의 마석을 끼워 넣었다.

키이잉- 하고 정상적인 구동음이 울렸다.

“마석이 불량품이라 문제면 마석을 갈면 되는 일이잖아.”

“…말은 쉽지. 이 나라에서 우리 같은 자들이 마석을 구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젠 쉬워졌군.”

도진은 마석 50개 정도를 인벤토리에서 쏟아 냈다.

사령관은 물론이고 다른 대원들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신들, 가용 인원은 50명 정도가 전부인가?”

마석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사령관이 말했다.

“아니다. 인원은 훨씬 많지.”

“그럼 30명 정도 더 굴려. 폭탄만 설치하면 되니까.”

이번에는 도진의 인벤토리에서 마석 폭탄이 쏟아졌다.

우수수 쏟아지는 마석 폭탄을 본 사령관이 물었다.

“폭탄이라니……?”

루마누스에서는 마석도 마약과 비슷한 수준으로 통제되고 있었다.

그러니 마석 폭탄은 오죽할까.

사령관 눈에는 마석 폭탄이라고 해 봐야 문양이 새겨지고 빛깔이 좀 다른 마석으로 보였다.

“마석을 폭발하게 가공한 물건이다. 일정량 이상의 힘이 가해지면 폭발하지.”

레지스탕스 전원이 몇 걸음씩 물러났다.

그걸 본 도진은 어이가 없어 웃음을 흘렸다.

사실상 걸어 다니는 폭탄이나 다름없는 자신에게 총을 들이밀던 자들이 이런 마석 폭탄에 겁을 먹고 물러나다니.

“걱정 마, 안정성이 높은 고급이니까. 다룰 때 조심만 하면 갑자기 터지는 일은 없을 거다.”

사령관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이런 걸 우리한테 줘도 되는 건가?”

세상 모든 것에는 값이 있다고 했던가.

사령관의 태도에 믿음이 묻어났다.

공화국에서는 돈이 있다고 해도 구하기 힘든 폭발물은 같은 무게의 신뢰와 교환하기에 충분한 물건이었다.

“말했잖아. 난 놈들을 빨리 처리하고 싶다고. 그걸 위해서라면 이것에 수백 배를 투자해도 아깝지 않아. 그것보다, 이걸 설치할 인원부터 따로 추려. 사용법을 알려 줄 테니까.”

“그러지.”

도진은 테러리스트 꿈나무들에게 마석 폭탄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사용법이라고 해 봐야 특별할 것도 없었다.

마석 폭탄을 설치하고, 거리를 벌린 뒤 다른 마석 폭탄을 설치 지점 근처에 냅다 던지면 그만이다.

그러면 투척한 폭탄이 충격으로 터지면서, 이어서 설치해 둔 마석 폭탄이 유폭을 일으키는 식이니.

“욕심 부리지 말고 빠르게 치고 들어가서 가지고 나올 수 있는 만큼만 가지고 나와. 아, 그리고 이걸 쓰고.”

도진은 인벤토리 공간 활용을 위해 챙겨 다니는 아공간 주머니도 건네줬다.

안에 수용하는 부피나 무게나 인벤토리에 비하면 형편없는 물건이지만, 그래도 작은 주머니가 큰 배낭 정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의미가 있긴 했다.

‘더 있으면 좋았을 텐데.’

인벤토리를 쓰는 유저에게는 그다지 필요가 없는데, 가격은 말도 안 되는 수준이라 도진도 3개만 들고 다니는 물건이었다.

“…….”

이젠 사령관은 뭐라 말도 못 했다.

심각하게 어려운 처지에 놓인 반군 입장에서 마법처럼 필요한 걸 쏟아 내는 도진은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

억지로 의심하는 마음을 부여잡지 않으면, 덜컥 완전히 믿어 버리게 될 거 같았다.

“작전을… 다시 짜야겠군.”

도진의 개입으로, 높은 확률로 자살 행진이 될 예정이었던 습격 계획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리고 같은 날 밤.

루마누스 자유 혁명군은 사상자 없는 승리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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