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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22화 (222/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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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국경 관문을 어떻게 넘었나 했더니, 답은 돈을 주고 산 모험가 펜던트였다.

당당하게 관문을 통과한 뒤 제국과 모험가 길드가 관리하는 지역을 완전히 벗어나자 본격적인 괴물의 영역이 펼쳐졌다.

이동 중 해가 지고, 달도 뜨지 않은 새까만 밤이 찾아왔다.

그러자 루마누스인들은 재빠르게 흑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들 중 하나가 도진에게 여분의 흑복을 건네려다 이미 복장이 검은색 계통인 걸 보고는 물러났다.

“밤엔 위험할 텐데?”

몬스터는 밤에 강해진다.

이건 상식이었다.

하지만 상식이 언제나 통용되는 건 아니었다.

복면을 코까지 끌어올리며 여자가 대답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오히려 밤에 안전하다. 낮에만 활동하는 녀석들이 있는 데로만 골라서 움직일 거니까.”

“그래? 그렇다면 뭐.”

“뒤처지지 말라고.”

밤을 달리는 산악구보가 시작됐다.

복장을 새까맣게 통일한 그들은 완전히 밤에 녹아들었다.

여자가 괜히 까칠하게 뒤처지지 말라고 한 게 아니었다.

그냥 달려도 힘들 험지를 밤에 달리는 건 체력이 엄청나게 요구되는 일이었다.

‘…마법사로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힘든 강행군이다. 지쳐서 쓰러지지나 않으면 다행일 정도로.’

어쩌면 중간에 탈진을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입막음을 해야 하나? 저자를 어디까지 믿어야 하지?

알토스를 포함한 루마누스인들은 자신들에게 선택을 할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헛된 망상이었다.

“하악… 하악… 하악…….”

“허억, 허억, 헉……!”

하나둘 루마누스인들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있음에도 도진은 태연했다.

움직임은 지나치게 가볍고, 숨은 무서울 정도로 고요하다.

중간중간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멈췄을 때도 도진은 지친 기색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매복해 있다가 튀어나와 습격을 감행한 전갈형 몬스터가 도진에 의해 순식간에 전갈 구이가 되는 걸 보고는 허튼 생각을 완전히 접었다.

‘마법사란 족속들은 죄다 저런 괴물인가?’

며칠 동안 도진과 동행하면서 루마누스인들은 혼란스러운 감정에 휩싸였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 있는 위험지대는 목숨을 걸지 않으면 지날 수 없는 길이었다.

그런데 제국행 때와 달리 공화국으로 돌아가는 길은 너무 마음이 편했다.

몇 번인가 몬스터가 기습을 했지만, 그때마다 마법사가 깔끔하게 처리했다.

자신들만 있었다면 분명 희생자가 나왔을 전투였음에도 말이다.

그러다 보니 도진에게 목숨을 빚지는 사람도 나왔다.

“여기… 드십시오.”

루마누스 일행 중 막내 데닉은 바닥에서 솟아오른 넝쿨에 끌려 들어갈 뻔했다.

그걸 구해 준 게 도진이었고, 이후로 그는 도진에게 존대를 시작했다.

따로 끼니를 때우는 도진에게 식사를 권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도진은 스프에 빠졌음에도 건조하기 짝이 없는 염장고기를 보며 피식 웃었다.

신경 써서 건더기를 푼 게 느껴지는 양.

17살이라고 했던가? 데닉은 꽤나 귀여운 구석이 있는 소년이었다.

“맛은 없네.”

더럽게 맛없고 질긴 고무 같은 고기로 끼니를 해결하기를 며칠.

드디어 도진은 루마누스 공화국에 도착했다.

“루마누스 공화국으로 들어갈 때는 무너진 갱도를 통해 들어갈 거다.”

이번 밀입국 루트는 갱도였다.

무너진 채 방치되어 던전화된 곳이라 했다.

갱도로 연결되도록 파 놓은 토굴 입구는 교묘히 가려져 있었다.

알고 찾아도 찾는 데 한참 걸릴 정도였다.

좁은 토굴을 기어간 끝에 도착한 곳은 꽤 넓은 터널이었다.

붕괴된 갱도의 중간지점쯤 되어 보였다.

갱도 내부는 일부 구간은 멀쩡하고, 일부는 무너져 있고, 말 그대로 엉망이었다.

더 엉망인 것은 곳곳에 붕괴 당시에 깔려 죽거나 통로가 막혀 갇혀 죽은 자들의 유골이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

도진은 아주 작은 체구를 가진 뼈를 보았다.

골격을 보아 여자고, 체구를 보아 여자 중에서도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그 시선을 감지했는지 일행 중 유일한 여자 케이트가 말했다.

“부실한 안전장치와 무리한 채굴이 낳은 참사였다.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지. 그런 와중에 정부는 구조를 아예 포기했고. 채굴할 만큼 채굴했는데, 굳이 막힌 갱도를 다시 파고 그럴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거겠지. 사람 목숨은 계산에 들어가지도 않았을 거고.”

얼핏 차분하게 들렸지만 케이트의 눈에서는 분노가 일렁였다.

그런데 그때 저편에서 푸른 안개 같은 것이 일어났다.

“망령입니다!”

데닉의 외침대로 망자들의 원한이 맺힌 곳에서 몬스터가 일어난 것이었다.

도진은 반사적으로 마법회로를 열었다.

하나 방금 대화를 나누던 케이트의 표정을 보고는 공격 마법을 거뒀다.

삭막한 눈으로 입술을 깨문 모양새가 영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도진은 검을 뽑으려 드는 알토스의 옷깃을 잡아 뒤로 당겼다.

“헉?”

“이런 곳에선 싸워 봐야 끝이 없어. 시간 낭비하지 말고 나가자고. 뒤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끄고.”

알토스의 등을 강하게 떠미는 도진.

그는 도진의 마법회로가 빛나는 걸 보고는 외쳤다.

“최대한 빨리 갱도를 벗어난다!”

이동이 시작됐다.

뒤쪽에서 망령 떼가 달려들려 했지만, 도진이 만든 불의 벽에 가로막혀 접근하지 못했다.

갱도에는 사람 하나가 간신히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의 길이 꾸준하게 나 있었다.

아마도 레지스탕스가 뚫어 놓은 길 같았다.

그러다 앞이 아닌 옆으로 길이 뚫려 있는 곳이 나왔다.

‘물소리?’

달리면서 들리는 희미한 소리는 물이 흐르는 소리였다.

답은 금방 알 수 있었다.

하수도였다.

이후로도 복잡한 루트를 거친 후에야 도진은 어느 집 바닥을 뚫고 지상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지상으로 올라왔다고 해도 밖은 어두웠고, 조명 없는 집 안은 더욱 어두웠다.

“하아…….”

떳떳하지 못한 자들에게 어둠은 오히려 포근한 것이었다.

겨우 안전한 곳에 도착했다는 생각에 모두가 안도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다 그런 건 아니었다.

케이트와 데닉은 여전히 밭은 숨을 몰아쉬며 불안한 눈을 하고 있었다.

그들 중 케이트가 티가 나지 않게끔 노력하며 침대로 다가갔다.

그리고 침대 밑에서 무언가를 꺼내 꼭 쥐었다.

‘벨라?’

몰래 한 행동이었으나 갱도 안에서부터 그녀를 주시하던 도진은 똑똑히 보았다.

그녀가 침대 밑에서 꺼낸 건 벨라의 문장이 새겨진 펜던트였다.

루마누스 공화국은 종교의 자유가 없는 나라다.

아니, 자유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철저히 금지되어 있다.

벨라를 상징하는 푸른색 별을 지니고 있다 들키면 바로 어디론가 끌려간다.

그런 곳에서 저러고 있는 케이트나, 그런 그녀에게 조심히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려놓는 데닉이나 사연이 있어 보였다.

도진은 조용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오늘 다시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

케이트, 데닉이 동시에 눈을 크게 떴다.

“…감사합니다.”

데닉은 이미 자리를 잡고 쉬기 시작한 도진에게, 들릴 듯 말 듯 말했다.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 * *

날이 밝고, 도진은 알토스 일행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루마누스 공화국의 풍경을 보고 도진이 느낀 감상은 퍽퍽함과 삭막함이었다.

제각기 배정받은 노동을 하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표정이란 게 없었다.

그건 어른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죽은 생선 같은 눈으로 일터를 향해 걸어가는 아이들은 영화에서도 본 적 없는 장면을 연출했다.

“공화국에서는 10살이 되는 해부터 노동의 의무가 부여됩니다.”

데닉이었다.

‘그래서 갱도에 어린애들로 보이는 뼈가 꽤 보인 건가.’

저 멀리 빼빼 마른 아이가 곡괭이를 힘겹게 끌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10살부터 일을 시키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저건 좀 아닌 거 같은데. 할 수 있는 걸 시키는 게 맞지 않나? 효율 문제도 있잖아.”

“부모의 일을 물려받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저 아이는 4급 시민의 자식이라 4급 시민이 할 수 있는 일만 할 수 있는데… 부모와 자식이 같은 일을 하면 배급에 있어 특혜가 주어집니다.”

보면 볼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불쾌함이 일어난다.

계속 걷던 중 골목길 근처에서 퍽퍽 하는 소리가 났다.

“이 개새끼! 어디서 남의 돈을 털려고 들어!”

작지 않은 덩치의 남자가 열다섯쯤 되어 보이는 애를 구타하고 있었다.

말하는 걸 보니 도둑질이나 소매치기를 하다 잡힌 모양이었다.

도진은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삭막한 눈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빨리 상대방의 화가 풀려 구타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그런 눈이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보고 있으려니 짜증 나는 광경이어서, 도진은 돈으로 해결하기 위해 그쪽으로 방향을 꺾으려 했다.

“헉!”

하지만 저 멀리서 다가오는 경찰들을 본 남자가 부리나케 도망가면서 상황은 일단락됐다.

소년도 같은 방향으로 도망쳤다.

“그래도 저렇게 구타로 끝내는 건 온화한 겁니다. 도둑질을 하다 붙잡히면 바로 교화소행이거든요. 교화소에 끌려가면 최소한 2년 이상은 강제노역을 해야 하고, 풀려난 이후에도 최하 계급인 5급 시민으로 고정됩니다.”

그러면 산지옥을 살게 되는 거죠. 도진의 시선을 따라다니며 가이드를 해 주는 데닉의 말은 하나같이 희망이 넘치는 것들이었다.

정말 희망으로 가득한 나라였다. 루마누스 공화국은.

지독한 반어법을 적용하자면 말이다.

“여기다.”

불쾌한 관광의 끝자락은 손님 없는 빵집이었다.

알토스의 안내에 따라 빵집 안으로 들어서자 중국 농민공들이 먹는다는 밀가루 반죽보다 한술 더 뜨는 빵들이 쌓인 게 보였다.

“달콤한 케이크를 주문하고 싶은데.”

알토스가 빵집 주인에게 속삭이자 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래에 있습니다.”

비밀통로는 주방 바닥에 있었다.

그곳을 향해 지하로 내려가자 다시 벽에 비밀통로가 있었다.

그렇게 이동과 이동을 거듭한 끝에 드디어 공화국의 자유를 꿈꾸는 조직을 마주하게 됐다.

“…알토스 님, 그자는 누굽니까.”

서로에 대한 인사는 도진에게 겨눠진 다수의 총부리였다.

“제국에서 데리고 온 마법사입니다. 총통에게 협조하고 있는 마법사들에 대해 아는 바가 있다고 해서 데려왔습니다.”

“독단적으로 제국까지 간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를 여기까지 끌고 오시다니… 너무 무모한 것 아닙니까?”

알토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믿을 만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 믿을 근거가 있긴 했다.

지금 자신들이 고문실에서 비명을 지르지 않고 있다는 거.

그것 말고는 솔직히… 없긴 했다.

“…….”

레지스탕스 간부로 보이는 자는 알토스를 지그시 응시하다가 한숨을 쉬며 손을 들어 올렸다.

도진에게 겨눠졌던 총부리와 날붙이들이 일제히 거둬졌다.

“후우…….”

알토스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도진의 눈치를 살폈다.

위가 경련하는 것만 같았다.

저들은 알고 있을까. 방금 목숨이 위험했던 건 저 마법사가 아니라 자신들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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