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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21화 (22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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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를 들어본 결과, 이들은 레지스탕스였다.

알토스가 수장으로 있던 미래의 반군 세력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암암리에 활동해 오던 레지스탕스.

‘그 조직을 만든 게 알토스가 아니었나? 원래 있던 조직이랑 협력을 하다가… 결국 수장이 돼서 내전까지 간 거겠네.’

루마누스 공화국 쪽은 도진도 기억하는 바가 많진 않았다.

다른 곳에서도 재앙이 뻥뻥 터지고, 몬스터가 물밀듯 밀려드는 세상이었다.

대륙 구석에 있는 폐쇄적 독재국가에 대한 기억이 많기는 어렵다.

가끔 들르는 모험가 길드나 술집, 여관 등에서 자연스럽게 주워들은 소문과 여기저기 붙어 있던 알토스의 수배전단 정도는 기억이 나지만.

‘뭐, 지금 당장은 레지스탕스가 아니야. 숨죽이고 있던 놈들이 이런 무모한 짓거리까지 하게 만든 상황이지.’

알토스가 제국까지 잠입해서 마법사 납치라는 머저리 같은 짓을 한 배경은 이러했다.

“…얼마 전 공화국에선 전군 사열 행사가 있었다. 그때 총통은 새롭게 창설된 마공학 부대를 공개했다. 알고 보니 제국에서 건너온 마법사들이 총통에게 협력해 힘을 보탠 결과였지.”

가뜩이나 숨 쉬는 것도 조심스럽게 쉬어 가며 활동하는 처지가 현재 루마누스에서 활동 중인 레지스탕스의 처지였다.

툭하면 동지가 끌려가 고문 끝에 죽음을 맞이한 뒤에 시체는 강산성 용액에 녹아 하수구에 버려지는 상황인 것이다.

안 그래도 마왕이나 다름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자이자 독재자인 총통에게 마법사들이 접근해서 힘을 키워 주고 있으니 눈이 돌아가는 게 당연했다.

“키메라를 탄 기병, 마공학 장비로 무장한 기갑병이 가장 눈에 띄었다. 시연을 위해 준비한 몬스터들은 광전사처럼 날뛰는 기갑병들에게 갈기갈기 찢겼다. 그건 마치 공화국의 미래가 찢기는 걸 보는 듯했지.”

이 대목에서, 도진은 등에 소름이 돋았다.

“다른 건? 총통에게 협력한다는 마법사들에 대한 정보는 없나?”

“없어. 보면 알잖아. 우리도 무작정 정보를 얻어 보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온 거다.”

“그래서 아무나 만만해 보이는 마법사를 납치해서 정보를 캐내려고 했다?”

여자도 부끄러움이란 걸 아는지 얼굴을 붉혔다.

자기가 생각해도 참 머저리 같은 짓이란 걸 아는 거겠지.

“…우리도 단번에 알아낼 생각은 없었어. 그저 제국 내부 사정이랑 마법계의 소식 정도만 캐내는 걸 목표로 했다. 거기서 시작하려고 했을 뿐이야.”

말을 하던 여자가 불안한 눈길로 바닥을 보았다.

“내가 알고 있는 건 다 말했다. 당신을 습격한 데 대한 보상은 어떻게든 할 테니 어서 묻혀 있는 사람들을 꺼내 줘.”

도진이 손을 까딱였다.

동시에 아래 묻혀 있던 사람들이 위로 올라온다.

그런데 산소가 부족했는지 다 기절한 상태였다.

그래도 옅게나마 호흡이 있는 걸 보니 죽진 않았다.

“알토스 님!”

여자가 화들짝 놀라 버둥거렸다.

그러더니 ‘헉’ 하고 도진을 본다.

자기도 모르게 총통 아들내미 이름을 불러 버린 걸 깨달은 거겠지.

도진은 한숨을 쉬면서 알토스를 가리켰다.

“총통 아들?”

이미 알고 있지만, 굳이 ‘앎’에 개연성을 부여해 주는데 주워 먹지 않을 이유는 없다.

여자는 새하얗게 질려서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불어 버린 정보만 해도 자신들은 물론이고 조직의 사활이 걸린 수준인데, 여기서 알토스의 정체까지 불어 버렸으니 죽고 싶은 심정이겠지.

도진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굳어 있는 여자에게 말했다.

“잠깐 기절한 정도니까 이것들 걱정은 그만하고. 아까 하던 얘기나 계속해 봐. 그 새로 만들어진 부대라는 거. 사소한 특징까지 기억나는 건 다.”

여자에게 있어서는 도진의 관심을 다시 다른 곳으로 돌릴 기회였다.

여자는 필사적으로 그때 보았던 것들을 떠올려 자세히 설명했다.

“정예만 가려 뽑았다는 걸 감안해도 그들은 덩치가 엄청 컸다. 거기다 아주 육중한 갑옷으로 무장했고. 총통은 그들을 마공기갑병이라 불렀지. 그런데 특이한 건… 눈까지 다 가려진 투구를 썼는데도 붉은색 안광이 흘러나왔었다.”

“키메라 쪽은? 전형적인 키메라였나?”

“…아니,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징그러웠다. 키메라 기병대라고 했지만, 그것들 다리는 바퀴벌레한테나 달려 있어야 할 벌레 다리였어.”

“하아…….”

도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런 애들이 갑자기 나한테 달려들 이유가 그것밖에 더 있나.

‘멸망교단 새끼들, 제국에서 헛짓하기 힘드니까 루마누스 쪽으로 방향을 틀었구나.’

멸망교단이다.

대형화한 벌레를 키메라 합성에 쓰는 것도 그렇고, 붉은 안광을 뿌리는 마공기갑병도 그렇고, 다 멸망교단 놈들이 나중에 써먹는 수법이었다.

“…한심하겠지. 우리가 우스워 보이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가 지닌 조국을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진심이다.”

“지금 한숨은 그런 의미가 아냐. 뭐, 너희가 한심하고 멍청해 보이는 건 맞긴 하지만.”

“…….”

“듣다 보니까 너희 총통 옆에 붙어 있는 놈들이 누군지 알 거 같아서 말이야.”

“정말이냐!”

도진은 귀를 막는 시늉을 했다.

아니, 시늉이 아니라 진짜 귀가 아플 정도로 목소리가 컸다.

“이런 상황에 내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잖아.”

여자의 눈동자가 격하게 떨렸다.

파묻혀서 살려 달라고, 더 나아가서 조직에 대한 비밀을 발설하지 말아 달라고 빌어야 하는 입장에서 정보까지 달라고 하기에는…….

거기다 자신들은 이 마법사를 습격한 입장이기까지 했다. 민망함은 둘째치고 정보를 구걸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우리가 공격하려 했던 것에 더해서 어떤 식으로든 정보에 대한 값도 치르-”

그래도 한번 질러는 보려고 입을 뗐는데.

“근데 걔들 정체를 알아낸다고 해서 니들이 뭘 할 수 있는데?”

도진이 찬물을 끼얹었다.

여자가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모르고 당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때 알토스가 깨어났다.

우욱 하고 바닥을 이마로 밀며 고개 들어 올리는 알토스.

도진이 그를 보며 말했다.

“공주님의 키스 없이도 깨어나다니. 꽤 성실한 왕자님인데.”

“…….”

알토스가 여자를 보고, 여자는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볼 거 없어. 그 여자가 안 불었으면 넌 생매장 신세였을 테니.”

“이미 많은 걸 들은 모양이군.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흐음…….”

도진은 손을 펼쳤다.

그러고는 손가락 하나를 접어 보였다.

“루마누스 놈들이 제국 내에서 마법사를 납치하고 다닌다고 신고한다.”

알토스와 다른 자들의 얼굴에서 색소가 빠져나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진은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 가며 자신이 지닌 선택지를 읊어 나갔다.

“그냥 내가 처리하는 것도 괜찮겠고. 내가 소속된 마탑에 알려서 문제를 삼는 것도 괜찮겠네. 아예 루마누스 공화국에 정식으로 항의를 해서 보상을 요구해도 되겠고. 아니면… 그냥 너희를 총통한테 팔아넘겨도 되고.”

도진에게 정보를 불어서 이 상황을 만든 당사자인 여자는 덜덜 떨기 시작했다.

아무리 알토스를 살리기 위한 선택이었다지만, 도진의 입술 끝에 달린 목숨의 숫자가 너무 불어나 버렸다.

“돈이 목적이라면-”

“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알토스의 말을 끊으며 여자가 끼어들었다.

노예가 되라면 노예가 되고, 혀를 깨물라고 하면 당장에 씹어서 삼킬 기세였다.

물론 도진은 둘 다 사양이었다.

“이렇게 하지. 총통에게 접근한 그놈들, 나도 치워 버리고 싶거든. 너희한테 정보를 넘긴다고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 거 같진 않고… 그냥 내가 직접 하려고 하는데.”

도진이 알토스를 가리켰다.

“날 좀 도와줘야겠어.”

알토스가 당황한 눈으로 되물었다.

“갑자기 그렇게 말해도… 우리가 뭘 믿고 너를 도우란 거냐?”

도진이 코웃음을 쳤다.

“여기서 너흴 죽여도 되는데 죽이지 않는 것. 제국이든 공화국이든 어디에 팔아도 비싸게 팔 수 있는데도 팔아넘기지 않는 것. 이거 말고 어떻게 더 확실하게 믿음을 주지?”

알토스는 반박하지 못했다.

다 맞는 말이기에.

하지만 납득하기가 힘들었다.

‘…이자는 우리가 제국에 잠입해서 가장 처음으로 접근한 마법사다.’

그런 자가 하필이면 실력자고, 공교롭게도 루마누스 총통에게 접근한 마법사들과 악연이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설마 우리의 정보를 더 캐내서 뿌리까지 뽑아낼-’

아니, 이건 더 가능성이 없는 일이지.

하필이면 자신들이 습격한 마법사가 총통의 끄나풀일 가능성을 따지고 드는 건 과대망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이런 식으로 엮일 확률이란 게 존재하나 싶을 정도군… 알겠다. 어차피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으니.”

알토스의 대답과 동시에 도진이 묻혀 있던 자들을 완전히 해방해 줬다.

“이해해. 어이없는 확률이긴 하지.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이런 멍청한 짓을 하고도 목숨이 붙어 있을 확률도 낮긴 마찬가지잖아?”

그렇게 말하며, 도진은 엘토마기아 증표를 꺼내 흔들었다.

“그러니까 운명에게 감사하라고. 목숨을 부지한 것도 모자라서 엘토마기아의 마법사 같은 고급 인력을 보내주셨으니 말이야.”

운명이 이끌었다.

이 말보다 어울리는 말은 없을 거다.

도진의 눈앞으로 떠오르는 퀘스트 창과 알토스 주변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황금색 입자가 증거였다.

“…….”

도진의 놀리는 투에 알토스를 비롯한 레지스탕스 꿈나무들은 치욕스런 얼굴이 됐다.

하지만 이들이 특별히 무능한 건 아니었다.

막막한 상황에 내몰린 인간의 판단력이란 게 얼마나 하찮은지는 역사가 증명하는 것이니.

지금도 지구 최강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는 미국조차 대량의 흑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나.

‘…이미 개연성이라고는 없는 3류 소설 같은 역사적 흑역사랑 비교해야 하는 시점에서 끝인가.’

도진은 왜 루마누스의 자유를 꿈꾸던 레지스탕스가 쿠데타에 실패했는지 알 거 같았다.

“그 문장은 엘토마기아군. 하필이면 고르고 고른 만만해 보이는 마법사가…….”

엘토마기아 문장을 알아본 알토스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소속을 드러내는 게 아무것도 안 보여서 만만하게 보고, 마법학회와 마법계 정보나 좀 캐내려고 한 거였는데…….

도진은 로브에 달린 후드를 쓰면서 말했다.

“당신들, 나 하나 정도는 밀입국시킬 수 있겠지?”

독재자 입장에서 마법은 총과 같은 것이었다.

피지배층 사이에 퍼지면, 자칫 지배력이 약화될 수도 있는 치명적인 독.

그런 이유로 루마누스는 마법사의 입국 자체를 받지 않았다.

루마누스에서 마법과 마공학은 오직 총통과 당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제국에 숨어들기 위해 빠져나오면서 정식 루트로 나오진 않았을 거고.

들어갈 때도 나올 때 쓴 뒷길을 쓸 예정일 터.

“가능하다.”

“좋아.”

인벤토리 정리만 하고 산책을 나가려던 도진이었으나.

나서는 건 집이 아니라 제국 국경이 됐고, 산책은 밀입국을 위한 잠행으로 대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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