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18화 (218/271)

218

[퀘스트]

잃어버린 길

등급: 히든

[몬스터를 박멸하여 강철 봉우리 드워프에게 잃어버린 길을 되찾아 줄 방법을 찾자.]

보상: 경험치, 골드, 강철 봉우리 드워프 호감도

그냥 던전을 발견해서 깨면 그저 클리어에서 끝이지만, 이렇게 얽힌 사연을 풀어나가다 보면 퀘스트에 닿게 된다.

도진은 퀘스트 창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걸었다. 의미라고는 없는, 약속 장소까지 가면서 심심해서 하는 행위였다.

약속 장소는 티그렉 산 초입에 있는 동굴 입구로 정했다.

파티원들에게 설산을 넘어서 드워프 마을까지 와 달라고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이쪽에서 뚫든 저쪽에서 뚫든 길만 내면 그만인지라 파티원들 편한 쪽으로 시작점을 정했다.

“이 동굴이 던전이라고?”

도진과 합류한 테레사는 커다란 동굴 입구를 보며 물었다.

“어. 지렁이들 서식지야. 우리 아이템 제작을 맡긴 마을이 이 건너편에 있는데, 이 길을 못 쓰게 돼서 곤란해하더라고.”

“뭐가 됐든 다 잡아 버리면 되는 거지? 빨리 시작하자. 지금도 경험치 이벤트 기간이 줄고 있어요. 빨리, 빨리.”

테레사는 묘하게 신이 나서는 재촉했다.

소소랑 탄토는 언제나 그렇듯 조용했고.

‘조용… 한 게 아닌가?’

탄토는 조용한 게 맞았다.

하지만 소소 쪽은 아니었다.

그녀는 매우 불쾌한 얼굴로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지렁이.”

몬스터가 지렁이인 게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테레사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무서워?”

“전혀.”

소소는 대답과 동시에 테레사의 콧잔등을 손바닥으로 찰싹 때렸다.

“억!”

대미지는 없다지만, 깜짝 놀라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야!”

테레사는 눈을 부라렸고, 소소는 무시했다.

익숙한 광경이었기에 도진은 그냥 사냥 준비나 했다.

탄토마저도 무기를 꺼내 들고 독과 기름을 바르며 신경을 끄고 있는 모습.

평화롭다면 평화로운 장면이다.

하기야 이 멤버로 일반적인 사냥터 앞에 선 게 얼마만인가.

최근 계속해서 죽음을 각오해야 할 전장에만 서다가 평범한 던전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파티원들 중 가장 성격 밝은 테레사가 소풍 온 것처럼 들뜰 만도 했다.

자신의 항의를 듣는 시늉도 안 하는 소소를 흘겨본 테레사는 도진에게 물었다.

“도진아, 오늘은 방송 켜도 돼?”

“어. 마음대로 해.”

테레사가 좋아라 하며 방송을 켰다.

안 그래도 사냥 방송을 하던 중에 도진의 연락을 받고 바로 방종을 해서 시청자들이 뿔이 단단히 난 상태였다.

그런 민심을 안정시키는데 이 멤버로 진행하는 사냥 방송만큼 확실한 건 없을 거다.

“짜잔! 급방종 한 게 미안해서 제가 큰 거 준비했읍니다.”

시청자들 반응은 역시나 폭발적이었다.

-도진이다!

-진 님, 우리 방장 좀 개고생 좀 시켜 주세요!

-요즘 얘 너무 세져서 재미가 없어요. 잘난 척도 너무 심해져서 역해요. 제발 정신 좀 차리게 해 주세요.

도진을 보자마자 시청자들은 테레사를 고생시켜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도진을 따라다니며 탑티어 탱커로 성장한 그녀는 이제 어디 가서 꿀릴 일이 없었고, 시청자들은 그걸 너무 아쉬워했다.

“후후, 그래 봐야 소용없어요. 이제 저도 실력파 탱커라 이런 일반 던전에서는 고생할 일이 없다고요.”

-후우, 짜증은 나는데 사실이라 할 말 없네.

-하… 몬스터 조금만 몰려도 커다란 망치 들고 울면서 도망치던 우리 방장 어디 갔냐.

-월클병이 아니라 진짜 월클이 돼 버렸어…….

테레사가 노닥거리는 사이 사냥 준비가 완료됐다.

“가자.”

도진의 말에, 놀고 있던 테레사가 바로 무장을 꺼내 들고 앞으로 나섰다.

“오케이. 레벨업하러 가 봅시다.”

쿵. 하고 한손 망치로 방패를 두드린 테레사는 호기롭게 동굴 입구로 들어갔다.

전신을 한눈에 담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거대한 저주의 형상을 상대로 싸우고 온 직후다.

이런 평범한 던전 따위 아무것도 아니지. 지렁이? 우습지도 않았다.

‘이런 던전에 나오는 지렁이 따위는 탄토나 도진이가 나설 것도 없지. 그냥 내 망치질이면 다 으깨지는 거-’

콰아앙-

테레사의 망상을 굉음이 끊어 냈다.

소리가 들린 건 좌측 천장.

커다란 그레이트 웜이 튀어나와 몸집만큼이나 큰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들고 있었다.

벌린 아가리의 지름만 해도 성인 남성의 키쯤 되어 보이는 덩치였다.

“시작부터 엘리트라고?”

그 모습에 테레사는 네임드나 최소한 엘리트가 튀어나왔다고 여겼다.

꾸우웅-

방패에 걸리는 묵직하다 못해 어마어마한 압력은 그런 그녀의 예상을 확신으로 바꾸기에 충분했다.

“이익!”

충돌 직후 그대로 자신을 씹어 버리려는 놈의 주둥이를 테레사가 망치로 올려쳤다.

쿵.

손맛이 단단했다. 제대로 된 타격을 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내 공격으로는 물리 내성을 뚫을 수가 없어!’

다행이 이미 파티의 딜러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탄토가 지렁이의 측면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그러한 공격에 그레이트 웜은 짜증을 내듯이 몸을 뒤틀었다.

“크윽!”

그 동작에 휩쓸린 탄토의 피가 녹듯이 빠져나간다.

소소가 화들짝 놀라 힐을 퍼부어 살렸다.

이어, 도진의 마법이 작렬했다.

불과 전격이 동굴 안을 화악 밝혔다가 잦아든다.

그걸 본 테레사는 안심했다.

도진의 마법을 맞은 이상 최소한 그로기, 웬만하면 사망일 거라 여긴 것.

이건 생각이라기보다는 그간 도진과 지내며 겪은 경험에 의해 반응하는 습관 비슷한 것이었다.

-퀴이이이이익!

그러나 그레이트 웜은 도진의 마법을 맞고도 죽지 않았다.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이 놈은 바깥으로 나온 몸체를 미친 듯이 흔들며 발광했다.

“야잇!”

가까이 있던 테레사는 반사적으로 방패날 부분으로 날아오듯 다가오는 놈의 턱을 후려쳤다.

결과는 그녀의 비행이었다.

테레사는 그대로 날아올라 벽에 처박혔다.

그래도 테레사의 행동에는 가치가 있었다.

발광 패턴이 끊긴 그레이트 웜이 잠시 기절 상태이상에 빠진 것.

도진은 틈을 놓치지 않고 불기둥을 세워 지속적인 딜링을 하면서 추가적인 공격을 넣었다.

그러면서도 탄토가 딜할 위치는 불이 가지 않게끔 조절까지 했다.

순간적으로 집중된 화력에, 기절했던 그레이트 웜이 꿰에엑 소리를 내며 경련하다 축 늘어졌다.

죽은 건 아니고, 기절에서 바로 그로기로 이어진 것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질기네.’

역시 레벨이 깡패다. 자신과 탄토 조합이면 이 정도까지는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그래도 뭐, 그렇게까지 고생스럽진 않네.’

생각하며, 도진은 건틀렛에 쌓인 파멸의 힘을 마법에 담아 쏘았다.

직선으로 쏘아진 화염포에 한계에 다다른 그레이트 웜의 머리가 뻥 뚫렸다.

“…….”

벽에 처박힌 충격으로 주저앉아 있던 테레사는 그 모습을 허탈하게 바라봤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반 던전 따위 쉽다던 사람 어디 갔죠?

-역시 이게 테레사고! 이게 방장이고!

-공깃돌처럼 날아가는 거 잘 봤습니다 ㅋㅋ

-근데 이미지가 좀 푼수라 그렇지 얘도 이제 존나 쩌는 탱커인데 뭐 저렇게 힘들게 잡지?

-그게 문제임? 뭔 몬스터가 저 딜러 라인이 딜하는데 저렇게 버티냐? 네임드였나?

전투 장면을 지켜본 시청자들은 테레사를 놀리기도 하고, 너무 질긴 그레이트 웜의 위용에 놀라기도 하며 채팅을 쳤다.

“…이거 입구부터 심상찮네. 처음부터 네임드급이 튀어나오는 거 보니까 좀 긴장해야겠다. 그지, 도진아?”

몸을 추스르고 먼지를 털어내며 테레사가 말했다.

“네임드? 아닐걸. 그냥 일반 몬스터야.”

먼지를 털던 테레사의 몸이 굳었다.

한숨 돌리던 탄토도 그게 무슨 소리냐는 얼굴을 했다.

소소는, 지렁이가 징그러운지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이거 아무리 봐도 엘리트나 네임드급인데? 아니, 보스여도 이상할 거 없을 정도잖아.”

“일반 몬스터야. 그냥 레벨이 높아서 그래.”

“레벨이 몇인데?”

도진의 입에서 잔혹한 진실이 흘러나왔다.

“200 넘을걸.”

“…….”

“…….”

온갖 사기를 치고 다니며 경험치를 끌어모은 도진조차 아직 170을 찍지 못했다.

그런데 200?

“이배애애액!”

잠시 정지됐던 뇌가 움직이기 시작하자마자 테레사의 입에서 튀어나온 소리였다.

“왜? 좀 질기긴 해도 그렇게까지 어렵진 않잖아.”

가볍게 말하는 도진에게 테레사가 억울함을 호소했다.

“난 어려워! 탱커는 서럽다고!”

일반적인 사냥을 할 때는 좀 편해야 탱커지.

계속해서 이렇게 빡센 놈들을 사냥하는 건 탱커의 신경을 갉아먹는 짓이었다.

“누나 고생하는 거야 당연히 알지.”

“…….”

“탱커가 파티에서 제일 중요하고, 고생도 제일 많이 하고. 나뿐만 아니라 다 알고 있잖아.”

도진이 소소와 탄토에게 눈짓했다.

사람 좋은 탄토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다들 고생하지만, 가장 힘든 건 역시 탱커지.”

“고생은 무슨. 현실에서 나무늘보처럼 사니까 여기서라도 좀 움직여야지.”

하지만 소소는 착하지 않았다.

당연히 테레사는 그녀의 말을 한 귀로 흘렸다.

-역시 소소좌 ㄷㄷ 바로 숨 막히는 돌직구

-하지만 듣는 척도 안 하는 우리 방장 ㄷㄷ

도진은 테레사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했다.

“자, 어차피 해야 하는 거 빠르게 끝내자.”

테레사도 알고 있었다.

해야 한다.

제작과 관련된 일이라 했으니 선택지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경험치 이벤트 기간 동안은 편히 사냥할 수 있을 거란 기대에 부풀었던 테레사는 그저 서러웠다.

말없이 터덜터덜 앞으로 걸어 나가는 테레사의 등은 몹시 처량했다.

“하루면 끝나, 하루면.”

도진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끔찍하게 강한 그레이트 웜들과의 전투는 일주일이 넘도록 끝나지 않았다.

세상사 쉬운 일이 없다지만, 유물 아이템 제작은 그중에서도 많이 어려운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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