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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17화 (217/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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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은 저주의 형상이 남긴 원석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순식간에 사이한 기운이 테이블 위는 물론이고, 집 안 전체를 채울 기세로 퍼져 나간다.

실내의 온도가 몇 도는 낮아지는 거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

마글로는 그것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사이하다 못해 사악한 기운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드워프다.

생산과 제작에서 삶의 기쁨과 보람 그리고 의미를 찾는 종족.

그렇기에 마글로는 눈앞의 물건이 엄청난 가치를 지닌 재료라는 걸 단박에 알아봤다.

“뭐, 뭐냐, 이거. 어어? 그걸 왜 집어넣어.”

침을 흘리며 당장이라도 뛰어들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던 마글로는, 도진이 원석을 다시 갈무리하는 모습에 당황했다.

“아주 위험한 수준은 아니어도 계속 노출돼서 좋을 게 없는 마나를 내뿜으니까요. 잠깐 본 정도면 충분하잖아요.”

“아니, 그래도…….”

그래. 드워프에게 저런 걸 보여 주는 건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지.

마글로는 손이 간질간질했다.

마지막으로 망치를 잡았던 게 언제더라.

다른 드워프가 만든 납품용 망치를 검수하는 거 말고. 내가 내 손으로 쇠를 두드릴 때 심장까지 전해지는 울림을 느껴 본 게.

“어때요? 제가 현재 아는 곳 중에서 이걸 다룰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있을 곳은 여기밖에 없을 거 같아서 가져왔어요.”

사실 하나 더 있긴 한데… 그쪽에다 맡기면 뭐가 나올지 몰라서.

시온을 떠올리며 하는 생각이었다.

정말로, 그쪽에 부탁했다가는 본인 말고는 아무도 사용할 엄두를 못 낼 물건을 찍어 낼지도 모른다.

“…마음 같아서는 무조건 할 수 있다고 하고 싶다. 근데 솔직히 자세히 보고 가늠을 좀 해 봐야 알 거 같다. 네가 뭘 만들고 싶은 건지 그리고 사용할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거 같고.”

“사용자는 저랑 제 동료들이에요. 이거랑 똑같은 게 4개가 있거든요. 그걸 하나씩 써서 총 장비 4개를 만들고 싶어요.”

도진의 말에 마글로가 짧은 다리로 펄쩍 뛰어올랐다.

그러다 테이블에 무릎을 찧었다.

“크아악!”

무릎을 부여잡고 데굴데굴 구르면서도 마글로는 경악을 담아 물었다.

“넌 그런 걸 도대체 어디서 4개나 구한 거야? 고룡 둥지라도 털었냐!”

“고룡은 다른 걸 줬죠.”

고룡을 잡긴 했다.

죽은 자를 고인(故人)이라 하니, 이미 죽은 상태였던 갈란테도 고룡(故龍)이지.

오래된 용이기도 하고.

“너무 놀라서 농담할 기운도 없다, 이 녀석아.”

당연히 마글로는 믿지 않았다.

마글로는 바닥에서 일어나 무릎을 쓱쓱 문지르며 물었다.

“출처는? 위험하진 않지? 황실 창고를 털었다든가.”

“완전 깨끗한 거니까 걱정할 거 없어요.”

“너니까 믿는다. 일단 다시 보여 줘 봐. 놀라서 제대로 살피지도 못했으니.”

도진은 마글로의 말대로 했다.

마글로는 주머니에서 보석을 감정할 때나 쓸 법한 돋보기를 꺼내어 원석을 살폈다.

감정 스킬을 사용해 제대로 파악을 하는 것이었다.

“음…….”

아주 작은 망치를 가져와서 톡톡 두드려도 보기까지 한 마글로는 이렇게 말했다.

“할 수 있다.”

도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여기서도 이걸 다루지 못한다고 하면 정말 한참 나중에야 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 시간만큼 뛰어난 장비로 더 상장에 박차를 가할 기회를 잃게 됐을 터.

“문제는…….”

하지만 역시나 쉽게만 가는 건 없었다.

“네가 내놓은 재료의 가치가 지나치게 높다는 거다. 이런 걸 써서 물건을 만들려면 다른 재료가 엄청나게 필요해.”

“돈은 얼마가 들든 상관없어요.”

“돈도 돈이지만, 시간이 문제야. 그 엄청난 재료를 들여오려면 실버문 그 자식이 남긴 마법진을 풀로 돌려야 하는데, 그러기엔 지금 걸려 있는 계약이 많아.”

마글로는 머릿속으로 대충 계산을 했다.

“제대로 두드려 봐야 알겠지만, 하나 만드는 데도 6개월은 걸릴 거다.”

시간이 걸릴 거라 예상하긴 했지만, 하나를 만드는 데도 6개월이나 걸린다니.

‘유물이 괜히 유물이 아니라지만, 그래도 시간을 너무 잡아먹는데…….’

하지만 당장 다른 대책이 있는 게 아니니 맡길 수밖에 없는 건가?

그렇게 고민을 하던 도진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

마나 차단 관으로 원석을 덮고서 살피던 마글로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까 아저씨 말은 들어가는 재료가 엄청 많아서, 그걸 여기로 가져오는 게 문제라는 거잖아요. 지금 쓰고 있는 공간이동 마법진은 대량 물류 이동이 불가능해서.”

“딱 그거다. 오죽하면 록켈 놈이 있던 시절에 만들어 놓은 주괴를 갖다 팔 수가 없어서 마을 건물 올리는 데 썼다니까.”

“그럼 재료가 다 있다는 가정하에 기간은 얼마나 걸리는데요?”

마글로가 콧수염을 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한 달 조금 넘게 걸릴 거 같다. 나를 포함해서 이걸 다룰 수 있는 수준인 장인들이 다 투입된다는 가정하에 말이야.”

그렇단 말이지.

그러면 유물 아이템을 만들 재료가 들어올 길을 만들면 그만이다.

“그럼 원래 쓰던 길을 뚫으면 되겠네요. 거길 쓰면 뭐든 대량으로 오갈 수 있잖아요.”

“…뭔 소리냐. 나랑 같이 개고생하면서 봤잖아. 거긴 그레이트 웜들이 차지한 지 오래여서 못 써.”

손을 휘휘 저으며 말하던 마글로가 멈칫했다.

가끔 싸가지는 없어도 머리 하나는 좋은 이놈이 그걸 기억 못 할 리는 없고.

설마…….

“…너 설마 그것들을 어떻게 해 보려는 건 아니지?”

“마을에도 좋은 일이잖아요.”

“마을에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거긴 안 돼! 아무리 너라고 해도 거긴 아니라고!”

도진을 걱정해 만류하는 마글로.

그런 그에게 도진은 자신만만하게 웃어 보였다.

“걱정 마요. 동료들까지 불러서 하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테니까. 거기다 위험하면 저번처럼 도망치면 되죠.”

“그걸 말이라고… 하아…….”

말을 하려던 마글로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눈을 보니 말을 들어먹을 눈이 아니었던 것.

돈을 준대도 할 사람이 없을 일이다.

단순히 몇 마리 잡는 게 아니라 그 끔찍한 놈들을 뿌리까지 뽑아야 하는데 그걸 하겠다고 드는 게 이상한 일이지.

그런데 도진은 알아서 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마글로는 왠지 도진이라면 정말 해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보다도 뭔가 많이 달라진 거 같아.’

정말 그렇게 되면 자신은, 아니 마을 전체는 또 한 번 도진에게 엄청난 빚을 지는 셈이었다.

마글로는 도진에게 말했다.

“무리는 하지 마라. 그리고 고맙다. 이런 재료를 두드려 볼 기회만 해도 고마운데, 마을을 또 돕겠다고 나서기까지 하고.”

“제작 기간을 줄이려고 하는 거예요.”

“시끄러워. 고마운 건 고마운 거야.”

마글로는 아예 특수 가공된 상자를 가져와서 원석을 담았다.

“이건 걱정 마라. 제작 기간이 줄든 늘든 기다림이 아깝지 않은 걸작을 뽑아 줄 테니까.”

마글로는 도진에게 쉬고 있으라고 한 뒤 마을에서 가장 실력 좋은 장인들을 소집했다.

* * *

“뭔 일이야? 한창 바쁘게 일하고 있는 와중에.”

“마글로 자식, 콧수염만 재수없어진 줄 알았더니 성격도 건방져졌어. 어른을 오라 가라 하고 말이야.”

“들어보고 별 시답잖은 일이면 오랜만에 맥주통에 그 자식을 거꾸로 꽂아 두는 건 어때?”

“하하하! 맞아, 그랬었지. 그놈 성인식 때였나? 나한테 술로 덤볐다가 아주 고주망태가 돼서는…….”

“그런데 이 자식은 왜 사람을 불러놓고 나타나질 않아?”

강철 봉우리는 숨겨진 마을이다. 게임에서 ‘숨겨진’은 온갖 보너스가 붙는다는 뜻이고, 이는 제작자의 수준에도 적용됐다.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있는 드워프는 총 5명. 이들은 강철 봉우리 부족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자들이었다.

재봉, 세공, 대장 등. 각자의 분야에서 장인을 넘어 거장이라 불려야 할 어마어마한 고수들인 것이다.

“…젠장, 아줌마는 언제까지 제 성인식 얘기를 할 거예요?”

막 들어오며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 이야기를 들은 마글로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언제까지긴. 내 관에 못이 박히든, 네 관에 못이 박히든, 한쪽이 안 보일 때까지지.”

“거짓말 마요. 제가 먼저 죽으면 제 무덤 앞에서도 그 얘기 할 거면서.”

“듣고 보니 그러네? 내가 죽기 전까지는 계속 들어라. 꼬우면 먼저 태어나든지, 그때 술로 나한테 지지 말았어야지.”

“…….”

마글로는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 같으면 더 툴툴댔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왜냐면 이 꼰대 아저씨, 아줌마들을 쩔쩔매게 만들 수단이 있으니 말이다.

“저한테 이럴 수 있는 것도 지금이 마지막일 겁니다.”

드워프 5인방이 동시에 콧방귀를 꼈다.

하지만 마글로가 상자를 꺼내고, 바로 원석을 드러내면서 그들의 태도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

5인이 일제히 눈을 부릅떴다.

그들은 말도 못 하고, 떡 벌린 입과 눈으로 물었다.

‘이게 뭐냐? 어디서 난 거야?’ 하고.

“전에 마을을 구해 준 은인이자 제 형제나 다름없는 녀석이 가져온 물건입니다. ‘저’한테 이걸로 장비를 만들어 달라고 하더라고요.”

마글로의 말투가 점차 거만해졌다.

마글로를 놀리던 5인방의 표정에는 다급함이 번졌다.

가장 먼저 터진 건 마글로를 맥주통에 거꾸로 꽂자던 드워프였다.

“나, 나랑 같이해! 그건 칼이야! 검을 만들어야 한다고!”

그 말에 마글로의 무덤에서도 놀리겠다던 드워프가 그의 턱에 주먹을 꽂았다.

“닥쳐, 날붙이에 미친놈아! 저걸 써서 금속 실을 뽑아내서 옷을 짜면 그게 얼마나 아름다울지이이익-”

옆에 있던 드워프가 입을 거칠게 막으며 나섰다.

“나 줘! 내가 정말 어마어마한 갑옷을 만들어 줄 테니까!”

서로 끼워달라며 아우성치는 거장 5인방.

예상했던 대로였다.

다들 목말랐을 거다.

록켈에게 마을이 지배당할 때는 주괴만 찍어 냈다.

지금은 적당한 품질의 물건을 적당한 속도로 찍어 내고 있고.

그런 이들에게 평생 한 번 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정도로 귀한 재료를 보여 주면 눈이 돌아가는 게 정상이었다.

이런 상황에 시큰둥하다면, 그건 드워프가 아니라 드워프의 탈을 쓴 무언가일 가능성이 더 높다.

“마글로 님! 마을의 은인에게 은혜를 갚을 기회를 주십쇼!”

“마글로 님? 그럼 난 마글로 할아버지로 부른다! 할아버지!”

그런 면에서 이들은 너무 드워프였다.

마글로는 생전 처음 겪는 상황을 음미했다.

도진의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이들 모두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그게 뭐 중요한가.

맨날 자신을 놀리느라 바빴던 꼰대들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하는 이 상황이 중요하지.

마글로는 진심으로 도진에게 고마웠다.

* * *

마글로에게 제작을 의뢰하자마자 도진은 테레사, 소소, 탄토에게 연락을 돌렸다.

[도진: 뭐 해?]

[테레사: 사냥하지. 경험치 이벤트잖아.]

[탄토: 방송하면서 사냥하고 있어요.]

[탄토: 아니, 사냥하고 있어. 말 놓기로 했는데 존댓말 해서 미안해요.]

[탄토: 아니, 미안해.]

[테레사: 소소는 내 옆에 있어.]

도진을 믿고 유물 등급 재료를 맡긴 3명은 열심히 사냥을 하는 중이었다.

[도진: 이왕 사냥하는 거 같이하는 거 어때? 정리해야 할 던전이 하나 있거든.]

도진의 메시지에 테레사와 탄토가 동시에 대답했다.

[테레사: 어디로 가면 돼?]

[탄토: 마을로 가고 있어요.]

[탄토: 아니, 있어.]

200레벨이 넘는 그레이트 웜?

아직도 레벨이 한참 부족하긴 하지만, 몇 번이나 난관을 함께 넘었던 파티원들과 함께라면 충분히 도전해 봄 직했다.

‘경험치 이벤트도 겹쳤으니 레벨도 올릴 겸 살짝 맛만 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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