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15화 (215/271)

215

퀘스트의 완료 시점은 카린과의 대화와 뱀파이어의 집결을 목격한 직후였다.

하나 도진은 이 시점에 모든 메시지를 비활성화한 상태였다.

도진은 이틀이 좀 안 되는 시간을 추가로 쓰고서야 밀린 메시지를 확인했다.

운명 퀘스트, 퀘스트 완료 그리고 퀘스트 보상에 관한 메시지가 쭉 나열되어 있는 게 보였다.

도진을 그것들을 빠르게 지워 나갔다. ‘참 잘했어요!’, ‘이런 업적을 이만큼 달성했어요!’ 같은, 칭찬 도장 같은 메시지는 필요 없었다.

다른 때라면 하나하나 읽으며 뿌듯해하겠지만, 이번에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도진은 꼭 확인해야 하는 것들만 따로 추려서 속독으로 읽어 내려갔다.

시작점은 이미 읽은 바 있는 대공에게 물려받은 마법과 진혈에 관한 메시지였다.

‘이쪽은 아직 제대로 활용하기엔 내 능력이 부족한 부분이고…….’

경험치, 골드 등과 같은 자잘한 것들도 빠르게 넘겼다.

그러다 도진의 눈이 한 곳에 고정됐다.

[파티 공통 보상 ‘피 맺힌 저주의 원석’을 획득했습니다.]

도진이 받은 보상만 봐도 알 수 있듯 이번 건은 운명 퀘스트치고도 스케일이 상당했다.

그런 만큼 단순 참여만 했을 뿐인 다른 파티원에게 주어지는 보상도 높은 가치를 지니는 게 당연하다.

도진도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하지만 그걸 다 감안한다 해도, 찍혀 있는 파티 보상은 도진의 예측 범위를 한참이나 웃도는 것이었다.

“…유물급 재료를 줘?”

아이템 상세 정보란에는 ‘피 맺힌 저주의 원석’이 유물 등급의 재료라고 적혀 있었다.

물론 재료가 있다고 해도 그걸 다룰 수 있는 제작자가 없으면 제작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낮은 등급의 실패작이 나올 수는 있다.

그러나 유물 아이템이 아주 제한적으로 풀리고 있는 현 시점에 유물 등급 재료 아이템은 파격적인 보상이 맞았다.

‘파티 공통 보상이면 다른 사람들한테도 들어갔다는 거고… 그러면 이번 걸로 유물 재료가 4개나 풀린 거야?’

이 정도면 거의 반쯤 월드 이벤트 수준 아냐?

그렇게 생각하는데, 바로 아래에 있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눈에 걸렸다.

“뭐……? 월드 보스 레이드?”

시작부터 도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월드 보스 레이드가 갑자기 이 시점에 왜 튀어나와? 하고 빠르게 읽어 보는 도진.

‘부유대륙? 여기잖아.’

테레사가 보내 놓은 메시지는 여러 개였다.

각각의 메시지는 두서란 게 없었으나 다 모아 놓고 읽으면 꽤 자세히 상황을 담고 있었다.

‘…보상이 왜 이렇게 후한가 했더니. 이거 여기서 놓치면 월드 보스로 진화하는 거였어?’

도진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하긴. 놈이 탈출에 성공해서 바다로 나갔으면 대형 참사는 확정적으로 일어나는 거고, 다른 문제도 연달아 터졌을 테니…….’

확실히 야기할 재앙의 크기만 보면 월드 보스로 분류해도 될 정도긴 했다.

‘어쨌든 바깥도 난리인 거 같으니 나가 봐야겠네.’

도진은 며칠 만에 현실로 돌아갔다.

* * *

나왔을 때 집에는 테레사와 소소가 와 있었다.

그녀들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정확히는 테레사 쪽이 그랬다.

혼자 남아 전투를 마무리한 거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계속해서 남아서 걱정을 시켰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사망 페널티로 접속조차 안 되는 상황에서 답답하고 섭섭할 만했다.

그래서, 도진은 그녀들을 보자마자 사과부터 했다.

“미안해.”

한데 반응이 이상했다.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테레사가 이렇게 물어온 것이다.

“…괜찮아?”

도진은 순간 의미를 몰라 멈칫했다.

그러자 소소가 툭 곁들였다.

“봐서 그래. 전투 이후 결말 부분.”

“아.”

게임 오버도 당했고, 걱정도 됐을 거고.

게임 화면을 직접 보든 녹화본을 보든 할 건 당연히 짐작했다.

그래서 확인할 수 있게 락을 풀어 두기도 했고.

하지만 그거 때문에 괜찮냐고 물어올 거라고는 예상을 못 했다.

도진은 테레사에게 웃어 보였다.

“괜찮아. 걱정해 줘서 고마워.”

괜찮아야지.

극복해야 할 난관이 아직 많고 많은데.

대공에게 받은 건 단순히 차차 봉인이 풀려 가며 자신에게 힘을 보탤 마법과 특성이 아니었다.

그건 수단이다.

로스타니아가 더 나은 미래를 맞을 수 있게, 그렇게 만들기 위한 수단.

도진은 평소와 같은 얼굴을 했다.

“그것보다, 우리 때문에 난리라면서? 어떻게 된 거야?”

“아……! 내가 보낸 내용 다 읽었지? 그 말대로야. 아마 우리가 잡던 게 월드 보스가 될 예정이었나 봐. 그런데 그걸 네가 마지막까지 잡아 버려서…….”

“못 잡을 줄 알고 월드 보스 레이드 공지했다가 내렸다는 거지?”

테레사가 지금도 얼떨떨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소도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려 웃었다.

뿌듯한 건지 아니면 공지 잘못 올린 뫼비우스를 비웃는 건지 헷갈리는 웃음이었다.

“욕먹고 있겠네?”

“엄청. 이벤트 공지했다가 취소하는 경우가 어딨냐고 난리야. 거기다 지금 부유대륙 원정 다시 도전한다고 난리들이고.”

이건 좀 문젠데.

“북쪽에서 이상현상이 일어나는 걸 발견해서 제보한 사람들 때문에 월드 보스 떡밥이 부유대륙에서 나왔다는 거까지는 다 알려졌거든.”

그런데 갑작스레 이벤트 취소 공지가 올라왔으니… 뭐가 됐든 확인을 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면 못 참을 만했다.

거기다 LOST라는 게임이 들쑤시다 얻어 걸리면 어마어마한 리턴이 돌아오기도 하는 게임인지라 더 그랬다.

“지금 유저 레벨대를 고려하면 정면 돌파는 아직 어렵긴 하겠지만…….”

투명 유리벽에 머리를 박는 새들처럼 단체로 비명횡사를 해 대면 그것도 문제다.

이 일에 자신이 관련되어 있다는 게 밝혀지면 또 시끄럽게 떠들어 댈 테니 말이다.

그러느니 차라리 영상을 올려서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리는 게 나았다.

“어? 근데 지현이 누나는?”

“새벽까지 너 기다리다 퇴근.”

소소가 짧게 답했다.

“…….”

짧은 말인데 엄청 아팠다.

턱에 꽂히는 클린한 숏어퍼 같은 느낌이다.

도진은 조용히 스마트폰을 들었다.

천지현은 쉬게 두고, 직접 해야겠다.

“네, 팀장님. 아, 네. 혹시… 아, 아시는구나. 그거 관련해서요. 네. 아뇨, 사고를 친 게 아니고요. 그냥 좀 퀘스트를 한 건데…….”

콘텐츠 팀장의 텐션은 과하게 높았다.

영상도 확인 안 하고 벌써부터 영화 한 편 뽑겠다고 난리였다.

“아, 네. 그럼 바로 보내드릴…….”

말을 잇던 도진은 멈칫했다.

그러다 이렇게 말했다.

“오늘 안에 보내드릴게요.”

원본 영상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도진은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불도 켜지 않고 조용히 영상을 잘랐다.

뱀파이어와 관련된 장면은 거의 남기지 않았다.

저주의 형상이 등장하고, 그것과 싸우는 장면만 남겼다.

자른 영상의 마지막은 도진이 마지막 저주의 핵을 파괴하는 장면이었다.

딱 자신과 파티원들이 전투를 치른 부분까지만. 거기까지만 남겼다.

편집한 영상을 전송한 도진은 다시 방에서 나왔다.

‘맞다. 아직 사망 페널티 때문에 보상으로 뭐가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네.’

그 얘기를 해 줘야겠다 생각한 순간. 갑자기 댐이 터진 것처럼 피로가 몰려왔다.

“도진아!”

현기증에 살짝 비틀거리는 도진을 본 테레사가 기겁했다.

소소도 살짝 놀란 티를 내며 눈썹을 꿈틀거렸고.

피곤한 게 당연했다.

육체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소모가 심한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도진은 괜찮다는 의미로 웃어 보이며 말했다.

“괜찮아. 알잖아? 오랜만에 캡슐에서 나오면 살짝 어지러운 거. 미안한데… 좀 잘게.”

테레사와 소소가 무어라 대답했는지 도진은 듣지 못했다.

한번 닥친 피로와 수마는 거역하기 힘든 적이었다.

* * *

도진이 가상현실에 남아 있는 동안 밖에서 난리가 났듯이.

도진이 꿈나라에 빠져 있는 동안 현실은 또 한 번 난리가 났다.

[월드 보스(진)]

앞뒤 다 자르고 전투 장면만, 그것도 자신이 치른 부분만 보낸 영상은 순식간에 편집됐다.

그리고 채널에 올라갔다.

-허…….

-이번에도 너야?

-또 너야?

영상을 본 사람들은 이젠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와, 크다. 아저씨들, 저게 뭐예요?

└월드 보스가 되지 못해 슬픈 짐승이란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이런 거지? 월드 보스를 저 4명이 잡아 버리는 바람에 이벤트가 조기 종료된 거잖아.

└정확히는 월드 보스가 되기 전에 잡은 거 아닐까? 공지사항에는 열릴 예정이라고 적혀 있었으니까. 아님 말고.

-전에는 퀘스트하다가 월드 보스 레이드를 열어재끼더니, 이젠 열리려는 걸 강제로 닫아 버려?

뫼비우스가 멋대로 취소한 게 아니라 게임 내에서 등장했다가 초고속으로 퇴장했다는 정황이 드러나자 분노했던 사람들은 허탈해했다.

-이건 뭐라고 해야 하냐? 꿋꿋이 욕먹던 뫼비우스가 좀 불쌍해질 지경이네.

-ㅋㅋㅋ 걔들도 존나 얼탱이 없었겠네. 월드 보스용으로 만든 게 4명한테 잡혀 버릴 줄 알았겠어?

-근데 진짜 영상 다시 봐도 어이가 없네. 저 큰 걸 상대로 저렇게 오래 싸워서 심장을 아홉 개나 터뜨려? 크기, 규모, 기믹 뭘 봐도 수백 명이 때려잡으라고 만들어 놓은 거 같은데 ㅋㅋ

└소수 공략하면 피통 줄잖아. 상식인데 그것도 모르냐?

└너 친구 없지? 피통 줄어드는 게 문제가 아니라 공략 방식을 두고 하는 말이잖아. 병신년아.

월드 보스 취소 건으로 불판이 뜨거워졌던 만큼 소식을 듣고 도진 채널에 온갖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런 만큼 불만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남기는 댓글도 상당히 많았고, 이런 의견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근데 솔직히 너무한 거 아닌가 싶음. 다 같이 즐길 콘텐츠를 내야지. 저렇게 소수만 맛볼 수 있는 콘텐츠를 내는 개발사나, 그걸 계속해서 독점하는 유저나 좋게는 안 보임.

└갈아 넣는 시간이랑 돈도 차원이 다르고, 가진 바 재능은 더 차이가 나는데 그걸 어떻게 다 맞춰? 아니, 그걸 다 맞추면 그 게임이 재밌겠냐?

└병먹금.

└열폭 금지(열등감 폭발 금지라는 뜻).

물론 그런 댓글은 압도적인 팬층의 집중 타격 끝에 침몰하는 결말을 맞았다.

-LOST에서 콘텐츠 부족? 그냥 시발 개소리도 이런 개소리가 없다. 효율 좋고 안전하다고 소문난 사냥터에서 풀린 공략대로 레벨업만 하니까 거기까지만 보이는 거다. 도진이 부러우면 직접 찾아 나서.

-하… 진짜 저 세 분 너무 부럽다. 나도 열심히 레벨업 해서 나중에 혹시라도 다시 대규모 공격대 모집할 때 지원해 봐야지.

-나도 언제 그런 거 다시 모집할지 몰라서 계속 레벨업하고 장비도 최고급으로 맞춰 두는 중임. 꼭 도진이랑 같이 사냥하다 연애하고 장가가야지.

└……? 마지막 단어가 이상한데.

그럼에도 월드 보스 레이드라는 대형 이벤트를 잃은 아쉬움에 투덜거리고, 괜히 도진에게 화살을 돌리는 사람은 꾸준히 나왔다.

하지만 뫼비우스가 깜짝 공지를 올리면서 그런 여론은 싹 사라졌다.

[커다란 재앙의 꽃이 피어나려 했으나 어느 용감한 모험가들에 의해 피어나지도 못하고 시들었습니다.]

[그들의 위대한 모험에 경의를 표하며, 이 공지가 올라가는 순간부터 한 달간 경험치 50퍼센트 추가 획득 이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