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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10화 (210/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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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를 풀 장소는 그림자 공국의 중심부로 정해졌다.

그림자 공국의 중심부는 곧 중력 역전과 저주 억제를 위한 거대한 마법의 중심이기도 했다.

티룬드 대공이 가장 큰 힘을 낼 수 있는 장소이니, 위험한 의식을 진행하기에 이보다 좋은 장소는 없었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지.”

정확히 중심을 밟자마자 의식 시작을 선언하는 대공.

티룬드 대공은 도진에게서 넘겨받은 마법진을 허공에 띄웠다.

“…지금이라도 물러날 생각은 없나?”

벌써 몇 번이나 물은 말이었다.

고개를 젓는 딸과 대답도 않는 딸의 친구를 보며 대공은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대공은 마법진 발동을 위한 트리거를 당겼다.

마력과 마력이 딸깍- 하고 맞춰지는 감각과 함께 마법진이 발동됐다.

* * *

마법이 발동되는 순간 튀어 오르는 마력의 파장을 도진은 똑똑히 보았다.

그것은 고리 형태를 하고 있었고, 점차 크기를 키워 나갔다.

마치 천사의 고리처럼 보이는 그것은 그림자 공국 전체를 감쌀 기세였다.

아니, 실제로 그렇게 됐다.

[거꾸로 선 세계에 시련이 찾아듭니다.]

메시지와 함께 아름답기만 하던 마력의 성질이 반전했다.

황금색과 푸른색이 섞였던 색은 완연한 핏빛으로 물들었다.

이유는 대공과 카린 그리고 다른 모든 뱀파이어들에게서 뿜어져 나온 저주 때문이었다.

“대공!”

도진은 대공을 불렀다.

하나 도진의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퀘스트]

영겁의 저주

등급: 운명

[뱀파이어에게서 영원히 이어져야 할 저주를 떼어낸다는 건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다.

자아를 갖게 된 저주의 폭주를 막아야 한다.]

목표: 실체화된 저주 소멸

보상: ???

저주는 뱀파이어의 육체는 물론 영혼과도 엉켜 있던 그들의 일부였다.

악성 종양 같은 거다.

나쁜 것이라 해서 억지로 떼어내면 과다출혈로 죽을 수도 있는 것처럼.

자신의 일부였던 저주가 단번에 뜯겨나간 뱀파이어들은 일시적 가사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강제로 적출된 저주는 한데 뭉쳐 거대한 핏빛 악마의 형상을 이루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대공이 마련한 대책은 제대로 작동된다는 것이었다.

【섭리를 거슬러 스스로 괴물이 된 자들아. 이제는 감내해야 할 대가마저 거부하려 드는구나. 가증스럽고 역겹도다. 나는… 저주 따위가 아니다! 너희가 날 받아들였다면… 변화를 받아들였다면……!】

사방으로 사념을 흩뿌리는 저주의 형상을, 대공의 마법이 붙잡았다.

오랜 세월 저주를 억누르기 위해 발전된 마법이 자신을 제압하려 들자 저주의 형상은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끼아아아아-】

귀곡성이 공국을 뒤덮었다.

“으윽……!”

그 영향으로 도진 일행 전체가 전투 불능에 빠졌다.

“이, 이건 말이 안 되잖아……!”

이를 앙다물고 겨우겨우 억울함을 토로하는 테레사.

대충 들어도 스케일이 커다랗다 싶긴 했지만… 이건 난이도가 너무한 수준을 넘었잖아!

마음 같아서는 입으로 억울함을 뱉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귀곡성이 주는 충격이 너무 커서 기절 안 하고 버티는 게 한계였다.

‘탱커인 내가 이 정도면 다른 사람들 상태는…….’

더 심각할 거 아냐, 하고 테레사가 걱정을 하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시야 안으로 도진이 들어온 것은.

‘……!’

도진은 조금씩 조금씩 대공이 있는 방향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거의 기어가는 수준이었으나, 분명 움직이고 있었다.

도진이 귀곡성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마법과 정신계 공격에 대한 높은 저항력 덕분이었다.

‘예상하긴 했지만, 가끔은 예상을 좀 벗어나도 되는 거 아냐?’

물론 도진이라고 여유로운 건 절대 아니었다.

잠깐만 정신을 놓으면 그대로 기절할 것만 같은 압박감 속에서 겨우겨우 움직이는 중이다.

목표는 아직도 대공의 손끝에 떠 있는 마법진이었다.

‘아직 전부 발동된 게 아니야.’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원래 두 번에 걸쳐 발동되게끔 설계된 걸 수도 있고, 전부 발동되기 전에 대공이 가사 상태에 빠져서 멈췄을 수도 있다.

어쨌든 확실한 건 빛이 준 저 마법진이 아직 제 역할을 전부 한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정신 나간 난이도처럼 보여도 길은 있어.’

숨도 쉬기 힘든 상태에서 겨우겨우 마법진 앞까지 도착한 도진 맞은편에 석상처럼 굳어 있는 카린이 있었다.

‘금방 해결할게.’

도진은 마력 패턴을 마법진 발동에 알맞게 조형한 뒤에 꽂아 넣었다.

찰칵- 하고 맞아 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새로운 현상이 일어났다.

마법진에서 뻗어 나온, 빛으로 이루어진 검과 같은 것이 무언가를 끊어 냈다.

[희미하게 남아 있던 뱀파이어와 저주 간의 연결고리가 완전히 소멸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마법진에서 일어난 섬광이 저주의 형상을 갈랐다.

[저주의 형상이 갖고 있는 ‘영원’을 박탈했습니다. 저주의 붕괴가 시작됩니다.]

마법진이 가진 힘은 저주의 형상에게 죽음이란 개념을 부여하고, 또한 붕괴를 유도했다.

언뜻 보기에 모든 게 해결된 것처럼 보이는 메시지.

하지만 아니었다.

빛이 말했듯 마법진이 해 주는 일은 저주를 분리하는 것까지.

완전히 분리된 저주는 이제부터 감당해야 할 후폭풍이었다.

“하아……!”

“주, 죽는 줄 알았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귀곡성이 멎고 겨우 움직일 수 있게 된 일행은 안도의 숨을 뱉을 여유조차 얻지 못했다.

하늘에 떠 있던 저주의 형상이 낙하하고 있었다.

엄청난 크기의 핏덩이 같은 그것은 지상과 충돌하는 순간 콰아아- 하는 소리와 풍덩- 하는 소리를 동반했다.

그 소리는 도진 일행이 서로에게 외치는 목소리를 지우고도 남음이 있었다.

[억눌려 있던 저주가 욕망에 지배되어 폭주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피에 대한 갈망을 억눌려 왔던 흡혈 저주의 욕망이 한꺼번에 폭발했다.

【나느으으으은- 죽지 않아아아아아-】

피는 생명을 상징한다.

타자의 피를 탐한다 함은 곧 생명을 탐하는 것이고, 그러한 욕망의 기저에 깔린 것은 결국 생존본능이었다.

【피… 피가 필요해애애애애!】

천 년 넘게 응어리진 저주의 형상은 중앙대륙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수많은 생명의 냄새가 나는 곳으로.

“설마 저걸 막으라는 거야?”

“하아… 진짜 피곤하네.”

“어떻게든 방법이 있을 겁니다. 아마도… 그럴 겁니다.”

테레사, 소소, 탄토는 툴툴거리면서도 전투를 준비했다.

저주의 형상은 ‘덩치’가 아니라 ‘규모’라고 표현해야 할 정도의 크기를 지니고 있었다.

“탄토 씨 말이 맞아요. 뭔가 방법이 있을 겁니다. 아마 저놈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게 보일 확률이 높아요.”

도진의 말대로였다.

저주의 형상이 이동을 위해 핏물을 변형시켜 다리를 만들어 내기 시작하자.

[저주의 형상이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방치하면 저주는 만족할 줄 모르는 포식으로 수많은 생명을 집어삼킬 겁니다. 놈의 이동을 저지하십시오!]

메시지가 떴다. 생성되는 다리를 파괴해 이동을 저지하라는 메시지였다.

“아무래도 이번 건 여러 페이즈로 나눠서 전투가 진행되는 방식인 거 같네요.”

시작부터 맹공이 쏟아지는 전투는 아니었다.

당장 닥친 직접적인 위협은 아예 없는 수준이 됐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

하지만 급박하지 않다는 착각에 빠져선 곤란했다.

“페이즈가 몇 개인지는 모르겠지만, 제한 시간 내에 저놈을 저지해야 합니다.”

저놈이 그림자 공국의 영역인 부유대륙 밑바닥을 탈출하면 중력 역전에서 벗어나 바다로 빠져나가게 된다.

그러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될 것이다.

“DPS 싸움이 되겠네요.”

탄토가 무기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도진도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누가 말을 꺼낼 것도 없이, 파티원 전원이 일제히 움직였다.

목표는 당연히 가장 가까이 있는 핏물로 만들어진 다리였다.

저주의 형상의 크기에 비하면, 아주 가늘고 짧은 다리다.

그러나 그건 주인에 비해서 그렇다는 것이고, 인간 입장에서는 건물이 낭창거리며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화염포》

도진은 가장 익숙한 속성을 골라 그중에서도 가장 위력이 뛰어난 마법을 시전했다.

커다란 폭발과 함께 그만큼의 핏물이 터지고 증발했다.

테레사와 탄토도 가까이 접근해 공격에 가담했다.

돌도끼를 들고 거인이 만든 신전의 기둥을 향해 달려드는 모양새였지만, 뿜어내는 딜의 양은 그렇지 않았다.

탄토가 양손에 쥔 도끼와 단검을 휘두를 때마다 펑, 펑 하고 핏물이 비산했다.

그러나 저주의 형상도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너희 정도로는 부족해애애애- 방해하지 마-!】

저주의 형상 입장에서 도진 일행은 날파리보다도 못한 존재였다.

끝없이 소용돌이치는 허기를 달래기에는 모자라다는 표현조차 민망할 정도로.

저주의 형상은 핏물로 만든 채찍을 휘둘러 날파리를 쫓고자 했다.

“내가 막을게!”

테레사는 바로 나서서 딜러들에게 위협이 오는 걸 막아냈다.

방패로 치고, 망치로 휘둘러 뭉개고.

날아드는 채찍을 적절한 공격으로 끊어 내며 파티원을 사수하는 테레사.

그 덕분에 도진과 탄토는 첫 번째 다리에 충분한 딜을 누적시킬 수 있었고, 저주의 형상이 만든 여러 개의 다리 중 하나를 파괴할 수 있었다.

촤아악- 하고 수직으로 낙하하는 엄청난 양의 핏물은 마치 거대한 폭포를 보는 듯했다.

【왜애애애! 왜 날 방해하는 거야아아-!】

녹아내리는 자아를 방증하는 듯 늘어지는 절규.

[저주의 형상이 더욱 거센 공격을 개시합니다!]

저주가 형상화된 끔찍한 핏물의 집합체는 날파리를 잡아 죽이기 위해 다리가 사라진 자리에 공격을 위한 손을 만들었다.

“어어어? 저, 저 미쳤나 봐!”

바닥을 휩쓸며 다가오는 핏물로 만들어진 손은, 모양을 제외하면 해일과 차이점을 찾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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