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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보다’.
강희진이 맡은 프로그램의 제목이었다.
제목대로 ‘사람’에 집중한 이야기를 푸는 게 다인 프로여서 시청률이 높지 않았다.
MC 출연료마저 아끼려고 PD가 진행을 맡을 정도로 찬밥 신세인 프로그램.
하지만 ‘도진 편’은 달랐다.
사전 홍보에 힘입어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도진 편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가상현실에 고아원을 지은 이유요? 그냥요. 그냥 그 광경을 보니까 그러고 싶어졌고, 그렇게 한 거예요. 다른 생각은 없었습니다.」
「현실의 문제가 더 급하다… 맞는 말이에요. 저도 얼마 전까지 기부의 수혜자였거든요. 아, 제가 보육원에서 자랐거든요. 고등학교 입학하고 얼마 안 있어서였나? 고급 패딩을 엄청 기부해 주신 분이 계셨어요. 덕분에 다른 친구들이랑 똑같이 좋은 패딩 입고 따뜻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었죠.」
「고마웠어요. 감사했죠. 그래서, 라고 표현하면 좀 낯간지럽긴 한데, 여유 되는 선에서 기부를 하려고 한 이유도 그런 이유인 거 같아요. 직접 겪었으니까요.」
「제가 부모님이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고 해서 같은 처지인 다른 분들을 대변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저는 저죠.」
질문 하나, 답변 하나가 도진을 건드린 사람들 입장에서는 비수고 치명타였다.
「제가 특이한 건지 몰라도 그립거나 그렇진 않았어요. 그냥 나한테는 없나 보다, 하고 살았죠. 딱히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뉴스만 봐도 저보다 불행한 케이스가 너무 많았거든요. 예를 들면 아동학대 뉴스라든지.」
방송 이후 여론은 무서울 정도로 도진에게 우호적이 됐다.
-와… 난 도진이는 무조건 금수저일 줄 알았어.
-그런 이미지가 있긴 했지.
-아 ㅠㅠㅠ 도진이가 고아원 세운 게 그럼 다 자기 어릴 때 생각나서 그런 거였어? 진짜 나 마음 찢어져…….
-학살범 놈들 찢어 버릴 때 왜 그렇게 가차 없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구나.
-당사자인 도진이는 담담하게 얘기하는데 왜 내가 눈물이 나지?
안 그래도 도진을 좋아하던 팬들은 인간적인 스토리까지 더해지자 정신을 못 차렸다.
-대학생 딸을 둔 엄마입니다. 제 딸이랑 비슷한 또래인데 너무 성숙한 모습에 놀랐어요. 방송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응원합니다.
-방송을 보는 내내 일찍 철이 들 수밖에 없었던 아이를 보는 거 같아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항상 지켜보며 응원하겠습니다.
10대, 20대 자녀를 둔 부모들은 더욱 감정을 이입했다.
-미친 새끼들이 이런 사람을 모함한 거야?
-그 방송 PD랑 MC인지 아나운서인지 하는 것들은 자기들은 기부하고 그런 소리 한 거겠지?
-ㅋㅋㅋ 그런 새끼들 패시브가 내로남불인데 기부는 무슨. 아마 거기 나온 교수 새끼들도 기부라고는 한 푼도 해 본 적 없을걸?
도진에 대한 대중의 호감이 치솟는 만큼, 그에 비례해 도진을 건드린 자들에 대한 비난 여론도 거세졌다.
방송사 게시판은 터지고, 공식 유튜브 채널도 너덜너덜해졌다. PD, 작가, MC 등은 물론이고, 패널로 출연하는 사람들도 SNS가 박살이 났다.
적당한 명분을 등에 업은 대중은 성난 파도와 같았다.
[안녕하세요, 아나운서 김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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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가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을 전달하게 된 점 정말 죄송합니다.
기회만 된다면 상처를 입으셨을 당사자분께 직접 연락을 통해서라도 사죄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결국 멘탈이 갈려나간 해당 방송의 MC를 맡았던 아나운서는 자신의 SNS에 사과문을 올리기까지 했다.
-솔직히 MC는 그냥 대본 준 대로 읽은 거뿐이잖아.
-ㅇㅇ 진짜 죽일 놈들은 PD랑 작가랑 입 나불댄 자칭 전문가들이지.
마녀사냥은 철저했다.
[제목: 도진이 건드린 류준호 PD 과거]
[류준호는 개명한 이름임. 원래 이름은 류종열.
어디서 많이 들어봤지?
맞음. 전에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조작해서 실형 살고 나온 새끼임 ㅇㅇ.
이름 개명하고 같은 방송사 다시 입사해서 시사 쪽 맡았다가 이번 사고 친 듯.]
다만 무고한 마녀사냥은 아니었다.
잡고 보니 실제 마녀였을 뿐.
-조작 거르고도 악마의 편집으로 어린 연습생들 울리기로 유명했던 쓰레기잖아.
-저딴 새끼를 다시 받아 준 거 보면 실형도 윗선들 대신 총대 메고 들어간 거겠네.
-지금이라도 제대로 조사해서 관련자들 전원 사형에 처해라!
└사형이래 시발 ㅋㅋ
어그로도 돈이라며 좋아할 수 없을 정도로 여론이 나빠지자 결국 PD가 잘렸다.
원래부터가 계약직 파리 목숨인 작가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특히 눈시울까지 붉혀 가며 도진을 가장 노골적으로 저격했던 ‘사랑의 보살핌’ 시민 단체 대표는 가장 커다랗게 폭격을 맞았다.
정확히는, 외부에서 맞은 게 아니라 내부에서 터졌다.
[“사랑의 보살핌은 말만 시민 단체이지 사실상 대표 가족의 가족 기업처럼 운영돼 왔습니다. 각종 기부금 등의 대부분은 대표 개인이 자기 마음대로 집행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미용 목적의 피부과 진료나 명품 의류, 고급 차 구입 등…….”]
사람들의 관심이 한껏 쏠린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는지 내부에서 비리 폭로가 터진 것이었다.
한 명이 고발을 하고 나서자 과거 사랑의 보살핌에 있다가 나온 사람들도 속속들이 등장해서 폭로에 힘을 보탰다.
[“전에 독거노인 한 분이 저한테 그러셨어요. 생신이신데 인스턴트라도 좋으니 갈비탕이 드시고 싶으시다고. 그래서 보고를 했어요. 그랬더니 절대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 거 다 들어주면 돈이 남아나지 않는다고. 그래서 제가 사비로 근처 제일 비싼 집에서 사 드렸죠. 그런데 그날 대표는 골프를 치러 갔거든요. 그때예요. 제가 나온 게.”]
그나마 들어줄 만한 게 이 정도였다.
다른 폭로는 악마도 ‘이건 좀…….’ 하고 고개를 저을 만한 것들이 대부분.
-도진이가 가상현실에 고아원 세우는 게 뭐? 기부 문화의 쇠퇴……?
-진짜 역겹다는 말도 아깝다 ㅋㅋ 악어의 눈물이 뭔지 딱 보여 주는 케이스네.
-기부금 98퍼센트는 식비로 썼냐? 그것도 혼자 다 먹었나 보네.
-지금이라도 제대로 조사해서 관련자들 전원 도살하라!
└사형, 사형 하더니 이젠 도살까지 가 버렸네 ㅋㅋ 이젠 사람 취급도 안 해 주는 거임?
-결국 그거였던 거네? 기부금이 곧 자기 돈인데 전체적으로 기부금이 줄어드니까 위기의식 느낀 거잖아.
패고 또 패도 팰 거리가 계속 나오는 상황에, 사람들은 숨을 돌려가며 패야 했다.
-진짜 개소리도 이런 개소리가 없었음ㅋㅋ 기부를 꺼리는 문화가 가상현실에 정신이 팔려서 그렇다고? 병신 새끼들아, 니들이 하도 이리저리 빼돌렸단 뉴스가 계속 나오니까 사람들이 기부를 꺼리지.
이때 라엘 그룹이 움직였다.
[라엘복지재단은 모두와 나누며,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룹 차원에서 아동, 청년, 노인 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직접적 지원에 나선 것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크리에이터 ‘도진’. 학대 아동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 1억 원 기부.]
[“같은 아픔을 알기에 외면할 수 없었다.” 사회에 홀로 서야 하는 ‘보호종료아동’ 자립 지원금 1억 원 기부.]
[도진曰: “포기하지 않은 당신들을 존경합니다.” 미혼모, 미혼부 지원금 1억 원 기부.]
김영희 팀장에 이어 주강희 실장까지 가세해 칼질을 시작하니 두는 수마다 필살기가 됐다.
적의 죽은 시체는 계속해서 난도질됐다.
반대로 도진은 계속해서 평가가 올라갔다.
-진짜 안 되겠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도진이한테는 나라는 상을 줘야겠어. 일단 혼인신고부터 하면 되겠지?
└지랄 ㄴ 그건 포상이 아니고 천벌이잖아.
-근데 솔직히 나만 보기 좀 그럼? 기회 왔다 싶어서 언플하는 거 같아서 좀 그런데. 그리고 버는 돈이 얼만데 쪼잔하게 저것밖에 기부를 안 해?
└100원 한 장 기부 안 하는 새끼들이 꼭 이런 개소리를 해요. 불편하면 자세를 고쳐 앉아. 척추 접어서 진짜 불편함이 뭔지 알려 주기 전에.
돌아가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도진도 당혹스러웠다.
‘이 정도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적당히 욕 좀 먹어 봐라, 하는 생각은 있었다.
그런데 툭 건드렸더니 와르르 무너져 버리다니.
“어이가 없네. 뭐 이래? 내가 날린 건 잽인데 왜 목이 잘리냐고.”
도진은 천지현이 열심히 캡쳐해서 가져온 기사들을 휙휙 넘겼다.
누군 잘리고, 누군 휴직하고, 시민 단체는 공중분해에 대표는 구속 수사 가능성까지…….
“뒤도 구린 것들이 괜히 생사람 잡으려다 벌 받은 거지. 꼴좋다.”
천지현은 단단히 화가 났었는지 아주 속이 후련하다는 표정이었다.
“이 사과문은 뭐야? 언제 쓴 거지? 사흘이나 됐네.”
멘탈이 갈려 나간 아나운서가 쓴 사과문을 정작 도진은 사흘이 지난 시점에 보고 있었다.
도진은 폭탄을 투척한 뒤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신경 쓰지 못했다.
부유대륙으로 넘어가서 뱀파이어의 저주 문제를 두고 대공과 의논을 하기도 바빴던 것.
그러다 나와 보니 지금 상황이었다.
뭐랄까 폭탄 하나를 성의 없이 던졌을 뿐인데 거기에 하필이면 탄약고랑 폭발물 저장고가 가득해서 유폭으로 초토화된 걸 뒤늦게 보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도진은 분위기가 어떤지 궁금해서 유튜브 영상과 SNS 등을 살펴봤다.
“…….”
그러자 성난 민심이 그대로 드러나는 댓글들이 즐비했다.
적절한 비판도 있었지만, 먹잇감을 발견한 상어 떼처럼 달려들어 끝없는 비난을 쏟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효수라도 할 분위긴데?”
“음… 좀 심하긴 해. 근데 자업자득이지 뭐. 솔직히 나쁜 짓만 안 했으면 들켜서 이렇게 될 일은 없었을 거 아냐.”
확실히 그렇긴 했다.
사실상 먹는 욕 대부분이 과거에 쌓은 업보 때문인 거 같긴 하니.
하지만 다 그런 건 아니었다.
제일 먼저 사과문을 올린 아나운서는 사실 시키는 대로 대본 읽은 죄가 다였다.
도진이 볼 때 나팔수가 먹을 만큼의 욕은 이미 한참 전에 다 먹은 거 같았다.
‘괜히 저러다 저 사람 잘못되면 나까지 욕먹지.’
도진은 사람 살리는 셈 치고 시간을 좀 내서 채널 커뮤니티에 글 하나를 올렸다.
[도진입니다.
방구석을 넘어서 가상현실에만 있다 보니까 전혀 몰랐는데 밖이 난리가 났더라고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걱정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고요.
김지혜 아나운서님이 쓰신 사과문이랑 SNS 댓글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대본을 받아서 읽기만 하셨을 텐데 많이 힘든 시간을 보내셨더라고요. 지금이라도 무차별적인 비난은 자제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물론 제 팬분들께서는 그러지 않으셨겠지만요. 어쨌든, 전 괜찮습니다. 칭찬도 그만 받고 싶네요. 전 제멋대로 사는 것뿐이거든요.
그럼 전 중요한 퀘스트가 있어서 게임하러 가겠습니다. ㅂㅂ]
-마지막 ㅂㅂ 뭐야? 끼 부리는 거야? 이거 나랑 결혼하겠다는 뜻이지?
-진짜 속 깊고 마음이 넓은 사람이네…….
-그러니까 형 말은 대본 읽은 죄밖에 없는 아나운서 눈나 빼고는 다 쏴도 된다는 말이지?
무슨 일이 있든 알아서 대응해 줄 사람들이 있다는 건 마음이 편한 일이었다.
도진은 이 글을 마지막으로 이 일에서 완전히 관심을 거두었다.
대신 도진은 다른 세상에 집중했다.
누군가가 대신 닥친 일을 해결해 주지 않기에, 자신이 직접 나서야 하는 세상 쪽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