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07화 (207/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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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이 최근 멸망교단에 입힌 피해는 치명적이었다.

갈란테 토벌을 시작으로, 네파스의 헛짓거리를 봉쇄했다.

거기에 이어 도진으로 인해 시작된 피바람은 아직도 제국 내부를 청소 중이었다.

테러 단체와 엮인 사건에서 시작된 숙청이기에, 범죄자든 부패한 관료든 조금이라도 죄를 지은 자들은 실시간으로 형장의 이슬로 화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해도 숨죽이며 때를 노리던 멸망교단 입장에서는 날벼락이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한데 이번에 반쯤은 사활을 걸고 라베스의 힘까지 동원해 꾸몄을 ‘리제니안 갈라치기’까지 대차게 실패를 해 버렸으니.

‘아무리 바퀴벌레 뺨치는 놈들이라고 해도 당분간은 힘을 못 쓰겠지.’

도착 지점이 세계의 멸망일지 존속일지를 두고 다투는 레이스에서 상대를 주춤거리게 만든 셈이다.

물론 도진은 여기서 상대보다 앞섰다는 확신을 갖고 여유를 부릴 생각 따위 없었다.

‘놈들이 사고 치기 힘든 지금 최대한 처리할 수 있는 걸 처리해야 해.’

이런 맥락에서 정한 도진의 다음 목표가 바로 뱀파이어들이 품고 있는 문제였다.

예전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던 것이고, 해결할 수단을 얻기도 했으니 이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한데 이런 도진의 발목을 잡는 사건이 터졌다.

가상현실이 아닌 현실 쪽에서.

[“유명인의 선행과 기부. 참 좋은 일이죠. 한데 최근 특이한 기부가 이루어져 논란 아닌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공을 쏘아 올린 건 한 방송사에서 진행하는 시사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다룬 내용은, 도진이 이번 사건을 해결한 이후에 한 일에 대한 것이었다.

[“지금 보시는 화면은 가상세계에 만들어지고 있는 고아원의 모습입니다. 예, 가상세계 고아원이 무슨 상관이지? 하는 시청자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제가 지금 이 사례를 소개해 드리는 이유는 이 모든 게 한 개인 유저의 돈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라서 그렇습니다.”]

디케인 일당을 처리한 뒤 도진은 여러 곳에 고아원, 정확히는 갈 곳 잃은 사람들이 지낼 수 있는 시설을 짓기 시작했다.

돈은 문제가 안 됐고, 성황청과 안보부 연줄까지 있으니 다른 과정도 문제가 전혀 되지 않았다.

이미 학살의 피해자가 된 사람들을 되살릴 수는 없지만, 이거라도 해야 마음이 조금 편해질 거 같아 한 일이었다.

[“일견 ‘아름답다’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를 훈훈한 광경인데요. 하지만 현실의 기부 문화 쇠퇴와 엮어 생각하면 마냥 편하게 볼 수만은 없는 광경인 게 사실입니다. 지금 보시는 그래프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기부 현황을 나타내는 표인데요…….”]

시사 프로 아나운서는 도진의 사례와 현실의 기부 문화를 엮어 가며 말을 이어 갔다.

말을 빙빙 돌리고는 있지만, 사실상 ‘현실에도 불쌍한 사람이 널리고 널렸는데 굳이 가상현실에다 돈을 써 대야 했느냐?’라는 논조였다.

[“기부마저 가상현실에서 하는 이런 현상은 현실보다 가상현실에 몰입하는 ‘요즘’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현상을 전문가 시점에서는 어떻게 보시는지, 여러 분야의 전문가 분들을…….”]

아나운서의 말대로 무슨 학과 교수, 심리 전문가 등이 나와서 주절주절 떠들었다.

그러다 ‘사랑과 보살핌’이라는 시민 단체 대표까지 등장했다.

[“가상현실이 도입되고, 관련 산업의 눈부신 발전으로 경제가 살아났다지만, 그로 인해 사회의 어두운 면은 더 어두워지고 있어요. 대중의 관심이 현실에서 가상현실 쪽으로 몰리면서 안 그래도 감소하던 기부에 대한 관심이 더 빠르게 식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입니다.”]

사랑과 보살핌 대표는 눈시울까지 붉혔다.

[“극단적으로 말해 가상현실은 현실이 아닙니다. 프로그램만 조작으로 순식간에 건물이 올라가고, 먹을 것도 무한정 생성될 수 있죠. 하지만 현실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공인일수록 이런 부분을 잘 헤아렸어야 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기부의 뿌듯함마저 가상현실에서 얻는 그런 세상이 올까 봐, 저는 그게 두렵습니다.”]

탁.

재생되던 영상이 멈췄다.

그걸 멈춘 건 도진이었다.

“어… 이게 뭐예요?”

도진이 물은 상대는 마케팅 팀장 김영희였다.

“보신 대로죠. 시청률이 바닥을 기던 프로여서 본방 시청률은 신경 쓸 정도도 못 되는데, 문제는 유튜브 쪽이에요. 뒤늦게 도진 씨 얘기가 포함됐다는 소문이 나서 일파만파 번지고 있죠.”

도진은 헛웃음을 흘렸다.

유명해진다는 게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주변에서 가만 두질 않는다.

하다못해 이런 식으로 엮는다고?

불편함의 시대라는 말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진짜 미쳤나 봐. 우리 도진이에 대해서 지들이 뭘 안다고!”

옆에서 함께 영상을 본 천지현은 뿔이 단단히 났는지 숨을 거칠게 씩씩거렸다.

“뭐… 트집 잡아서 물어뜯는 거죠. 시청률이 나올 만한 구멍이면 일단 머리를 들이밀고 보는 게 그쪽 업계니까. 최근 제일 핫한 게 도진 씨 얘긴데, 시사 쪽에서는 부스러기도 주워 먹기 힘드니까 이렇게라도 엮은 거겠죠.”

김영희는 그녀답지 않게 비릿한 비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더럽긴 하지만 ‘관심만 끌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한 수라면 성공적인 마케팅이긴 해요. 딱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도진은 어이가 없어서 영상을 한 번 더 돌려봤다.

누가 보면 어디 가서 가상현실 복지 센터 지었다고 광고하고 다닌 줄 알겠다.

“재밌는 사람들이네.”

그 끝은 헛웃음이었다.

안 그래도 저쪽 세상에서 할 일이 산더미인데 잡음을 있는 대로 내 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온갖 것이 불편한 모양인데 정말 삶을 불편하게 만들어 주고 싶어질 지경이다.

“근데 뭐 크게 심각한 일은 아닌 거 같은데요? 이런 소리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 같지도 않고, 제 팬이면 더더욱 무시할 만한 소리잖아요.”

“맞아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식을 이슈긴 하죠. 그런데…….”

김영희가 잠시 망설였다.

꺼내려는 말이 도진의 민감한 사안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부터 하는 말은 오해 없이 들어 주셨으면 해요. 저는 이번에 뜬 방송이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해요.”

“기회요?”

“네. 저쪽에서 도진 씨에 대해서 한 말들, 전부 반박할 무기가 너무 많잖아요. 특히 기부 관련된 거요.”

틈만 나면 주강희가 슈퍼 카를 선물하려 들어서, 타지도 않는 차를 선물할 거면 그냥 기부나 하라고 농담 삼아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주강희는 정말 그렇게 했다.

결과적으로 도진 이름으로 이루어진 기부만 해도 수억 원씩 수차례에 이르렀다.

“…언제 이렇게 했대요?”

김영희가 내민 관련 자료를 본 도진은 어이가 없었다.

‘주차장에 차는 계속 늘던데…….’

면허도 없는데 차만 는다. 차만.

“도진 씨나 실장님이나 굳이 밝힐 생각 없이 하신 일이지만, 언젠가는 밝혀질 일이잖아요. 타이밍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다만… 이러면…….”

이러면 도진에 대한 관심이 확 치솟는다.

게임 속 도진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도진에 대한 관심이.

그러면 자연히 그것도 구설에 오를 가능성이 높았다.

도진이…….

“제 신상 때문에요? 고아라는 거요.”

김영희가 곤란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김영희는 하고자 하는 말을 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래요. 제3자에 의해서 그런 민감한 사안이 들춰지는 건 도진 씨한테 상처가 될 테니까요.”

“음… 그런데 기부랑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알려지지 않을까요?”

“…그것도 그렇긴 하죠.”

주강희가 대리로 한 기부도 그렇고, 가족이 없다는 것도 그렇고, 딱히 신경을 안 쓰고 살았던 것들이다.

그런데 그걸 인지하게 되니 이거 꽤 괜찮게 써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이번에 다 쓰죠. 고아라서 이득 본 게 군대 면제밖에 없는데 이참에 한번 써먹죠, 뭐.”

“네?”

남 얘기하듯 가볍게 말하는 도진을 본 김영희는 당황했다.

“방금 얘기한 대로 시기의 문제지 언젠가는 알려질 일인데 굳이 감출 거 없잖아요. 말씀하신 대로 제3자가 캐내서 부정적인 방향으로 터뜨리는 거 보고 있느니 직접 밝히는 게 낫겠다 싶기도 하고.”

“그래도 도진 씨 입장에서는 껄끄러운 일이잖아요?”

“저 별로 신경 안 쓰는데요.”

“…….”

도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김영희의 반응이 재밌어 웃었다.

“그럴 거 없어요. 제 눈치 보지 말고 제가 가진 걸 어떻게 써야 헛소리한 놈들 머리를 제대로 박살 낼 수 있을지만 생각해 주세요.”

“정말… 그래도 되겠어요?”

“네. 진짜, 정말, 진심으로요.”

“존경스럽네요. 그럼 정말로 도진 씨가 원하는 바를 이룰 것만 생각하고 플랜을 짜 볼게요.”

이런 애를 굳이 흠집을 내려고 들다니.

‘조카뻘쯤 되려나.’

못난 어른들이다, 정말.

김영희는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감정을 담아 일을 하기로 했다.

* * *

바로 다음 날 김영희에게서 연락이 왔다.

[“PD를 하는 친구가 있거든요. 지금 상황을 얘기했더니 좋은 그림을 만들 수 있을 거 같다고, 원격 화상이라도 좋으니 짧게 인터뷰만이라도 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방송이 나가기 전에 저희 쪽에서 어떤 식으로 편집됐는지 확인할 겁니다.”]

인맥으로 동종업계 종사자를 동원해서 상대의 수급을 따 버리겠다는 계획이었다.

솔직히 김영희에게 있어서도, 그녀의 친구인 PD에게 있어서도 이번 일은 다 차려진 밥상이나 다름없었다.

상대편 논리는 게임에 취한 가상현실 중독자가 기부까지 가상현실에서 하면서 현실은 외면하고, 그로 인해 팬들까지 그렇게 물들 거라는 얼토당토않은 개소리인데.

이쪽에서 쥔 무기는 그걸 다 반박하는 걸로도 모자라서 건드리면 터지는, 소위 말해 ‘탈룰라’급 전략 병기까지 쥐고 있다.

아주 상대를 잡아다 샌드백 안에 넣어서 일방적으로 신나게 두드리기만 하면 되는 상황인 것이다.

“시간은 얼마나 걸린대요?”

[“길어야 30분 정도 걸릴 거예요.”]

인터뷰 약속은 바로 잡혔다.

도진이 원하는 시간에, 가상현실로 구현한 인터뷰 장소에서 마주한 PD는 김영희와 비슷한 또래의 이지적인 미인이었다.

“안녕하세요, ‘사람을 보다’ PD 강희진입니다. 들으셨겠지만, 영희 친구예요. 고등학교 동창.”

“안녕하세요. 도진입니다.”

인터뷰라지만, 어차피 나중에 편집하면 그만이라 분위기는 한없이 부드럽고 자유로웠다.

“그럼 시작할까요? 아, 혹시라도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답변도 얼마든지 자유롭게 하셔도 되고요.”

“네.”

도진의 담백한 한마디와 함께 몇몇 사람들에게는 재앙이 될 인터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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