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05화 (205/271)

205

다수를 상대로 할 때는 전투 초반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적이 가장 많이 살아 있는 때가 전투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최대한 빠르게 머릿수를 줄이는 게 중요했다.

기선제압에 실패하고, 교착 상태에 빠져 버리면 곤란하다.

해서, 도진은 자신의 전력을 초반에 불사르고자 했다.

「초월」과 「진리의 서」를 동시에 해방하고, 신중을 기한 마법으로 한 놈의 머리를 날려 버린 도진은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충분히 압축해 놓았던 염동력을 순차적으로 방출하며 거는 연속적인 가속은 도진 본인도 놀랄 만한 이동속도를 보였다.

퍼엉- 쐐애액-

전방에서 폭음에 이어 살벌한 파공성이 울렸다.

소용돌이를 동반한 화살이 내는 소리였다.

그걸 보자마자 도진은 염동방출의 방향을 바꿨다.

고속이동 중 갑작스레 힘의 방향을 바꾸자 도진의 몸이 붕 떠서 날아갔다.

앞으로 나가던 관성과 뒤섞인 힘에 의해 포물선을 그리던 도진은 여러 번의 「염동방출」로 실시간으로 궤도를 수정하고, 다시 고속이동에 들어갔다.

“미친 새끼 아냐, 저거! 뭐 저딴 식으로 움직여!”

활을 쏜 장본인은 그걸 보고는 억울함을 육성으로 뱉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도진 본인부터가 자신이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이 안 돼 순간순간의 판단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걸 쏘아 맞혀야 하는 입장에서 보면 어이가 없는 게 당연했다.

“저렇게 움직이는 게 부담이 안 될 리가 없어! 계속 쏴!”

상식적으로 도진의 움직임은 몸에 걸리는 물리적 부하, 마력적 부하가 엄청나 보였다.

디케인의 이런 판단은 합리적이라 할 수 있었다.

하나 도진은 그게 해당이 안 됐다.

도진은 큰 포물선을 그리다, 직각으로 방향을 꺾는 입체적인 기동을 일삼으면서도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여러 특성이 유기적으로 뒤엉킨 도진의 몸뚱이는 이 정도에 부하가 걸리기에는 마법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너무 튼튼했다.

‘이거 은근히 재밌는데?’

도진은 자신을 노리는 공격을 아슬아슬한 순간에 빗겨 내며 훅- 하고 가까워지는 바닥을 손으로 짚어 박찼다.

그러면서, 「화염창」을 날렸다.

목표는 디케인이었다.

이에 디케인은 허공에 검을 휘둘러 흑염의 장막을 만들었다.

도진의 마법이 흑염 장막에 흡수되듯 사라졌다.

‘날파리 같은 놈. 어차피 접근전을 할 수만 있으면 내가 훨씬 유리하다.’

디케인은 자신의 능력을 믿었다.

엄청난 공격력과 방어력을 동시에 갖춘 「흑염(黑炎)」은 접근전에 있어 최고의 성능을 지닌 능력.

‘거리만 좁힐 수 있으면-’

흑염의 장막이 가라앉았다.

그러면서 보인 건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있는 도진이었다.

도진은 전신에 전격을 두르고, 검을 들고 달려드는 검사의 얼굴을 강타하고 있었다.

“뭐-?”

방금 전까지 디케인은 도진이 거리를 두고 움직이며 유격전을 벌일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이미 「초월」을 쓴 도진은 그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

“게임 좀 하겠다는데 왜 지랄이야!”

활을 들어 올리며 지르는 소리.

도진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그저 손을 뻗고,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아네모네.”

늑대의 형상을 한 정령이 도진의 손끝에서 나타났다.

도진보다 더 빠른 순간 가속 능력으로 활쟁이와 거리를 좁힌 아네모네는 그대로 활과 사람의 손을 같이 물어뜯었다.

“아아악!”

도진의 능력이 올라가면서 함께 강화된 아네모네는 일개 활쟁이가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물며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거리에서 시작되는 싸움이라면 더 볼 것도 없었다.

“잠깐, 일단 나부터 보호 좀… 켁!”

힐러가 화염구에 맞고 바닥을 굴렀다.

그 모습에 디케인이 바로 대응하려 했으나.

도진 주변으로 몰아치는 전격 에너지에 디케인은 어쩔 수 없이 다시금 흑염의 장막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젠장!”

평범한 마법사를 상대로 하는 거라면 한두 번 정도는 공격을 허용하면서 파고들겠지만, 도진은 공격력이 너무나 강력했다.

딜러 입장에서는 방어에 전념하지 않으면 바로 그로기에 빠질 정도의 공격이 빗발치니, 뭘 제대로 시도하기가 애매했다.

‘오늘 벵가 채널 떡상하는 날이다!’

이때 탱커인 벵가가 움직였다.

기회를 엿보다가 도진의 후방에서 방패를 앞세워 밀고 들어갔다.

‘뒤통수에 철퇴 한 방만 꽂으면 돼!’

스턴만 걸면 된다. 스턴만!

도진이 돌아섰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벵가의 가슴은 철렁하고 내려앉았으나 멈출 시기는 이미 지났다.

스킬의 관성에 의해 돌진하는 벵가.

도진의 손가락의 위를 향했다.

‘아래!’

마법사들이 방패 든 탱커를 상대로 발밑을 노리는 게 유행한 지도 한참이 됐다.

벵가도 발밑을 의식했다.

하나 도진이 노린 건 발밑이 아니었다.

도진이 솟아오르게 한 암석이 노린 건 벵가가 들고 있는 방패의 아랫부분이었다.

퍼억-

“헉!”

밑에서 가해지는 힘에 의해 벵가의 방패가 위로 치솟았다.

탱커가 굳히고 있는 방어 자세를 무너뜨리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게임이란 게 결국 수치와 수치의 싸움이다.

「초월」까지 쓴 도진이 숫자 싸움에서 밀릴 일은 거의 없었고, 벵가는 순간적으로 방어 스킬과 방패가 제공하는 방어력을 잃게 됐다.

「얼음 화살」에 이어 「방전」, 거기에 이어서 「화염구」 세례.

움직임을 느리게, 못 움직이게, 그리고 누적시키는 딜.

깔끔한 콤비네이션에 벵가는 속수무책으로 얻어맞았다.

그런 와중에도 도진은 자신 주변에 있는 놈들이 무엇 하나 시도도 못 하게 범위를 점하는 견제를 놓지 않았다.

PvP는 턴제 싸움이다. 템포를 놓치고 잡은 턴을 놓는 순간 유리함을 잃게 된다는 걸 잘 알기에, 도진은 자신이 쥔 선공권을 최대한 길게 끌었다.

“으, 으아아악!”

활쟁이를 마무리한 아네모네가 알아서 힐러까지 짓이겼다.

어느새 남은 건 디케인 하나였다.

상식을 벗어난 도진의 캐스팅 속도에 계속해서 흑염의 장막으로 방어만을 해야 했던 디케인이 이를 갈았다.

“이게 말이… 하…….”

디케인은 어이가 너무 없으면 웃음이 나온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다.

방금 전까지 밝은 청사진을 그리며 대화를 하던 길드원들이 시체가 되어 주변에 널브러져 있다.

디케인은 검에 흑염을 두른 상태로, 여전히 황금색으로 불타오르는 듯이 보이는 도진에게 물었다.

“우리가 너한테 피해를 준 건 없을 텐데. 다짜고짜 기습해서 이런 식으로 싸움을 걸면 어쩌자는 거지? 사람들이 들썩이는 거 보고 인기몰이라도 하려고 쇼라도 하고 싶었나 봐?”

말하면서 디케인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저놈이라고 계속 저렇게 마법을 펑펑 쓰진 못해. 이제 곧 번아웃이 올 타이밍이다. 지속적인 화력부터 방어력, 전투 지속력은 절대 밀리지 않아. 무엇보다, 난 저놈을 알지만 저놈은 날 모르지.’

도진의 전투 스타일부터 능력은 이미 많이 퍼져 있는 상태.

반면 디케인 자신은 한 번도 제대로 된 능력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잘만 싸우면, 디케인은 자신이 분명히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쇼는 무슨.”

그런 디케인에게 도진이 보인 반응은 비웃음이었다.

조소를 섞어 입을 연 도진은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그를 감싸고 있던 마력이 증발하듯 사라졌다.

“그냥 보기 불편하니까 정리하러 온 거지.”

디케인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하던 대로 몬스터나 잡고 다니지. 굳이 와서 이런 위험천만한 짓을 하는 이유가 고작 그거라고?”

디케인이 턱 끝으로 허공을 가리켰다.

도진은 그게 시스템 메시지를 가리키는 거라는 걸 알아챘다.

“그쪽에도 뜬 모양이네? 어떻게 얽히다 보니까 이런 퀘스트가 생기더라고. 그래도 공평하잖아. 죽으면 끝장인 건 이쪽이나 그쪽이나 같은 조건이니까.”

“…오만한 건지. 머리가 나쁜 건지. 이걸 알면서도 이런 식으로 달려들었다고?”

“그러게 말이야. 그래도 다행이잖아. 결과가 이렇게 좋으니.”

도진이 주변을 가리키며 말했다.

으득- 하고 디케인이 이를 갈았다.

“결과가 누구한테 좋을지는 끝까지 봐야 아는 거지!”

계속 기회만 노리던 디케인이 기습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압축되어 있던 흑염이 방출되며 도진을 향해 쇄도했다.

‘아직 저놈한테는 생존기가 남아 있다. 그것부터 여기서 뽑아야 돼.’

디케인의 바람대로, 도진의 가장 강력한 생존기인 「한정회귀」가 사용됐다.

도진 입장에선 「초월」을 쓴 이상 어차피 써야 하는 카드인지라 아끼지 않은 것이지만.

“자아도취도 정도껏 했어야지!”

디케인 입장에서는 도진을 죽여 없앨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느껴졌다.

‘거리가 벌어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저놈이 멍청하게 굴어 준 지금 승기를 굳혀야 돼.’

거리가 가까운 지금 승부수를 띄우기로 한 디케인은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흑염지대》

검을 꽂아 넣고 힘을 해방하자 주변을 흑염이 물들였다.

디케인을 제외한 모든 존재에게 지속적인 피해를 입히는 지역을 생성하는 스킬이었다.

지속적으로 대미지가 들어오는 걸 알게 되면 흑염지대에서 벗어나려 들 터.

그러면 그걸로 끝이다.

흑염지대는 흑염 스킬의 발동 속도, 위력, 범위를 모두 올려준다.

당황해 움직이는 순간 여기저기서 치솟는 흑염에 대응할 방법 따윈 없을 것이었다.

한데 디케인의 예상과 달리 도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뭣?”

도진이 선택한 건 공격이었다.

디케인이 흑염지대를 까는 시간 동안 준비된 「화염포」가 발사됐다.

급히 방어를 위해 흑염의 벽을 생성하는 디케인.

‘그래 봐야 내 벽은 못 뚫어!’

한 번도 방어가 뚫린 적 없는 디케인의 믿음은 바로 박살 났다.

잠시 동안 막히는가 싶더니, 도진의 「화염포」가 흑염의 벽을 꿰뚫고 디케인의 옆을 스친 것이다.

“……!”

경악을 감추지 못하는 디케인과 달리 도진은 무표정하게 다음 마법을 준비했다.

준비는 짧았고, 발동은 더 짧았다.

‘공격이든 방어든 만능인 건 맞지만, 그게 무적이란 뜻은 아니지.’

출처조차 밝혀진 적이 없는 디케인의 흑염은 분명 무서운 능력이다.

하지만 약점은 존재했다.

흑염으로 이루어지는 방어는 흑염의 공격력으로 적의 공격을 상쇄하는 것이다.

흑염이 워낙 공격력이 뛰어난 능력이라 무적처럼 느껴왔겠지만, 도진의 공격력은 그걸 상회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거기다 방어가 강제되는 상황이 오면 공격으로 전환하질 못했었지.’

디케인은 도진을 안다고 자부했다. 도진은 자신을 모른다고 생각했고.

하지만 도진은 디케인을 현재의 디케인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금보다 발전한 형태로 능력을 써 대던 미래의 디케인까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 잠깐! 이런 게 어딨어! NPC 좀 죽였다고 이러는 게 어딨냐고!”

도진의 일방적인 공격을 막는 것만으로도 급급한 상황에, 디케인은 다급히 외쳤다.

“잠깐! 잠깐만 기다리라고, 개새끼야! 지금 죽으면 캐릭터 삭제된다고 적힌 거 몰라? 사람을 이렇게 죽여도 되는 거냐고!”

악을 쓰든 말든, 도진은 계속해서 마법을 썼다.

도진도 HP는 계속해서 줄었지만, 미처 방어하지 못한 마법에 얻어맞아 줄어드는 디케인의 HP가 훨씬 더 많았다.

결국 화력과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디케인의 복부가 뻥 뚫리는 시점이 왔다.

“…자, 잠깐만. 제발 멈춰 보라고! 내 말을 좀 들으란 말이야!”

무릎 꿇고 악을 쓰는 디케인에게 도진이 말했다.

“너도 안 들었잖아.”

살려 달라고 빌던 사람들의 목소리 말이야.

“그게 무슨-”

디케인은 생략된 말을 읽지 못한 채 도진에게 마무리당했다.

“으아아아아!”

그런데 죽었음에도 목소리가 나왔다.

무슨 일이지? 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흐릿해진 세상 속에 자신이 있었다.

거기다 이미 죽은 다른 자들까지 보였다.

“이 개새끼! 너 때문에 이렇게 됐잖아!”

“지랄하지 마! 좋다고 와서는 제발 끼워 달라고 싹싹 빈 게 누군데!”

“왜 로그아웃이 안 되냐고, 시발! 내보내 달라고!”

유령 같은 상태로 패닉에 빠져 있는 모습.

이들이 있는 장소는 중간지점이었다.

로스타니아와 바깥세상의 경계.

그들이 갇혀 있는 경계로, 퀘스트 메시지가 도진을 인도했다.

별벼림 검을 뽑음으로써 도진은 그들이 갇혀 있는 틈새 차원으로 진입했다.

도진은 퀘스트 메시지에 따라 여섯 명의 영혼을 별벼림 검으로 처형했다.

“살려 줘! 시발, 고소할 거야, 고소한다고!”

“이런 게 어딨어! 이거 사이버 살인이야!”

도진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별빛을 휘둘렀다.

이번에도 마지막 순서는 디케인이었다.

꽥꽥 소리를 지르는 디케인에게, 도진이 웃어 주며 말했다.

“왜 그렇게 심각해? 게임은 게임으로 봐야지. 어차피 겨우 게임일 뿐이잖아?”

별빛이 떨어졌다.

마지막 영혼이 경계 밖으로 추방됐다.

그 모든 과정을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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