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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야.】
도진의 대답을 듣자마자 빛은 분해되기 시작했다.
조각조각 분해된 빛 입자는 도진 위쪽으로 올라가, 공간의 왜곡을 만들었다.
벨라의 빛이 잠시 동안 도진에게 닿고, 또 집중될 수 있게끔 길을 생성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길을 통해 아득한 거리와 공간을 넘어 벨라의 빛이 도진에게 쏟아졌다.
[새로운 퀘스트가 생성되고 있습니다.]
* * *
제3자의 조력으로 벨라와 접촉하는 데 성공했으나 도진이 넘어야 할 산은 하나가 더 남아 있었다.
[퀘스트]
별벼림 검
등급: 운명
[벨라가 자신의 사도를 위해 별빛으로 벼린 검은 조각난 형태로 세계 곳곳에 떨어졌다.
별의 사도로서 휘두를 검의 조각을 찾아 완성해야 한다.]
목표: 별벼림 검 찾기
보상: 별벼림 검
퀘스트 아이템 격인 ‘별벼림 검’을 찾아야 했다.
‘다이렉트로 힘을 꽂아 줄 수는 없는 상황이니 이런 식으로 우회한 거겠지.’
세계율의 철퇴를 피하기 위한 편법일 터였다.
도진은 곧바로 별벼림 검의 조각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찾아야 할 조각은 총 세 개였고, 각각의 위치는 퀘스트 창에 표기되어 있었다.
각 조각을 얻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난관을 도진이 극복하는 사이에도 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장기적으로 LOST 유저는 두 진영으로 갈라져 싸우게 될 겁니다. 진영 간 PvP가 활성화되어 경쟁 구도를 만드는 게 LOST의 다음 페이즈인 거죠. 그리고 그 시작이 우리 길드가 될 겁니다. 최정예로 구성된 우리 길드는 장차 한 진영의 정점에 군림하는 존재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벵가는 학살단의 나팔수 역할을 했다.
히틀러 옆에 붙어 있던 괴벨스처럼 말이다.
그의 홍보에 이끌려 신생 길드 ‘멸망’에 가입하려는 유저가 늘어났다.
하지만 멸망 길드는 마구잡이로 길드원을 받지 않았다.
[“저, 아니 길드 마스터께선 멸망 길드의 총원을 11인으로 정하셨습니다. 새로운 진영의 시발점이 되고자 하는 다른 분들은 차후 멸망 길드의 산하 조직 형태로 거대한 길드 연합을 구성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니, 그때까지 힘을 기르며…….”]
힘없는 자들을 학살해 자신들의 살을 찌우는 놈들이 세운 청사진치고는 더럽게 거창했다.
-누가 저 중2병 걸린 병신들 좀 청소하면 안 되냐?
-어쩌겠음. 저놈들이 언제 어디서 사고 칠지 그걸 알 수가 없는데.
-쟤들 잡겠다고 눈에 불 켜고 돌아다니는 방송인만 한 트럭이긴 한데… 마주치질 못하고 있는 게 현재 상황임.
-근데 솔직히 지금 상황 나만 재밌음? 몇 명 되지도 않는 애들이 날뛰는데 이 정도로 난리가 나는데, 진짜로 진영 싸움 유도되면 개꿀잼일 듯?
└재미는 시발; 난 고아원 습격 영상 보고 바로 토했음.
-솔직히 선비질 좀 그만하자. 게임은 게임으로 좀 보자고. 어차피 그냥 데이터 쪼가리 NPC 좀 죽이는 건데 뭐 어때?
└진짜… LOST NPC가 그냥 데이터 쪼가리로 느껴지는 정도면 감정이 얼마나 메마른 거냐?
쏟아지는 비난도 늘어났지만, 동시에 자신도 멸망 길드 편에 서서 ‘놀고’ 싶다는 사람도 늘어났다.
정말 편이 갈라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하나의 사건이 추가로 일어났다.
[“드디어 찾았다, 이 개새끼들.”]
학살범을 잡겠다고 모인 스트리머 그룹이 학살 현장을 찾아낸 것.
철저한 경로 분석과 운이 겹쳐져 얻은 절호의 기회였다.
스트리머 그룹은 12인이었다.
반면 학살범은 길드원으로 합류한 인원까지 더해도 5인이었다.
-어차피 한 번 죽인다고 멈출 놈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속은 시원하겠네.
-본격적으로 개싸움 들어가는 거 같아서 재밌네~
-그래도 스트리머들이 광대처럼 굴어서 그렇지 쉽게 이기겠지?
-당연하지 ㅋㅋ 쪽수가 2배가 넘는데. 게다가 붓는 돈이 일반인이랑은 차원이 다름, 쟤들은.
오랜만에 벌어진 팝콘 파티에, 수많은 시청자가 몰려들었다.
한데 그 수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는 일이 벌어졌다.
5명과 12명의 대결이 5명의 승리로 마무리된 것이다.
심지어 싸움이 격렬하지도 않았다.
잠깐 동안 학살범들이 밀리는 듯하다가 최초의 학살범인 검은 로브의 검사가 나서자 순식간에 정리가 됐다.
-저거 뭐냐?
-미친; 저런 새끼가 왜 지금까지 유명해지질 않은 거지?
검에 검은색 불꽃을 둘러 휘두르는 참격에 스트리머들은 말 그대로 학살을 당했다.
-허… 찾기도 힘든 놈들인데 찾아도 저런 전투력이면 사실상 막을 방도가 없는 거잖아?
통쾌한 단죄의 장면을 원했던 시청자들은 크게 실망했다.
반면 벌써부터 학살범의 팬이 된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전투력에 열광했다.
-캬~ 씹선비 놈들 시무룩해하는 거 보니까 먹던 치킨 맛이 아주 세 배로 맛있어지네 ㅋㅋ
-아 ㅋㅋ 그래서 니들이 뭘 할 수 있는데? 앉아서 징징대는 거 말고 뭘 할 수 있냐고!
-정의의 사도 빙의해서 며칠 동안 도네 쪽쪽 빨던 새끼들 목이 뎅겅~ 뎅겅~ 뎅겅~ 하고 날아다니는 거 보니까 속이 뻥 뚫린다.
-ㅇㅇ 어차피 방송적으로 이득 보고 돈 빨아먹으려는 속내가 훤히 보이는데 뭐 착한 적은 혼자 다 하시고들 ㅋㅋ
비틀린 자들은 학살범의 힘에 매료되었다.
잠자코 있던 그들은 그게 마치 자신의 힘이라도 되는 양 자신감을 얻어 날뛰기 시작했다.
-뭔 게임 분위기가 하루아침에 이렇게 됐냐? 내가 알던 LOST는 이런 게임이 아니었는데…….
이런 혼란스런 상황의 끝자락에서, 도진은 어느 던전의 보스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별벼림 칼날을 획득했습니다.]
퀘스트가 지정한 목표를 처치한 것이었고, 별벼림 검을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조각을 얻는 순간이었다.
반투명하게 빛나는 별빛 칼날이 도진에게 흡수되었다.
검신, 가드, 자루로 나뉘었던 조각들이 도진 안에서 하나가 되어 손끝에서 피어난다.
[별빛으로 벼린 검이 온전한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특수 사용 아이템 ‘별벼림 검’을 획득했습니다.]
동시에 퀘스트가 갱신됐다.
[퀘스트]
단죄의 별빛
등급: 운명
[멸망의 편에 선 자들을 몰아내지 못하면 혼란은 계속해서 커질 것이다.
그들을 이 세계에서 영원히 추방해야 한다.]
목표: 라베스의 편에 선 리제니안 추방
보상: ???
도진은 검을 쥐었고, 검은 도진 안으로 흡수됐다.
[‘별벼림 검’을 소유함에 따라 특수 페널티가 적용됩니다.]
[‘별벼림 검’을 소유한 상태로 사망할 경우 당신의 영혼은 영원히 이 세계를 떠날 것입니다.]
차가운 청색 창으로 뜬 경고성 메시지.
도진은 그 메시지를 바로 닫았다.
어차피 알고 시작한 일.
글자 하나하나에 흔들려서 좋을 게 없다.
‘라베스한테 넘어간 놈들 위치까지 알려 주는 건가.’
중요한 건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것.
도진은 반짝이는 여섯 개의 붉은 점을 향해 뻗은 파란 선만을 바라봤다.
* * *
검을 얻은 도진이 전투에 앞서 쓴 시간은 약 세 시간이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그간 있었던 일을 체크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도진은 아주 큰 단서를 얻었다.
‘흑염?’
그건 바로 학살범이 쓴 능력이었다.
검에 검은 화염을 감아 싸우는 전투 방식은 도진이 아는 누군가와 아예 동일했다.
‘저거 디케인이잖아.’
랭킹 시스템이 업데이트될 때까지 아예 존재 자체가 드러난 적이 없는 유저 디케인.
‘랭킹 시스템이 도입될 때 저놈이 3위였었나?’
그것도 잠깐 등장했다가 뭔 수를 썼는지 어느 날 랭킹 페이지에서 이름이 사라졌었다.
나중엔 랭킹 페이지에서 자기 이름을 가리거나 숨어 버리는 랭커들이 꽤 나왔지만, 그 최초가 된 건 디케인이었다.
‘디케인… 랭킹이고 뭐고 오직 자신의 이득만 따지는 놈이었지.’
저놈이 신경 쓰는 건 단 하나. 본인의 스펙 상승뿐이었다.
그걸 위해서라면 월드 이벤트에서 유저들 뒤통수를 후리는 것도 서슴지 않았던 놈이다.
‘그런 놈이 이렇게 일을 크게 벌여서 어그로를 끈 것도 모자라서 기껏 얻은 퀘스트를 공유했다?’
절대 그럴 놈이 아닌데 그런 일을 했다는 건, 저게 저놈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도진은 그게 아마도 ‘다단계’ 방식의 보상이 아닐까 짐작했다.
‘뭐, 어차피 지금 시점에 처리하면 아무 문제도 없지.’
잡초든 유해 조수든 퍼져서 문제가 될 여지조차 주지 않고 박멸하면 그만이다.
모든 준비를 마친 도진은 다음 학살 장소로 이동하는 놈들을 앞질러 자리를 잡았다.
그런 뒤 방송을 켰다.
다른 방송인들처럼 채널의 성장을 위해, 어그로를 끌기 위해, 그런 마음으로 켠 방송이 아니었다.
‘이번 사건은 모두에게 본보기가 돼야 해.’
도진이 지금 이 순간 방송을 켠 것은 유저가 멸망의 편에 섰을 때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스스로가 단두대가 되어, 세계의 멸망에 일조하려 하는 플레이어의 목을 치는 장면을 공유함으로써 앞으로의 분열을 미연에 방지한다.
‘온다.’
다가오는 붉은 점들을 보며, 도진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 * *
“와… 진짜 경험치가 말이 안 되는데.”
새롭게 합류한 길드원의 감탄에 벵가가 하하- 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죠? 진짜 저도 처음엔 깜짝 놀랐다니까요. 진짜 운 좋으신 겁니다. 길드 후원금 절대 아까운 게 아니에요.”
“정말 그렇네요.”
디케인과 벵가는 길드원을 받을 때마다 고액의 후원금을 받고 있었다.
그 금액은 한화로 따지면 5억 원이 조금 안 되는 수준.
“겨우 5억에 이 정도 히든 퀘스트면 싸게 먹힌 거네요.”
“그럼요, 그럼요.”
고개를 끄덕이며 벵가는 아쉬운 숨을 삼켰다.
두당 걷는 돈도 돈이고, 이대로 세력을 불리는 면에 있어서도 길드원을 팍팍 늘리고 싶은데.
퀘스트를 공유하는 방식이 학살을 통해 디케인에게 힘이 쌓이면, 그 힘으로 능력을 나눠 주는 형태라서 인원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계속 머릿수를 늘려 가면 더 많이 죽일 수 있을 거고, 그러다 보면 팍팍 늘어나는 때가 오겠지. 이젠 그저 그런 방송인으로 살던 시절은 안녕이다, 이거야.’
부푼 꿈을 꾸며, 벵가가 디케인에게 다가갔다.
“디케인 님, 이제 슬슬 다음 목표에 가까워진 거 같은데 방송 켜도 되지 않겠습니까?”
디케인 일행은 지금도 학살 장면을 꾸준히 방송하고 있었다.
잔혹한 모습을 보일수록 팬덤도 커지고, 지지 세력도 커지기 때문이다.
반발도 크지만, 그런 건 애초에 신경도 안 쓰는 게 여기 모인 인간들이었다.
“어차피 지금부터 방송을 켠다고 해도 이 근처에 있는 놈들도 없을 거고, 만에 하나 있어서 와 봐야 처리해 버리면 그만인 일이잖습니까.”
디케인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럼 바로 방송 켜겠습니다.”
자신을 왕처럼 떠받드는 벵가와 다른 자들을 보며 디케인은 저열한 우월감을 느꼈다.
그러면서 병자들이 모여 산다는 마을이 있는 방향을 응시했다.
오늘은 얼마나 힘이 쌓일까. 하나쯤은 더 추종자를 늘릴 만큼 쌓였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전방에서 번쩍- 하고 섬광이 일었다.
‘뭐-’
뭐지? 하는 의문을 다 떠올리기도 전에, 옆에서 달리던 신입 길드원의 머리가 터졌다.
방금 전까지 돈이 아깝지 않다며 떠들던 자였다.
동시에, 주변이 붉은색과 푸른색이 물과 기름처럼 얽히고설킨 장막이 돔 형태로 씌워졌다.
[퀘스트 존이 형성되었습니다.]
디케인과 그 일행들의 눈앞에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가증스러운 벨라의 노예를 처단하라는 퀘스트였다.
“자, 잠깐! 이게 뭐야? 영원히 추방된다는 게 뭔 개소리냐고!”
그들 앞에 뜬 퀘스트 창에는 도진과 똑같은 페널티가 고지되어 있었다.
그걸 보고 당황해 우왕좌왕하든 말든 상황은 계속해서 진행됐다.
“머저리처럼 징징대지 말고 준비나 해!”
디케인이 소리쳤다.
저 멀리서 황금색 마력 덩어리가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