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02화 (202/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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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 주신 물건은 잘 받아서 확인했습니다.”]

수정구를 통해 얼굴 없는 사내가 알버트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제국 안에 이런 물건이 돌아다니는 걸 놓치다니…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군요.”]

얼굴은 물론이고, 이름, 나이, 성별 등 대외적으로 어떤 정보도 나돌지 않는 인물, 제국 안보부 장관이었다.

알버트는 그저 고개만 살짝 끄덕여 보였다.

[“이번 일과 관련된 자들의 이름이 오른 장부를 가지고 계시다 하셨지요?”]

이번에도 알버트는 고개만 끄덕였다.

장관은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원하시는 게 있으시다면 듣겠습니다.”]

엘토마기아가 자칫 잘못하면 제국이 발칵 뒤집힐 만한 사건을 미리 막았다.

이것만으로도 상대가 원한다면 상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할 일이었다.

하물며 이번 사건과 연관된 자들이 적힌 명부까지 쥐고 있으니, 협상에서 저자세를 취해야 하는 건 장관 쪽이었다.

다른 곳이었다면 안보부가 떴다 하면 바로 협조적으로 나오겠지만, 상대는 안보부는커녕 황실도 두려워하지 않는 집단이니 더 신중해야 했다.

“엘토마기아는 이번 일로 대가를 요구할 생각이 없소.”

[“제 입장에서는… 그런 말이 더 무섭게 들리는군요.”]

알버트가 피식 웃었다.

“겁먹지 마시오. 정말이니. 장부는 그쪽 아이에게 쥐여서 돌려보낼 테니, 알아서 잘 처리하리라 믿겠소.”

[“저희 쪽… 아이요?”]

“정식 요원은 아니고 정보원인 모양이오. 이번 일에 휘말려서 쫓겨 다니면서도 사건 해결에 큰 공을 세운 모양이던데… 장관은 운이 좋군. 이런 인재를 다 얻으셨으니 말이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장관은 알버트의 말에 담긴 뜻을 읽었다.

겨우 정보원 따위를 알버트 정도 되는 인물이 신경 쓰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그건 다음 문제였다.

[“감사드릴 일이 더 있는 걸 모르고 있었군요. 제국을 위해 일할 재능 있는 자는 많을수록 좋은 법이지요.”]

데네브의 출세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외부 집단의 입김이 있었던 만큼 감시와 견제는 받겠지만, 그 집단이 엘토마기아 정도가 되어 버리면 실보다는 득이 큰 게 당연했다.

“사람도 장부도 1시간 안에 제도에 도착할 테니, 알아서 수령해 가시오.”

[“배려 감사드립니다.”]

수정구의 빛이 사라졌다.

알버트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곳엔 데네브가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숨을 쉬고는 있는 건가 싶을 만큼 긴장한 그녀는 식은땀조차 흘리지 못했다.

“들은 바와 같다.”

알버트의 말에, 데네브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예!”

“언제나 입을 조심하거라. 본인이 밝히기 전에, 그분과 관련된 이야기가 도는 걸 원치 않는다.”

“예!”

“너의 달라질 삶이 누구 덕에 얻게 된 것인지 평생 잊지 않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

“물론입니다!”

“장부는 이미 쥐고 있고. 내 장관에게 하나 더 보낼 게 있어 아래에 두었으니, 갈 때 챙겨 가도록.”

예! 하고 반사적으로 대답한 데네브였으나 그 대답은 상대에게 닿지 않았다.

어느새 그녀는 방 밖으로 쫓겨나 있었다.

데네브는 그 사실이 너무나 감사했다.

쫓겨날 수 있음이 이렇게 기쁜 일이었다니.

데네브는 다른 마법사의 안내에 따라 장거리 공간이동을 하러 갔다.

“웁웁!”

그곳엔 가죽 구속구로 ‘포장’된 인간 하나가 있었다.

“……!”

“가져가셔야 할 물건입니다.”

“저, 저게 뭔데요?”

“쿨라 시장입니다.”

쿨라 시장은 도진의 예상대로 비밀 장부에 이름을 당당히 올려놓고 있었다.

예전부터 꾸준히 밀수 조직에게 상납을 받으며 뒤를 봐주던 인물이었던 것.

그는 가족들과 야반도주를 감행하다가 알버트가 보낸 마법사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여기로 끌려온 상태였다.

“그럼 저건요……?”

데네브는 한쪽에 놓여 있는 다양한 크기의 상자들을 가리켰다.

“이자의 가족들입니다.”

“…살아 있긴 한 거죠?”

“물론이죠. 어차피 다 죽겠지만요.”

대충 대답한 마법사가 손짓했다.

이제 가라는 뜻이었다.

“저것들은 바로 보내드릴 겁니다. 그럼 편안한 이동 되시길.”

쿨라에서 데네브가 사라졌다.

제도에 있는 엘토마기아 마탑에 도착한 그녀는 이제부터 자신의 직장 상사가 될 자들과 조우했다.

그리고 제국에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도진의 작은 날갯짓이 만든 아주 차가운 피바람이.

* * *

‘멸망교단’이란 키워드는 끝끝내 세계율의 빛에 가로막혀 전달되지 않았다.

그러나 대량 살상을 위해 만들어진 폭탄으로 제국에게 ‘제국을 노리는 적성집단’의 존재를 인식시키는 것까지는 이뤘다.

이런 이유로, 밀수꾼이 지니고 있던 비밀 장부는 단순히 적힌 자들의 목숨만 앗아가는 데 그치지 않았다.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안보부 산하 기관들이 총동원되어 제국을 샅샅이 훑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한 명이 잡히면 그 한 명의 뇌를 헤집는 수준으로 심문하여 드러나지 않은 자들을 잡아들이는 식.

‘잡혀 죽는 놈들 중엔 멸망교단이랑 얽힌 놈들도 있겠지.’

금제 때문에 그쪽으로는 입을 아예 못 연다 해도, 입 다물고 죽은 놈들 중에 멸망교단에 협력 중이던 놈이 섞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일이었다.

도진은 평소대로 게임을 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일어나는 주변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체크했다.

어느 도시든 경계가 강화됐고, 제복을 입은 자들이 자주 눈에 띄었고, 고급 저택가 쪽으로 통하는 길이 통제되는 일이 잦았다.

“요즘 몬스터 말고 사람 찾아오라는 현상금 퀘스트가 엄청 는 거 같네?”

“그러게. 여기 남작 부인 잡아 오라는 의뢰도 있어.”

모험가 길드 의뢰 게시판에는 몬스터 사냥만큼이나 사람 사냥 퀘스트가 늘었다.

전체적으로, 알테라 제국의 분위기가 뒤숭숭한 기간이 이어졌다.

NPC들 사정과는 멀리 떨어져서 지내는 유저가 피부로 느낄 정도로.

‘한동안 혼란스럽더라도 제대로 수술하는 게 나아.’

도진의 생각은 정확했다.

도진이 만든 철의 냄새로 가득한 바람은 분명하게 제국의 체질을 개선해 나갔다.

흐르는 피의 양은 어마어마해도, 그것들은 다 썩은 피였다. 계속해서 제국을 썩게 했을 썩은 피를 미리 흘려보낼 기회를 얻은 것이다.

이 모든 게 도진 덕이었다.

* * *

“…어이가 없군.”

제국과 로스타니아가 도진에게 덕을 봤다면, 진짜 말 그대로 피만 본 곳도 있었다.

바로 멸망교단. 자신들의 영원과 세계의 끝을 동시에 바라는 자들이 그들이었다.

“네파스 그 머저리가… 감시 안 하고 뭐 하고 있던 거야?”

“감시는 하고 있었다. 감시자들을 죽이거나 납치해서 뛰쳐나간 게 문제였지. 그렇다고 우리가 직접 감시하기엔 그것 자체가 낭비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에 목소리만이 오고 간다.

“그래서 이제 어쩔 건가요? 지금 제국 내부 상황이 어떤지 알기나 해요? 우리 수족이 무더기로 잘려 나가고 있다고요. 수십 년을 넘게 공들여 심어 놓았던 수족들이!”

목소리만 들리고 있음에도 그들이 느끼는 짜증과 분노는 아주 잘 전달됐다.

“하필이면 여섯 성자 중에 저능아 새끼가 하나 섞여서…….”

“말을 삼가도록. 우리 여섯 성자는 위대한 별께서 직접 선택하셨다. 아무리 모자라 보인다 해도 그도 우리의 형제임을 잊지 마라.”

“…지금 자기 입으로 모자라다고 해 놓고 뭐라는 거야?”

“…….”

말 없는 공간에 각기 다른 한숨이 지나가고.

“분명 네파스의 행동은 성급했고 멍청했어요. 하지만 어떻게 보면 아주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의 감 말이에요.”

“무슨 소리지?”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잖아요? 네파스는. 맨날 입에 달고 사는 짐승인지 가축인지의 감이 이번에는 맞은 거라고요.”

“…….”

“최근 우리의 위업을 훼방 놓은 건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놈이었어요. 벨라의 더러운 용병 말이에요.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괜히 골치 아픈 게 한 덩어리 더 생길 판인 거 같은데… 저만 그렇게 느끼고 있나요?”

“…네파스의 말이 맞다면 분명 그놈에게서 벨라의 빛이 일어났다고 했었지.”

“손을… 써야 하지 않겠어요?”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마치 계산을 하는 듯한 숨소리.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다. 교단은 물론 우리가 전면에 나서는 건… 그간 견뎌 온 시간을 전부 수포로 돌릴 가능성이 높아.”

“교단이 나서지 않고 견제할 방법을 찾으면 되죠. 벨라의 용병 놈이든, 가증스런 푸른 별이든.”

“그런 방법이 있나?”

새까만 공간에 눈웃음치는 눈동자가 나타났다.

“어쩌면.”

* * *

제국이, 멸망교단이 각자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행동하고 있을 때.

도진이 사는 현실도 시끌벅적하긴 마찬가지였다.

제국 폭탄 테러 미수 사건이라 명명된 이번 사건은 여러 개의 영상으로 분할되어 도진 채널에 업로드되었고.

-도진 채널에 새 영상 올라왔다!

-이번엔 하이라이트 영상이네.

-시즌 6,226,535,664호 하이라이트 등판!

그때마다 조회 수는 펑펑 터졌다.

구독자 상승 곡선도 함께 펑펑 축포를 날려 댔고.

결국 도진의 구독자는 3,000만을 돌파하고서도 순항을 이어 나갔다.

워낙 파격적인 성장세인 데다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되다 보니 이젠 뉴스는 물론이고 정치판에서도 도진 얼굴이 등장할 지경이었다.

「요즘 한국이 다시 게임 강국이란 소리를 듣고 있어요. 여기 이 친구가 이번에 순식간에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얼마나 큰 경제적 효과를 불러왔는지 아십니까? 이런 게 단발성으로 끝나면 안 된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공격적인 투자를 해서 미리미리 한국형 K-…….」

물론 해당 발언은 신나게 욕만 먹었다.

욕을 먹는다고 뒷돈 나올 사업을 진행 안 할 그들이 아니겠지만.

어찌 됐든, 전방위적으로 도진의 이름과 얼굴이 오르내리고, 모든 지표가 긍정적 신호를 쏟아내고 있으니 관련자들의 얼굴은 밝았다.

눈이 판다처럼 검게 물든 사람들이 헤실헤실 웃는 광경이 썩 보기 좋은 건 아니었으나 우울해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도진 씨, 그럼 이 일은 이렇게 진행할게요.”

“넵. 알아서 해 주세요.”

오랜만에 천지현을 따라 회사에 놀러 나온 도진은 이왕 나온 김에 해야 할 일도 처리하고, 테라스가 예쁜 카페도 들러 음료도 마셨다.

오랜만에 당분이 잔뜩 들어간 음료를 쪼오옥 하고 빨아들이며, 도진은 세상 참 평화롭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 찜찜하단 말이야.’

찜찜함의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시간이 꽤 흐르고 있음에도 멸망교단과 관련된 일이 뭐 하나 걸려드는 게 없다는 게 도진의 심기를 계속 건드리고 있었다.

미래 정보를 이용해서 추적하려 해도, 놈들이 진짜 제대로 사리기로 했는지 꼬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

‘절대 얌전히 있을 놈들은 아니지만, 이렇게 대놓고 숨어 버리면 또 추적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단 말이지.’

이러면 당분간은 그쪽에 시간이든 자원이든 쓰지 말고 다른 쪽을 파보는 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옆 테이블에서 이런 소리가 들린 것은.

「인기 게임 LOST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퀘스트가 있습니다. 해당 퀘스트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 유저는 NPC를 죽여도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퀘스트가 있다, 라고 주장했는데요. 심지어 NPC가 선량하고 무고하거나, 어리고 약할수록 더 큰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고 전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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