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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파스는 멸망교단 내에서 가장 강력한 육체 능력을 지닌 자였다.
그리고 동시에 가장 급하고 포악한 성정을 지녔다.
그런 네파스에게 있어 멸망교단의 위업이 방해받는 상황에 잠자코 있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대놓고 깽판 놓으러 나가겠다고 날뛰었다가는 붙잡힐 게 뻔할 거 같아서 아주 조신한 척을 했다.
그러고 나서 눈치를 보다가… 짠!
‘별님의 영광을 내 손으로 이루러 나왔지.’
그런데 이게 웬걸.
혹시나 했던 행운이 찾아왔다.
멸망교단이 열심히 준비하던 일을 수포로 돌려 버린 마법사로 보이는 놈이 떡하니 나타난 것이다.
‘밖으로 나온 후로 계속 자두길 잘했어.’
자면서도 계속 열량을 보충했다.
교단에서 끌고 나온 사제놈들까지 먹어 버린 모양이라 조금 거시기하긴 한데.
‘어쩔 수 없지. 별님 곁으로 갔을 거야.’
네파스는 좁은 공간에 함께 있다가 한 명씩 차례대로 자신에게 먹혔을 다른 사제들의 명복을 빌어주며, 목을 이리저리 꺾었다.
“너 맞지? 아니라고 해도 소용없어. 어차피 죽일 거니까.”
방금 전과 달리 약간이나마 광기가 가라앉은 듯이 보이는 말투였다.
하지만 도진은 방심하지 않았다.
저놈이 저럴 때는 터지기 직전이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하필이면 네파스라니.’
하긴 멸망교단에서도 가장 막 나가는 저놈이니까 이런 때, 이런 데서 조우한 거겠지.
‘정면 승부로는 승산이 아예 없다고 봐야 돼.’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그걸 고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지금은 배수의 진을 치는 수 말고는 고를 수 있는 대안이 없었다.
‘저 안에 뭐가 있든 저런 놈이 직접 행차했을 정도면 절대 그냥 방치해선 안 되는 물건이겠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여기서 막아야 한다.
도진은 네파스와 관련되어 떠오르는 부정적 생각들을 전부 쳐냈다.
지금 상황을 타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만 떠올려도 머릿속에 자리가 부족하다.
‘여섯 성자는 라베스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네임드들.’
이건 곧 라베스의 힘이 여섯 성자의 힘이란 말이다.
재앙이 닥쳐올수록 더욱 강력해질 라베스의 빛은, 달리 말하면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약한 순간이라는 말도 된다.
‘거기다 아무리 양심이 없어도 퀘스트 보정을 조금은 넣었겠지. 물론 저 괴물을 상대할 희망으로 이 정도는 너무 미미하지만…….’
도진은 이미 다른 희망의 불씨를 피워 놓은 상태였다.
네파스를 보자마자 테레사와 천지현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쿨라 외곽. 찍은 좌표로 모일 수 있는 공대원 최대한 빨리 집합. 최우선 목표는 마차 안에 있는 물건 탈취. 가능하면 방송 통해서 현장 상황 파악 후에 진입할 것.」
갈란테 레이드 이후에도 단톡방은 건재했다.
강력한 적을 함께 공략한 공격대는 여전히 그곳에 남아 일종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테레사가 올리는 글 한 줄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와 줄 것이었다.
「현장 상황 전달해야 해서 방송 켤 거야. 알아서 세팅 좀 해 줘.」
천지현에게는 생방송에 대한 통보였다.
켤 때마다 몰리는 사람이 사람인지라 이렇게라도 통보를 해야 했다.
‘장거리 공간이동이 가능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도 쿨라를 거쳐서 여길 찾아오는 데까지는 적어도 15분에서 20분은 걸릴 거야.’
그리고 지금이다.
네파스를 보자마자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대처를 깔아 놓은 도진은 이를 악물었다.
“그럼…….”
네파스의 입꼬리가 찢어질 듯 올라갔다.
‘죽지 않고 버틴다.’
쾅-
네파스의 발구름이 충격파를 만들었다.
격렬한 발구름에서 시작된 공격은 평범한 주먹 지르기였다.
자세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형편없는 공격.
“큽!”
그러나 압도적인 힘이 받쳐 주면, 자세 같은 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콰드득!
대비하고 있었음에도 반응하기 빠듯한 속도감이다.
【진!】
위기를 감지한 아네모네가 멋대로 튀어나오려 했다.
도진은 아네모네를 강제로 역소환했다.
‘넌 나중에 해야 할 일이 있어!’
【그런 게 어디 있어! 너 또-】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시작된 정신없는 연속 공격이 아네모네의 말을 지웠다.
“이상하네? 마법사라며.”
숨은커녕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주변을 초토화시키며, 네파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의 공격을 곧잘 피하는 도진이 신기하다는 듯이.
“그럼 이건 어때?”
네파스가 손바닥을 펼쳤다.
파악 하고 네파스의 손이 터져나가며 그 안에서 괴물의 손이 튀어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나치게 비대한 손을 지탱하는 게 왜소한 몸뚱이여서, 속도가 그나마 줄었다는 것이었다.
《화염구》
도진은 회피기동에 더해 「화염구」를 날렸다.
“하하! 겨우 이딴 불똥으로 뭘 하겠다는 거야?”
네파스는 피할 생각도 않고 그대로 마법을 받아 냈다.
그런 자신감은 그가 지닌 특성에 기인했다.
‘역시 재생력 하난 더럽게 강하군.’
불에 그슬리는 듯하다가 순식간에 아물어 버리는 괴물의 살점.
그건 재생이라기보다는 되감기에 가깝게 보였다.
“넌 곱게 죽여 줄 수 없겠어. 일단 다리부터 뜯어 놓고, 손가락 마디마디부터 조금씩 씹어 먹어야지!”
네파스는 마치 놀이를 하듯 도진을 밀어붙였다.
도진은 죽기 살기로 피했지만, 네파스는 그저 쥐새끼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처럼, 먹잇감을 괴롭히는 범고래처럼 도진을 괴롭혔다.
“아, 슬슬 지겨운데? 한 손만 써서 그런가?”
네파스의 등에서 다관절 가시 여러 개가 돋아났다.
하나하나의 크기가 거의 5~6미터는 되어 보이는 굵은 가시였다.
너덜너덜해진 네파스의 육신은 커다란 가시가 움직이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오른발, 오른발, 오른발!”
네파스의 집요한 공격이 다시 시작됐다.
도진이 할 수 있는 건 이리저리 구르며 공격을 피하고, 찰나의 틈을 노려 마법 한두 번 쓰는 게 다였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네파스가 놀이 비슷한 마음으로 움직이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웃차!”
귀찮아진 네파스는 발을 굴렀다.
그 순간 사람의 발이 터져 나가며 괴물의 발이 튀어나온다.
쿠웅- 쩌저적.
바닥이 형편없이 갈라졌다.
자연히 도진의 자세가 살짝 무너졌다.
“오른-”
그래도 어떻게든 피해 보려는데.
“손!”
다관절 가시 하나가 궤도를 급격하게 틀었다.
파악!
“큭!”
도진의 오른팔이 날아갔다.
“하핫!”
공중에 뜬 도진의 팔을 네파스가 입으로 낚아채더니 그대로 우걱우걱 씹어 삼켰다.
작은 입이 뱀의 아가리처럼 벌어지며 도진의 팔을 빠르게 삼켰다.
“오른발부터 자를 줄 알았어?”
사지가 떨어져 나간 충격이 도진의 몸을 경직시켰다.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에서 일어나는 시스템적인 마비.
어느새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네파스가 도진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와, 이거 진짜 튼튼하네? 마법사 맞아?”
오른팔이 날아가며 마법회로가 함께 날아갔다.
그나마 각종 특성에 더해 「염동체술」을 위해 새긴 「염동강화술식」이 돌아가고 있어 버티고 있다 해도, 네파스가 조금만 더 힘을 쓰면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건 시간문제였다.
“커헉-”
한참 도진을 가지고 놀던 네파스는 도진을 바닥에 짓눌렀다.
“어때? 위대한 별에게 반기를 든 소감이?”
대답을 듣고 싶으면 가슴을 작작 눌러야지. 숨도 못 쉬겠다, 이 새끼야.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젠장, 아직도 5분도 안 지났다고?’
체감상 1시간도 넘게 지난 거 같은데. 실제로 흐른 시간은 겨우 3분을 조금 넘기고 있었다.
“큭……!”
“그래. 잘 버티네. 그럼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재밌게 놀아 볼까? 일단 가슴부터 열고 시작하자.”
네파스가 손을 들어 보였다.
언제 괴물의 형상을 했었냐는 듯 깨끗한 섬섬옥수였다.
그걸 네파스는 그대로 도진의 가슴을 향해 질렀다.
맨손으로 생살을 파고들어 갈비뼈를 붙잡아 열기 위해서.
‘여기가 한계다-’
이에 도진이 대처를 하려 할 때였다.
【……!】
성난 감정이 확 밀려들며, 아네모네가 튀어 나갔다.
퍼억.
도진 대신 정령의 육신이 우악스런 힘에 찢어졌다.
하지만 아네모네는 통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커다란 입을 벌려 네파스의 머리를 물려 했다.
“뭐야?”
그러나 아네모네의 목숨을 건 기습은 네파스의 손짓 한 번에 무산됐다.
【아악!】
네파스가 아네모네 안에 찔러 넣은 손을 팽창시킨 것이다.
순식간에 흉부와 등이 폭발하듯 터져 나가는 아네모네.
단 1초 상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
도진의 눈에, 아네모네의 피와 정령의 기운이 뒤섞여 낙하하는 장면이 비춰졌다.
주인이 불사하는 만큼 아네모네도 불사한다.
시간이 흐르면, 살아난다.
하지만 죽음에 따르는 고통과 충격은 오롯이 감내해야 한다.
자신이 죽는 건 상관없었다. 하지만 아네모네만큼은 안 된다.
지금까지 가장 위험한 순간에 아네모네를 내보내지 않았던 건 그런 이유였다.
이미 한번 죽음을 겪은 그녀에게 두 번째는 없었으면 했다.
함께 모험을 하는 한 비현실적인 바람이란 걸 알지만, 비현실을 현실로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마법회로가 망가지는 바람에 통제가 약해진 틈을 타 제멋대로 뛰쳐나간 것이다.
“진짜… 거지 같네.”
낮게 깔린 도진의 말끝에 붉은 섬광이 일었다.
《화염포》
도진의 회로는 팔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진리의 서」도, 「적야」도, 「드래곤 하트」도 마법회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부지불식간에 최고 출력으로 시전한 마법이 네파스의 어깨를 태웠다.
네파스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차피 재생될 텐데 뭐, 하고.
그러나 그때 도진의 몸에서 푸른빛이 점멸했다.
“……!”
네파스는 역겨운 힘의 파동에 눈을 부릅떴다.
“벨라……?”
멸망의 별과 창세의 별은 서로가 서로를 견제한다.
그 힘의 균형은 아주 미묘해서, 한쪽이 조금이라도 힘을 소모하면 반대쪽에서 기회를 잡게 된다.
아직 이른 시기, 라베스가 충분한 힘의 우위를 가져가지 못한 때에 움직인 ‘별의 자식’은 그 균형을 잠시나마 어긋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라베스에 밀려 자신의 빛이 약해지는 것을 막기에 급급한 벨라가 아주 잠시 자신의 사도를 굽어살필 여유를 가질 만큼. 딱 그 정도.
《한정회귀》
도진의 모든 게 복구됐다.
《초월》
뒤를 생각하지 않고 유물도 발동했다.
다시 펼친 진리의 서와 초월 상태에서 방출되는 마력이 만든 날개 형상이 뒤섞여 도진을 뒤덮었다.
모든 걸 쏟아부을 준비를 마친 도진의 조용한 시선이 네파스의 어깨에 머물렀다.
‘상처 재생이 느려졌다.’
이쪽이 강해진 건지, 저쪽이 약해진 건지.
아니면 「멸망의 집행자」로 누적된 도트딜이 드디어 재생력과 엇비슷해진 걸지.
‘내가 죽더라도 버티고 버텨서… 끝을 본다.’
무엇이 되었든 도진은 저놈을 살려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어느새 공격대 버스터콜로부터 5분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