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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굴 방향으로 걸어가며 아네모네를 소환한 도진이 입을 열었다.
“아네모네, 몇 명이나 느껴져?”
아네모네가 코끝을 찡긋거렸다.
【열 명 조금 넘게? 고약한 냄새가 섞여서 잘 모르겠어. 이거… 포션 냄새? 썩은 포션 같은 냄새가 나.】
미간을 찌푸리고 말하던 아네모네가 눈을 사납게 떴다.
【저놈들, 우릴 눈치챈 거 같아. 땅굴 안쪽이 소란스러워졌어.】
아네모네는 소란스러워졌다고 표현했지만, 그건 그녀 정도 되어야 느껴질 수준의 변화였다.
범죄자 소굴답게 밀수 조직이 파 놓은 땅굴에는 도적 놈들이 들어 있었고, 놈들은 하나같이 은신 능력을 이용해 기척을 숨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웬 사람 하나랑 짐승 하나가 자신들의 은신처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걸 발견한 그들은 맹독 묻은 단검을 쥐고 동태를 살피는 중이었다.
‘저 새낀 뭐지? 옆에 짐승은 또 뭐고. 망원경으로 좀 살펴봐.’
‘어두워서 정확히는 안 보여. 덩치를 보면 소 같은데…….’
‘이쪽으로 오잖아. 우릴 노리는 건 아니겠지?’
‘그럼 혼자서 왔을 리가 있겠어? 길이라도 잃은 거겠지.’
나가서 정리하고 올까? 아냐,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고. 어차피 조금만 더 가까이 오면 얼마든지 맞출 수 있잖아.
밖으로 새지 않을 정도의 속삭임과 수신호가 은밀히 오갈 때였다.
갑자기 주변이 밝아졌다.
“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인지할 틈도 없이 귀를 찢는 폭음이 그들을 덮쳤다.
콰아앙-
“커억!”
도진이 자신의 사정권 안에 땅굴 입구가 들어오자마자 바로 「화염포」를 쏴 버린 것이었다.
직격으로 인한 즉사는 피했지만, 마법으로 압축된 화염이 해방되며 발생한 폭발만으로도 도적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은신」이 강제로 풀린 놈들은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혼비백산했다.
“젠장, 마법사잖아!”
“당황할 거 없어! 어차피 이 정도 마법이면 빈틈이 상당할 테니. 그것보다 여길 노리려고 했다면 마법사 한 놈만 왔을 리 없어. 그쪽부터 경계해야 돼!”
“마법사 쪽은 내가 맡을-”
그래도 이들은 도적 클래스로서도 범죄자로서도 엘리트였다.
빠르게 상황을 판단하고, 대처를 하려 하는 걸 보면.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경험과 보편적 상식에 근거하여 내린 판단이 모두 엇나갔다는 것이었다.
콰아앙-
충격을 수습하기 무섭게 2차 폭발이 그들을 덮쳤다.
그들은 충격파에 바닥을 뒹굴며 생각했다.
‘역시 다른 놈도 있구나! 마법사가 한둘이 아니야!’ 하고.
그 헛다리 짚는 생각이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불길이 갈라지며 무언가가 나타났다.
“헉-!”
늑대를 닮은 정령, 아네모네였다.
콰직.
땅굴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엎어져 있던 놈 하나가 아네모네의 앞발에 가슴이 뭉개지며 죽었다.
“이익!”
독하게도 아직 석궁을 쥐고 있던 놈 하나가 공격을 하려 했지만,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번개 줄기가 그에게 꽂혔다.
한 템포 느리게 등장한 도진의 작품이었다.
“너흰 뭐-”
마지막으로, 뒤틀린 팔을 부여잡고 있던 놈이 소리를 치려다가 도진의 발구름에 맞춰 솟아난 뾰족한 암석에 꿰여 죽었다.
“끝?”
【입구 쪽은.】
대답한 아네모네가 땅굴 안쪽을 보며 으르렁댔다.
도진은 더 묻지도 않고 염동력을 사용했다.
열 개가 넘는 기름 주머니가 인벤토리에서 나오자마자 안쪽으로 날아갔다.
몬스터(도적 놈들) 레벨이 레벨이니 만큼 기름에 붙이는 불 따위로는 유의미한 피해를 줄 수는 없겠지만.
‘지들 집에 불이 나면 당황하기 마련이거든.’
혼란을 만들기에는 충분할 것이었다.
저놈들 입장에서 보면 여기는 비밀 아지트 겸 밀수 루트 겸 물류 창고이기까지 한 곳이다.
그런 곳에 대규모 화재가 나면 머릿속이 하얘지겠지.
“시발, 불, 불부터 꺼! 안까지 번져서 물건에 옮겨 붙으면 끝장이야!”
간단한 방화로 혼란을 야기한 도진은 그대로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어둡고 좁은 공간에 일어난 커다란 불길은 차라리 그냥 어두운 게 나을 정도의 시계(視界)를 형성했다.
괜히 화재 현장을 불타는 암흑이라 표현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적야」를 가진 도진에게는 상대적으로 덜한 제약이었다.
“으아악!”
도진은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적들을 도살했다. 놈들도 나름의 저항을 하긴 했지만, 부질없는 저항이었다.
도진은 디테일보다는 속도를 우선시했다.
이런 장소에 비밀통로가 없을까.
어차피 도망치려고 들면 막기 힘들어진다.
차라리 상황 파악을 끝내고 도주 각을 잡기 전에 많이 알고 있을 만한 놈을 붙잡아야 했다.
“여기, 이쪽이-”
도진은 옆에서 튀어나와 소리치며 칼을 휘두르는 놈을 제압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휘두르는 칼을 건틀렛으로 받아 내고, 손에 두른 열과 압력으로 팔 하나를 잘라 냈다.
그런 뒤 죽겠다며 비명을 지르는 놈에게 ‘이 정도로는 안 죽어’ 하고 위로의 말을 건네며 딱 기절하지 않을 정도까지만 고통을 줬다.
“길. 대가리 있는 데로.”
마지막으로 길을 물었다.
“개소-”
“싫으면 말고.”
파지직. 이번에는 죽기 충분할 만큼 딜을 넣었다.
푸른 섬광과 함께 눈을 까뒤집고 절명한 떨거지를 퍽 걷어찼다.
“열 명이라며?”
【은신하면 원래 냄새도 잘 안 나.】
물어볼 놈은 많이 남아 있었다.
도진은 달려드는 도적놈들 몇 놈을 더 죽이고, 잡기 편하게 달려드는 놈을 다시 제압했다.
다행히 새롭게 잡은 놈은 고통에 대한 참을성이 부족했다.
놈이 안내한 곳에는 허겁지겁 값나가는 물건을 챙기는 알몸의 남자와 약에 취해 널브러져 있는 여자들이 있었다.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거 같아! 간덩이 부은 새끼!”
아이러니하게도 도주 각을 날카롭게 잡고 있던 알몸의 사나이는 도진이 이곳에서 상대한 누구보다도 강했다.
‘이건 신종 보스 패턴인가?’
현란한 스탭을 밟으며 시퍼렇게 날이 선 나이프를 휘두르는데, 그걸 사내새끼가 알몸으로 하고 있으니 시각적인 고통도 상당했다.
“끄어어억……!”
그래 봐야 던전 보스 정도 되는 놈의 한계는 명확했지만. 도진은 도망칠 생각도 못 하게 발목 두 개를 전부 잘라 버린 뒤 땅굴 이곳저곳을 돌며 남아 있는 놈들까지 모조리 처리했다.
‘도망친 놈이 있으면 그거까진 어쩔 수 없지.’
지원을 불러올지도 모르니 빨리 정리하고 자리를 떠야겠다.
* * *
데네브는 숨을 죽이고 전방을 주시했다.
폭염을 동반한 폭발을 시작으로, 화염이 치솟고 연기가 나고, 땅굴 안쪽에서 폭음이 끊이질 않았다.
자신이 끌어들인 마법사가 엄청난 존재라는 사실에 데네브는 안도를 해야 할지 긴장을 해야 할지 헷갈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고요해졌다.
‘끝난 건가……? 아니면 설마…….’
그 사람이 죽은 건…….
불안감에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진이 너 불러오래.】
“흐억!”
옆에서 들린 소리가 데네브를 기겁하게 만들었다.
너무 놀라 말도 못 하고 자신을 쳐다보는 데네브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아네모네가 재차 말했다.
【뭐 해? 따라오라니까.】
“끄, 끝났다고 했나요?”
【안에 있던 나쁜 사람들 진이 다 처리했어.】
벌써? 들어간 지 얼마나 됐다고. 아니, 근데 늑대가 말을 해?
데네브는 믿기 힘든 현실에 멍하니 아네모네의 안내에 따라 걸었다.
길을 외운 건 아니지만, 도진의 냄새를 따라 헤매지 않고 땅굴 깊숙한 곳까지 안내를 마치는 아네모네.
“끄으으윽…….”
데네브를 반긴 건 고통에 젖은 신음 소리였다.
“몰라… 모른다고……! 그냥 위에서 대기하라는 명령만 받았을 뿐이라니까… 히이익! 요, 요! 받았을 뿐입니다!”
산 채로 잡힌 이곳의 책임자가 고문을 받으며 내는 소리였다.
알몸의 남자가 발목이 잘린 상태로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본 데네브는 인상을 찌푸렸다.
“전 진짜 잘 모릅니다. 그냥 여길 관리하는 창고장이라고요. 인력도 다 빼가서… 보셨으니 아시잖습니까. 여긴 몇 남지도 않아서 이렇게 순식간에 털린 거 아닙니까…….”
자신을 창고장이라 한 남자는 새롭게 나타난 데네브를 곁눈질했다.
꿈에도 자기 조직원이라는 걸 상상도 못 하는 눈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끄나풀 관련돼서 들은 이야기가 있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중간 관리자 선에서 정보가 차단된 거다.
‘위에 보고를 하면 몇 놈은 모가지가 날아갈 거 같으니 자기 선에서 어떻게든 처리하고 없던 일로 만들려고 했군.’
엄벌주의가 낳는 폐해 중 대표적인 현상이다.
처벌이 두려워 죄든 문제든 어떻게든 드러나지 않게 묻고 덮으려고 드는 일 말이다.
‘나한테는 행운이었네.’
여기서 이런 사고를 쳤으니 이 이점이 길게 가길 기대하는 건 무리가 있겠지만.
‘혹시 모르지. 이것도 덮고 싶어 하는 멍청이가 보고 체계 중간에 끼어 있을지도.’
어느 쪽으로 상황이 전개되든, 중요한 건 적보다 빠르게 선수를 치는 거였다.
도진은 최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질문을 이어 갔다.
범죄자에게 높은 기개와 담대함은 좋은 덕목이 아니었다.
창고장은 고통을 인내하는 것보다는 아는 걸 다 불어 버리는 걸 택했고, 심문은 도진의 생각보다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결국 제대로 아는 건 없는 놈이었네.’
그래도 유의미한 정보는 있었다.
바다 쪽에서 들어오는 물건이 거치는 장소가 이곳 말고도 여러 곳이라는 것과 그 장소들 중 몇 곳의 위치였다.
이는 데네브가 알아냈던 장소들 중에는 없는 위치였다.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놈들이라 그런지 정보도 조각조각 관리되는 모양이었다.
“흠.”
생각 정리를 마친 도진은 말없이 알몸 사내의 머리에 마법을 날렸다.
부지불식간에 날아든 마법에, 창고장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
도진 입장에서는 성심성의껏 대답해 준 상대에 대한 배려로 고통 없이 보내 준 거였지만, 보는 데네브 입장에서는 살 떨리는 광경이었다.
“저 여자들만 처리하고 빠르게 움직여야겠어요.”
도진은 약에 취해 기절해 있는 여자들을 보며 말했다.
“주, 죽이게요?”
“무슨 소리예요? 당연히 구하는 거지.”
도진은 여자들에게 다가갔다.
아까 해독제와 포션을 잔뜩 먹여 놔서 그런지 상태가 호전된 게 보였다.
“이걸 쓴 건가?”
어지러운 테이블에 흩어진 가루를 본 도진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짙은 초록빛 도는 고운 가루.
‘미친 새끼. 이걸 쓴 거야?’
도진도 아는 약이었다.
중독성도 중독성이지만, 쓰다 보면 살이 썩어 들어가는 종류의 쓰레기 마약이었다.
좀비 마약 ‘구울’.
이 약의 원 출처가 멸망교단은 아니다.
다만 놈들이 제국을 병들게 하기 위해 뿌려 대긴 했었다.
마치 대영제국이 청나라를 상대로 아편을 뿌려 대고,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펜타닐을 뿌려 댄 것처럼.
“이거, 본 적 있어요?”
도진은 녹색 가루를 가리키며 데네브에게 물었다.
“마약이요? 이쪽에서 일하다 보면 흔히 보는 거예요. 종류도 다양하죠. 음, 근데 이건… 처음 보는 색이긴 하네요. 근데 또 모르죠. 상자에 들어 있는 약까지 본 건 아니니, 그 상자들 속에 들어 있었을지도.”
도진은 한숨을 쉬며 바랐다.
쓰러진 여자들이 오래 약에 노출된 게 아니기를.
납치된 거처럼 보이는데 후유증으로 살이 썩어 들어가면… 너무 딱하지 않나.
도진은 땅굴 안에 있는 창고에서 챙길 가치가 있는 것들을 인벤토리에 마구잡이로 챙긴 뒤 불을 질렀다.
구출한 여자 셋은 돈을 쥐여서 신전으로 보냈다. 빠르게 치료를 받아야 후유증을 그만큼 줄일 수 있기에.
그런 뒤 도진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놈들의 거점을 습격했다.
습격 소식이 퍼졌다 해도 정리해야 할 게 산더미인 놈들은 거점을 버리지 못했다.
그런 과정을 몇 번 반복한 끝에, 도진은 ‘중요한 사업’에 관련된 놈들을 붙잡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