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
도진이 알고 있는 이 여자의 소속은 제국 안보부.
‘데네브라.’
그러니 이름이 다른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현장 요원은 주기적으로 이름을 갈아치우는 게 기본일 테니.
‘그땐 베테랑 느낌 풀풀 났는데, 지금은 그냥 베테랑인 척하는 신입처럼 보이네.’
이 여자, 그러니까 데네브는 쉽게 말해 제국 안보부를 대표하는 NPC였다.
재난, 재앙이 황실, 제국과 얽혔을 때 유저들에게 퀘스트를 뿌리는 간판 NPC.
다만 얘들이 등장하는 시기가 이렇게 빠르진 않았다.
달궈지는 냄비 속 개구리 같던 유저들도 ‘어? 이러다 진짜 세상 망하는 거 아님?’ 할 때쯤에서야 등장했었는데.
그런 NPC가 40대 베테랑 누님이 아니라 20대 중후반 말단 요원 느낌으로 나타났다는 건 뭐가 있어도 단단히 있다는 뜻이겠지.
‘이거구나.’
위업 보상으로 찾아올 거라던 ‘실마리’가 드디어 눈앞에 나타난 거다.
도진은 펜던트와 증표를 내보였다.
* * *
데네브의 직업은 얼마 전까지 뒷골목 배달부였다.
범죄자와 범죄자 사이에서 불법적인 물건을 배달하는 배달부.
하지만 지금은 제국 안보부의 정보원이 됐다.
6개월 동안 훈련도 받았고, 임무도 배정받았다.
그 임무란 게 범죄자로 살면서 언제든 쓸 수 있는 정보원 역할을 하는 게 다지만.
그런데 기회가 왔다.
운 좋게 규모 있는 밀수 조직에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아주 고약한 대형 범죄의 냄새를 맡은 거다.
‘이 정도 정보면 제대로 타낼 수 있겠어.’
정보의 가치에 따라 받는 돈이 늘어나니, 더 모아 보자.
이후 열심히 구르며 악착같이 정보를 모았다.
한데 너무 모아 버렸다.
‘제국 고위층까지 엮여 있어……?’
덜컥 겁이 난 데네브는 대충 정리하고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결국 이 꼴이다.
끄나풀이란 걸 들키는 바람에 도망자 신세가 됐다.
안보국의 도움?
어차피 범죄자 출신 정보원 따위 쓰다 버리는 소모품 취급을 하는 놈들이다.
게다가 안보국 쪽에서도 이 사건에 연루된 자가 있을 텐데… 보고하겠다고 접선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거 같았다.
아니, 쥐는 알겠네. 시궁창에 버려진 내 시체를 걔들이 파먹을 테니까.
이런 절망적인 생각을 하며 도주를 거듭하다 결국 붙잡힐 위기에 처했는데… 여기서 도진이 개입한 것이었다.
“엘토… 마기아……?”
도진이 보여 준 모험가 펜던트는 데네브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엘토마기아의 문장은 달랐다.
데네브는 도진과 도진 뒤편으로 널브러진 시체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계속 도망쳐 봐야 언젠가 잡혀서 죽을 거야. 그럴 바엔 차라리…….’
한탕 크게 벌이는 게 낫지 않을까?
‘설득이 될까?’
모르겠다. 일단 질러 봐야지.
데네브는 도진에게 펜던트와 증표를 돌려주며 말했다.
“엘토마기아 소속이셨군요. 역시 실력이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전… 제국 안보부 요원 데네브라고 합니다.”
데네브는 도진의 반응을 살폈다.
황실 직속 조직 소속이라고 하면 그래도 뭔가 반응을 보일 거라 생각하고.
“예. 그래서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이죠?”
“…….”
하지만 기대한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잘난 엘토마기아 마법사시다, 이거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데네브는 제대로 된 요원 흉내를 계속했다.
“저들은 밀수 범죄와 관련된 자들입니다. 잠입 수사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거고요. 그래서 말인데… 수사 협조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국 마탑의 일원으로서 제국의 암덩이를 도려내는 데 협조 부탁드립니다.”
제국 마탑, 제국 안보부.
그래도 같은 ‘제국’ 소속 아니냐는 눈빛을 보내는 데네브.
그런 그녀를, 도진은 잠시간 바라봤다.
정확히는 그녀 주변을 떠도는 황금빛 가루 같은 것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아니 마안이 아니라면 눈치채기 힘들 만큼 미세한 현상이지만… 분명히 세계율의 빛이다.
‘그렇지. 아무 상관도 없는 나를 판에 끌어들이려니까 힘들지?’
개연성에 개입하는 빛을 보며 픽 웃는 도진.
그걸 본 데네브는 생각했다.
할 생각 없나? 아니면 날 의심하나?
간절한 마음에 데네브는 되는 대로 지르기 시작했다.
“물론 그냥 도와달란 말은 아닙니다. 지금 상황이 안 좋아 지원 요청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거든요. 이 말은 곧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저만 알게 된다는 건데… 일손 부족이란 게 큰일이에요. 현장에서 돈이든 물품이든 증거품 일부가 증발해도 알 수가 없으니 말이에요.”
“그거참… 큰일이긴 하네요.”
한마디로 협조하는 와중에 밀수품을 몰래 챙겨도 눈을 감아 주겠다는 말이다.
정말 큰일이다.
공무원이 이런 부정부패 냄새가 솔솔 나는 당근이나 흔들고.
물론 현재 데네브는 공무원이 아니라 정보원이었으나, 도진이 거기까지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뭐, 그쪽이 정말 안보부 소속이 맞고, 범죄 소탕을 하고 싶어 하는 것도 맞다고 치고. 그래서 뭘 어떻게 도와달라는 거죠?”
“할 수 있는 데까지요.”
데네브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하나하나 열거했다.
밀수 루트, 거점, 보관 장소 등등.
사실상 밀수 관련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에게 있어서는 생명줄과 다를 바 없는 부분들.
“이걸 이용해서 어떻게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서…….”
데네브는 마지막에 가서 말을 흐렸다.
알고 있는 정보는 있는데, 그걸 어떻게 써야 할지는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도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렇게까지 어설픈 인간이었나?’
하기야. 역사를 뒤지면 CIA나 KGB가 저지른 어이없는 병신 짓만 따로 추려도 책이 몇 권은 나올 거다.
데네브의 신입 시절 어설픔은 지금 메인이 아니다. 메인은 닥친 사건이지.
‘밀수, 밀수라.’
밀수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긴 했다.
드워프 마을에서 저승길로 보내버린 록켈.
‘그놈이 멸망교단이랑 같이 친 사고가 다른 방식으로, 더 빨리 벌어지는 거라고 하면…….’
록켈을 죽인 것도 자신, 한참 동안 웅크리고 있을 예정이었던 멸망교단을 자극한 것도 자신.
그러니 변형된 형태로 일어날 참사를 막아야 하는 것도 자신.
“하죠.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요……?”
“걔들, 암덩이를 적출하는 방식은 제 방식대로 하죠. 정보는 그쪽이 제공하는 걸로 하고.”
아무래도 지금의 당신은 너무 어설퍼 보여서 말이야.
뒷말은 당연히 뱉지 않았다.
“좋아요.”
어차피 잡을 지푸라기도 없던 신세.
데네브는 흔쾌히 도진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대화를 마친 데네브는 미안한 눈초리로 맥스를 봤다.
“…도망칠 거라더니.”
맥스가 중얼거렸다.
데네브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도망쳐도 죽을 확률이 높다는 뜻으로.
“내가 그랬지. 그놈들이랑 엮이면 곱게는 못 죽을 거라고.”
“미안.”
데네브와 맥스만 맥락을 읽을 수 있는 대화가 오갔다.
맥스는, 그녀의 범죄자 시절 인맥이었다.
“후우, 됐다. 알아서 해. 웬만하면 살아서 연락이라도 하고. 뒷맛 찜찜한 건 질색이니까.”
맥스가 턱 끝으로 시체들을 가리켰다.
“저건 내가 알아서 처리해 줄게. 이별 선물이라고 생각하라고.”
“고마워, 맥스.”
끼어들기 힘든 분위기에, 도진은 밖으로 나갔다.
시체를 만든 게 눈치가 보이기도 했고.
얼마나 지났을까. 시간이 꽤 흐른 뒤 데네브가 밖으로 나왔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도진이 묻자 데네브가 동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동쪽이요.”
자신이 필사적으로 도망쳐 왔던 길이었다.
* * *
“뭘 밀수하는지는 모른다고요?”
도진의 물음에 데네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엄청난 걸 들여오려는 건 확실해요. 기존에 하던 일을 일시에 전부 멈춘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그러면서 데네브는 말했다.
기존에 처리하던 밀수품이 거점별로 정체되어 있는 상황일 테니, 허탕을 친다 해도 그걸 챙기면 한몫 단단히 잡을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엄청나게 중요한 뭔가를 밀수하려고 하는 거 같은데, 그게 어느 루트를 타고 어디로 흘러갈지는 모른다. 이거네요.”
“정확해요.”
그러면… 결국 중요해 보이는 곳부터 터는 수밖에.
도진은 마탑이 제공하는 장거리 공간 도약을 써 가며 대도시와 대도시를 넘었다.
신분이 확실해야 하고, 돈이 더럽게 많이 드는 일이지만, 도진에겐 문제가 없었다.
각 대도시마다 있는 엘토마기아의 마탑에서는 옆에 붙어 있는 데네브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바다와 내륙을 잇는 교두보쯤 되는 지역에 도착한 도진은 대도시를 벗어났다.
‘뭘 들여오든 대량으로 들여오려면 바다랑 강을 껴야겠지.’
그럼 바다랑 인접한 곳에 있는 밀수품 경유지부터 털자, 라는 생각으로 정한 첫 번째 목적지는 도시와는 동떨어진 곳에 있었다.
정확히는 바다 쪽에서 내륙으로 들어올 때 거쳐야 하는 검문소에서 1km 벗어난 곳에 뚫린 땅굴이다.
‘이거 딱 미국이랑 멕시코 국경에 뚫린 마약 땅굴같이 생겼네.’
여러 영상 매체를 통해 본 것과 흡사하게 생긴 굴을 보며 도진은 생각했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고.
“이, 이렇게 그냥 밀고 들어갈 생각은 아니죠?”
적잖이 당황한 데네브의 물음에 도진이 돌아봤다.
그 표정이 딱 이랬다.
‘당연한 걸 왜 물어?’ 하는 표정.
데네브는 직감, 아니 확신했다. 자신이 끌어들인 게 단단히 돌아 버린 또라이라는 걸.
“저 안에 얼마나 있을 줄 알고요……!”
“어디 지원 요청이라도 하면 해결이 됩니까?”
“…그건 아닌데.”
“여기서 하루 종일 엎드려 있으면 뭐라고 걸려들까요?”
“…….”
데네브는 가슴속에 고이 모셔 둔 마총을 꼭 쥐었다.
도망칠 때 밀수품 사이에서 훔친, 그간 자신의 목숨을 지켜 줬던 물건을.
“걱정할 거 없어요. 싸우란 뜻 아니니까. 정리는 내가 할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그렇게 말한 도진이 땅굴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거리도 좀 되고, 사위는 어둡지만, 절대 잠입하거나 습격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었다.
“자, 잠깐만요! 진짜 그렇게 갈 거예요?”
“꼼짝 말고 얌전히 기다려요. 배려하는 게 아니라 방해될 거 같아서 하는 말이니까 미안해할 거 없습니다.”
“허……!”
오기가 생긴 데네브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
하지만 걸어가는 도진 옆으로 농담 조금 더 보태서 집채만 한 늑대가 소환되는 걸 보고는 얌전히 자세를 낮췄다.
자존심 부리며 말 안 듣고 대들기에는 솔직히 도진이 무서웠다. 시꺼멓게 뚫려 있는 땅굴보다 조금 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