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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193화 (193/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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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과거에 꿰뚫렸을 상처를 타고 도진의 마법이 스며들었다.

한 발, 두 발, 세 발.

무엇을 쓸지 생각할 여유도 없이 몸이 기억하는 대로 마법을 난사했다.

심장부에 직접적으로 꽂히는 충격에 갈란테의 동체가 간헐적으로 경련했다.

이미 파괴되어 기능하지 않는 심장이야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지만 죽은 용을 되살린 마력원이 문제였다.

새롭게 생긴 갈란테의 급소는 심장과 동일한 위치였다.

-크오오오오!

갈란테가 포효하며 몸부림을 치려 했다.

“막아!”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돼!”

그걸 막고 나선 건 공대원들이었다.

속박 마법을 쓰고, 몸을 던져 붙잡고 늘어지고, 직접 공격에 몸을 던져 넣기까지 하며 도진이 한 번이라도 더 마법을 시전하게끔 해 주는 이들.

하나씩 놓고 보면 의미가 없을 찰나들. 하지만 찰나와 찰나가 쌓여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

갈란테가 고개를 떨궜다.

살아남은 인원은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아…….”

그들 중 하나가 작게 탄식을 흘렸다.

“와아아아아아!”

이어진 건 절규에 가까운 환호였다.

살아남은 이들은 천천히 지면을 향해 무너지는 커다란 용의 동체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용이 하던 포효를 인간이 빼앗아 하고 있었다.

‘…된 건가.’

갈란테의 독기가 가장 짙은 자리에서 마법을 난사한 도진의 상태는 죽음의 문턱을 밟고 있는 수준이었다.

각막은 손상되어 시야가 매우 흐릿했다. 그나마 마안이라 이 정도나마 보이는 거지, 그냥 눈이었다면 다 녹은 젤리 같은 상태가 됐을 터였다.

소리는 먹먹하게 들렸다. 살아남은 소수가 지르는 기쁨의 환성은 도진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그래도 희미하게 보이는 것과 아득하게 들리는 소리만으로도 자신의 도박이 실패로 끝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됐다.’

수없이 갈란테에게 도전하는 동안 솔직히 불안했다.

포기하지 않았을 뿐 확신하진 못했으니까.

그러나 결국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 해냈다.

이제 갈란테로 인해 벌어졌던 참극이 일어날 일은 없어졌다.

그 사실에 도진은 안도감과 함께 벅찬 감정을 느꼈다.

“해냈어요!”

소리가 조금씩 돌아왔다.

눈도 정상적으로 돌아온다.

갈란테가 죽고, 중독이 풀리고, 치유의 힘이 몸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점점 회복이 되고 있으면 힘이 나야 하는데, 힘이 탁 풀려 쓰러져 자고 싶은 건 왜일까.

‘아… 자고 싶다.’

뒷수습이고 뭐고 일단 로그아웃해서 잠부터 자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희미한 웃음을 만들 때였다.

[월드 보스 ‘독각룡 갈란테’가 쓰러졌습니다!]

[모험ㄱ ㅏ ㄴ▒▒▒▒▒▒▒▒▒▒▒▒▒▒▒▒▒▒▒▒▒▒▒▒▒]

[▒▒▒▒▒▒▒▒▒▒▒▒▒▒▒▒▒▒▒▒▒▒▒▒▒▒▒▒▒▒▒]

클리어 메시지가 뜨다가 모든 문자열이 깨졌다.

아니, 홀로그램 창만 깨진 게 아니다.

주변 공간이 일그러지고, 조각조각 깨진 것처럼 갈라져 보였다.

그 위로 난폭하고 날카롭게 일렁이는 황금색 빛이 뒤덮인다.

“뭐, 뭐야!”

동시에 중독 디버프가 다시 찾아들었다.

갈란테의 동체에서 다시 지독한 독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정해진 운명은 ▒▒ ▒▒▒ ▒▒▒.]

[독각룡 갈란테가 스스로의 육신을 붕괴시켜 독기를 퍼뜨리려 합니다. 독기가 방출되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퍼질 것입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지하십시오!]

연속으로 뜨는 메시지.

“말도 안 돼!”

방금 전까지 기쁨으로 가득했던 목소리가 절망으로 물들었다.

‘이게 이렇게까지 바꾸기 힘든 미래란 거냐!’

도진은 급히 마법을 쓰려 했다.

하지만 독기는 빠르게 도진을 잠식하여 완전히 마비시켜 버렸다.

마법은커녕 말 한마디 뱉을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공간이 무너진다.

인스턴스 공간이 무너지며, 갈란테가 바깥 세상에 노출되고 있었다.

운명이란 실에 엮인 꼭두각시 인형처럼, 쓰러졌던 갈란테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설령 지금 이 순간 벌어질 일을 막지 못한다 해도.

‘언젠가는 내가 바꾼다.’

바꿀 수 있는 모든 걸.

이를 악물고, 잠시 깨끗해졌던 시야가 다시금 녹아가는 와중에도 도진은 정면을 응시했다.

로스타니아와 갈란테를 갈라 놓고 있던 인스턴스의 벽이 무너졌다.

폭파 시퀀스에 들어간 대량 학살 무기가 되어 버린 갈란테가 완전히 노출된 것이다.

사실상 재앙을 막을 기회는 이제 사라진 셈이다.

“쏴!”

그때였다.

무너져 내린 인스턴스 공간 너머에서 외침이 들린 것은.

낙하하는 수만 개의 유리조각 너머에서 엄청난 숫자의 투사체가 날아들었다.

인스턴스의 벽 너머에 있는 수많은 인파가 날린 공격이었다.

이벤트 기간 내내 고생한 도진의 마지막 도전을 응원하고, 공략에 실패하더라도 위로를 해 주기 위해 모인 도진의 팬들이었다.

그렇게 인던이 종료되고, 도진과 공격대원들이 나타나길 기다리던 이들은 방송을 통해 내부 상황을 인지했고.

“공격해! 최초 킬은 우리 방에서 나오는 거야!”

도진을 돕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가 일제히 공격을 퍼부은 것이었다.

“까짓 거 한 번 죽지 뭐!”

근딜들은 독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돌진을 감행했다.

도진에게는 수십 명이 쏟아붓는 치유 마법 세례가 쏟아졌다.

모인 이들의 레벨은 다 제각각이었다.

이벤트에 참여할 생각조차 못할 만큼 레벨이 낮은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압도적인 숫자는 어떤 것이든 극복할 수 있는 법이었다.

“도진 님! 지금 구해드릴게요!”

피부가 순식간에 썩고 타들어 가는 와중에 독 안개 안으로 뛰어들어 도진을 끌어내는 사람들.

그 와중에도 갈란테에게는 끊임없는 공격이 쏟아져 들어가고 있었다.

“…가슴, 저놈 가슴에……!”

“다 보고 있었습니다. 저희도 다 알고 있어요.”

정말 그랬다.

뛰어든 사람들이 도진을 빼내자 공격이 갈란테의 가슴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콰광- 콰광- 퍼엉-

온갖 효과음이 어지럽게 겹쳐진 끝에.

“쓰러진다!”

갈란테가 다시금 바닥에 몸을 뉘였다.

거대한 용이 바닥에 쓰러지며 울리는 육중한 소리는 미래가 바뀌는 소리였다.

[독각룡 갈란테가 완전히 침묵했습니다.]

[인스턴스 던전 <악룡이 파묻힌 구덩이>를 클리어했습니다.]

[완전히 부활한 월드 보스 독각룡 갈란테를 처치했습니다.]

인스턴스 던전 안에서 울렸던 함성과는 차원이 다른 소리가 전장을 뒤덮었다.

소리치는 사람들 사이에는 테레사도, 탄토도, 이미 죽어서 인던 밖으로 내쫓긴 공대원 모두가 섞여 있었다.

그러한 함성의 중심에서. 쓰러진 갈란테의 머리 바로 앞에서. 도진은 멍하니 세상을 응시했다.

시야를 어지럽게 뒤덮는 홀로그램과 메시지들.

보상 정산, 경험치, 기타 등등…….

수많은 메시지들이 떠 있었지만, 도진은 오직 한 줄의 글귀만 눈에 들어왔다.

[운명의 흐름이 바뀌었습니다.]

* * *

[제목: 오늘자 인생 손해 본 새끼들 목록]

[도진 방송 실시간으로 안 본 놈들 전체.

반박 시 내 말이 맞음.]

-이거 인정.

-ㅋㅋㅋ 아, 그거 못 본 새끼들 죽어서도 후회할걸?

-진짜 진이 혼자서 돌진할 때부터 지렸는데 마지막까지 계속 지렸음.

-ㅇㅇ 나도 지리다 지리다 체액 다 빠져서 수액 맞으러 응급실 왔다.

[제목: 아, 시발년들아!]

[훈련하느라 실시간으로 도진 방송 못 챙겨봤다 ㅠㅠㅠㅠ

진짜 나라가 나한테 해 준 게 뭐라고… 군대로 끌고 온 것도 모자라서 이걸 실시간으로 못 보게 하다니.]

-병신 ㅋㅋ 총 안 쏘고 뭐 했음? 나였으면 중대장 뒤통수에 구멍 내고 탈영해서라도 챙겨봤음.

-당신의 헌신에 감사합니다.

-하아… 나도 실시간으로 못 봤다. 진짜 줜나게 억울하네.

[제목: 이제 ‘여름이었다’는 ‘도진이었다’로 대체한다.]

[솔직히 오늘 그 장면은 게임사에 길이 남을 낭만 덩어리 그 자체였다.

잡을 수 없을 거 같았던 적.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마법사.

마법사를 위해 힘을 보탠 사람들.]

-오죽하면 현재 실시간 인기 급상승 영상 1위부터 8위까지 전부 그 장면들임 ㅋㅋㅋ

-나 솔직히 도진 별로 관심 없었는데 이번 영상 보고 입덕함.

-오늘 도진이 진짜 귀여웠음. 마지막에 우수에 찬 눈으로 죽은 갈란테 보는데… 하… 안 되겠다, 또 보러 간다 ㅅㄱ

월드 보스 레이드 이벤트가 끝난 후 모든 커뮤니티는 도진과 갈란테 그리고 마지막 장면 이야기로 가득했다.

월드 보스 레이드 보상으로 <악룡이 파묻힌 구덩이>를 낮은 난이도로 즐길 수 있게 됐고, 아직도 도전하는 공격대가 많음에도 그에 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만큼 도진과 갈란테의 마지막 대치와 이후 벌어진 모든 상황이 드라마틱하고 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제목: 인생 업적 자랑합니다.]

[오늘 도진 님 구출했던 5인 중 한 명이 접니다. 스샷 첨부합니다.]

-헐, 시발;;

-미친 존나 부럽다.

-와, 님 거기 있던 사람들 다 레벨업 했다던데 진짜예요?

└네, 마지막에 갈란테 공격한 전원 경험치 보상으로 레벨업 했습니다. 기타 보상은 안 들어왔고요.

다른 방송을 시청하느라 도진의 방송을 보지 않았던 사람들은 격하게 아쉬워했다.

도진에게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영상을 보고 채널로 유입됐다.

“티, 팀장님! 구독자 수가 미친 듯이 증가하고 있는데요!”

“당연한 소리 하지 말고 일해, 일! 쇼츠 찍어내라고!”

콘텐츠팀은 퇴근은 글렀다는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들 귀에 입이 걸려 있었다.

몸은 고달파도 일하는 보람은 있고, 성과는 물론이고 이런 경우 금일봉이 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어 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게임을 하는 거야 영화를 찍는 거야.”

마케팅 쪽도 사정은 비슷했다.

밀려드는 광고 문의와 협업 요청에 김영희는 일에 파묻혀 가고 있었다.

계속해서 울리는 메일, 메시지 수신음 속에서 김영희는 슬쩍 천지현에게서 온 답장을 확인했다.

[천지현 씨: 도진이 현재 자고 있습니다, 팀장님.]

그걸 본 김영희는 자신도 모르게 풋 하고 웃어 버렸다.

“아… 이 난리를 만들어 놓고는 주무시는구나.”

온 세상이 자신의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을 때.

보상 정산을 끝까지 기다리지도 못하고 잠든 도진의 얼굴은 정말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바뀌지 않겠다고 꿋꿋하게 버티던 운명을, 미래란 놈을 결국에는 바꿨다.

그 사실이 주는 편안함에, 도진은 정말 마음 편한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온 세상이 자신으로 인해 떠들썩하든 말든 도진은 그저 자신이 기억하는 재앙 하나가 지워진 것이 마냥 좋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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