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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192화 (192/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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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간의 연습 과정은 ‘입력이 들어오면 바로 반응하기’에 초점이 맞춰진 훈련이었다.

갈란테가 등장하기도 전에 세부적인 공략 정보를 알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당연하게도 도진 공격대 또한 갈란테와의 첫 조우에서 뚜렷한 성과를 낼 수는 없었다.

처음 보고 대처하기에는 지나치게 빠르고 치명적인 패턴을 지닌 몬스터가 갈란테이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에이, 기대 많이 했는데 별로 다를 게 없는데?

-그러게. 난 도진이면 바로 깨 버릴 줄 알았는데.

다른 공격대들과 다르지 않게 시작부터 고전하며 쓸려나가는 공격대 구성원들을 보며 실망하는 시청자들.

-실망스럽다는 애들은 제정신인 거임? 저런 괴랄한 몬스터를 어떻게 원트에 잡냐?

-ㅇㅇ 이게 당연한 거지. 저건 처음 보고 대처할 수 있게 디자인된 몹이 아님.

물론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다수였다.

다만 도진이 지금껏 높여 놓은 기대치가 워낙 높았던 탓에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바깥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든 도진은 신경 쓸 여유가 전혀 없었다.

“탱커 라인 분산부터 하죠. 큰 공격만 3명씩 뭉쳐서 대응하겠습니다. 딜러진도 최대한 거리 벌려서 한꺼번에 휩쓸리는 일 없도록 하고. 힐러님들은 탱커 제외한 딜러들한테는 도트힐만 감아 주세요. 중독으로 빠지는 피 말고는 신경 쓸 거 없습니다.”

첫 트라이의 허무한 전멸 이후 도진이 하는 말에 공대원 하나가 손을 들고 물었다.

“일반 공격 패턴도 휩쓸리면 바로 빈사 상태에 빠지는데 도트힐만으로 버틸 수 있을까요?”

이에 도진이 대답했다.

“안 맞으면 됩니다. 아니, 딜러는 아예 안 맞아야 돼요. 전투가 길어지면 결국 200명이 동시에 피가 빠질 텐데, 그것만 해도 살려 두기 힘든 수준이 될 겁니다. 그런 와중에 한두 명이 패턴에 휘말려서 피가 확 빠지면 그거 살린다고 힐 들어갈 거고, 그렇게 힐 누수 발생하면 공대 전체 출렁이고… 뻔한 흐름이잖아요.”

딜러들 표정이 굳었다.

한 대도 맞으면 안 된다는 말이 가볍게 다가올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는 딜러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었다.

“힐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딜러들이 안 맞는 데 집중하다 보면 딜이 밀리게 될 거예요. 자연히 전투는 늘어질 거고, 그 시간 동안 빠지는 공격대 생명력을 커버하려면 힐러진이 가장 힘들 겁니다. 당연히 전투에서 이탈하는 사람이 없어야 하겠죠.”

결론은 아무도 죽으면 안 된다는 말이었다.

공격대 사람들 표정은 딱 이거였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한 대 맞으면 뒤지게 생겼는데.’

“하다 보면 돼요. 무조건 됩니다. 뫼비우스도 양심적으로 사망 페널티 걱정 말고 계속 박으라고 인던 형태로 내줬잖아요.”

양심이 있다니. 지금 양심 뒤졌다고 사람들이 난리인데.

하지만 당장 계속해서 도전해야 하는데 이런 말을 밖으로 내는 사람은 없었다.

“곧 독 저항 포션이랑 지속 회복 붙은 포션 준비될 테니까 그때까지 몇 번만 더 박죠.”

트라이가 계속 이어졌다.

“산개, 산개! 하늘에 뜨면 무조건 정면 자리 비워요!”

패턴이 나올 때마다 도진의 지시가 뒤따랐다.

하지만 지시를 듣고 반응해도 될 만큼 갈란테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귀로 듣고 나서 반응하면 반드시 사망자나 전투 속행이 불가능한 부상을 입는 인원이 나왔다.

“기습적으로 나오는 패턴 빼고는 탱커들이 전부 막는 걸로 할게요. 힐러님 세 분 더 탱힐 쪽으로 돌리고.”

도진은 공략을 진행하는 내내 깎고 또 깎아, 빌드를 최적화해 나갔다.

그런 반복 끝에 공격대도 어느 정도 갈란테를 상대로 기본적인 숙련도라는 게 쌓였다.

이쯤에서 도진은 유물을 보유한 테레사와 탄토에게 특별 임무를 부여했다.

테레사에게는 기습적으로 발생하는 육탄 돌격 패턴을 몸으로 막는 일을.

탄토에게는 노리기 힘든 부위까지 파고들어 누적 대미지를 쌓을 것을.

-이상하네. 하고 있는 건 다르지 않은데 묘하게 이쪽은 다른 데보다 진도가 조금씩 빠른데?

-나도 신기함. 서로서로 모니터링하면서 베껴서 그런지 공략 접근 방식이 다 비슷한데도 진 쪽이 한발 앞서가는 느낌이 강함.

티가 안 나는 수준에서 가진 지식을 이용해 가장 효과적인 공략법을 제시하고 주입하는 도진 덕에 공략 진도는 순조롭게 뽑혔다.

결국 도진은 모든 공격대 중 가장 빠르게 자신이 기억하는, 갈란테의 마지막 페이즈인 폭주 패턴을 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더 나아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패턴 간의 간격은 더 짧아지고, 전조 동작부터 공격 동작까지 최소 1.5배는 빨라졌다.

피해 없이 버틴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된 것이다.

그러다.

[<악룡이 파묻힌 구덩이>로 통하는 포탈이 72시간 후 닫힐 예정입니다.]

월드 보스 레이드 이벤트의 1페이즈 종료 시점이 공지됐다.

-역시 그냥 못 죽일 수준으로 만든 거였어.

-솔직히 폭주 패턴도 진 없었으면 보지도 못했을 듯.

-사실상 공략법 대부분이 진 파티에서 나온 거니까.

-이것만으로도 인간 승리임, 진짜.

사람들은 사실상 이벤트 1페이즈는 여기서 마무리된 거라 여겼다.

그러나 도진은 아니었다.

공지된 시간이 다가와, 사실상 마지막 트라이나 다름없는 시점에도 도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탄토 씨, 이번이 거의 마지막 트라이가 될 거 같으니까 공략법을 좀 바꿀게요.”

“네? 어떻게 말씀이시죠?”

“탄토 씨한테 지금까지 공격해 달라고 한 부위 있잖아요.”

“용 가슴 쪽에 있는 커다란 비늘이요.”

“갈란테가 폭주하려고 할 때 달려가서 그것만 떼어내 주세요. 살아남는 건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지금까지 도진은 공대원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젠 안정성을 챙기기엔 시간이 없었다.

도진은 공대원들에게 한 번도 내린 적 없는 지시를 내렸다.

“폭주까지는 다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갈란테가 빨라지면… 최대한 산개해서 딜만 하세요. 힐러님들도 딜하세요. 저거 언데드라 딜 잘 들어갑니다. 가슴 쪽에 박을 수 있는 건 다 박아 넣고 죽으면 됩니다.”

살 생각 따위 버리고 사생결단을 내라는 도진의 말에 공대원의 표정이 밝아졌다.

지금까진 살아 보겠다고 도망만 쳐야 했는데, 이젠 속 시원하게 한 방 거하게 꽂고 증발하면 된다니.

“그럼 막트 갈게요.”

인스턴스 던전 폐쇄 20분을 남겨 둔, 마지막 트라이가 시작됐다.

폭주 전 패턴에는 완벽하게 숙달된 200명의 공대원은 정말 기계처럼 움직였다.

도트힐과 자동 회복 포션으로 중독 딜을 무마하면서, 갈란테의 사소한 동작에서 다음 동작을 읽고 그림처럼 치고 빠진다.

그 과정 속에서 입을 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도진을 포함해서 말이다.

별도의 오더 없이도 모든 걸 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한 덕이었다.

“폭주다!”

일정량의 생명력을 잃어버린 갈란테의 검은 비늘이 검붉게 달아올랐다.

편의상 폭주라 부르고 있는 강화 패턴이었다.

공기 자체가 달라진 건 비단 갈란테의 변화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껏 넘어 본 적 없는 산이 다시 나타났다는 것.

그리고 그걸 넘을 기회가 이게 마지막이라는 것.

그걸 알기에 공격대의 간절함은 장난이 아니었다.

“탄토 씨!”

도진이 외치기도 전에 이미 탄토는 갈란테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상태였다.

은신을 해서 눈에 안 띄었을 뿐.

카작- 하는 소리와 함께 갈란테의 가슴팍에서 탄토가 나타났다.

“크윽!”

폭주 상태에 들어가면서 더욱 강력해진 독무(毒霧)에 탄토의 생명력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지금까지는 일단 물러나서 몸을 사렸겠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흐읍!”

더 힘을 주며 도끼를 단검으로 후려쳐 비늘 사이에 꽂아 넣었다.

그런 뒤 혼신의 힘을 다해서 썩은 살과 비늘 사이를 갈라 냈다.

‘제발……!’

탄토의 도끼가 지닌 유물 옵션 ‘급소 공격’이 발동되며 갈란테의 가슴 정중앙에 붙은 커다란 비늘이 뜯어졌다.

순간 탄토의 생명력도 다했다. 사망과 함께 모든 저항력을 상실한 탄토의 육신은 그대로 무너져 내리며 액화됐다.

그 장렬한 산화에 공대원들이 흥분했다.

“우리 도적 죽었다!”

“카미가제다!”

생존을 도외시한 공격이 시작됐다.

용의 대표적 급소인, 가슴 중앙부를 겨냥한 마법, 화살, 검, 창 등이 미친 듯이 날아들었다.

더 이상 공격은 피하지도 않았다.

피해 봐야 어차피 후속 공격에 휘말려 죽을 텐데 피해서 뭐 하나.

한 대라도 더 쳐야지.

하지만 그런 만큼 사망자는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꼬리에 휩쓸려 다섯 명이, 공중 돌진에 열 명이, 회전 패턴에 또 다섯 명이.

빠르게 줄어가는 공대원.

‘젠장, 정말 이대로 끝난다고?’

마법을 난사하는 도진의 마음은 줄어가는 공대원 수에 비례해 다급해졌다.

여기 있는 갈란테랑 밖으로 나간 갈란테는 완전 다른 몬스터다.

덩치부터가 차원이 다르게 커지고, 생전의 모습을 완전히 되찾게 되니까.

‘어떻게든 여기서 마무리를 해야…….’

간절한 마음을 담아 가슴팍에 화염구 한 발을 추가로 날릴 때였다.

도진의 눈에 이질적인 마나의 흐름이 들어온 것은.

‘저건…….’

강렬한 존재에게서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마나가 아니다.

마치 상처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닮은 마나.

도진은 「원시」를 사용해 시점을 당겼다.

그러자 벗겨 낸 비늘이 아닌 그 아래쪽 비늘에서 흘러나오는 마나가 더 선명히 보였다.

‘아니, 비늘에서 나오는 게 아냐. 저기에 상처가 있는 거지.’

심장과 가장 가까운 곳의 비늘은 지금 떼어 낸 것이지만, 저쪽도 심장과 가깝기는 마찬가지.

갈란테는 모종의 이유로 죽음을 맞이해 이곳에 파묻혔다.

그렇다는 건.

‘죽을 때 입은 상처가 있었던 거야.’

아마도 비늘 틈으로 파고들어 심장까지 닿았을 상처가.

어느새 공대원은 절반도 남지 않았다.

생각을 이어 가며 머리를 굴릴 시간이 없었다.

“어? 도진아!”

후방에 위치해 있던 도진은 엄청난 속도로 갈란테를 향해 돌진했다.

6성 마법사가 되면서 「염동체술」의 수준 또한 올라갔다.

육체의 부담을 고려하지 않고 거는 극한의 염동강화는 도진에게 순간적으로나마 엄청난 속도를 부여했다.

-크오오오오!

갈란테의 앞발이 도진을 노렸으나 미리 예상하고 있던 도진은 그걸 쉽게 피했다.

‘이 거리, 이 자세에서 할 건 이것뿐이지.’

공격에 실패한 갈란테가 몸을 잠시 정지시켰다.

회전 패턴이다.

칼날 같은 비늘로 사방을 갈기갈기 찢는.

휘말리면 엄청난 피해가 강제되는 패턴이었다.

하지만 도진은 물러나지 않았다.

대신 두 가지 마법을 동시에 사용했다.

《뇌전검》

《거인의 망치》

뇌전검을 박아 넣고, 무식한 물리력을 가장하는 망치를 만들어 그것을 두드렸다.

쾅- 하는 육중한 효과음 직후 뇌전검이 폭발했다.

마법력과 물리력이 동반된 충격에 갈란테의 비늘 하나가 추가로 떨어져 나갔다.

너덜거리는 썩은 살점 사이로 흉하게 벌어진 상처 하나가 보였다.

하지만 그걸 도진이 노리기도 전에 갈란테가 회전했다.

촤자자작- 하고 도진의 온몸이 칼날 같은 비늘에 난자됐다.

염동력을 둘렀음에도 도진의 생명력은 덩어리째 삭제되며 사라져 갔다.

“안 돼!”

뒤늦게 테레사가 달려들었으나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이미 방패의 능력도 소모한 뒤인 데다 범위 공격에 이미 휩쓸린 걸 어쩔 수는 없었다.

도진의 죽음이 피할 수 없는 현상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도진은 자살을 위해 달려든 게 아니었다.

‘…지금!’

생명력이 줄어들다 제로에 수렴하려 하는 그 순간.

1초를 여러 개로 쪼개어야 할 말큼 찰나에 가까운 그 타이밍에.

《한정회귀》

자신의 시간을 되돌린 것이다.

0에 가까워졌던 생명력은 원래대로 돌아갔다.

회전 공격은 조금 더 이어졌지만, 도진의 생명력을 절반까지 갉아먹는 데 그쳤다.

6성 마법 두 개를 무리해서 발현하느라 과부하됐던 마법회로도 바로 안정됐고.

모든 이가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느낀 장면 속에서, 도진의 마법회로가 새로운 빛을 내뿜었다.

-미닟

급하게 입력하느라 ‘미친’을 잘못 쓴 오타가 채팅방에 올라온 것도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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