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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보스의 등장을 예고한 첫 번째 월드 메시지로부터 일주일이 흐른 시점.
새로운 공지사항이 올라왔다.
[죽음과 악의가 골수까지 스며든 악룡의 공격이 임박했습니다! 지독한 악의와 끔찍한 죽음에 대항하십시오!]
[예정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시작된 월드 보스 이벤트 ‘악룡의 부활’이 시작되었음을 알립니다.
이미 부활한 악룡은 더욱 큰 힘을 되찾기 위해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놈이 완벽한 힘을 되찾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지금부터 72시간 안에 월드 보스 레이드 전용 인스턴스 던전 <악룡이 파묻힌 구덩이>로 통하는 포탈이 열릴 예정입니다.
※<악룡이 파묻힌 구덩이>는 월드 보스 레이드의 1페이즈에 해당하며, 1페이즈 공략 결과에 따라 차후 2페이즈의 진행 방향이 달라집니다.
공지사항을 확인한 도진은 오랜만에 긴장감을 느꼈다.
‘잘할 수 있겠지?’
모르겠다.
독각룡 갈란테는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니니까.
심지어 혼자서 하는 일도 아니니, 무조건 성공적인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저 최선을 다할 뿐.
도진은 화면을 조작해 얼마 전 찍힌 영상의 한 장면을 띄웠다.
마지막으로 자신과 손을 잡고 있는 오르펜의 모습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아무것도 못 해 주고 허망하게 보내 버린 이 애들 때문에라도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이 녀석들의 고통을 삼키고 부활한 녀석은 꼭 내 손으로 마무리해야겠어.’
전부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일이지만.
자조적으로 생각을 마무리한 도진은 당장 해야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공격대 인원은 이미 확정해 뒀다.
레벨부터 클래스까지 꼼꼼하게 계산해서 딱 200명을 채웠다.
도진의 기억에 독각룡 갈란테 인스턴스 입장 제한 인원은 300명이긴 했지만, 사람이 더 늘면 그만큼 난이도도 올라간다.
인원에 비례해 증가하는 통상적인 난이도 상승폭과 이쪽의 전력 상승을 고려해서 도진이 판단한 이상적 숫자가 200이었다.
그리고 공격대는 도진이 원한 그대로 만들어졌다.
시작 단계인 설계부터 마무리 단계인 검수까지 도진이 직접 마친, 이건 공격대라기보다는, 도진이 두드려 만든 칼에 가까웠다.
‘하지만 날은 형편없어.’
기초가 될 쇠는 좋은 걸 골라 두드렸지만, 딱 거기까지.
아직 날을 세우지 못했다.
도진은 책상 위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종이를 바라봤다.
직접 펜을 들고 집중하려 적고 그린, 기억에 남아 있는 갈란테의 모든 것.
갈란테의 썩은 목을 칠 날을 벼릴 도진만의 숫돌이었다.
* * *
72시간 중 어느 지점.
‘불안정’이라는 단어에 걸맞게 뫼비우스는 지속적으로 갈란테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취급했다.
그 시한폭탄이 터진 건 마지막 공지사항으로부터 43시간 53분이 흐른 뒤였다.
월드 보스의 등장과 이벤트 인스턴스 던전 생성 소식에 대기 중이던 공격대가 일제히 움직였다.
공격대의 모습은 다양했다.
가볍게는 인터넷 방송인을 주축으로 모인 공격대도 있고, 고레벨 일반인들의 공격대도 있었다.
대형 길드는 최정예 1군 공격대와 2군, 3군까지 나누어서 던전에 진입하는 곳도 많았다.
같은 시간 내에 더 많은 도전을 통해 그만큼의 정보를 뽑아내려는 계획으로.
기업, 프로게임 구단 등을 스폰서로 두고 만들어진 공격대도 드물지 않았다.
저번 월드 보스 레이드 때보다도 훨씬 뜨거워진 열정, 열기, 집념이 느껴지는 움직임이었다.
이게 돈이 된다는 게 이미 몇 번에 걸쳐 증명이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신라도 바로 시작했네.’
다른 사람들은 헐레벌떡 갈란테를 보러 가고 있지만, 도진의 공격대는 2시간 후에 모이기로 했다.
지난 며칠 동안 하루 14시간씩 강도 높은 훈련을 해 왔는데, 마지막 훈련을 마무리한 지 겨우 4시간이 채 안 됐기 때문이었다.
도진도 자다 깨긴 했지만, 인던 오픈 소식을 듣고 누워 봐야 잠을 자긴 힘들 거 같아서 인방을 켰더니 신라가 방송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하죠. 길드 간의 연합. 뭐, 도진 씨 쪽은 길드는 아니긴 하지만. 월드 보스 공략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든 서로 도울 수 있는 건 돕자고요.」
신라 길드마스터 바리를 보고 있으니 그녀로부터 온 연락이 떠올랐다.
도진은 그녀에게 좋다는 대답을 돌려줬었다.
당장 협력이 필요하고 말고를 떠나 좋은 관계를 유지해서 나쁠 게 없기 때문에.
‘시작한다.’
도진은 사색을 접었다.
신라가 드디어 갈란테와 조우해 전투가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 * *
신라 길드 1군 공격대의 개전은 바리의 화살과 함께 시작됐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전장을 날아간 빛나는 화살이 숨이 멎은 용의 콧잔등에 박혔다.
-쿠오오오오오!
머리에 뿔이 5개 달린 용이 몸을 일으키며 포효했다.
묵직한 포효 주변으로 끼이이이이 하는 쇳소리가 끼어드는 끔찍한 포효였다.
갈란테의 포효는 그 자체만으로 디버프를 거는 광역 스킬이었다.
“어억……!”
상태이상에 대한 내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근접 딜러들이 비틀거렸다.
몇몇은 아예 육체에 대한 통제권을 잃고 병장기를 아군에게 휘두르기도 했다.
“공포랑 혼란이다!”
그래도 신라는 힐러 라인이 재빠르게 대처해 대규모 혼란이 발생하는 걸 빠르게 틀어막았다.
하지만 포효는 그저 인사에 불과할 뿐.
죽은 용의 시체에 심혈을 기울여 정제한 인간의 고통과 악의를 주입해 만들어진 괴물의 진짜 공격은 이제 시작이었다.
“탱커 앞으로!”
10명의 탱커가 만든 벽이 앞으로 나아갔다.
함성을 지르는 탱커들을 갈란테가 주목했다.
-쿠으으으으!
죽음의 기운을 풀풀 날리는 이성 없는 독각룡은 악의만으로 움직였다.
비늘이 가시처럼 돋아난 꼬리가 탱커들이 세운 벽을 향해 쇄도했다.
콰앙-
다수의 탱커가 만든 벽이 그대로 몇 미터 뒤로 쭉 밀렸다.
그래도 버텨 냈-
“조심-”
안도하려는 찰나 눈에 보인 광경에 탱커 하나가 비명을 질렀다.
촘촘히 박힌 검은 비늘 사이로 검붉은 액체가 분사되려는 걸 봐서였다.
푸화악.
하나 그 비명에 가까운 경고성은 액체가 에어로졸 형태로 고압분사 되는 것과 동시에 터진 것이었다.
대처할 새도 없이 안개처럼 퍼진 액체 입자에 노출된 탱커들은 순식간에 중독됐다.
“해독! 해독 좀 해 줘!”
“해독이 안 됩니다!”
“이거 지워지는 디버프가 아닌 거 같습니다!”
빠르게 빠지기 시작하는 탱커들의 피는 공대 전체를 당황케 만들었다.
“침착해! 딜러들 견제 공격 계속하고! 적 움직임에서 눈을 떼지 마!”
바리의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갈란테가 움직였다.
느린 듯하다가, 움직일 때는 마치 배속으로 재생되는 영상처럼 확 하고 움직이는 갈란테.
놈은 한 바퀴를 휙 회전하며 주변을 공격했다.
칼날과 다름없는 비늘로 뒤덮인 놈의 몸뚱이는 닿는 것만으로 생명을 분쇄하기에 충분한 흉기였다.
“끄아악!”
중상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갈란테가 고속 회전을 한 번 더 했다.
그러면서 다시 분사되는 독안개.
“시발, 미친 새끼들이! 이걸 어떻게 잡으라고 이딴 식으로 만들어 놨어!”
라이브로 레이드 장면이 송출되니 언행에 신경 쓰라는 말은 신라 길드원 머릿속에서 증발돼 버렸다.
한 번에 잡을 생각을 하지도 않았고, 정보와 경험을 얻기 위해 입던한 거라지만… 정도라는 게 있지 않나.
“지가 무슨 팽이인 줄 알아!”
근딜들은 접근도 못 하는 미친 몬스터라니.
그럼 원딜들이라도 제대로 딜을 해야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갈란테가 소리 없이 몸을 웅크리더니.
“어?”
날개를 접고 공중에서 그대로 돌진했다.
드릴처럼 몸을 회전하며 공격대 후방에 있는 원거리 딜러들을 습격한 것이다.
거기에 이어 지금까지 보여 줬던 회전 패턴.
끄아악- 하는 비명이 집단으로 울려 퍼졌다.
-……?
-뭐야, 저거 용이 뭐 저래? 무슨 고양이임?
-진짜 움직임이 고양잇과 동물 같네; 뭐 저리 빨라?
-움직일 때마다 독 뿌리는 게 미쳤는데?
-시발 뫼비우스 미친년들 ㅋㅋ 또또 지랄이네.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전투 시작과 동시에 펼쳐지는 괴랄하고 악랄한 갈란테의 패턴에 혀를 내둘렀다.
-다른 방송은 어떰? 여러 개 틀어 둔 사람 중계 ㄱ
-지금 나 미국 애들 하는 거 몇 개 틀어 놓고 보는데 그중 두 곳은 전멸했음 ㅋㅋ
-전멸? 패턴이 시발스럽긴 해도 벌써 전멸할 정도라고?
-ㅋㅋ 운이 더럽게 없었는지 지옥 같은 패턴이 연속으로 나와서 그런 듯.
-어어어어어?
시청자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갈란테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저거임, 저거!
그리고 그대로 입을 벌려 브레스를 충전하더니, 어떻게 대처해 보기도 전에 빠르게 상공을 날아다니며 지상을 독 브레스로 긁어 버렸다.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뿜는 브레스에 신라 길드원 수십 명이 즉사하거나 중상을 입으며 전투에서 이탈했다.
커다란 덩치에 비해 믿을 수 없는 속도, 접근하는 것조차 까다로운 공격 패턴에다 해제할 수 없는 독 디버프까지.
단 몇 분 동안 갈란테가 보인 전투력은 상대하는 입장에서 정말 끔찍한 수준이었다.
-와… 고렙들만 즐길 수 있다고 툴툴거릴 필요가 없네. 솔직히 하고 싶지 않은 수준인데?
-진짜임 ㅋㅋ 사망 페널티야 이벤트 인던이라 없다고 쳐도, 잡지도 못할 거 계속 대가리 박으면서 스트레스 받기 싫음.
-아, 전멸했네. 다른 방송 봐야겠다.
-그지그지. 그냥 이렇게 다른 애들이 대신 고생하는 거 치킨에 맥주 빨면서 구경하는 게 똑똑한 거임.
-근데 그 공격대는 시작 안 함? 방송도 안 켜졌네?
-그 공격대?
-도진. 그쪽 말하는 거겠지.
-아아. 그냥 좀 지켜보다 들어가려는 거 아닐까?
갈란테의 승리로 전투가 마무리되자 사람들은 아직 켜지지 않은 도진의 방송에 대해 이야기했다.
-비겁하게 다른 공격대 꼬라박는 거 보면서 정보 수집 중이란 거네? ㅋ
-비겁은 시발 ㅋㅋ 어차피 도진이 방송 켜고 공략 시작하면 다른 데서도 무조건 염탐할 텐데.
-근데 이번에는 진짜 어떻게 될까? 다른 데도 막 각 잡고 도전하고 있고, 각 게임 프로들 포함된 프로팀 비슷한 공격대도 미친 듯이 공략할 거 같던데.
-어디가 처음으로 깰지 묻는 거야?
-ㅇㅇ 이번에도 도진이 최초클 할까?
-내 생각엔 아무도 못 깰 거 같음 ㅋㅋ 공지사항에 적혀 있었잖아. 이번 월보는 1페, 2페로 나뉜다고. 1페는 그냥 아무도 못 깰 난이도로 만들고, 2페 때 좀 너프되면 잡으라는 뜻 같은데.
-어? 방송 켜졌다!
-진짜? 진짜다, 진짜야. 검은 화면 떠 있음.
신라 길드 방송의 시청자 수가 빠르게 줄었다.
다른 방송들도 마찬가지였다.
프로팀이든 대형 길드든 ‘공략’을 보기 위해 방송을 시청 중이던 사람들이 일제히 도진의 채널로 몰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검은 대기화면이 조금씩 밝아지며 도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급된 거 잘 챙기시고. 오늘은 가볍게 패턴 파악하고, 패턴 몸에 익히고, 공략 정립하는 데 필요한 정보랑 경험을 축적하는 데 집중하겠습니다.”
도진의 독각룡 갈란테 공략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