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190화 (190/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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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이렇게 흘러갈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콘텐츠 팀장 오영식은 지금도 얼떨떨하다는 듯이 말했다.

“깜짝 이벤트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건 뭐… 순식간에 일이 커졌네요.”

말 그대로 일이 커졌다.

콘텐츠팀 내부적으로도 ‘팬들과 히든 퀘스트 함께하기’ 정도로 무게를 잡고 준비를 했었던 게 이번 실시간 방송이었다.

‘어차피 투입되는 금액이야 마케팅 애들이 쌓아 놓은 광고만 좀 붙여도 충분히 뽑아낼 수 있을 테니까 부담 없이 해도 되겠거니 했더니만.’

규모가 이 정도가 되어 버리면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번 월드 보스 이벤트를 강제로 열어 버린 게 도진이니, 쏠릴 관심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걸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창출될 가치를 생각하면…….

‘아찔하네.’

근데 또 문제는 자신이 할 게 딱히 많지 않다는 거였다.

어차피 도진이 다 하는 거니까.

‘일 다 끝나고 소스가 다 나온 다음에나 본격적으로 할 게 생기지.’

그래도 바라는 그림에 대해 제안 몇 개 정도는 해 볼 수 있을 거다.

‘당장 안달 난 건 내가 아니라 저쪽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오영식은 김영희를 곁눈질했다.

화면 너머에 도진을 두고도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메시지를 보내고, 정신이 없는 모습.

그만큼 실시간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계속해서 들어온다는 소리였다.

그러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김영희는 아예 스마트폰을 무음으로 바꿔 버렸다.

“…죄송해요. 워낙 갑작스럽게 일이 터져서 정신이 없네요.”

[“괜찮습니다. 저도 이 상황이 당황스러운데요, 뭐.”]

“제가 괜한 엄살을 부렸네요. 진짜 바쁘고 정신없는 건 도진 씨일 텐데.”

작게 웃어 보인 김영희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거두절미하고 꼭 필요한 것만 말씀 드릴게요. 지금 서로 시간이 금보다 귀한 때잖아요.”

[“네.”]

“일단 이번 월드 보스 레이드도 실시간… 해 주실 거죠?”

김영희의 질문에 오영식도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거 엄청 중요한 사안이었다.

[“제가 신경 쓸 부분만 없으면, 그쪽은 알아서 해 주시면 될 거 같아요.”]

화면 속 도진의 대답에 두 팀장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후우, 제일 큰 산은 넘겼네요. 그럼 다음은 진행 방식에 관해선데요. 저번, 아니 이번처럼 공격대를 구성해서 레이드를 하실 거죠?”

[“주도적으로 공격대를 짤 생각이냐는 질문이면, 맞습니다. 혼자서는 무리일 테니 공격대를 짜야죠.”]

“그럼 이번에는 다른 길드랑 협력을 하는 건 어떠세요? 다름이 아니라 최근에 프로게임 구단들이 LOST 레이드팀도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런 곳에서 전부터 꽤 좋은 제안이 많이 들어와 있거든요.”

LOST가 엄청난 주목을 받으며 압도적인 유저 수를 확보한 만큼 PvP 게임이 메인이었던 프로게임 시장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LOST의 PvE, PvP가 본격적으로 e스포츠 시장의 파이를 빠르게 빼앗아 먹기 시작한 것이다.

선점 효과를 노린 게임 구단들은 이미 레이드팀을 구성해 활동하고 있었고, 자체적으로 던전 타임 어택 대회 등을 개최하는 경우도 늘고 있었다.

그런 프로게임 구단들 입장에서 월드 보스 레이드는 신생팀을 홍보하기에 더없이 완벽한 무대였다.

“월드 보스 레이드 이벤트만 해도 좋은 무대지만, 지금 상황에 도진 씨랑 같이 그걸 한다고 하면 홍보 측면에서 엄청난 시너지가 발생할 게 뻔하니까요.”

도진 입장에서도 나쁜 제안이 아닐 거다.

돈도 돈이지만, 여기저기 다른 게임에서 프로게이머를 하다가 LOST에 정착한 인원들.

실력은 검증된 거나 마찬가지다.

레벨도 높고, 장비도 엄청난 사람들이 팀 단위로 합류하는 거다.

도진도 그걸 알 테니, 당연히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올 거라고 김영희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팀 단위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저랑은 안 어울릴 거 같네요.”]

도진의 대답은 김영희의 생각과는 달랐다.

“어… 저는 괜찮은 거 같아서 제안을 드린 건데. 혹시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말을 안 들을 거 같아서요.”]

상상도 못한 이유여서, 김영희는 ‘네?’ 하고 한 번 더 묻고 말았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어느 게임에서든 프로게이머 활동을 해 본 분들이면 자부심이 꽤 강할 확률이 높잖아요. 그러면 자연히 고집이란 게 생기기 마련인데… 전 제 말 안 듣고 움직이는 거 싫어하거든요. 특히 팀 단위로 합류해서 자신들만의 성과를 내려는 욕심까지 있는 집단이면 더더욱 안 됩니다.”]

“음, 알겠습니다.”

김영희는 미련 없이 자신이 한 제안에 엑스표를 쳤다.

제안은 하되 강요는 절대 금지.

어차피 거절당할 것 같은 말은 꺼내지도 말 것.

웬만한 건 하고 싶은 대로 방치할 것.

이게 도진에 대한 회사 방침이었다.

[“공격대 인원 구성은 기본적으로 저번 월드 보스 레이드 때 참여했던 인원을 우선으로 선발하는 쪽으로 하겠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팬심’까지 평가해서 뽑았던 정예들이다.

이미 추려 놓은 정예들을 활용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저번에 신청 받아서 정리한 자료 남아 있을 거 같은데. 클래스 조합 때문이든 머릿수가 부족하든 그 자료 활용해서 채우는 걸로 하죠.”]

갈란테 등장까지 길면 한 달이 걸리지만, 짧으면 일주일 뒤에 튀어나올 수도 있었다.

그러니 준비는 빠를수록 좋았다.

“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렇게 전달하도록-”

김영희가 대답을 하는 도중에 벌컥 회의실 문이 열렸다.

헉헉거리며 들어온 건 M자 탈모가 진행 중인 중년 남자였다.

“7팀장님……?”

오영식은 상대가 누군지 몰라 어리둥절해했지만, 김영희는 그가 누군지 바로 알아봤다.

이번에 새로 회사에 합류해, 신설된 매니지먼트 7팀을 맡게 된 김진호였다.

“여긴 어떻게…….”

“그, 지금 그 게임하는 분이랑 회의 중이시라고 들어서 왔습니다.”

아니, 그건 맞는데. 당신 아이돌 담당이잖아.

김진호는 5인조 여자 아이돌 그룹 ‘위시’와 함께 들어온 케이스였다.

데뷔 3년 차. 적당한 인기. 파산한 소속사. 이런 게 겹쳐져서 한꺼번에 라엘 엔터로 온 이들.

그러니 한마디로 도진과는 연이 없는 분야에서 뛰는 사람들이란 소리였다.

“7팀장님, 죄송하지만 지금 중요한 회의를 하고 있어서-”

“아아, 알고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회의 중이신 거. 그래도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허허, 하고 웃어넘긴 7팀장 김진호는 바로 화면 앞으로 밀고 들어갔다.

살벌한 아이돌 판에서 현장직으로 단련된 사람을 막아서기에는 영상쟁이 오영식과 젠틀한 김영희로는 역부족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도진 씨. 매니지먼트 7팀장 김진호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부탁을 좀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뭘 말이죠?”]

“위시 아시죠? 제가 그 아이들 담당하고 있는데, 걔들 중에 도진 씨가 하는 게임을 하는 애가 있거든요. 이번에 엄청 큰 무대가 생겼다고 들어서, 거기에 한 자리만 좀 어떻게 안 될까 해서요. 어차피 같은 식구인데 서로 돕고 그러면 좋잖아요.”

도진은 어이가 없었다.

갑자기 난입해서 한다는 소리가…….

아니, 아이돌이 나랑 엮여?

화도 안 난다.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에이, 7팀장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압니다, 실례인 거. 그래도 이왕 말씀드린 거 대답만 좀 들어보고요.”

김진호의 계산은 이랬다.

도진도 남자다. 그것도 어린 남자.

게임 좀 잘한다고 아이돌 싫어하겠나.

당연히 좋아하겠지.

그럼 가능성은 충분한 거다.

[“죄송한데 위시가 누군지 잘 몰라서요.”]

“예?”

[“잘 모른다고요.”]

하지만 도진은 바로 ‘몰라’를 박아 버렸다.

아이돌이면 뭐? 방금 LOST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싹 다 쳐냈는데.

[“그분 레벨은 몇이신데요?”]

“어… 제가 듣기로는 80이 넘었다고 듣긴 했습니다.”

[“…….”]

마음이 앞서서 폭주를 한 건가? 아마 그 당사자는 오라고 해도 싫어할 거 같은데.

‘당사자가 하겠다고 한 거면 정말 노답이고.’

어느 쪽이든 답은 하나였다.

[“죄송하지만 안 될 거 같습니다. 이번 건 그냥 묻어 간다고 되는 수준이 아니라서요. 괜히 참가했다가는 안 좋은 소리만 들을 거예요.”]

“아… 그래도 엄청 열심히 하는 애라. 어딜 나가도 1인분은 꼭 하는 애거든요. 리액션도 좋고.”

연예계 종사자라 그런지 끈질기다.

[“죄송합니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아예 김진호에게서 시선을 거둔 도진은 김영희에게 말했다.

[“다른 부분은 팀장님들께 맡기겠습니다. 공격대 모집은 아까 말씀드린 걸 기본으로 하고, 레벨 컷은 높으면 높을수록 좋겠지만, 최소한 145는 넘겼으면 좋겠네요. 그럼 가 보겠습니다. 전달사항 있으면 지현이 누나 통해서 전해주세요.”]

그럼. 하고 도진이 화면에서 사라졌다.

도진이 도망치듯 사라지자 오영식과 김영희의 표정이 일제히 구겨졌다.

“…7팀장님, 정말…….”

김영희가 화를 꾹꾹 참으며 말을 흐렸다.

됐다. 그냥 보고하자. 실장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오영식은 그냥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말한다고 통할 사람도 아닌 거 같고.’

도진이 사라지자 ‘그래도 같은 식구인데 너무 짜게 구는 거 아녜요?’ 하며 투덜대는 인간한테 뭔 말을 하나.

연예계 현장직 출신이랑은 말씨름이든 뭐든 해 봐야 손해라는 걸 아는 두 팀장은 그냥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 * *

회의 같지 않은 회의를 마친 도진은 픽 웃음을 흘렸다.

“생각하면 할수록 어이가 없네.”

80레벨로 여기 판에 끼어 보겠다는 발언도 웃기고.

하다하다 아이돌이랑 엮인 것도 웃기고.

이런 게 ‘무수한 악수 요청’인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위시라고 했나? 어디서 들어본 거 같기도 하고.”

이런 걸로 기억을 더듬어 뭐해.

갈란테 발톱에 낀 썩은 이끼보다도 의미 없는 일인데.

그래, 갈란테. 지금 중요한 건 갈란테다.

‘갈란테는 저번이랑은 아예 다른 놈이니까.’

직전 월드 보스는 평원을 가득 채울 만큼 많은 수의 쫄몹을 대동한 놈이었다.

하지만 갈란테는 단일 개체로 등장하는 월드 보스 레이드다.

그만큼 강력하다.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부활. 거기다 당겨진 시간을 감안할 때 난이도 조정이야 있겠지만…….

‘상대적 난이도는 더 올라갈 수도 있다.’

아직 추가 공지사항은 없지만, 도진은 갈렌테 레이드가 어떻게 진행될지 알고 있었다.

처음에 갈란테는 인던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

월드 보스 레이드 존에 진입해 갈란테와 싸우게 되는 거다.

이때 아무도 갈란테를 처치하지 못하면 다음 페이즈로 넘어간다.

인스턴스 공간이 아닌 오픈된 공간에 갈란테가 등장하고, 모든 유저가 단 하나의 갈란테와 싸우게 된다.

과거, 아니 전생에는 인던 보스로서의 갈란테를 어떤 공격대도 공략하지 못했다. 덕분에 오픈 필드에 완전체로 갈란테가 강림했고, 중앙대륙 일부는 죽음의 땅이 됐다.

‘인스턴스 던전 안에서 공략에 성공한다고 거기서 끝난다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밖으로 튀어나올 때 약화는 되겠지.’

그래서 도진은 그것부터 준비하기로 했다. 200명이 넘는 인원이 하나의 인스턴스 던전에서 하나의 보스를 상대하는 용 사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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