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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지긋한 사제의 눈에서 분노가 폭발했다.
아니, 분노보다는 혐오감이었다.
위대한 별에게 바칠 위업을 준비하는 신성한 곳에 벌레와도 같은 불신자들이 들어와 있는 것을 보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가 지금 느끼고 있는 혐오감은 극심한 결벽증을 앓는 요리사가 제 주방에서 바퀴벌레 수십 마리를 목격한 것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
정상적으로 중단되지 않은 마법적 의식은 여전히 의식의 수행자들에게 부자유를 강제했다.
해서, 멸망교단의 주교는 이미 추출해 놓은 힘을 이용해 자신의 의지를 표출했다.
검붉은 안개와 같이 부유하던, 인간에게 고통과 절망을 강제해 추출한 부정적 에너지는 전형적인 악령의 형상으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그걸 본 도진은 냅다 마법부터 갈겼다.
《섬광창》
원래 이런 대규모 마법은 발동도 어렵지만 정지는 더 어렵다.
중간에 괜히 개입하면 온갖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고.
최악의 경우 대폭발 엔딩이 날 수도 있어서 공격을 자제했지만.
‘어차피 지면 다 죽는 거야.’
아직 구출해야 할 생존자가 남아 있는 상황에 도망친다는 선택지를 고를 수도 없다.
그러면 일단 질러야지 어쩌겠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든 누군가 선공해서 ‘핑’이 찍히면 본능적으로 달려드는 게 게이머의 기본 소양.
도진의 공격을 목격하자마자 공대원들도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
펑펑 터지는 마법과 각종 스킬들.
【불경하고 불결한 것들이 발악을!】
분노로 가득 찬 주교가 급조된 악령의 몸을 빌려 내뱉는 외침은 수백 명이 일제히 내지르는 단말마 같았다.
단순히 듣기에만 끔찍한 소리가 아니다.
혼란 디버프를 강제하는 광역 공격이었다.
마법과 정신계 공격에 취약한 물리 딜러들 다수가 귀를 막고 패닉에 빠졌다.
“힐러들, 정신계 방어 주문 돌려요!”
도진은 그런 이들에게 냉기와 바람을 뿌렸다.
정신 못 차리는 사람에게 얼음물을 들이붓는 것과 같은 행위였다.
“헉!”
“꺄악!”
집단적 혼란은 빠르게 수습됐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에 빼앗긴 수 초였다.
이런 광역 디버프가 뿌려진 뒤에는 반드시 후속 패턴이 따르기 마련.
“피해!”
혼란에 걸린 인원이 비교적 많은 쪽으로, 주교가 손을 뻗는다.
그에 따라 마법진 위에 만들어진 커다란 악령이 따라서 손을 뻗었다.
물리적 요란함은 없었다.
다만 악령과 접촉하는 것만으로 엄청난 마법 피해가 발생할 뿐.
“끄어어어억!”
공격에 휩쓸린 자들은 목을 꺾어 하늘을 바라보며 좀비처럼 몸을 비틀다 바닥에 쓰러졌다.
【위업을 방해한 죄, 씻을 길 없으니. 네놈들은 죽음 이후에도 위대한 라베스 님 아래서 영원히 고통 받을 것이다.】
“꺄아악! 저, 저기!”
주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쓰러졌던 자들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좀비화다.
유저의 시체가 좀비가 되다니.
외상 하나 없이 곱게 죽은 동료가 벌떡 일어나 칼을 들이미니 일순 공격대 전체가 당황해 술렁였다.
“그냥 몬스터라고 생각하고 죽여요! 여유 되는 사람은 저 마법진부터 공격하고!”
이번에도 가장 판단을 빠르게 내린 건 도진이었다.
죽은 사람이 꿈틀대는 걸 보자마자 그것들이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광역 마법을 날려 쓸어버린 것.
【미, 미친놈! 동료였던 자를 바로 그렇게……!】
너무나 빠른 판단과 과감한 공격은 멸망교단에서 주교까지 올라간 자마저 당황시켰다.
같은 편을 일으켜서 서로 상잔하게 만들면 당황해서 대처를 못 하는 게 정상 아닌가?
그걸 노렸던 주교로서는 도진의 반응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쓰러졌던 동료가 일어나려는 걸 보자마자 공격을 퍼붓다니.
하지만 도진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정배 당했으면 죽어야지.’
사망해서 좀비화된 거면 어차피 죽은 거 빨리 처리해야 하고, 만일 정신만 잃고서 지배당해서 일어난 거라 해도 바로 죽여야 했다.
괜히 최면이든 정신 지배든 디버프 풀어 보겠다고 쩔쩔매면서 시간이든 자원이든 낭비하면 전체가 전멸할 수도 있었다.
‘까다롭긴 해도 그렇게 어렵진 않아.’
광역 혼란도, 집단 좀비화도, 하나하나가 전멸을 불러올 수도 있는 패턴이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어렵다 못해 전투 시작과 동시에 연계 패턴에 휘말려 허우적대다 전멸 엔딩이 나는 게 맞았다.
하지만 도진은 공대원들이 당황할 틈도 주지 않고 선 대처 후 명령으로 사태를 진압했다.
사령탑이 흔들릴 생각을 하지 않으니 공격대의 흔들림은 유의미한 수준까지 도달할 수 없었다.
‘최대한 빨리 끝내야 돼.’
도진은 쉬지 않고 마법을 시전했다.
적을 공격하고, 아군을 보조하고, 상황을 통제하고.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상황에 맞는 최선의 선택을 이어 갔다.
거대한 악령은 도진과 공격대원들의 공격에 이리저리 비틀대다 유리관에 갇힌 재료들 쪽으로 손을 뻗으려 했다.
“레사 누사, 방패!”
회복을 위해 무언가를 섭취하는 전형적인 보스 패턴. 아마도 이런 패턴이 있지 않을까 하고 예상하고 있던 도진은 바로 테레사를 동원했다.
그녀의 유물 방패는 악령의 포식을 완벽하게 방해했다. 쿵 하고 장벽에 가로막혀 튕겨 나는 악령의 손.
【으아아아! 라베스이시여!】
의도한 게 모두 예측당하고, 가로막히는 상황 속에서 주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
그건 마법진 안에서 의식을 진행하고 있던 다른 사제들을 양분으로 삼는 것이었다.
“끄아아아아악!”
아무것도 모르고 무아지경 속에서 기도문을 읊고 있던 사제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절명했다.
마법진의 일부가 되어 의식을 진행하는 와중에 생명력을 갈취당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단순히 생명력만 잃는 게 아니라 마력 순환이 깨지며 회로가 다 작살 났을 테니.
【끄에에에에엑!】
거대 악령은 다시 힘을 키웠다.
하지만 그나마 마법진 덕에 안정되어 있던 악령은 점점 주교의 통제에서 벗어났다.
‘멍청한 놈. 저걸 통제할 수 있던 이유가 자기가 밟고 있는 마법진인데 그걸 구성하는 걸 제 손으로 작살 내?’
주교가 악령을 통제하기 위해 씨름하는 동안 도진은 그 틈을 파고들어 최대한의 이득을 뽑아냈다.
통제권을 잡는 걸 방해하고, 악령 본체를 타격하고, 마법진 일부를 파괴했다.
“보스가 작아진다!”
어느 시점을 지나자 도진 측은 마법진과 주교, 악령을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입장이 되었다.
일체화되어도 모자랄 판에 주교는 주교대로, 악령은 악령대로, 고통에 깨어난 다른 사제들을 저 살겠다고 버둥대고 있으니 제대로 된 전투력이 나올 리가 있나.
‘멸망교단의 전술적 병신 짓은 유구한 전통이지.’
그걸 무시하는 스펙 괴물이 있으면 문제가 되지만, 지금 이곳에는 그런 규격을 벗어난 괴물이 없다.
“됐다!”
누군가의 외침은 악령이 힘을 잃고 흩어진 시점에 터진 것이었다.
아군의 피해가 경미해지면서 힐러 포지션에 위치한 공대원까지 공격에 가담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끄으으윽……!”
마법진 안에 있던 자들 중 숨이 붙어 있는 건 주교 하나였다.
다른 사제들은 전투 중에 악령의 생명력으로 치환되어 다 절명했다.
‘그래도… 희생은 최소화했다고 자위가 가능한 수준인가.’
위협이 가라앉은 걸 확인한 도진이 가장 먼저 신경 쓴 건 아직 구조하지 못했던 희생자들이었다.
최대한 피해가 적게 가게끔 신경을 썼지만, 그렇다고 그 피해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젠장.”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던 그들은 상당수가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도진이 따로 말할 것도 없이 사람들은 급히 달려가 생존자들을 구출했다.
힐러들은 마나 고갈에 시달리면서도 아낌없이 치유 마법을 퍼부었고, 포션도 아낌없이 사용했다.
도진은 아까 확인했던, 살아 있는 오르펜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구석진 자리로 걸어가면서 도진은 바닥에서 벌레처럼 신음하는 주교를 향해 마법을 날렸다.
자신의 피로 바닥에 무언가를 그리려던 주교는 머리가 터져 죽었다.
도진은 깨진 유리관 안에서 축 늘어져 있는 오르펜을 꺼냈다.
소년의 몸은 작고 왜소했다.
“…저예요.”
도진 옆에서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며 오르펜이 말했다.
“아직 살아 있어. 네가 돌아오면 살아날 수 있어.”
육체의 상태는 양호했다.
영혼이 분리되어 혼수상태에 빠져 있을 뿐.
하지만 도진의 말에 오르펜은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이미 저는 이 아이들이랑 한 몸이 된걸요. 다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해요.”
오르펜이 마법진을 돌아봤다.
“이곳에서 죽은 친구들은 계속 고통 받았어요. 물론 저도요. 그래서 같이 도망친 거예요.”
결손된 기억이 돌아온 걸까.
오르펜은 자신이 어떻게 이런 상태가 된 것인지 기억해 냈다.
“아파하는 친구들을 두고 갈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같이 도망친 거죠.”
오르펜은 영혼을 다루는 재능을 지니고 태어난 아이였다.
고통 속에서 오르펜은 본능적으로 능력을 사용했고, 자신의 영혼을 육체에서 분리했다.
혼자서 도망칠 수도 있었지만, 친구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오르펜은 다 함께 탈출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우릴 도와줄 어른을 찾아서 도망친 거였는데… 그걸 잊어버렸네요. 옆집 아저씨한테 도와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그 아저씨가 나쁜 아저씨였거든요.”
아이들은 어른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믿고 의지하려 했던 어른이 사실은 자신들을 수렁에 빠뜨린 악인임을 알았을 때 아이들은 복수에 눈을 떴을 거다.
어른의 악의로 악령이 되었던 아이들이 활짝 웃었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아저씨가, 그리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릴 구해 주러 왔잖아요.”
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을 뗐다가는 표정이 일그러질 것만 같았다.
“우리들 엄마랑 아빠도 이제는 편해졌어요. 저기에 묶여 있었는데 아저씨가 풀어 줬거든요.”
오르펜의 얼굴이 사라지고, 다른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이는 끄윽, 끄윽 하고 숨이 넘어갈 듯 울고 있었다.
“엄마… 엄마아…….”
도진은 묻지 못했다.
죽은 엄마를 찾는 건지, 살아 있는 엄마를 찾는 건지.
어느 쪽이든 무겁기 그지없는 비극이기에.
“무슨 결말이 이렇게…….”
거지 같아.
아이들은 죽어 있고, 아이들의 가족은 살아 있든 죽어 있든 돌이킬 길 없는 비극인 건 매한가지다.
이미 시작부터 해피엔딩 따위는 없는 이야기였던 거다.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닥쳐오니 기분이 개 같았다.
“고마워요, 아저씨. 역시 엄마 말이 맞았어요. 세상에는 착한 사람이 더 많다고 그랬거든요.”
다시 오르펜이 나타나 하는 말에, 도진은 눈을 감았다.
끌어안고 있는 소년의 심장박동이 점점 느려진다.
주변에 있는 힐러들이 눈물을 흘려 가며 쏟아붓고 있는 치유력에도 소년의 생명은 빠르게 꺼져 가고 있었다.
“아저씨, 우리 손 잡아 줄래요? 왠지 아저씨가 손을 잡아 주면 무섭지 않을 거 같아요.”
조금씩 흐려지는 모습으로 하는 말에 도진은 말없이 아이들의 손을 잡았다.
손은 하나인데, 마치 수백 명의 아이들을 붙잡은 것 같은 감각이었다.
그때 도진과 아이들이 맞잡은 손에서 별빛이 일었다.
[별의 사도로서 이들을 안식으로 인도합니다.]
악령이 되었던 아이들이 순수한 영혼으로 돌아갔다.
요람이자 안식처인 창조의 별로 돌아가 언젠가 새로운 생명이 될 때까지 안식을 취할 것이었다.
사도로서 처음 각성한 능력이 이것이란 것이, 도진은 너무나 감사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무고하게 희생당한 자들의 영혼이 별빛과 함께 정화되었다.
[월드 보스 조기 해금 알림]
[새로운 월드 보스가 예정된 시점보다 먼저 눈을 뜨려 합니다.]
담고 있는 비극에 비해 너무나 아름다운 빛 무리에 불길한 메시지가 겹쳤다.
언제나 이랬다.
멸망교단과 얽힌 일은 곱게 마무리되는 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