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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187화 (187/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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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은 적이 제대로 된 대응을 할 틈을 주지 않고자 숨 쉴 틈 없는 템포로 공세를 이어 갔다.

기습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그 이점을 가져가는 시간을 길게 끌기 위해서였다.

이는 멸망교단 측의 피해를 극대화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그 시간이 무한하진 않았다.

일방적 공세에는 분명한 한계점이 존재했다.

“라베스의 뜻으로!”

우렁찬 함성 소리와 함께 등장한 성기사들.

최초의 폭음을 듣고 자리를 이탈했던 놈들이 돌아온 것이다.

멸망교단의 성기사가 말만 성기사고 매우 공격적인 스킬 구성을 지녔다지만, 그럼에도 기사 직군의 단단함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적에게 든든한 탱커 라인이 합류하면서 전투는 수십 초간의 교착 상태를 거쳐 본격적으로 난전에 돌입했다.

“한번 밀려나기 시작하면 끝장이니까 목숨 걸고 밀고 들어가요!”

힘을 비축하고 있던 도진이 나선 시점이 바로 이때였다.

이미 완성되어 마법회로를 가득 채우고 있던 주문을 발동했다.

《화염포》

150레벨을 넘기고 6성 마법사가 되면서 쓸 수 있게 된 마법 중 하나인 「화염포」.

극도로 압축된 불은 일반적인 화염이 아닌 붉은색 광선처럼 보였다.

「파멸 룬」과 「필살 룬」의 효과가 동시에 묻어 있는 고압, 고열의 적색 화염줄기는 경로상에 있는 걸 모두 관통해 버렸다.

멸망교단 성기사 셋과 사제 둘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젠장.’

적과 아군 모두 얼어붙게 만든 주제에 도진은 속으로 욕을 했다.

조준이 빗나가는 바람에 목표로 한 놈이 화염포에 맞질 않아서였다.

‘지휘관부터 죽이려고 했더니.’

성기사들을 이끌고 나타난, 유독 화려한 갑옷을 입은 놈을 노린 공격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도진은 적이 당황한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로 했다.

“어어, 도진아!”

테레사의 비명은 합당한 것이었다.

탱커 라인 앞으로 튀어 나가는 마법사를 보면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게 당연했다.

“뭐야, 이건!”

멸망교단 쪽도 어이없어하긴 마찬가지였다.

딱 봐도 마법사처럼 보이는 놈이 적진으로 뛰어든 것이다.

“마법 쓰기 전에 죽여!”

달려드는 적들.

잠시 후면 그들의 칼날이 온몸을 헤집을 게 분명했다.

하나 도진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발을 굴렀다.

동시에 도진을 중심으로 자욱한 안개를 동반한 바람이 일고, 광범위한 스파크가 튀었다.

「안개」와 「회오리바람」, 「방전」이 겹쳐지며 벌어진 현상이었다.

위력보다는 범위와 시각적 효과에 중점을 두고 시전한 덕에 겉모습만 보면 마치 엄청난 마법처럼 보였다.

“으윽!”

방금 「화염포」에 다섯 명이 비명횡사하는 걸 본 직후다.

도진을 공격하던 놈들이 위축되는 건 당연했다.

“이익- 겁쟁이 같은 놈들이!”

물론 그렇지 않은 자도 있었다.

머리가 아니라 본능 단계에서부터 믿음에 중독되어 본인의 목숨보다 신의 영광이 중요한, 한마디로 광신도 같은 놈이 말이다.

공교롭게도 스파크가 미친 듯이 튀고 있는 불투명한 회오리 속으로 뛰어든 광신자는 도진이 노리고 있던 성기사들의 지휘관이었다.

자신이 만든 불가시 영역을 뚫고 들어오는 표적을 「적야」를 통해 확인한 도진은 환영 인사를 준비했다.

《그림자 가시》

검은 가시를 손에 쥐고서.

“으아악!”

바람을 뚫고 들어온 성기사를 맞이했다.

“헉!”

반응할 새도 없이 도진의 「그림자 가시」가 성기사의 허벅지에 꽂혔다.

마음 같아서는 심장에 찔러 넣고 싶었지만, 방패를 들이밀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라베스의 이름으로!”

성기사가 기도문을 외웠다.

생명력을 대가로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류의 스킬.

죽더라도 도진만은 데려가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물러나기엔 늦은 거 같은데.’

경직 정도는 생길 줄 알았더니, 바로 대응을 해 올 줄이야.

뒤로 물러나려 했다가는 뻗는 칼에 관통당할 것 같았다.

해서, 도진은 아예 칼에 맞아 주기로 했다.

퍼억-

염동 강화를 잔뜩 한 손이 형편없이 꿰뚫렸다.

하지만 그걸로 됐다.

생명력이 확 줄긴 했지만, 즉사만 피하면 그만이다.

《뇌전검》

도진의 손끝에서 푸른 전광이 뿜어졌다.

화염포와 마찬가지로, 한계까지 압축한 뇌전이었다.

유지가 힘든 전기의 특성 탓에 「화염포」만 한 범위와 사정거리를 갖진 못하지만, 그만큼 힘의 집중력은 이쪽이 위였다.

“커어-”

감전으로 인해 온몸이 굳은 성기사를 보며 도진은 「뇌전검」의 힘을 터뜨렸다.

도진이 떨어져 나감과 동시에 성기사는 눈을 까뒤집고 뒤로 넘어갔다.

보유한 특성의 효과로 중첩된 도트딜까지 겹쳐져 성기사는 순식간에 남은 생명력을 전부 잃어버리고 죽음을 맞이했다.

표적의 생명이 사그라지는 걸 마안을 통해 확인한 도진은 다음 주문을 준비했다.

주변에 깔아 두었던 안개와 회오리바람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디멘달 경!”

죽은 놈 이름이 디멘달이었나.

듣는 즉시 쓸모없는 이름을 지워 내며 도진은 땅에서 암석 여러 개가 솟게 만들었다.

그런 뒤 그것을 발판 삼아 위험지역에서 빠져나왔다.

「염동체술」이 제공하는 기동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저 녀석이 제일 위험한 놈이다! 죽여!”

“놓치지 마라!”

물론 적들도 도진을 순순히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검붉은 라베스의 기운이 똘똘 뭉친 공격 마법들이 도진을 노리며 허공을 갈랐다.

하지만 난전 속에서 도진을 맞추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움직임이 재빠른 건 둘째치고, 도진이 지독한 엇박자를 섞어 가며 기동을 했기 때문이다.

정직하게 쏘면 정직하게 쏘는 대로, 예측해서 쏘면 예측해서 쏘는 대로, 도진은 얄미울 정도로 정박과 엇박을 섞어 도약하며 모든 공격을 피해 냈다.

“저, 저 쥐새끼 같은 놈이!”

“벨라의 사생아 새끼!”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극찬을 받으며 도진은 원래 있던 자리에 도착했다.

바닥에 내려서자마자 도진은 성수를 꺼내 자신의 머리에 쏟아부었다.

“정화 좀요.”

힐러들에게는 이렇게 요청하고.

공격 마법은 죄다 피했어도 범위를 점하는 공격과 저주에는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정말 한 끗 차이였어.’

여유가 넘쳐 보여도 도진도 목숨 걸고 한 일이었다.

실제로 정말 위험한 수준까지 생명력이 줄어들기도 했고.

“야아- 너 진짜 미쳤어!”

테레사는 탱커 라인까지 내팽개치고 달려와 소리를 쳤다.

“여기서 뭐 해? 빨리 자리로 가. 누나 방패가 얼마나 중요한데.”

태연히 하는 말에 테레사는 가슴을 퍽퍽 쳤다.

“아오, 지금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심장 떨렸는지 알고 하는 말이야?”

“살아 있으면 됐지.”

대답하며 도진은 전장 상황을 살폈다.

역시 한쪽으로 적의 신경이든 인원이든 확 쏠리게 어그로를 끈 덕에 전세가 많이 이쪽으로 기운 게 보였다.

도진이 적진을 들쑤시는 동안 공격대라고 놀고 있던 게 아닌 것이다.

“혼나는 건 나중에 몰아서 혼날 테니까 지금은 이기는 데 집중하자.”

테레사를 떠밀어 다시 전투에 합류시킨 도진은 지속적으로 지원 사격을 하며 전투에 임했다.

그러다 「파멸 룬」이 충전되면 중요 표적으로 보이는 놈들을 저격하고.

그게 몇 사이클을 돌자 멸망교단 측은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피해가 누적되다 보니 전력 차가 확 벌어지는 시점이 온 것이다.

입구를 거쳐 넓은 통로를 거쳐 넓은 공간이 나왔다가 다시 통로가 이어졌다.

그렇게 놈들의 은신처를 계속해서 밀고 들어가니, 어느 순간 사제 놈들이 발작을 일으켰다.

“이 뒤로는 안 된다! 무조건 막아 내라!”

“위대한 의식이 방해받는 건 막아야 됩니다!”

이런 외침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데 어떻게 안 들어가겠나.

도진이 뭐라 말할 것도 없이, 공격대원들은 잔뜩 흥분해서 파죽지세로 돌파를 감행했다.

탱커까지 스크롤을 찢어 대며 마법을 쏟아붓는 집단 앞에서, 이미 피해를 막심하게 입은 멸망교단 측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어?”

그렇게 들어간 아주 넓은 공간.

던전의 끝자락쯤으로 여기고 그곳에 들어선 사람들은 눈에 들어온 충격적인 광경에 일제히 굳어 버렸다.

“이, 이게 뭐야……?”

누군가는 방패를 떨어뜨리기도 했고.

“우웨엑…….”

비위가 약한 몇몇은 구토를 하기도 했다.

‘고위 사제가 다 여기 모여 있었구나.’

바깥이 허술했던 이유가 있었다.

강력한 사제들이 전부 이곳에서 의식을 진행하느라 묶여 있었던 것이다.

거대한 마법진 위에서 눈을 감고 기도문을 읊는 수십 명의 멸망의 사제들.

의식에 묶인 상태인 놈들은 지금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인지하지도 못할 것이었다.

물론 이런 사제들의 의식 때문에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아니었다.

납치되어 팔려 왔을 사람들.

의식의 재료가 되는 사람들이 문제였다.

넓은 공간이 좁게 느껴질 만큼 촘촘히 배치된 유리관에 담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재료’가 문제다.

‘재료가 되는 인간들한테서 생명력이랑 부정한 힘을 끌어모아 축적하는 구조다.’

한순간에 죽여서 뽑아내는 구조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고통을 부여해 거기서 발생하는 모든 걸 쥐어짜는 방식.

재료들은 의식이 진행됨에 따라 아주 조금씩 썩어 들어가는 육신이 가져오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들 중 대다수는 신체의 일부가 절단된 상태였다. 심한 자는 사지는 물론이고 몸통의 살점까지 상당 부분 절단된 자도 있었다.

하나의 재료에서 최대한 많은 생명력과 고통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썩은 신체를 절단해 가며 연명시킨 결과였다.

“…이 미친 새끼들!”

누군가가 사제들을 보며 외쳤다.

그냥 던전 탐험 정도로 여겼는데, 알고 보니 나치나 일제보다 더한 짓거리를 하는 놈들이란 사실에 분노한 것이었다.

의식을 그리고 의식을 진행하느라 묶여 있는 고위 사제들을 지키기 위해 멸망교단 놈들은 필사적으로 항전했다.

그러나 분노한 유저들의 총공세를 견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거 함부로 건드려도 되는 건가?’

포로 없는 전투를 마무리한 뒤 도진은 여전히 눈을 감고 기도를 읊는 놈들을 보며 고민했다.

섣불리 건드렸다 뻥 터지면 어쩌나 싶어서였다.

‘그렇다고 그냥 방치할 수는 없으니…….’

도진은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제부터는 진짜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휘말리고 싶지 않은 분들은 나가셔도 됩니다.”

도진의 말에 약간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들도 주변을 다시 둘러본 뒤에는 결연한 눈으로 자리에 남았다.

“…그럼 저분들을 꺼내는 것부터 시작하죠.”

어쨌든 의식이 방해받기 시작하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알 수 없으니 조심하라는 도진의 경고와 함께 작업이 시작됐다.

유리관에 갇힌 희생자들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밖으로 내보내는 구조 작업이.

도진은 마법진과 사제들의 상황을 살피는 역할을 맡았다.

한데 그때.

“아저씨.”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르펜이었다.

얌전히 기다리라고 했는데 어느새 이곳에 있었다.

소년은 한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도진은 오르펜이 보는 방향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너…….”

거기엔 오르펜이 있었다.

유리관 안에 결박되어 죽은 듯 눈을 감고 있는 오르펜이.

망령의 구심점인 소년이 아직 살아 있었다.

“공대장님! 저기! 한 놈이 눈을 떴습니다!”

놀라움을 수습하기도 전.

의식의 가장 중요한 지점을 차지한, 최소한 주교급은 될 멸망교단 사제가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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